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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1

       남자는 이제 일어나 앉아있었다.

        

       물론 편안한 자세는 아니었다. 의자에 꽁꽁 묶여 있었으니까. 양팔은 등 뒤로 모아져 묶여 있었고, 양다리는 의자 다리에, 그리고 가슴 앞을 지나는 끈이 의자 등받이에 묶여 있었다. 남자가 원한다면 벗어나려고 버둥거리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 그래봐야 옆으로 넘어지는 게 다일 테지만.

        

       방 안에 있는 모든 가구와 장식품처럼, 남자가 앉아있는 의자조차 고급이었다. 고작 넘어지는 정도로는 부서지지 않을 것이다.

        

       “황실에서는 알고 있었다.”

        

       나는 남자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을 따라 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문자 그대로입니다.”

        

       남자의 얼굴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얼굴을 직접 보니 기억이 훨씬 더 확실하게 떠올랐다. 외알 안경을 끼고 있던 남자의 얼굴. 특징적인 콧수염이나, 잘 관리된 머리 모양. 물론 입고 있는 옷은 그때와는 다르게 팔을 걷어 올린 셔츠와 바지뿐이었지만.

        

       남자의 코가 옆으로 삐뚤어져 있었다. 아까 바닥에 얼굴을 세게 부딪히면서 부러지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내가 물어보는 말에는 순순히 대답하는 걸로 봐서는, 내가 자기한테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가 그저 내가 황실의 사람이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이 사람은 나의 얼굴도 본 적 없으니까. 적어도 내가 시간을 돌려버린 뒤로는.

        

       “황실에서는, 알고 있을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제도나 다른 도시에…… 마약과 사람을 파는 곳이 있다는 것.”

        

       작게 신음하는 소리가 들려서 돌아보니, 미아 크로우필드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서 있었다. 벽을 짚고 있는 것을 보니 편하게 서 있을 수 없는 상태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앨리스는 그녀를 방 밖으로 나가게 하지는 않았다.

        

       여기서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처음부터 물어보고 데리고 온 것이기도 했고.

        

       게다가, 미아 크로우필드는 아직 나갈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벽을 짚고 간신히 서 있기는 했지만, 그 눈은 남자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귀족들도 전부 눈 감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영지를 굴리는데 피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굳이 저희를 잡지는 않았습니다. 제어할 수 없는 곳에서 숨어 움직이는 것 보다는, 눈앞에서 보이는 곳에 모여있는 쪽이 통제하기 쉬우니까.”

        

       그렇게 관계는 유착되어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황제 폐하께서 직접 허락한 적은 없을 겁니다. 일부 귀족들과는 다르게.”

        

       “…….”

        

       하지만 나의 대답에 남자는 더 변명하지는 않았다.

        

       눈 가리고 아웅인 말이긴 했다. 내가 있던 고아원은 루카스에게 감시당하고 있었으니까. 만약 루카스가 원했다면 고아원의 원장을 죽여버리고 아이들을 전부 빼 오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루카스가 굳이 그런 일을 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황제도 루카스에게 아이들을 구하라는 명령을 내리지도 않았고……

        

       ……아니, 잠깐만.

        

       “제도에서, 당신은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었습니까?”

        

       내 말에 남자는 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마치 그걸 모르고 찾아왔냐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대로 광대뼈를 쳐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나는 꾹 참고 대답이 돌아올 때까지 인내했다.

        

       “저는, 그저 중간 판매상이었을 뿐입니다. 고아원을 돌아다니기에는 바쁘신 분들을 위해, 그분들이 주문한 형태의 물건들을 사다가 되파는.”

        

       “…….”

        

       나는 앨리스를 돌아보았다. 앨리스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위에서부터 다 조져버리고 여기까지 내려왔다고, 앨리스는 말했었다.

        

       이 남자는 별거 없는 남자다. 신사적인 표정을 가장하고 일견 여유로워 보이는 말투를 쓰고 있긴 했지만, 진짜로 물건을 사다가 쓴 쪽은 귀족들이고, 이 남자는 그저 의뢰를 받고…… 원재료를 사다가 가공해 파는 유통업자였을 뿐이다.

        

       그 ‘물건’은, 아마 아이일 때도 있었을 거고, 아니면 마약일 때도 있었겠지.

        

       하지만, 그렇다면.

        

       그렇다면…… 이 남자가 들렀던 그 고아원은, 그저 수많은 고아원 중 하나일 뿐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평범한 고아원을 굳이 루카스가 감시하고 있던 이유는 뭐였을까. 황제가 그 조직 자체를 괴멸시킬 생각이 아니었다면, 고아원을 감시하는 것이 ‘굳이’ 루카스일 리는 없을 텐데.

        

       “실비아.”

        

       문득 앨리스가 나를 부르는 말에 정신이 돌아왔다.

        

       “괜찮아?”

        

       그렇게 물어보고 있기는 했지만, 그 표정은 내가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괜찮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게 이 남자 때문은 아니었다. 기분 나쁘고, 당장 죽여버려도 나쁠 거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하나 떠오른 탓이다.

        

       만약, 루카스가 일부러 그 고아원을 보고 있었다면, 아니, 물론 당연히 그 고아원에서 뭔가 노리는 것이 있었으니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만약 루카스가 그곳에 있던 이유가 ‘클레어’를 찾기 위한 거였다면.

        

       루카스가 클레어가 아닌 나를 선택한 근거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황제는 루카스가 데리고 온 나를 보고, 내가 ‘무엇’이라고 판단했다.

        

       황제가 ‘찾고 있던’, ‘무언가’.

        

       원작에서는 어땠지?

        

       끔찍한 환경에서 겨우 버티던 클레어는, 결국 극도의 스트레스 하에서 자기 능력을 각성해 제도 한가운데 거대한 화재를 일으켰다. 그 화재의 원인은 램프였지만, 그 거대한 화재에서 상처 하나 없이 빠져나온 것은 클레어의 천부적인 재능 때문이었다.

        

       원작에서는, 루카스는 그 재능을 보고 클레어를 찾았다.

        

       원작에서는, 클레어가 앨리스를 위해 희생한 뒤부터 황제의 계획이 급격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원작에서는, 클레어의 출생에 어떤 비밀이 있을 거라는 암시가 몇 번이나 나온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여기서는, 루카스가 나의 재능을 보고 ‘나를’ 찾았다.

        

       그렇다면, 그건 착각이다. 나에게는 출생의 비밀따위 없다. 애초에 그런 것 자체가 존재조차 하지 않으니까.

        

       황제는 나를 ‘무엇으로’ 착각했기에 나를 받아들인 거지?

        

       “실비아?”

        

       앨리스가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앨리스의 얼굴을 봤다.

        

       지난 10년간 계속해서 보아온 얼굴이다. 아주 어렸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아마 클레어가 앨리스를 위해 희생했던 것은 그 이유 때문일 것이다. 매일같이 투닥대며 싸워온, 자기 자매 같은 앨리스를 위해서.

        

       그렇다면, 만약에.

        

       이 세상에서, 앨리스를 위해 내가 희생하면 어떻게 될까.

        

       클레어는 아직 살아있는 채로, 스토리는 원작과 비슷하게 흘러간다면.

        

       ……나는 왜, 지금까지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거지? 루카스가 굳이 클레어를 데리고 갔다는 것도, 고아원이 그곳 말고도 많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면서. 심지어 비슷한 의문을 몇 번이나 머리에 담았으면서, 왜 이제와서야?

        

       *

        

       “그, 그래서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남자가 끌려 나간 뒤, 미아 크로우필드가 매달리듯 물어왔다.

        

       “그 남자는 어떤 사람인 거예요? 저희 아버지와는 무슨 관련이 있기에…….”

        

       그래, 이 문제도 있었지.

        

       “미아, 일단은 조금 앉아봐.”

        

       여전히 이 안에는 기사가 없었다. 방 안에는 우리뿐이었다.

        

       앨리스가 권한 곳은 남자가 조금 전까지 앉아있던 곳이 아니라, 침대였다. 의자에 피가 묻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조금 전까지 죄인이 포박되어 있던 곳에 앉히는 것은 꺼림직했던 모양이었다.

        

       물론 이 침대도 죄인이 쓰던 것이기는 했지만.

        

       “저 남자는…… 너희 아버지, 그러니까, 크로우필드 백작에게도…… 물건을 팔았어.”

        

       “물건이라뇨?”

        

       아무리 미아 크로우필드라도 앞선 대화를 들었다면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을 텐데.

        

       믿고 싶지 않기 때문일까. 그녀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물어왔다.

        

       “……아이들. 반대로 아편은 이쪽에서 팔고 있는 물건이었겠지.”

        

       앨리스는 조금 망설이다가 그렇게 대답했다.

        

       미아 크로우필드의 얼굴이 멍하게 풀어졌다. 감정이 죄다 빠져나가 버린 것 같은 얼굴이었다.

        

       “……아냐.”

        

       한참 그렇게 있던 그녀는 중얼거렸다.

        

       “아니야!”

        

       그리고 그 말은 조금씩 커졌다.

        

       “아니야, 아버지가, 아빠가 그럴 리가 없어!”

        

       멍하니 풀려있던 눈동자는 다시 날카로워졌다. 지금까지 내가 보았던 미아 크로우필드의 얼굴, 심지어 시간을 돌리기 전의 얼굴을 포함하더라도 제일 날카로운 것이었다.

        

       “당신들이, 죽은 우리 아버지의 명예를—”

        

       “……눈동자.”

        

       미아 크로우필드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던 찰나에 내가 입을 열었다.

        

       “당신 아버지의 눈동자를 기억하십니까?”

        

       “…….”

        

       미아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눈동자가 점처럼 수축되어있던 모습을 보신 적 있습니까?”

        

       미아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나는 본 적 있다. 백작의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그의 동공은 점처럼 작았다. 그 크기가 바뀌는 것을 나는 본 적이 없었다.

        

       창백한 얼굴. 비쩍 마른 몸. 눈 밑의 다크서클. 그리고 며칠간 잠을 못 잔 사람처럼 충혈된 눈과 점처럼 작아진 동공.

        

       심지어 어두운 곳, 이런 침침한 실내에서도, 그의 동공은 점처럼 작아져 있었다.

        

       “마약을 하는 사람 특유의 눈동자입니다. 어두운 곳에서도 동공이 계속 수축하여있는 건.”

        

       “아, 아버지는…… 그저 영지를 위해 열심히 일하셔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나의 물음에, 미아 크로우필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나를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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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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