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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1

     루크의 표정은 오늘내내 그리 좋지 않았다.

    비단 ‘촌스러운 할아버지’같은 이름이라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촌스럽다’라는 것은 결국 개인의 의견으로서 절대적인 가치판단의 기준이 될 수 없는 데다가, 루크는 그 이름을 고작 철없는 어린아이가 치기어린 장난같이 내뱉은 말로 이름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정말이지 먼지한톨 만큼도 없었으니까.

    그렇지 않은가.

    자그만치 백년이상의 세월로 축적된 스스로의 정체성을 고작 그런 것으로 버리다니.

    게다가 마법사에게는 스스로의 이름만큼 중요한 것도 드물다.

    서클을 다루는데 가장 중요한것은 스스로에 대한 흔들리지 읺는 믿음.

    스스로의 믿음은 결국 ‘자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되고, 이름은 그 모든 대답의 집합과도 같은 것이니까.

    위대한 루크 이루시.

    대마법사 루크 이루시.

    영웅 루크 이루시.

    그 모든 칭호의 주인이 바로 자신이며, 스스로 그런 존재라고 확고하게 믿음으로써 ‘루크 이루시’의 의지를 다룰 수 있는 것이다.

    루크는 그 사실을 잘 ‘알고’있었다.

    그저 기억뿐이라고 해도, 아는 것은 아는 것.

    영혼도, 몸도 달라진 자신이 정말로 그때의 루크 이루시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해도, 그것은 분명 루크 이루시의 기억이다.

    그렇기에 루크는 더욱 이름을 바꿀 생각이 없다.

    현재의 자신에게는 ‘루크 이루시’라는 정체성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현재의 루크에게 그 이름을 포기한다는 것은, 자신이 현재까지 마법으로 쌓아온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는 말과도 같다.

    현재의 자신이 서클을 다룰 수 있는 기반지식을 포함한 모든 감각과 의지는 ‘루크 이루시’라는 이름에서부터 나오기 때문에.

    그러니 스스로 납득하고 기꺼이 이름을 넘겨줄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자신은 여전히 루크 이루시일 것이다.

    그러나 루크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은 바로 자신의 또 다른 정체성일지 모르는 한 단어다.

    루크는 잠시 시선을 내려 자신의 손 위에 일렁이는 푸른빛의 구형 마력집합체를 바라보았다.

    ‘에레라니.’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그것에 대한 기억은 자신에게도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누구’인지, ‘무엇’인지.

    “에레가 대체 누구지?”

    루크는 중얼거렸으나 푸른빛의 마력구체는 대답이 없었다.

    그럴 수 밖에, 그것은 파이가 아닌 파이를 본떠만든 마나스팟.

    마법으로 생성된 현상이 대답을 할리가 없다.

    루크는 그대로 손짓하여 손 위에 만들었던 파이의 형상을 흩트렸다.

    그리고 깊게 한숨을 쉬었다.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건지…….”

    또 어디서 저번 동물원때처럼 마력이나 훔치고 있는건 아닐지.

    언젠가 자신에게서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또 없어지니 보고싶어진다.

    “하아.”

    루크는 한차례 한숨을 내뱉고는 다시 도덕교과서와 도서관에서 빌려온 법률관련 서적으로 시선을 내렸다.

    내심 80점의 점수가 충격적이기는 했던 것이다.

    “루크, 너무 애쓰진 마. 평균 97점이면 엄청 높은거잖아?”

    “아니, 확실히 이번 시험으로 내게는 도덕적 지식이 부족한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됐다. 마법사라면 응당 이 기회를 발판삼아 더욱 정진해야 발전하는 법이겠지.”

    “아무리 그래도…….”

    루크가 별로 좋지않은 표정으로 뚫어져라 책을 읽는 모습을 곁에서 보는 예르나는 그런 루크가 걱정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원래 루크는 공부를 ‘즐기는’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고 할까.

    너무 많이 변했다.

    민주주의라, 5000년 전의 인간인 루크에게 이 제도는 굉장히 생소하다.

    몇명의 초인이 막강한 권력을 누리며 자신의 영지에서 군림하던 과거와는 너무나 다르다.

    하긴, 이 시대는 더욱 안전하고 보편적인 클래스마법의 영향으로 과거처럼 ‘대마법사’라는 존재가 태어나기는 힘들어졌다.

    모든 사람들이 마법을 사용하고, 필요와 상황에 따라 부여된 클래스의 단위를 높인다.

    그 심사는 중앙의 원로회에서 결정하고, 통보한다.

    거대한 시스템이 개인이 가질 수 있는 무력을 ‘통제’하고있다.

    다수의 안전을 생각하면 괜찮은 발안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현재의 마법체계라면 그것이 최선일지도 모른다.

    ‘모든 이들이 누리는 마법’이라는 것은 그리 밝은 면만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루크도 당연히 알고는 있었다.

    과거는 초인적인 힘을 소수의 개인이 누리던 시대.

    소수의 엘리트집단이 다수를 무력적으로, 사회적으로 통제하는 그림밖에 그려질 수 없었다.

    그 시대엔 그들을 제어하는 수단은 오로지 그 힘을 지닌 자를 믿는 수 밖에 없었다.

    가령, 갑자기 고위급 마법사인 영주가 미쳐서 앞뒤를 생각하지않고 대량살상마법을 쓰지는 않을 거라고 믿는 것이다.

    고위급 마법사에 이를 정도로 지식과 경험을 축적했다면 그 행위로 자신에게 어떤 불이익이 떨어질지 충분히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런 판단을 이성적으로 내릴 수 없는 마법사들은 고위급이 되기 전에 다들 죽을테니까.

    서클을 쌓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세월과 고뇌가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쌓아가는 것이 있다. 

    그러니 얻는만큼 잃을것이 많이 생긴다.

    잃는 것이 많은 사람이 이성적으로 생각할 것이라는 믿음은 타당하지 않은가?

    당장 잘 살고있는데 목적없이 무의미한 살생을 저지를 이유가 없다.

    물론 일신의 무력으로 허튼짓을 하는 자들이 없는것은 아니었지만. 

    도를 넘어선 자들은 결국 더욱 강한자에게 ‘처단’당하고 자신의 모든것을 잃는다.

    그리고 당시 가장 강한자가 바로 그 ‘불사왕 레니에’였기에 그 시스템은 더할나위없이 완벽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어쩌면 영원히 말이다.

    그러나 ‘레니에’라는 초월적인 존재가 없어지고, 클래스마법이 되면 그 믿음은 조금 달라진다.

    말 그대로 ‘모두’에게 주어진 마법은 그 마법을 사용할 ‘자격’이 없는 자에게도 주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판단력이 미숙한 어린이라던가, 범죄를 밥먹듯 저지르는 범죄자라던가, 급진적인 사상을 지닌 몽상가라던가.

    하여튼 마법이라는 초인적인 힘이 주어져서는 안되는 자들, 그런 자들에게 별 노력없는 힘이 주어진다면…….

    분명 지금같은 평화는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그래, 그것까지는 이해했다.

    이 제도가 정착한 큰 틀은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덕적인 가치가 크게 달라진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고 할까.

    사형제도의 폐지.

    이 책은 마치 ‘사형’이라는 제도가 굉장히 끔찍한 것이라는 듯 서술하고 있으며, 모든 생명은 평등하게 소중하므로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법률적으로 엄격하게 금지한다는 것이다.

    범죄자는 사회와 격리해야하며, 죽음은 더할나위없는 완벽한 분리작업이라고 모두가 생각했던 시대를 살던 루크는 그 서술이 참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렇지 않은가, 그가 존재함으로 세상을 사는 자들이 괴롭다면, 그를 신의 곁으로 보내어 간단히 해결 할 수 있잖은가.

    만약 잘못된 처형이었다면 신이 그 처형을 거부할테니 다시 되살리면 그만.

    “……아.”

    하지만 이 시대는 그것을 판단할 신이 없는 상태였던가.

    “이게 무슨 바보같은.”

    신이 사라지며 사후세계의 개념이 애매해진 현재, 그것은 확실히 위험한 개념이기는 하다.

    하지만 인정할 수는 없었다.

    이 세상엔 반드시 죽음으로만 심판할 수 있는 악인도 존재한다.

    가령, 무력을 이용해 강간과 살인을 일삼던 극악무도한 범죄자라면.

    가령, 국고를 횡령해 수천, 수만의 국민을 굶어죽게만든 재상이라면.

    가령, 자신의 안위를 위해 마왕에 붙은 채, 앞장서서 동족을 팔아넘긴 장군이라면.

    스스로만을 위해, 모든 자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자를 정녕 살려두어야 한단 말인가?

    이건 죽일 수 밖에 없다.

    죽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들에겐 죽음조차 너무 가볍지만.

    이를 깨물고, 손에는 힘이 들어가 조금 부들부들 떨린다.

    그들을 직접 자신의 손으로 처형한 감각이 생생하게 떠오르지만, 그 행위엔 신을 우러러 단 한점의 부끄러움도 없다.

    그런데, 그런 존재가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 형벌조차 줄 수 없다는 말인가.

    “루?”

    그때, 루크의 모습을 바라보던 예르나는 루크의 심상치않은 반응에 곧장 다가가 물었다.

    “왜그래? 책에 뭔가 이상한 게 있니?”

    “예르나.”

    루크는 책을 들어 사형제도의 폐지에 관한 구절을 손으로 짚으며 말했다.

    “이, 여기에 적힌게 사실인가?”

    “어떤거?”

    예르나가 책을 받아들자, 루크는 곧장 말을 토했다.

    “이 말에 따르면, 사형은 금지되었으며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무조건 잘못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엔 죽여야만하는 극악한자들도 존재하지 않는가? 명백하게 인간 이하인 자들 말이다! 가령, 타인을 끔찍하게 살해하는것을 즐기며 농담삼는 자라던가, 가령 장난처럼 아녀자를 강간하고 살해하는 자들은? 단언컨대, 그런 자에게는 감옥조차 사치일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이 나라의 법은 그들을 죽이지 못하지? 죽음 외엔 구제할 길이 없는 흉악한 자조차? 이건 명백히 잘못된 것이 아닌가?”

    “…….”

    루크의 일장연설에 예르나는 순간적으로 눈을 크게 떴다.

    루크가 그토록 분노한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항상 웃으며, 타인을 배려해주던 아이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화를 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바로, ‘극악한 범죄자조차 죽일 수 없는 이 나라의 법’이라니.

    예르나는 조금 굳은 표정으로 루크를 바라보게 되었다.

    루크는 어쩌면, 지금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는 사람이 있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그는 대체 누구지?

    인체 실험의 연구자? 구체적인 기억이 돌아온걸까? 설마, 그게 누군지 특정을 한 거야?

    “루크, 혹시……. 누군가 사형되었으면 좋겠어?”

    그 말에 루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명백하게 극악한 자라면.”

    그 단호한 의사표명에 예르나는 곧바로 물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언니한테 말해줘. 누군데? 언니한텐 방법이 있어.”

    이 세상엔, ‘업무상 과실치사’라는 것도 있다.

    게다가 그 제도는 숲지기에겐 꽤 널널하기도 하다.

    물론 서류를 좀 많이 떼어야하고, 확실히 업무중임을 증명할 수단이 있어야 하지만.

    물론 그런게 없이도 사람을 몰래 죽이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이 경우는 당연히 불법이지만, 들키지만 않으면 당장은 불법이 아니니까.

    하지만 만약 준비가 틀어져서 감옥에 가게 된대도 사실 별 상관은 없을지도.

    그렇게되면 아마도 루크는 쭉 다이튼에게 맡겨야겠지.

    그건 조금 미안할것 같네.

    예르나의 말을 들은 루크는 턱을 쓰다듬으며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음…….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는 사람이라……. 지금은 딱히 없군.”

    왜냐하면…….

    “이미 그들은 다 죽었으니까.”

    “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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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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