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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1

       “좋아. 그럼 나머지는 집에 가서 이야기할까?”

       

       “뭐, 뭣! 그게 무슨 소리냐! 난 이미 전부 이야기했다! 그러니 날 놔줘라!”

       

       오들오들 떨면서도 마구 발버둥 치는 로즈마리. 누가 보면 납치라도 하려는 줄 알겠네.

       

       “아이참. 그렇게 말하면 내가 싫어하는 사람 억지로 붙잡는 것 같잖아. 로즈마리 너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의지로 따라오는 거야.”

       

       “그럴 일은……!”

       

       이를 악무는 그녀를 향해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뒤이어 지금껏 억누르고 있던 온갖 미용 권능을 최대한으로 끌어낸다.

       

       봄바람 불어오듯 확하고 퍼져나가는 향기로운 냄새. 피부는 아기 피부 이상의 뽀얀 빛깔과 부드러움으로 상대를 현혹시킨다.

       

       그 자체로도 어떤 화장품보다도 뛰어난 권능이 최근에 얻은 사랑의 화신 권능으로 강화된 상태.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효과에 불과하다.

       

       사랑의 화신에는 여러 효과가 있고, 이 모든 것을 본격적으로 활성화했을 때 그 진가가 드러나니까.

       

       “……어?”

       

       멍하니 굳어버린 로즈마리. 그녀의 시선이 내게 고정된 채, 떨어질 줄을 모른다.

       

       5성급 권능. 사실상 기적에 필적하는 힘이 내 전신에서 줄줄 새어 나오는 것이다.

       

       별다른 기능은 없다. 그저 강력한 존재감이라고 해야 하나,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힘인 신력이 자아내는 위화감 같은 것이다.

       

       몇 번 보았던 고위 모험가의 진심 전투에서 내가 감탄과 경외를 느꼈던 것처럼.

       

       사람은 자신과 격이 다른 힘을 마주하면 본능적으로 숭배 모드에 들어간다.

       

       그리고 지금. 사랑의 여신의 ‘진심 커스터마이징’을 직시한 로즈마리의 상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멍하니 풀어진 초점. 벌어진 입 사이로는 작은 혀가 엿보인다.

       

       적개심과 공포로 가득 찼던 눈빛은 순식간에 말랑말랑해지고, 그 자리에는 분홍빛 설렘이 자리 잡기 시작한다.

       

       그렇다. 막대한 신력은 그 자체로 하나의 폭력이 되어 로즈마리의 마음을 마구 뒤흔든 것이다.

       

       거기에 순간 약해진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개쩌는 미소년이 미용 권능으로 한층 강화된 모습이기까지.

       

       당연히 홀릴 수밖에 없지 이건.

       

       물론, 이게 진짜 사랑이라던가 그런 건 아니다. 단순히 말도 안 되게 매력적인 이성을 발견하고 일시적으로 맛탱이가 가는 것뿐이니까.

       

       만약 이를 로즈마리가 자각한다면 훨씬 빠르게 제정신을 차리겠지.

       

       결국 알기 쉽게 정리하자면 지속시간 짧고, 여러 번 써먹기 힘든 일회용 세뇌 어플…아니, 세뇌 스마일이라고 하면 되리라.

       

       엘리를 놀리기 위해 갈고닦은 순수함과 고혹적인 매력이 공존하는 미소로 로즈마리의 길쭉한 귀에 속삭였다.

       

       “우리 집. 올래?”

       

       “응…….”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로즈마리. 좋아. 이제 조용히 요정과 은화로 데려가기만 하면…….

       

       꽁!

       

       “끄앙!”

       

       음흉하게 미소 짓던 게 들킨 걸까. 아니면, 그냥 바로 알아챌 만큼 로즈마리의 변화가 극심했던 걸까.

       

       이쪽을 지키고 있던 리디아에게 꿀밤을 맞았다. 그것도 꽤 세게.

       

       “요나. 방금 얘한테 뭐했어.”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거짓말. 솔직하게 말하면 정상참작 해줄게.”

       

       “……미, 미남계?”

       

       “…….”

       

       잠시 이쪽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리디아가 이번에는 로즈마리에게 꿀밤을 먹였다.

       

       쿵!

       

       나와는 소리부터가 다를 정도로 강하게. 그리고 이는 꽤 효과가 있었다.

       

       “허윽!”

       

       정수리를 부여잡고 부들부들 떠는 로즈마리. 그녀의 눈동자는 어느새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긴 했지만.

       

       “사, 사술이다! 이런 식으로 그분을 유혹한 거구나!”

       

       “하아. 이거 보세요 리디아 님. 얘를 이렇게 풀어줘 버리면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닐 거 아니에요. 제 이미지가 나빠지는 거야 상관없지만, 크레이들 상회까지 흘러 들어가면 나중에 귀찮아질걸요?”

       

       “그렇다고 저렇게 헤벌레 하던걸 그대로 데려가면 엘리 선배한테 맞아 죽을걸.”

       

       “쓰읍. 그건 생각 못 했는데 진짜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내 말을 무시하지 마라!”

       

       놔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무시한다고 화를 내는 로즈마리.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미노타우로스를 잡고, 네 말대로 엘프 고위층 사이에 연회가 열리면 거기에 나랑 리디아 님을 데려가. 그 사이에 누가 오늘 있었던 일을 물어보면 최대한 얼버무리고.”

       

       분명 로즈마리에게서 물어본 것이었으나, 대답은 엉뚱한 리디아 쪽에서 들려왔다.

       

       “나도?”

       

       “안 돼요? 그럼 엘리나 베니에게 물어볼 거긴 한데….”

       

       “괜찮아. 다만, 연회에 파트너로 데려가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아는 건가 싶어서.”

       

       “파트너랄까. 호위 기사에 가깝긴 한데. 괜찮을까요?”

       

       “호위 기사…응. 할게.”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리디아. 좋아. 이걸로 여차할 때의 보험을 챙겼군.

       

       나도 리디아도 서로 만족스레 끄덕이고는 다시 한번 로즈마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간단하지? 그냥 나를 조용히 고위층 엘프들이랑 대면시키기만 하면 돼. 그 뒤에는 내 이상한 소문을 내건 뭘 하건 마음대로 하고.”

       

       “큿…다른 사람들도 홀리려는 거냐! 이 더러운 방울뱀 자식!”

       

       “어허. 이거 안 보여? 더럽지도 않고 방울뱀도 아니야. …지금 자꾸 음해하면 다시 정중한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잖아.”

       

       밝게 빛나는 유니콘 단검을 살랑살랑 흔들자, 로즈마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결국 잔뜩 겁을 집어먹은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 좋다!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하지만 이 자리의 다른 사람이 소문내는 것까지는 어쩌지 못할 텐데?”

       

       “걱정 마. 진작에 사일런스 마도구를 펼쳤으니까. 그렇죠 리디아 님?”

       

       “쁘이.”

       

       자랑스런 표정으로 손으로 브이를 그리는 리디아.

       

       그 모습에 더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걸 깨달은 로즈마리가 허탈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다. 전부 알겠으니 이제 풀어다오.”

       

       “풀어주기는. 처음 말고는 붙잡은 적도 없으니까 그냥 제 발로 걸어 나가면 돼.”

       

       “…….”

       

       믿지 못하겠다는 듯, 자꾸만 이쪽을 힐끔대며 느릿하게 반파된 방을 빠져나가는 로즈마리.

       

       …어차피 미노타우로스 토벌은 사흘 뒤니까 딱 사흘만 조용히 있으면 되는데 저 꼴을 보니 조금 불안하긴 하네.

       

       좋아. 최소한의 안전장치 정도는 해둬야지.

       

       호다닥 달려가 문을 반쯤 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로즈마리의 어깨를 붙잡았다.

       

       “잠깐.”

       

       “히이익!”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기겁하는 녀석. 그런 로즈마리의 어깨를 부드럽게 토닥이며 안심시켰다.

       

       “괜찮아 괜찮아. 깜빡한 게 있어서 그러니까.”

       

       방긋 최대한 무해한 미소를 지어주고는 그대로 로즈마리의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댔다.

       

       말캉.

       

       실로 빈약한 감촉. 영 만질 것도 없긴 하지만, 아무튼 가슴은 가슴. 친밀하고도 농밀한 스킨십에 로즈마리의 뺨이 붉어졌다.

       

       “뭐, 뭐냐! 역시 날…!”

       

       “쉿.”

       

       다른 손 검지를 그녀의 입술에 가져다 대며 조용히 시키고는 체내의 신성력을 끌어다가 천천히 주입시켰다. 심장 주변을 감싸도록.

       

       “흡!”

       

       창백해지는 로즈마리의 안색.

       

       아마 사랑의 화신을 전력 개방했을 때와 비슷한 감각이 심장에서 느껴지겠지. 어찌 됐든 뿌리가 같은 힘 아닌가. 충분히 착각시킬 수 있다.

       

       물론, 저만한 고위층 자제가 신성력을 모르진 않을 테니 찬찬히 생각해 보면 좀 정순할 뿐인 신성력이라는 걸 깨닫겠지만…….

       

       오늘 하루만 속여 넘기기엔 충분하지.

       

       그렇게 심장이 좀 더 건강해진 로즈마리가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내,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지?”

       

       “금제. 오늘 한 약속을 어기면 심장이 폭발할 거야.”

       

       “!!!”

       

       “제대로 지키면 알아서 사라질 테니까 걱정말고.”

       

       “…….”

       

       워낙 정순한 신성력이니 그냥 뭉쳐둬도 며칠은 가겠으나, 제대로 된 축복이 아니니 결국 시간이 지나면 흩어질 거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심장에 밀어 넣은 기운이 그리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도, 이 짧은 시간이 그런 복잡한 금제를 거는 것은 보통 실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정신적으로 몰린 지금의 로즈마리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나 보다.

       

       “히끅!”

       

       오들오들 떨며 딸꾹질하는 로즈마리. 까치발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통통 두드려 주고는 리디아에게로 돌아갔다.

       

       “이제 갈까요 리디아 님?”

       

       “응.”

       

       리디아와 함께 부서진 방을 나섰다.

       

       뒤에서 털썩 소리와 함께 “나…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같은 처량한 목소리가 들려오긴 했으나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겠지.

       

       하여, 콧노래를 부르며 리디아를 쫄쫄쫄 따라가는 것도 잠시.

       

       “…리디아 님? 저희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

       

       “길드 사무실.”

       

       “집에 안 가요?”

       

       “방을 그렇게 부숴놓고 그냥 가면 범죄야. 몇 배로 벌금 물고 싶지 않으면 지금 자진 신고하고 물어줘야 해.”

       

       “아.”

       

       맞다. 방 부쉈었지.

       

       “일단 수리비는 내가 낼 테니 나중에 갚아.”

       

       “…벽을 부순 건 리디아 님 아니었나요?”

       

       “요나가 시켰잖아? 검에게 책임을 물면 안 되지. 책임은 주인의 것.”

       

       “큭….”

       

       리디아에게 호위 기사다 뭐다 하면서 한껏 기분을 띄워준 건 나니까 할 말이 없군.

       

       “아, 그리고 앞으로는 미궁에서 번 금액의 일부를 받아 갈게.”

       

       “왜요?!”

       

       “베니에게도 빚졌다며. 요나는 빚이 너무 많아. 골드 단위 채무는 눈감아주기 힘들어.”

       

       “…….”

       

       구구절절 맞는 말만 하다니.

       

       결국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로즈마리는 우울했다.

       

       감히 여왕님에게 상처를 준 사악한 방울뱀을 징죄하려다 역으로 당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냥 당한 게 아니라 아주 탈탈 털려버리기까지.

       

       “후우. 오늘은 뭐라도 마셔야겠어.”

       

       아무리 대화가 다른 이들에게 들리지 않았다고는 하나, 자신이 농락당하는 모습 자체는 많은 이들에게 보였다.

       

       도저히 제정신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터라, 자신의 호위이자, 마찬가지로 탈탈 털린 궁수에게 물었다.

       

       “베리. 근처에 괜찮은 술집 있나? 같이 한 잔이라도 하고 들어가자고.”

       

       “그런 거라면 일전에 동료에게 좋은 곳을 하나 들었습니다. 저도 직접 가본 적은 없지만, 듣자하니 처음 보는 야시시한 복장의 남자들이 서빙하는 곳이라더군요.”

       

       “오….”

       

       “거기에 다들 밤일도 하는 터라, 조건만 맞으면 그대로 침대로 데려갈 수도 있다고 합니다.”

       

       “좋군.”

       

       내심 요나에게 강제로 순결을 증명 당한 것을 신경 쓰고 있던 로즈마리다.

       

       이번에야말로 처녀를 버리겠노라 마음먹은 로즈마리는 보무도 당당히 베리가 추천해 준 주점…요정과 은화에 들어갔다.

       

       “이리 오너……어?”

       

       그리고 보았다.

       

       카운터 부근에 앉아 입에 빨대를 문 악마를. 그런 그에게 아양이라도 부리듯 내밀어진 우유병을.

       

       

       

       

       

       “흐이익!”

       

       기겁한 로즈마리와 베리는 그대로 뒤돌아 도망쳤다.

       

       오늘도 로즈마리의 순결은 지켜졌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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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1

EP.131





       “좋아. 그럼 나머지는 집에 가서 이야기할까?”


       


       “뭐, 뭣! 그게 무슨 소리냐! 난 이미 전부 이야기했다! 그러니 날 놔줘라!”


       


       오들오들 떨면서도 마구 발버둥 치는 로즈마리. 누가 보면 납치라도 하려는 줄 알겠네.


       


       “아이참. 그렇게 말하면 내가 싫어하는 사람 억지로 붙잡는 것 같잖아. 로즈마리 너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의지로 따라오는 거야.”


       


       “그럴 일은……!”


       


       이를 악무는 그녀를 향해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뒤이어 지금껏 억누르고 있던 온갖 미용 권능을 최대한으로 끌어낸다.


       


       봄바람 불어오듯 확하고 퍼져나가는 향기로운 냄새. 피부는 아기 피부 이상의 뽀얀 빛깔과 부드러움으로 상대를 현혹시킨다.


       


       그 자체로도 어떤 화장품보다도 뛰어난 권능이 최근에 얻은 사랑의 화신 권능으로 강화된 상태.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효과에 불과하다.


       


       사랑의 화신에는 여러 효과가 있고, 이 모든 것을 본격적으로 활성화했을 때 그 진가가 드러나니까.


       


       “……어?”


       


       멍하니 굳어버린 로즈마리. 그녀의 시선이 내게 고정된 채, 떨어질 줄을 모른다.


       


       5성급 권능. 사실상 기적에 필적하는 힘이 내 전신에서 줄줄 새어 나오는 것이다.


       


       별다른 기능은 없다. 그저 강력한 존재감이라고 해야 하나,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힘인 신력이 자아내는 위화감 같은 것이다.


       


       몇 번 보았던 고위 모험가의 진심 전투에서 내가 감탄과 경외를 느꼈던 것처럼.


       


       사람은 자신과 격이 다른 힘을 마주하면 본능적으로 숭배 모드에 들어간다.


       


       그리고 지금. 사랑의 여신의 ‘진심 커스터마이징’을 직시한 로즈마리의 상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멍하니 풀어진 초점. 벌어진 입 사이로는 작은 혀가 엿보인다.


       


       적개심과 공포로 가득 찼던 눈빛은 순식간에 말랑말랑해지고, 그 자리에는 분홍빛 설렘이 자리 잡기 시작한다.


       


       그렇다. 막대한 신력은 그 자체로 하나의 폭력이 되어 로즈마리의 마음을 마구 뒤흔든 것이다.


       


       거기에 순간 약해진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개쩌는 미소년이 미용 권능으로 한층 강화된 모습이기까지.


       


       당연히 홀릴 수밖에 없지 이건.


       


       물론, 이게 진짜 사랑이라던가 그런 건 아니다. 단순히 말도 안 되게 매력적인 이성을 발견하고 일시적으로 맛탱이가 가는 것뿐이니까.


       


       만약 이를 로즈마리가 자각한다면 훨씬 빠르게 제정신을 차리겠지.


       


       결국 알기 쉽게 정리하자면 지속시간 짧고, 여러 번 써먹기 힘든 일회용 세뇌 어플…아니, 세뇌 스마일이라고 하면 되리라.


       


       엘리를 놀리기 위해 갈고닦은 순수함과 고혹적인 매력이 공존하는 미소로 로즈마리의 길쭉한 귀에 속삭였다.


       


       “우리 집. 올래?”


       


       “응…….”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로즈마리. 좋아. 이제 조용히 요정과 은화로 데려가기만 하면…….


       


       꽁!


       


       “끄앙!”


       


       음흉하게 미소 짓던 게 들킨 걸까. 아니면, 그냥 바로 알아챌 만큼 로즈마리의 변화가 극심했던 걸까.


       


       이쪽을 지키고 있던 리디아에게 꿀밤을 맞았다. 그것도 꽤 세게.


       


       “요나. 방금 얘한테 뭐했어.”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거짓말. 솔직하게 말하면 정상참작 해줄게.”


       


       “……미, 미남계?”


       


       “…….”


       


       잠시 이쪽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리디아가 이번에는 로즈마리에게 꿀밤을 먹였다.


       


       쿵!


       


       나와는 소리부터가 다를 정도로 강하게. 그리고 이는 꽤 효과가 있었다.


       


       “허윽!”


       


       정수리를 부여잡고 부들부들 떠는 로즈마리. 그녀의 눈동자는 어느새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긴 했지만.


       


       “사, 사술이다! 이런 식으로 그분을 유혹한 거구나!”


       


       “하아. 이거 보세요 리디아 님. 얘를 이렇게 풀어줘 버리면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닐 거 아니에요. 제 이미지가 나빠지는 거야 상관없지만, 크레이들 상회까지 흘러 들어가면 나중에 귀찮아질걸요?”


       


       “그렇다고 저렇게 헤벌레 하던걸 그대로 데려가면 엘리 선배한테 맞아 죽을걸.”


       


       “쓰읍. 그건 생각 못 했는데 진짜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내 말을 무시하지 마라!”


       


       놔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무시한다고 화를 내는 로즈마리.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미노타우로스를 잡고, 네 말대로 엘프 고위층 사이에 연회가 열리면 거기에 나랑 리디아 님을 데려가. 그 사이에 누가 오늘 있었던 일을 물어보면 최대한 얼버무리고.”


       


       분명 로즈마리에게서 물어본 것이었으나, 대답은 엉뚱한 리디아 쪽에서 들려왔다.


       


       “나도?”


       


       “안 돼요? 그럼 엘리나 베니에게 물어볼 거긴 한데….”


       


       “괜찮아. 다만, 연회에 파트너로 데려가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아는 건가 싶어서.”


       


       “파트너랄까. 호위 기사에 가깝긴 한데. 괜찮을까요?”


       


       “호위 기사…응. 할게.”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리디아. 좋아. 이걸로 여차할 때의 보험을 챙겼군.


       


       나도 리디아도 서로 만족스레 끄덕이고는 다시 한번 로즈마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간단하지? 그냥 나를 조용히 고위층 엘프들이랑 대면시키기만 하면 돼. 그 뒤에는 내 이상한 소문을 내건 뭘 하건 마음대로 하고.”


       


       “큿…다른 사람들도 홀리려는 거냐! 이 더러운 방울뱀 자식!”


       


       “어허. 이거 안 보여? 더럽지도 않고 방울뱀도 아니야. …지금 자꾸 음해하면 다시 정중한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잖아.”


       


       밝게 빛나는 유니콘 단검을 살랑살랑 흔들자, 로즈마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결국 잔뜩 겁을 집어먹은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 좋다!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하지만 이 자리의 다른 사람이 소문내는 것까지는 어쩌지 못할 텐데?”


       


       “걱정 마. 진작에 사일런스 마도구를 펼쳤으니까. 그렇죠 리디아 님?”


       


       “쁘이.”


       


       자랑스런 표정으로 손으로 브이를 그리는 리디아.


       


       그 모습에 더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걸 깨달은 로즈마리가 허탈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다. 전부 알겠으니 이제 풀어다오.”


       


       “풀어주기는. 처음 말고는 붙잡은 적도 없으니까 그냥 제 발로 걸어 나가면 돼.”


       


       “…….”


       


       믿지 못하겠다는 듯, 자꾸만 이쪽을 힐끔대며 느릿하게 반파된 방을 빠져나가는 로즈마리.


       


       …어차피 미노타우로스 토벌은 사흘 뒤니까 딱 사흘만 조용히 있으면 되는데 저 꼴을 보니 조금 불안하긴 하네.


       


       좋아. 최소한의 안전장치 정도는 해둬야지.


       


       호다닥 달려가 문을 반쯤 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로즈마리의 어깨를 붙잡았다.


       


       “잠깐.”


       


       “히이익!”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기겁하는 녀석. 그런 로즈마리의 어깨를 부드럽게 토닥이며 안심시켰다.


       


       “괜찮아 괜찮아. 깜빡한 게 있어서 그러니까.”


       


       방긋 최대한 무해한 미소를 지어주고는 그대로 로즈마리의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댔다.


       


       말캉.


       


       실로 빈약한 감촉. 영 만질 것도 없긴 하지만, 아무튼 가슴은 가슴. 친밀하고도 농밀한 스킨십에 로즈마리의 뺨이 붉어졌다.


       


       “뭐, 뭐냐! 역시 날…!”


       


       “쉿.”


       


       다른 손 검지를 그녀의 입술에 가져다 대며 조용히 시키고는 체내의 신성력을 끌어다가 천천히 주입시켰다. 심장 주변을 감싸도록.


       


       “흡!”


       


       창백해지는 로즈마리의 안색.


       


       아마 사랑의 화신을 전력 개방했을 때와 비슷한 감각이 심장에서 느껴지겠지. 어찌 됐든 뿌리가 같은 힘 아닌가. 충분히 착각시킬 수 있다.


       


       물론, 저만한 고위층 자제가 신성력을 모르진 않을 테니 찬찬히 생각해 보면 좀 정순할 뿐인 신성력이라는 걸 깨닫겠지만…….


       


       오늘 하루만 속여 넘기기엔 충분하지.


       


       그렇게 심장이 좀 더 건강해진 로즈마리가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내,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지?”


       


       “금제. 오늘 한 약속을 어기면 심장이 폭발할 거야.”


       


       “!!!”


       


       “제대로 지키면 알아서 사라질 테니까 걱정말고.”


       


       “…….”


       


       워낙 정순한 신성력이니 그냥 뭉쳐둬도 며칠은 가겠으나, 제대로 된 축복이 아니니 결국 시간이 지나면 흩어질 거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심장에 밀어 넣은 기운이 그리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도, 이 짧은 시간이 그런 복잡한 금제를 거는 것은 보통 실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정신적으로 몰린 지금의 로즈마리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나 보다.


       


       “히끅!”


       


       오들오들 떨며 딸꾹질하는 로즈마리. 까치발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통통 두드려 주고는 리디아에게로 돌아갔다.


       


       “이제 갈까요 리디아 님?”


       


       “응.”


       


       리디아와 함께 부서진 방을 나섰다.


       


       뒤에서 털썩 소리와 함께 “나…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같은 처량한 목소리가 들려오긴 했으나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겠지.


       


       하여, 콧노래를 부르며 리디아를 쫄쫄쫄 따라가는 것도 잠시.


       


       “…리디아 님? 저희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


       


       “길드 사무실.”


       


       “집에 안 가요?”


       


       “방을 그렇게 부숴놓고 그냥 가면 범죄야. 몇 배로 벌금 물고 싶지 않으면 지금 자진 신고하고 물어줘야 해.”


       


       “아.”


       


       맞다. 방 부쉈었지.


       


       “일단 수리비는 내가 낼 테니 나중에 갚아.”


       


       “…벽을 부순 건 리디아 님 아니었나요?”


       


       “요나가 시켰잖아? 검에게 책임을 물면 안 되지. 책임은 주인의 것.”


       


       “큭….”


       


       리디아에게 호위 기사다 뭐다 하면서 한껏 기분을 띄워준 건 나니까 할 말이 없군.


       


       “아, 그리고 앞으로는 미궁에서 번 금액의 일부를 받아 갈게.”


       


       “왜요?!”


       


       “베니에게도 빚졌다며. 요나는 빚이 너무 많아. 골드 단위 채무는 눈감아주기 힘들어.”


       


       “…….”


       


       구구절절 맞는 말만 하다니.


       


       결국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로즈마리는 우울했다.


       


       감히 여왕님에게 상처를 준 사악한 방울뱀을 징죄하려다 역으로 당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냥 당한 게 아니라 아주 탈탈 털려버리기까지.


       


       “후우. 오늘은 뭐라도 마셔야겠어.”


       


       아무리 대화가 다른 이들에게 들리지 않았다고는 하나, 자신이 농락당하는 모습 자체는 많은 이들에게 보였다.


       


       도저히 제정신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터라, 자신의 호위이자, 마찬가지로 탈탈 털린 궁수에게 물었다.


       


       “베리. 근처에 괜찮은 술집 있나? 같이 한 잔이라도 하고 들어가자고.”


       


       “그런 거라면 일전에 동료에게 좋은 곳을 하나 들었습니다. 저도 직접 가본 적은 없지만, 듣자하니 처음 보는 야시시한 복장의 남자들이 서빙하는 곳이라더군요.”


       


       “오….”


       


       “거기에 다들 밤일도 하는 터라, 조건만 맞으면 그대로 침대로 데려갈 수도 있다고 합니다.”


       


       “좋군.”


       


       내심 요나에게 강제로 순결을 증명 당한 것을 신경 쓰고 있던 로즈마리다.


       


       이번에야말로 처녀를 버리겠노라 마음먹은 로즈마리는 보무도 당당히 베리가 추천해 준 주점…요정과 은화에 들어갔다.


       


       “이리 오너……어?”


       


       그리고 보았다.


       


       카운터 부근에 앉아 입에 빨대를 문 악마를. 그런 그에게 아양이라도 부리듯 내밀어진 우유병을.


       


       


       


       


       


       “흐이익!”


       


       기겁한 로즈마리와 베리는 그대로 뒤돌아 도망쳤다.


       


       오늘도 로즈마리의 순결은 지켜졌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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