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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1

        

       기묘한 분위기.

       유지되는 침묵.

         

       황금 갑옷을 두른 괴인은 가만히 김종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앞서서는 말로 사람을 현혹하려고 들었으면서.

       수상한 분위기를 한껏 풍겼으면서.

         

       대체 왜 가만히 보고만 있는가?

         

       김종수는 검을 뽑아 든 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황금 갑옷에 집중하는 대신 기감을 사방으로 퍼뜨렸고,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주술에 대비했다. 하지만 주술사는 그가 심력을 헛되이 낭비하는 것을 노린 것인지, 아니면 해를 끼칠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인지 그저 멀뚱멀뚱 시간만을 보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두두두두 하는 괴성과 함께 헬기가 나타났다.

         

       헬기는 굉음을 내며 우물 쪽으로 가까워졌고, 충분히 가까워졌다고 여겨지자 헬기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남성 한 명이 늘어진 로프를 잡고 그대로 땅으로 내려왔다.

         

       곰을 연상하게 만드는 거대한 덩치의 남자는 반바지에 간단한 티셔츠 하나만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몸에서 열기를 훅훅 뿜어내고 있었고, 그가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정체 모를 위압감이 사방으로 퍼졌다.

         

       ‘마웅(魔熊) 성민혁.’

         

       호국회 소속의 무인이며, 소말리아 해적 소탕 작전에서 크게 활약한 능력자.

       박투와 유술이 특기이며, 특유의 괴력을 이용해 상대를 제압하고 죽이는 것에 특화된 무인이었다.

         

       베트남 전쟁에서의 별명이 그대로 별호가 된 검귀 김종수와 똑같이, 그 역시 해적 소탕 작전에서 벌인 활약 때문에 별명이 붙었고 그것이 그대로 별호로 굳어졌다.

         

       맨손으로 사람을 치는 모습과 껴안아서 뼈를 으스러뜨리는 모습이 곰과 비슷하다고 해서 이블 베어(Evil bear) 혹은 데빌 베어(Devil bear)라고 불렸는데, 그의 활약상이 널리 퍼지며 마웅(魔熊)이라는 별호로 변했다.

         

       “형님, 저놈입니까?”

       “그래.”

         

       성민혁은 성큼성큼 김종수에게 다가오더니 물었다.

         

       “저번에 사채업자 죽인 새끼 맞지요?”

       “그래. 분명하다. 내 지폐의 일련번호를 확인하였느니라.”

         

       성민혁은 김종수의 보증에 씩 웃더니 몸에 기를 끌어올리고 성큼성큼 그에게 다가갔다. 그 모습에 김종수는 ‘이 새끼 또 시작이네’라는 뜻이 담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말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입을 꾸욱 다물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진성 역시 성민혁이 몸에 기를 두르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뻔히 보았음에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거미 다리를 움직여 도망가지도 않았고, 우물에서 벗어나지도 않았으며, 하다못해 고개를 돌리는 행동조차 하지 않았다.

         

       계속.

       계속 그를 바라보았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멀뚱멀뚱 말이다.

         

       마치 병든 벌레처럼.

         

       “흐흐. 이봐, 주술사.”

         

       성민혁은 마침내 진성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는 사나운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너 뭐 하는 놈이냐?”

         

       그 질문에 괴인은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사람의 형체를 바꾸었다.

       마치 벌레와 사람을 뒤섞은 듯한 얼굴로 변한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의 얼굴이라는 것이 본래 진성의 얼굴이 아니라, 자신과 마주 보고 있는 성민혁의 얼굴이었다.

         

       “질문이 틀렸다.”

       “뭐?”

       “옳은 질문을 하시게. 흐흐.”

         

       성민혁은 자신을 조롱하는 듯한 말투에 화가 난 듯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뒤에 있던 김종수는 무언가 걸리는지 심각한 표정을 지었고, 이내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성민혁에게 달려가서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곤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듯 다급하게 눈짓을 하고는 성민혁이 있던 자리에 대신 섰다.

         

       성민혁이 이게 무슨 짓이냐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김종수는 입을 움직여 소리 없이 말했다.

         

       주.

       술.

         

       “주, 술?”

         

       하지만 성민혁은 눈치도 없이 김종수가 보낸 말을 그대로 읽어버렸다.

         

       그러자 진성은 기다렸다는 듯 그를 바라보며 가면의 형상을 바꾸었다.

       그 모습은 괴물이 너무 기뻐 어찌할 줄 모르는 것 같은 아주 기괴한 모습이었다.

         

       “드디어 올바른 질문을 하였구나. 그래, 이것은 주술이니라. 다만 이는 올바른 형태가 아니라 역전이 된 것인즉. 너희의 머리로 아무리 고민한들 그 해결책은 나오지 않을 것이니 나의 주술에 저항하지 말고 그것을 따르라. 그리하면 커다란 이득을 얻을 것이니라.”

         

       김종수는 주술사의 말에 조용히 무언가를 고민하다 물었다.

         

       “규칙은?”

       “규칙은 간단하네. 이것만 기억하면 되는 것이야. 올바른 질문, 올바른 대답.”

         

       올바른 질문.

       올바른 대답.

         

       그 말에 김종수는 고민했다.

       그리고 다시 검을 빼 들고 기를 불어넣고는 기감을 퍼뜨려 주술사를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보아도 기감에는 걸리는 것이 없었다.

       쥐새끼 한 마리마저도 감지할 수 있는 것이 그의 능력이건만, 도저히 주술사의 본체를 찾을 수가 없었다.

         

       찾을 수가 없다.

       자신의 능력으론, 찾을 수가 없다.

         

       김종수는 자신의 능력이 부족함을 인정했다.

         

       “법이라는 것은 지엄하면서도 느슨한 면이 있다.”

         

       그는 눈을 뜨며 중얼거렸다.

         

       “예를 들자면 앞에 ‘특수’가 붙는 범죄에 관한 것들. 특수강도, 특수절도, 특수폭행…. 흉기를 들고 행한 범죄들. 그리고 이러한 특수가 붙는 것에는 마땅한 권리가 따라오게 되니, 그것이 바로 정당방위지….”

         

       흉기를 휴대하게 되면 특수가 붙고, 더 무거운 처벌을 받는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흉기의 범위는 어디부터 어디까지인가?

       어떤 것이 흉기이고, 어떤 것이 흉기가 아닌가?

         

       법을 만드는 이들은 이 ‘흉기’의 범위에 대해 고심하고 또 고심했다.

         

       그리하여 잡은 기준이 바로 ‘아무런 능력을 익히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평범한 사람이 다칠만한 물건이라면 흉기다.

       평범한 사람에게 해를 끼칠만한 능력이라면 흉기다.

       평범한 사람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 기술이라면 흉기다.

         

       즉.

       능력자는 그 자체로 흉기를 소지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으며, 강력 사건을 저지르면 필연적으로 더 강한 처벌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김종수가 행한 것은 이러한 해석에 따른 행동.

         

       눈앞에 범죄자가 있고, 법적으로 ‘흉기’에 속하기 충분한 능력을 쓰고 있으니 정당방위로 공격을 해도 되었기 때문에 한 행동이었다. 물론 정당방위로 보기에는 한없이 과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거야 사회적 지위와 막강한 금력을 이용한다면 얼마든지 무마할 수 있으니 문제가 없었다.

         

       말하자면…. 

       김종수에게 ‘범죄를 저지른 능력자’는 합법적으로 죽여도 되는 사냥감이며, 합법적으로 검에 피를 묻혀도 되는 하늘이 주신 기회였다.

         

       하지만….

         

       “그런데…. 자네 하나를 잡자고 이 마을 전체를 부숴버리면, 그것도 정당방위에 속하는 것일까.”

         

       그 중얼거림에 저 멀리서 구경하고 있던 장교가 기겁했다.

       그는 사색이 된 얼굴로 저 멀리서 ‘안됩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소리를 지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느낀 것인지 무전으로 부대에 연락해서 마을이 부서질지도 모른다며 고래고래 광고하기까지 했다.

         

       “질문인가?”

       “아니.”

         

       김종수는 들고 있는 검을 바닥에 내리찍어 기를 일으켰다.

       그러자 무색투명한 기가 마치 비눗방울처럼 우물 주변을 감쌌다.

         

       그러고는 가만히 주술사를 노려보고는 몸을 돌려 뒤에서 멍하니 서 있던 성민혁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난 가겠다.”

       “예? 형님, 살인 용의자라면서요?”

       “난 흥이 깨졌다. 네가 알아서 잡거라.”

         

       김종수는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겪은 수많은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저것과 얽히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잡으려 해도 자신을 역으로 농락하는 여우처럼 이리저리 빠져나간다.

       보였다 치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고, 조롱하듯 다시 그 형태를 만든다.

       이야기를 나누면 뱀과 문답을 나누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고, 어어 하는 사이에 저쪽이 만들어놓은 게임판에 앉게 되어버린다.

         

       그래.

       말하자면 저것은 늪 같은 인간이었다.

         

       멋모르고 발을 뻗으면 순식간에 제 아가리 속으로 삼켜버리는 늪.

         

       “다 늙었는데 저런 것이랑 얽히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이 아니야. 젊은 네가 알아서 해라.”

       “아니 형님. 그런 말씀을 하시면….”

       “어허! 젊을 때는 거 여러 경험도 하고 그러는 거야. 네가 잘 붙잡아 보도록 해라.”

         

       김종수는 베트남에 파병을 갔을 때,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우거진 정글을 수없이 떠돌았다.

       한 발자국을 걸을 때마다 아래에서 뱀이 솟고, 위에서 덩굴인 줄 알았던 것이 제 몸을 늘어뜨린 뱀이기도 했다. 이파리가 쌓인 땅에서 똥을 묻힌 창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했고, 안전한 곳이라고 여기고 잠을 자고 있자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는 베트콩이 칼을 들고 동료들의 모가지를 다 따버린 적도 있었다.

         

       정글.

       베트콩의 고향 같은 곳이자, 온전히 베트콩이 만들어놓은 규칙으로 돌아가는 게임판.

       베트콩이 멋대로 설치해놓은 재래식 함정에 빠지면 똥을 발라놓은 창에 찔려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렸고, 깡통으로 만든 폭탄을 밟으면 발목이 그대로 날아갔고, 밥 짓는 연기가 보여서 다가가면 베트콩들이 만들어놓은 주술 함정에 걸려서 저주를 맞거나 몸이 불에 타버리곤 했다.

         

       이러한 불합리한 게임에서 당하지 않는 방법은 하나.

         

       아예 게임에 참가하지 않는 것.

         

       베트남에서 정글에 약을 뿌리고, 정글에 불을 지르고, 정글에 생화학 무기를 퍼부었듯이, 아예 그들이 만들어놓은 게임판을 뒤엎어야만 그것에 당하지 않을 수가 있다.

         

       “거 나중에 거하게 술 살테니 네가 여기 책임지도록 하거라. 아, 너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될 것 같으니 다른 사람도 불러주마.”

         

       김종수는 성민혁을 믿는다는 눈빛으로 보았다.

         

       믿음.

         

       과하게 튼튼하기 짝이 없는 육체를 가지고 있으니, 허튼수작에 절대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멍청한 머리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한참이나 뛰어넘는 신체 능력을 갖추고 있으니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믿음.

       곧 찾아올 다른 능력자들과 힘을 합해 무사히 저 살인 용의자를 잡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지금 놓친다고 해도 한 번 점찍은 것은 끝까지 추적해서 붙잡는 집념으로 저 주술사를 잡을 것이라는 믿음.

         

       “큼. 그럼 나는 이만 가보겠다. 거 문제 있으면 연락하고.”

         

         

         

        * * *

         

         

         

       “아, 저 형님 또 나한테 짬 때리고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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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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