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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1

       

       

       “허억, 허억···.”

       

       “괜찮니?! 세상에, 몸이 땀투성이구나. 여기, 여기 부상자가 있다! 치유 능력자!”

       

       

       정신을 갉아먹는 통증을 이겨내며 전장으로 복귀했다.

       

       다행히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준 이름 모를 초인 덕분에 빠르게 치유를 받을 수 있었다.

       

       저 거미 떼를 막기에도 바쁠 텐데.

       

       고마움과 미안함이 뒤섞여 알 수 없는 감정을 자아냈다.

       

       

       “이 아이인가요?”

       

       “응. 상태가 심각해 보여. 미안하지만 좀 맡길게.”

       

       “다녀오세요. 다치지 말고.”

       

       “장담할 수는 없겠는데. 상황이 생각보다 별로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옆구리에서 통증이 밀려온다.

       

       통증을 어떻게든 이겨내고자 숨을 고르고 있자니, 시우가 덮어준 옷을 들춰낸 여성이 경악했다.

       

       

       “···멍? 배신자인가? 설마 그 범죄자 녀석들이···!”

       

       

       ···배신자? 범죄자?

       

       고통으로 인해 둔해진 머리를 최대한 굴려 가며, 이 여성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아, 그렇구나.

       

       거미들의 공격으로는 멍이 들지는 않을 테니까.

       

       몸에 구멍이 나고, 상처가 생긴다면 몰라도 멍이다.

       

       이곳 주변의 사람들에게 맞았다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겠지.

       

       

       “···그런 거 아니에요.”

       

       “솔직히 말하렴! 그 녀석들이 뭘···!”

       

       “아니라니까요. ···목표를 찾았어요. 이곳에 숨어든 빌런이요. 그 녀석에게 당한 거예요.”

       

       “···!”

       

       

       누가 했는지 말하기만 한다면 당장이라도 달려가 머리채라도 잡아 뜯을 기세의 여성을 말리기 위해 다급히 입을 열었다.

       

       

       “지금, 시우가 그 사람···아니, 그 괴물을 혼자 막고 있을 거예요. 빨리 여기를 정리하고, 다른 사람들을 불러오라고···.”

       

       

       시우가 혼자 그 녀석을 막고 있다.

       

       그 말을 입으로 꺼내는 게 괴로워서, 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내 몸을 내려다보자, 이게 내 몸인가 싶은 정도로 파랗게 물들어있던 옆구리가 차츰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그에 조금씩 멎어가는 통증.

       

       그러나 고통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지금도 내 가슴은 욱신거리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 아이는, 괜찮은 거야?”

       

       “모르겠어요. 괜찮을 거라고 하기는 했는데···.”

       

       

       ···한심해.

       

       고작해야 이런 고통에 시우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내가 한심했다.

       

       시우라면 이런 고통은 가볍게 별거 아닌 일로 치부했을 텐데.

       

       지금껏 여러 번 싸워왔던 주제에, 공격 한 번 당했다고 이렇게 보살핌받는 내가 너무 한심했다.

       

       예전에, 시우를 영웅으로 키워야 한다며 설치던 때가 있었던가.

       

       오만하기도 하지.

       

       

       “너무 상심하지 마렴.”

       

       “네?”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거든. 보통 그런 아이들이 좋지 못한 선택을 하고는 한단다. 그 아이를 버려두고 왔다고 생각하는 거니?”

       

       “···그러면 아닌가요?”

       

       “글쎄. 네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거겠지.”

       

       

       ···됐다.

       

       그녀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 옆구리를 찰싹찰싹 만져댔다.

       

       고통을 예상하고 화들짝 놀라 그녀를 막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어느새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가끔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도 괜찮단다.”

       

       “하지만···!”

       

       “음, 이런 말 하기는 조금 뭐하지만···. 소중한 사람, 아니니?”

       

       

       소중한 사람이라.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단순한 의미로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아 잠깐 멈칫했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걸까.

       

       

       “···잘 모르겠어요.”

       

       “그래? 하지만 반대쪽은 어떨까?”

       

       “네?”

       

       “너를 도와주기 위해서, 그런 위험한 곳에 홀로 남은 거잖아?”

       

       

       아.

       

       나는 눈앞의 여성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깨달아버렸다.

       

       

       “그러니, 네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 아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지.”

       

       

       떠올려보면 항상 그랬다.

       

       시우는 언제나 내게 친절하고, 자상했다.

       

       갑작스럽게 집에서 공황을 일으켜도 나를 지켜주었다.

       

       분명 집이라는 자신만의 공간에 다른 사람이 침입해서 불편했을 텐데.

       

       그런데도 나를 배려해주었다.

       

       그러고 보면 어느샌가 시우가 나를 바라보는 빈도가 늘어났던가.

       

       지금까지는 내가 불안에 휩쓸리지는 않을까 걱정되어 바라보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물론 그것도 있겠지만···.

       

       나를, 사랑하는 걸까.

       

       

       “그렇다면 적어도, 그 마음에 대답은 해줘야겠지?”

       

       “···네.”

       

       “그러면 빨리 가. 저 끔찍한 것들을 다 죽여야 도와줄 수 있다며?”

       

       

       나를 향해 한번 웃어주고 다른 부상자를 찾아 뛰어가는 여성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사랑.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무시했던.

       

       그것을 자각하자마자 나는 여태까지 겪었던 수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시우는 대부분의 시간을 나와 함께 보냈다.

       

       내가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시우가 원해서 같이 움직였던 걸까.

       

       다시금 생각해보면 시우는 아멜리아와 도로시보다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이 유독 길었다.

       

       아직은 히로인 레이스가 시작하지 않았구나.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진작에 끝나버렸던 걸까.

       

       

       “···.”

       

       

       얼굴이 점차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여태껏 내가 해왔던 행동들이 시우에게 어떻게 느껴졌을까.

       

       나는 그저 시우를 믿었기에. 내가 히로인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어쩌면 이 세상에서 도피한 채, 믿을만한 존재가 시우밖에 없었기에 한 행동이었는데.

       

       내가 행했던 수많은 행동들의 모습이 새록새록 떠올라 괴로워졌다.

       

       과연 시우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도무지 그 속내를 짐작할 수 없었다.

       

       

       “···으윽!”

       

       

       하지만 부끄러움도 잠시.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도, 지금 당장 움직여야만 했다.

       

       시우를 도와주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저 녀석들을 정리해야 하니까.

       

       나는 시우가 준 옷을 풀어내며, 예전에 보았던 히어로 영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실을 건물에 쏘아내고 몸을 맡겼다.

       

       익숙하지 않은 행동에 실을 낭비해 옷을 거의 다 사용해갈 즈음, 숙소에 도착했다.

       

       최대한 빨리 옷을 갈아입기 위해, 알몸으로 숙소를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조차 신경 쓰지 않고 방으로 내달렸다.

       

       그리고는 방문을 열어 황급히 옷을 갈아입었다.

       

       

       “···아, 저거.”

       

       

       그러던 도중, 문득 방을 바라보자 주변에 모르는 물건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건 시우가 아끼는 물건.

       

       저건 저번에 샀다가 조금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물건.

       

       시우와 내가 같이 사용하던 방을 바라보며 깨달았다.

       

       여태껏 나는, 이 세상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시우와 함께 보냈음을.

       

       

       “···.”

       

       

       시우를 감시하고, 시우와 함께 다니고, 시우와 같이 살고.

       

       내가 이곳에 온 게 새로 태어난 거라고 생각해보면, 인생의 절반 이상은 시우와 함께 지낸 게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옷을 모두 갈아입은 후, 이동에 사용하기 위해 옷을 하나 더 껴입은 채로 방을 나서려는 찰나.

       

       몸이 떨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몸이 나은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바로 싸우러 나간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걸까.

       

       그러나 나는 그 떨림에 주저앉는 대신, 팔찌를 한번 쓰다듬었다.

       

       시우가 내게 준, 소중한 물건을.

       

       

       “···이걸로 괜찮아.”

       

       

       만약 위험하다면 시우가 나를 도와주러 올 거니까.

       

       시우는 언제나 내 곁에 있을 테니까.

       

       점차 멎어 드는 떨림에 다시 전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몸을 던졌다.

       

       차가운 바람이 뜨거워진 몸을 식혀주었지만, 여전히 내 심장은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수긍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으니까.

       

       나는 인정했다. 작가님 같은 초월자가 곁에 붙어 다니는 것보다, 시우가 선물해준 팔찌가 훨씬 안정감을 선사해준다는 사실을.

       

       ···내가 시우에게 반해버렸음을.

       

       시우가 내게 품은 감정과 내가 그에게 품은 감정이 다르지 않음을 인정했다.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나는, 한참 전부터 이미 반해있었을 테니.

       

       

       

       ***

       

       

       

       “젠장, 너무 많잖아!”

       

       “끝이 없어···.”

       

       “사령관님! 이대로 가면 전선이 붕괴합니다! 억지로 이어 붙이고는 있지만, 더는 한계예요!”

       

       “···.”

       

       

       초조함에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아무리 말 안 듣는 놈들이라고는 해도 내 부하들이다.

       

       어떻게든 목숨만은 붙여놓고 있었지만, 이제 그것도 슬슬 한계.

       

       저 끝없는 물량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나.

       

       

       “세 시간 정도는 더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미쳤어요?! 이미 한참 버텼다고요! 이것만 해도 기적이에요!”

       

       

       제 딸을 지켜야 한다며 평소보다 더 날뛰는 라이오넬의 전격이 하늘을 수놓았다.

       

       그 전격의 길을 따라 마수들이 바스러졌지만, 그것도 잠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순식간에 메꿔졌다.

       

       

       “···흐음.”

       

       

       아직은 더 싸울 수 있다.

       

       여력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게 느껴진다.

       

       세 시간 정도는 더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건, 이 녀석들의 실력이 그 정도는 되기 때문에 그렇다고 판단했던 것이었다.

       

       문제는 체력이 아닌 정신력.

       

       막아도 막아도 끝없이 밀고 들어오는 저 파도에, 다들 조금씩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막을 수 있는 건가.

       

       정말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는 건가.

       

       다들 내색은 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사명을 알고 있고, 이곳에서 죽을 각오도 한 녀석들이니까.

       

       그러나 애써 무시하고 노력한다고 한들 사기가 떨어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후퇴하는 게 맞겠군.

       

       이곳은 포기하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시금 재정비한 뒤 한 번 더 싸운다.

       

       수가 어느 정도 줄었다.

       

       다섯 번 정도만 재정비하면 마무리할 수 있겠어.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후퇴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끌 병력을 남겨놓아야 했으니까.

       

       이곳을 지키며 시간을 끌 병력을.

       

       그리고, 이곳에서 시간을 끈다는 이야기는 죽으라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사령관은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떼어냈다.

       

       그것이 그가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다수를 위해, 소수를 잘라내야만 하는 입장이었으니까.

       

       

       “할 수 없군. 후퇴···.”

       

       -서걱.

       

       

       마음을 굳게 먹은 그가 후퇴를 명령하려던 찰나.

       

       전방의 수많은 거미들이, 일제히 잘려 나가기 시작했다.

       

       

       “뭐, 무슨···!”

       

       “···기회다.”

       

       

       허공에서 실 하나에 의지한 채로 소녀가 내려왔다.

       

       다들 사태를 파악하지 못해 어안이 벙벙하다는 듯 눈앞을 바라보았지만, 사령관만큼은 순식간에 모든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것이 그의 능력이었으니.

       

       ···이 사태의 원흉을 잡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이곳을 수습해야만 했다.

       

       지원 병력도 오는 상황.

       

       사령관은 빠르게 판단했다.

       

       이곳에서 끝을 봐야 한다고.

       

       

       “지원 병력이 오고 있다! 대량 살상에 특화된 능력자 부대다! 다들 조금만 버텨라!”

       

       “와아아아아아아!”

       

       

       눈앞에서 순식간에 대량의 거미들이 썰려 나가는 모습을 보아서일까.

       

       다시금 녀석들의 마음속에 희망이 피어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131화만에 드디어 사랑을 자각한 아르테 양입니다.

    너무 길었네요

    현실 시간으로는 거진 네 달 반정도 지났는데, 드디어.

    다음화 보기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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