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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1

       “사감, 마족이 얽힌 일이라면 단순히 치안대 선에서 끝낼 일이 아니에요.”

       

        비나는 품에서 가면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

        클레어가 제작한 마족전담기구 극채색의 상징.

        의장인 그녀의 승인만 있으면 새벽인 지금이라도 원탁회를 열어 이 문제에 대해 정식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모든 신비는 다도해의 사서장의 관리 하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삭일전쟁 당시 니플헤이르를 포함한 순혈 마도가문과 백가의 귀족들이 합의한 내용이에요.”

        “그런가요?”

        “그리고 이를 무단으로 반입한다는 건 마탑의 질서를 크게 어그러뜨리는 행동이에요. 만약 저들의 말이 사실일 경우 마탑의 모든 학파가…….”

        “일단 따라오세요. 생각해둔 방법이 있으니까요.”

       

        치안부의 작전에 협력하기로 결정한 후, 나는 비나를 진정시키며 함께 사감실로 돌아왔다.

        일반적인 기숙사 1인실보다 크기도 크고 시설도 좋은 편이었지만 요람에서 태어난 순혈 마법사에게는 그조차 문화충격이 느껴질 정도로 낙후되어 보이는 모양이었다.

       

        “여기가 사감이 키운다는 말하는 검을 보관하는 창고인가요?”

        “제가 평소 지내는 방입니다.”

        “과연, 저택의 냉장고보다 작아서 착각했어요.”

       

        본래라면 비나를 비원의 층에 있는 저택까지 바래다주어야 하지만 시간이 너무 늦었다.

        열차는 이미 마지막 차편이 지나갔고, 마력 승강기를 이용해서 올라가면 한 세월은 걸릴 것이기에 그녀만 괜찮다면 그냥 여기서 하룻밤 재울 셈이었다.

       

        “일단 씻을 곳은 따로 있는데…… 옷이나 침구가 불편하진 않으시겠어요?”

        “저는 언제나 깨끗하니 문제 없어요.”

        “그렇군요. 침대는 비워놓았으니 피곤하시면 먼저 주무셔도 됩니다.”

        “사감은요?”

        “저는 할 일이 있어서요.”

       

        방 안에 눈부신 미모의 여성이 뽈뽈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음에도 눈길을 줄 틈이 없는 이유.

        지금부터는 프로패셔널한 ‘진짜’들의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평소처럼 갤러리를 관리하고, 갤러리를 관리하는 자들을 관리하고, 갤러리를 관리하는 자들을 관리하는 자들을 관리하는 삼중의 감시망을 가동.

        몇 시간 전 퇴치한 치안대 정예병들의 사진을 올려 황금별을 사칭하는 자들의 최후를 알리는 본래 목적도 잊지 않는다.

        17곳의 업체를 선정한 끝에 개발에 착수한 ‘자동벨튀머신’의 시제품을 마리엘의 방 앞에 설치하고 나면 평소 일과는 끝.

        그리고 오늘은 한 가지 더 할 일이 있었다.

       

        “사감?”

        “잠시만요. 거의 다 끝났어요.”

       

        나는 마녀들이 선물로 주고 간 얼음 정수기를 통해 그녀들과의 소통에 들어갔다.

        내일 있을 거래 물품에 대해 미리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우리가 비록 넘을 수 없는 종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나름대로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필요 시에는 협력하는 관계였다.

        내가 그녀들에게 궁금한 점은 마녀들의 신비라고 할 수 있는 ‘대마녀의 심장’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냐는 것이었다.

       

        위치노트를 한장 찢어 물어보고 싶은 내용을 적자 정수기의 윗부분이 열리며 구겨진 종이를 수거해갔다.

        잠시 후, 퉤! 소리와 함께 입구 부분에서 오늘 받았던 것과 같은 공연 티켓 한 장이 뽑혀 나왔다.

       

        [아픈 건 싫으니까 신비에 올인합니다! 모험가의 창에 심장이 뚫려 살해당할 뻔했지만 특급 주술 『신(神)이 사라진 세계』가 너무 강력한 나머지 무사안일하게 부활해버린 건에 대하여~]

       

        아무래도 잘 있는 모양이다.

       

        아, 씨. 그럼 누구지?

        명계의 마지막 문은 내가 찾아갈 때도 꽤 고생했던 만큼 쉽게 가져올 만한 게 아니었는데.

        그렇다면 태양의 적이 흘린 ‘태초의 피’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 나와 동료들이 마룡을 쓰러뜨리고 얻어낸 신비가 어느샌가 놈들 손에 들어갔을 가능성도…….

       

        ‘아니, 그건 불가능한가.’

       

        콰앙!

        정신을 차리고 보니 비나의 미묘하게 짜증 담긴 눈이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사감. 왜 저를 옆에 두고 이런 거랑 노닥거리고 있나요.”

        “앗.”

        “이건 나쁜 마도구에요. 24시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뿐 아니라 이렇게 얼음송곳으로 한 대만 내리쳐도 망가지는 조잡한 기계라고요.”

       

        그건 비나도 마찬가지 아닌가?

       

        잠시 떠오른 무례한 의문을 제쳐두고, 그녀의 마력이 담긴 일격에 정수기는 이상한 굉음을 내뿜더니 이윽고 연기와 함께 고장나고 말았다.

        실낱 같던 마녀들의 유대가 끊어졌으나 일단 대답을 얻긴 했으니 만족하기로 했다.

       

        “사감은 저를 좀 더 소중히 여길 필요가 있어요.”

        “이미 그러고 있는데요.”

        “인생에서 몇 번째로요?”

       

        흠, 내 인생에서 비나의 우선순위라.

        일단 물과 공기, 식사, 살살이, 조금 전 부서진 얼음 정수기, 그리고 시엔의 복사뼈 등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이며 필연적인 요소들을 제외하면 대략…….

       

        “으음, 넷, 아니 다섯 번째 정도?”

        “뭔가요 그 무례한 수치는.”

        “아무튼 다섯 손가락 안에는 확실히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니 토라지지 말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죠.”

        “계획이요?”

       

        4대 재앙의 신비가 비아지오의 손에 들어가도록 놔둘 수는 없으니 내일 거래는 반드시 막아야 했다.

        나는 위치노트로 메시지를 하나 보내며 비나에게 말했다.

       

        “네, 아까 올 때도 이야기했듯이 제게 아주 좋은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

       

        다음 날, 나와 비나는 치안부의 병력과 함께 상회 앞에서 대기하며 거래상대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연금학파의 마법사들로 위장한 채 그들과 접선하여 4대 재앙의 신비를 무사히 회수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였다.

        허나 정보부도 아닌 치안부가 그들 사이의 모종의 거래내역까지 파악하고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래서 물어보니 어차피 물건은 저쪽이 소지하고 있을 테니 여차하면 덮쳐서 뺏으면 된다는 어이없는 설명을 듣게 되었다.

       

        “쪼옥, 쪼옥…… 이 얼음물은 입맛에 안 맞으니 바꿨으면 좋겠어요.”

        “쪼옥, 쪼옥, 쪼오옥…… 그러게요, 마탑의 등불이란 자들이 이 정도로 조잡한 물, 아니 작전밖에 갖고 있지 않을 줄이야. 상황이 어지간히 열악한가 보죠?”

        “으득…….”

        “전부 당신 때문이잖아……!!”

       

        몇 달전, 억울한 누명을 쓴 대학원생에게 주게 된 막대한 보상금으로 인해 재정이 휘청거린 치안부는 그 규모가 대폭 축소되어 있었다.

        신비를 회수하기 위해 모인 치안대는 기껏해야 열 명 남짓.

        상대가 중층 이상의 실력일 경우 역으로 당해버릴 만한 전력이었다.

       

        “왔다!”

        “잠깐만요, 저들은……!?”

        “왜, 아는 사람이야?”

        “아뇨, 그냥 한번 말해보고 싶었어요.”

        “……빨리 얼음물 내려놓고 나가세요!!!”

       

        상회 문을 열고 찾아온 두 명의 마법사.

        인식저해 마법을 두르고 있어 남자와 여자라는 것밖에는 식별되지 않았다.

        사사삭 숨어버린 샬롯과 엔을 뒤로하고, 나는 개추가면을 쓴 채로 둘에게 다가갔다.

        창이 닿는 범위까지 한 걸음을 남겼을 때 남자가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검지와 엄지 사이의 손등에 새겨진 두 개의 별.

        그리고 위치노트처럼 생긴 한 권의 책이었다.

       

        “거기까지. 더 이상 다가오지 마라.”

        “이게 예의 그 물건입니까?”

        “피차 운반책 주제에 호기심이 많군.”

       

        비아지오와 4황자가 검은별과 연관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으니 새로울 것도 없었다.

        그러나 저들이 가지고 왔다는 신비가 대체 무엇인가가 궁금했다.

        비나는 뒤에서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마법을 준비 중이고, 내가 신호 하나만 보내면 치안대가 당장 들이닥칠 것이다.

        나는 조심스레 그가 내민 책을 집어들며 말했다.

       

        “가짜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혹시 몰라 확인해보려는 거죠.”

        “흥, 황자에게 죽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라. 애초에 이미 사멸해버린 언어를 너 따위가 읽을 수 있을 리 없지.”

        “그렇다는 건…….”

        “그래 거기 적혀있는 문자가 바로 용들이 사용하던 ‘언어’다.”

       

        대마녀의 심장.

        명계의 마지막 문.

        태초의 피.

        그리고 용언(龍言).

       

        용들의 언어에는 신비의 그 자체로 성조와 뜻을 읊는 것만으로 마법을 발현할 수 있다.

        당연하겠지만 대륙에서 용이 사라진 지금은 그 말을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기에 남자는 여유로운 것이다.

        천천히 페이지를 넘긴 나는 마지막 장까지 확인한 뒤,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여자 쪽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걸 어디서 구했습니까? 혹시 황궁인가요?”

        “그건 알 거 없다. 그보다 확인했으면 빨리 가지고 꺼져라.”

        “네? 물건을 확인했으면 갚을 치뤄야죠.”

        “무슨 소리야, 그건 윗선에서 다 알아서…….”

        “돌려드릴게요.”

        “뭐?”

        “가짜거든요, 이거.”

       

        나는 책을 그에게 도로 내밀며 말했다.

        동시에 손가락으로 수신호를 보내자 천장과 창문을 통해 치안대의 마법사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잡아!”

        “책을 놓치지 마!”

        “젠장! 이 개새끼가……!”

       

        검은별의 흑마법사는 자신이 뒤늦게 포위된 것을 알고 곧장 내게 돌진했다.

        꽤 높은 위계인지 손에서 뻗어나온 검은 칼날에 비나가 세운 얼음방벽이 산산이 부서질 정도였다.

        인질이라도 잡아서 어떻게든 빠져나가 보려는 속셈이겠지.

        투창만이 장기인 나 역시 이런 거리에서는 저런 마법을 막기 곤란했지만, 동료들로부터 이럴 때를 대비해 암기해놓으라며 지겹게 들었던 ‘문장’이 딱 하나 있었다.

        뭐였더라, 너무 길어서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아무도 움직이지 마! 조금이라도 마력을 끌어올리면 이놈 모가지를…….”

        “아, 생각났다.”

       

        『별의 요람에서 태어난 나의 아이야. 속삭이는 바람과 밝은 태양을 머금은 노래가 너를 지킬 비늘이 되리라.』

       

        분명 이 문장이었다.

       

        카앙!

        내 목에 닿는 순간 두 동강 나버린 칼날.

        흑마법사가 당황하는 틈을 타, 나는 그를 제압하며 작게 속삭였다.

       

        “어지간한 마법으론 안 뚫립니다. 용린(龍鱗)은 용이 태어날 때 가장 먼저 부여받는 용언이거든요.”

        “너, 너 설마, 읽은 거냐……?”

        “아까 말했잖습니까, 이건 가짜라고.”

       

        저를 포함한 몇 명만이 알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게 말하던 순간, 바닥에 쓰러진 검은별의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최근 먹기 시작한 약이 아무래도 많이 맵네요.
    적응할 때까지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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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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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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