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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1

       “아, 그래 맞아!”

        

       ‘사라’가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던 얘기는 이런 얘기가 아니었잖아!”

        

       하지만 바로 조금 전까지 이 방 안을 지배하고 있던 ‘그런 분위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대체 ‘사라’의 태도를 뭐라고 해석한 것인지, 방 안의 사람들은 전부 자신을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사라’로써 그 시선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아홉 살 이후로 세상과 거의 분리되어 지내던 ‘사라’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보이는 관심을 싫어하지 않았다. 의식 속의 그 사람과 감정이 섞이고 기억이 섞여서 그런지, 오히려 지금은 그런 감각을 잃어버리는 것이 더 겁날 지경이었으니까.

        

       어쩌면, 이것도 그 사람이 만들어준 감정이었기에 더 소중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게 아니었다.

        

       “어, 하지만 조금 전 까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잖아.”

        

       소희가 물었다.

        

       “아니, 그건 너희들이 상황 파악을 못 하니까 설명해주려고 한 거고!”

        

       ‘사라’는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내가 일부러 걔한테 부탁해가면서 나온 이유는 이런 이야기만 계속하다가 돌아가기 위해서가 아냐. 지금 이 상황을 나름대로 해결해보려고 나온 거지.”

        

       “……지금 이 상황, 이라고 하심은…….”

        

       “그래요, 그쪽이 터뜨린 지금 이 상황.”

        

       양혜인의 말에 대답하고 나서야, ‘사라’는 자신이 일어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라’는 다소 민망한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아 말을 이어 나갔다.

        

       “누구한테 말도 없이 그 경찰 아저씨들한테 풀어놓은 이야기……는, 사실 문제가 되지 않아.”

        

       “…….”

        

       ‘사라’의 말에,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바로 옆에 앉아있는 소희나 하늘 말고도, 수아나 양혜인조차 다소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을 정도였다.

        

       “애초에 나는 그쪽은 신경 쓰지도 않으니까. 누가 처벌받고 말고가 나랑 무슨 상관이겠어? 경찰 몇 명이 날뛰고, 공무원이 문제 제기를 해 봐야 어차피 어머님이 어떻게든 손을 쓸 텐데.”

        

       “그러니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일어나지 않으면?”

        

       양혜인의 말을, ‘사라’가 중간에 뚝 끊어버렸다.

        

       “일어나지 않아서, 나를 ‘학대했다’고 고발당한 사람들이 전부 정당한 벌을 받고, 뭐, 어찌어찌해서 보상금 같은 것도 받고, 그러면 내가 그렇게 좋아할 것 같아요? 내 기분이 조금은 나아질까?”

        

       “…….”

        

       미간을 모은 채 그렇게 따지듯 물어보는 ‘사라’에게, 양혜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애초에 생각을 해 봐요. 내가 진짜로 누구 하나 날려버리겠다고 생각했으면 못 날려버릴 것도 없는데. 내 안의 걔라면 이것저것 따지겠지만, 나는 그런 성격도 아니고. 보상금? 얼마를 받건 그게 제 입장에서 ‘보상’이 될 것 같아요? 호수에 물 한 컵 붓는다고 양이 달라지나? 아, 물 한 컵은 될지 모르겠네.”

        

       ‘사라’는 다소 과장된 동작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그렇게 받아봐야 여기서 월급으로 준 것만도 안 되겠구먼.”

        

       “…….”

        

       ‘사라’가 한 번에 쏟아낸 말에,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은 머리부터 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 일의 ‘피해자’였던 ‘사라’가 그런 말을 하니까 무게감이 달랐기 때문이다.

        

       차라리 본인이 사과를 원하고, 일을 바로잡기를 원했다면 이야기가 달랐겠지만, ‘사라’의 입에서 나온 것은 사뭇 다른 이야기였다.

        

       “저, 사라야.”

        

       잠시간의 침묵 후에,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하늘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건 잘 알겠는데…… 그러면 둘이 자리를 바꾼 이유가 뭔지 알 수 있을까?”

        

       ‘사라’는 지금 이 상황에서 ‘일을 어떻게 하고 싶다’는 말이 아니라, ‘일을 하고 싶지 않다’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는 앞에 대놓고 물어볼 수 있는 말도 아니었다. ‘사라’입장에서는 원래 이 몸은 자기 것이고, 나중에 생겨난 사라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었을 뿐이었으니까. 사실 의식을 전환하는 데 하늘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 문제였지, 몸을 ‘사라’가 다시 차지하는 것은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는 사라에게 자리를 내어준 채 별다른 의사 표현을 하지 않던 ‘사라’였다. 심지어 제대로 대화를 나누어 본 것은 하늘뿐이고, 다른 아이들과는 그저 사라로써 대화를 나누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사라’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스스로 정체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나와서 하고 있다는 말이 그런 말이었으니, 의미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이렇게 나온 이유는 하나뿐이야.”

        

       그런 생각이 전해졌는지 ‘사라’가 말했다.

        

       “그 사람…… 그러니까, 너희들이 알고 있는 그 사라가 죄책감을 느꼈으니까.”

        

       “죄책감……?”

        

       ‘사라’의 말을 들은 아이들은 더 혼란에 빠졌다.

        

       “‘내가 사라 대신 누군가의 용서를 받을 권리가 있을까?’, ‘사라 대신 몸을 이용하고 있으면서 이런 모든 것을 누려도 되는 걸까?’, ‘기억을 되찾겠다고 사라를 그런 사람과 마주하게 하는 것은 하면 안 되는 일이 아닐까?’ ……솔직히 말하자면, 좀 성가실 정도로 생각이 많아. 내가 얌전히 몸을 넘겨준 건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라는 말이었지, 무슨 행동 하나하나를 할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리라는 말이 아니었는데.”

        

       엄청나게 귀찮고 성가시다는 듯 말하면서도, 정작 ‘사라’의 표정은 어딘가 뽐내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고, 무언가 사랑스러운 것을 떠올리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그래서 나온 거야. ‘사과를 받아야 할 건’ 나고, ‘용서를 해야 할 것도’ 나니까. 사건에 대한 해결 같은 건 별로 할 생각 없어. 그냥 결과적으로 내가 괜찮다고 느끼고, 걔가 그게 진짜라고 믿으면 그만이잖아?”

        

       ‘사라’는 거기까지 말하고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돌아가며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나한테 좀 협조해줘야겠어. 당연히 거기 계신 메이드 씨도.”

        

       참 터무니없이 이기적이면서, 동시에 이타적인 이유였다.

        

       *

        

       이야기는 아침 식사가 끝나고 계속되었다.

        

       ‘사라’는 식사 같은 것은 걸러도 별 상관없지 않냐고 말했지만, 하늘이 ‘기껏 사라가 만들어준 몸인데…….’라고 하자 결국 투덜거리면서도 다른 아이들과 함께 식당으로 내려갔다.

        

       식사 시간 동안엔 별다른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사실, 하늘이 식사하러 가자고 제안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니, 어쩌면 그저 시간을 미루고 싶었던 건지도.

        

       오늘 아침에 봤던 소희의 태도에서, 하늘은 뭔가 느끼는 점이 있었다.

        

       소희는 사라가 어떤 ‘사라’건 별로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저 사라가 사라이기에 좋아한다는, 아주 단순하지만 순수한 감정의 표현.

        

       하지만, 하늘은 도저히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었으니까.

        

       소희의 그 표현이야말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옳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법이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어떻게 변해갈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니까.

        

       그게 긍정적인 변화일 수도, 부정적인 변화일 수도 있었다.

        

       어쩌다가 머리를 크게 부딪혀 다칠 수도 있다. 수십 년 뒤에 치매 같은 것이 올 수도 있다. 소희가 말한 ‘좋아한다’라는 표현은, 그 모든 것을 포함하는 말이다. 앞으로 사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변함없이 사라를 좋아할 것이라는 의지의 표현.

        

       물론 극단적인 일이 아니더라도, 사람과의 관계가 변하는 일은 자주 있다.

        

       자신이 ‘사라’에 대해서 알게 되었던 것처럼, 사라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모르던 것을 알아가게 될지 모른다. 모르던 버릇을 알게 될지도 모르고, 좋아하는 음식이 의외로 다를 수도 있고, 사라가 싫어하는 것을 하늘이 좋아한다거나 하늘이 싫어하는 것을 사라가 좋아할 수도 있다.

        

       막말로, 하늘과 사라는 만난 지 이제 한 달이 겨우 넘었다. 그렇게 붙어 다녔다고 하더라도 모르는 부분은 어디에서나 나올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을 겪고도, 자신이 사라를 계속해서 좋아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무서웠다.

        

       지금 사라의 두 인격을 마치 ‘다른 사람처럼’ 나누어서 생각하고 있는 하늘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식사는 끝났다. 사실 사라의 집에서 먹는 아침은 대부분 토스트같이 가볍게 속을 채우는 식사가 대부분이라 길래야 길 수가 없었다.

        

       결국, 시간 끌기는 하늘이 생각했던 것만큼 성공적이지 못했다.

        

       *

        

       “자, 그럼 일단 뭐부터 해야 할까.”

        

       방에 들어온 ‘사라’가, 마치 끊어졌던 이야기를 다시 이어서 하는 것처럼 말했다.

        

       “우선은, 역시 그거겠지.”

        

       그리고 다시 한번 방 안까지 따라 들어온 양혜인을 보면서 말했다.

        

       “일단 사과받는 것부터 얼른 끝내버릴까요?”

        

       그렇게 말하는 ‘사라’의 태도는, 마치 귀찮은 숙제부터 얼른 처리해버리자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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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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