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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1

       꼬르륵-

       당근 배와 함께 연못 아래로 가라앉았다.

       조금만 기다렸다가 올라갈까 싶은 순간에, 한여름이 나를 향해 뛰어들었다.

       

       덥썩-!

       한여름의 손에 잡혀 수면 위로 올라왔다.

       폐활량이 높아진 건지, 그때까지도 숨이 가쁘지가 않았다.

       

       “겨울아!”

       

       “네···?”

       

       “괜찮니···?”

       

       상당히 걱정스러워 하는 태도다.

       내가 물에 빠진 거라 착각한 게 분명했다.

       

       “괜찮아요. 여기 수위가 낮거든요. 그냥 레비나스가 배 만들었길래 실험 삼아 타본 거예요.”

       

       “그, 그렇구나?”

       

       한여름이 침몰한 당근 배를 내려다보더니, 나를 연못 위로 올려주었다.

       홀딱 젖은 내 손을 레비나스와 새벽이가 잡아당겨 주었다.

       

       “왕아! 괜찮냐?!”

       

       “응. 괜찮아.”

       

       “다행이다! 레비나스는 레비나스때문에 왕이가 큰일 난 줄 알았다!”

       

       휴우우.

       레비나스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더니, 홀딱 젖은 내 머리카락을 붙잡았다.

       살짝 움켜 쥐었음에도 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왕아, 도리도리해야겠다!”

       

       “도리도리?”

       

       “응! 반동을 줘야 한다!”

       

       레비나스가 물을 털어낼 때의 강아지처럼 머리와 상체를 좌우로 흔들었다.

       속도가 굉장히 빨라 머리가 어지러워 보였다.

       

       “음···”

       

       저건 수인족의 방식인 걸까?

       아니면 레비나스만의 방식인 걸까?

       뭔지 모르겠으니 일단은 그녀가 시키는 대로 해 보기로 했다.

       

       “이렇게 하는 건가?”

       

       탈탈탈-!

       머리와 상체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에 반응한 꼬리가 같이 흔들렸다.

       

       솔직히 제대로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효과는 예상 이상으로 컸다.

       빠르고 탄력 있는 몸이 물을 사방으로 퍼트려 주변 사람들을 젖게 만들 정도였다.

       

       “미, 미안··· 해요.”

       

       아이들에게 사과하다가 정유나가 있어서 끝에 존댓말을 붙였다.

       다행스럽게도 딱히 화가 난 사람은 없어 보였다.

       

       “겨울이가 아주 힘차네?”

       

       후후.

       정유나가 웃으면서 지팡이를 휘둘렀다.

       우리를 적신 물기가 한데 모여 구체를 형성하더니, 연못 위에 퐁당 떨어졌다.

       

       ‘와···’

       

       마법은 언제 봐도 신기하단 말이지.

       정유나의 마법에 감탄하고 있으니, 그녀가 더욱 놀라운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가라앉았던 당근 배가 물 위로 솟아오른다.

       끝인 줄로만 알았던 배의 부활에 레비나스가 폴짝 뛰어올랐다.

       

       “레비나스의 배가!”

       

       “잠깐 기다려 볼래? 더 안전하게 만들어 줄게.”

       

       정유나의 마력이 배를 감싸 안았다.

       잘은 몰랐으나, 레비나스의 당근 배가 더욱 좋아지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마법의 배다!”

       

       레비나스가 당근 배를 향해 발을 뻗었다.

       흔들리는 배에 겁먹었는지, 발을 뒤로 빼고는 정유나를 올려다보았다.

       

       “응. 올려줄게.”

       

       정유나의 마력이 우리의 몸을 감싸 안는다.

       동시에 나와 두 아이의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

       

       ‘와.’

       

       내가 살면서 부유 마법을 겪게 되는 날이 오다니.

       신선한 충격에 꼬리가 쫑긋 솟아올랐다.

       마법이 없던 세계에 살다 와서 남들보다 반응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법이 일상인 아이들은 딱히 놀라워 하지 않았다.

       새벽이는 빈 공간에 엎드려 수면을 취했고, 레비나스는 배에 놓인 당근 노를 저을 뿐이었다.

       

       “왕아! 아래 물고기 있다!”

       

       “응.”

       

       당근 배 아래로 고등어 무리가 지나간다.

       한 마리만 잡아갈까 싶던 그때, 레비나스가 노를 번쩍 들어 올렸다.

       

       “잡아랏!”

       

       레비나스가 고등어무리를 향해 노를 내리쳤다.

       부력으로 인해 고등어를 공격하진 못하고 수면만 내리쳤다.

       

       “킥킥.”

       

       레비나스는 그것만으로도 즐거웠는지 하염없이 수면을 타격했다.

       저걸로 고등어를 잡진 못하겠지만, 레비나스가 재밌어하니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고등어가 잘 피하네.”

       

       “응! 그래도 물고기는 뿔토끼보다 약해! 상어만 빼고!”

       

       찰싹-! 찰싹-!

       레비나스가 몇 번이고 연못을 내리쳤다.

       그녀의 무차별적인 공격에 화가 났는지, 연못 속을 헤엄치던 고등어가 수면 위로 튀어 올랐다.

       

       퍽-!

       고등어가 레비나스의 코를 치고 달아난다.

       깜짝 놀란 레비나스가 노를 든 자세에서 굳어버렸다.

       

       “오.”

       

       “······.”

       

       레비나스가 굳은 자세로 고개만 돌려 나를 돌아보았다.

       천천히 두려움이 밀려들었는지, 동공의 떨림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괜찮아?”

       

       “도, 도망이닷···!”

       

       레비나스가 고등어를 피해 노를 저었다.

       성난 고등어 무리가 우리 주변을 돌아다녔다.

       

       “고등어가 많이 화났나 보다.”

       

       이 동네는 고등어가 사람도 공격하나.

       정말로 폭력적인 세계다.

       노를 젓는 레비나스의 팔이 달달 떨리기 시작했다.

       

       “무, 물꼬기가···!”

       

       레비나스가 한여름과 정유나가 있는 곳을 향해 노를 저었다.

       두 여성이 당황스러운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도, 도와줘야 하나?”

       

       “그, 그치, 애들이 무서워하니까.”

       

       정유나가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그 순간에 고등어 한마리가 레비나스를 향해 튀어올랐다.

       처음 레비나스의 코를 공격했던 그 녀석이었다.

       

       “으갹!”

       

       레비나스가 눈을 질끔 감아버린다.

       그녀를 도와줘야 한다.

       마음먹는 순간, 세상이 느리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볼 수 있었다.

       자는 줄로만 알았던 새벽이가 눈을 번뜩이는 것을.

       새벽이가 튀어 오른 고등어를 입으로 덥석 물어버렸다.

       

       “오···”

       

       저걸 손도 꼬리도 아니고 입으로 물다니.

       힘만 세다고 했는데, 반응 속도도 상당히 빨랐다.

       

       “움뭅.”

       

       고등어를 입에 문 새벽이가 꼬리를 흔들었다.

       이번 해전의 승자는 새벽이었다.

       

       

       **

       

       

       아침의 가벼운 뱃놀이를 끝내고, 겨울이 사냥하러 떠나갔다.

       시간이 되었음을 확인한 새벽은 한여름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저기···”

       

       “응, 새벽아.”

       

       “나 이제 준비됐어.”

       

       아이들과 실컷 놀고 나서 깨달았다.

       혼자서만 끙끙 앓고 있으면 진심으로 아이들을 대할 수 없다는 것을.

       겨울이와 레비나스와 더 재미있게 놀고 싶었기에,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밀을 한여름에게 털어놓기로 했다.

       

       “말해도 괜찮겠어?”

       

       “응.”

       

       “···그래.”

       

       한여름이 새벽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결심을 내린 새벽이의 귀가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겨울이는 사실 다른 세계 출신이야. 포탈을 타고 넘어왔거든.”

       

       “···그렇구나. 혹시 진실을 숨기려 했던 이유가 있니?”

       

       “응. 겨울이는 자기 세계가 어떻게 됐는지 기억 못 하고 있으니까.”

       

       멸망한 세계를 기억 못 한다.

       안타까워야 할 상황임에도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차라리 기억 못 하는 게 다행이라 여길 정도의 세계였으니까.

       

       “진실을 숨기려면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으니까?”

       

       “응. 원래 살던 세계가 멸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괴롭겠지.”

       

       절망감에 삶을 끊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한여름은 왜 새벽이가 진실을 숨기려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전부다 겨울이의 정신을 위해서였다.

       

       ‘아니, 잠깐만.’

       

       멸망한 세계는 기억 못 한다.

       반대로 말하자면 멸망 전의 세계는 기억하고 있다는 뜻이지 않나?

       어쩌면 겨울이는 가족들과 친구들과 행복하게 지내는 세계만을 기억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설마···?’

       

       한여름은 겨울이와의 첫 만남을 기억하고 있었다.

       삶의 의지가 없어 보이던 아이의 모습을.

       

       ‘살기 싫은 게 아니라, 우리 세계에서 살기 싫었던 건가?’

       

       분명 친구가 만날 수 없는 곳에 있다고 했지.

       겨울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서 친구들과 가족들을 만나는 거라면?

       한여름은 엉켜있던 실타래가 한 번에 풀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근데 겨울이 세계는 이미···’

       

       멸망했다.

       두 번 다시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세상에.’

       

       분명 겨울이가 소피아님에게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지 않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지.

       당시에는 별거 아니라고 여긴 질문이 사실 겨울의 상황을 관통하는 질문이었다.

       

       ‘겨울이의 목표가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거였구나.’

       

       겨울이가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는 건 상관없었다.

       어느 세계든 ‘포탈’이 열릴 가능성은 있었고, 겨울이 어디서든 행복하게 지낼 수만 있다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고의 노력 끝에 돌아간 세상의 결말이 멸망이라면?

       아이가 과연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아.”

       

       그래선 안 된다.

       겨울이를 막아야 한다.

       한여름의 안색이 전에 없을 정도로 창백해졌다.

       

       새벽은 그런 한여름을 위해 작은 희망을 주기로 했다.

       

       “근데 기적이 일어날 가능성은 있어.”

       

       “기적···?”

       

       “내가 던전에서 다시 태어났잖아. 그래서 던전에 대해서 잘 알게 됐거든.”

       

       “어떤 걸···?”

       

       한여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있다.

       거의 울기 직전의 한여름의 등을 새벽이 토닥여주었다.

       

       “던전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 위해 생성되는 거거든. 나 때도 그랬잖아. 만약 겨울이가 살던 세계가 던전으로 열린다면···”

       

       “···멸망한 세계를 구해달라는 뜻인가?”

       

       “응. 아마, 멸망의 시발점이 되는 시간대가 던전으로 열리지 않을까 싶어.”

       

       시간을 거스를 수 있다는 뜻인가.

       한여름이 희망을 품었다.

       새벽이는 던전에 의해 태어난 아이인 만큼 세상 누구보다 던전에 대해서 잘 알 테니까.

       

       “근데 가능성은 극히 희박할 거야. 기적을 논해야 할 만큼.”

       

       “···괜찮아. 언니는 기적만큼은 믿거든.”

       

       마나가 없는 아이를 품고, 마나를 쓸 수 없는 뿔토끼 던전을 겪었다.

       겨울이의 기억을 통해 마나가 없는 세계를 직접 겪어보기도 했고.

       

       ‘마나 없이 싸우는 법을 익히라는 건가.’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훈련시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도움을 바라는 겨울이의 세계가 자신을 훈련시키는 걸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포탈은 반드시 열리겠지.

       지금까지 일어난 일이 전부 우연은 아닐 테니까.

       한여름은 그날을 위해, 훈련 강도를 더욱 높이기로 했다.

       

       세계를 구하는 게 아닌, 한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오늘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댓글 추천 또한 감사합니다! 언제나 힘이 되네용!!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과거의 복선(?)을 회수하기 위해 이전화 보며 글 쓰고 이전화 보고 글 쓰고 하느라 늦었네용 ㅠ.ㅜ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들이 우연이 아니라는 걸 알리는 화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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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딩좋아님 귀여운 팬아트 정말 감사합니다!! 금방 정리해서 올릴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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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최강 길드에 납치당했다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When I opened my eyes, I was in a den of mon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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