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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1

        

         “귀염둥이는 배짱도 좋아? 그야… 나도 저 아저씨가 갑자기 유령처럼 솟아오르길래 모텔촌에서 두 블록쯤 도주하다가 검거 당해서 끌려오긴 했는데, 세상에 에나마 정예 요원을 보자마자 총부터 뽑아 드는 애가 있을 줄이야!”

         

         “……제발 닥쳐줄래, 마리나.”

         

         입안에서 맴돌던 헛된 바램을 밖으로 내보냈다. 사람이 기껏 부끄러움으로 달아오른 얼굴을 손으로 숨기고 있거늘.

         옆자리에서 일말의 수치심조차 없이 본인의 업적을 자랑하느라 바쁜, 오늘도 절찬리에 쾌활한 마리나를 흘겨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들어 정면 부근도 살폈고.

         

         상대 측에서 제공한 승합차의 뒷좌석은 수송 차량 마냥 중앙은 비우고, 탑승객은 좌우로 마주보고 앉게 설계되어 있어서 한 기의 케어봇을 포함한 우리 합격자 삼인조는 그래도 안면이 있다고 한 쪽에 몰아서 자리잡고 앉았다.

         

         그리고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바로 반대편에는 시꺼먼 추적자가 손대면 발작하는 해커 무리를 노려보고 계시다는 뜻이다.

         

         “…흐음.”

         

         낮고 굵직한 음성이 흘러나온다. 바이저에 가려져서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정확히 보이지 않았으나 손안에 든 이 빠진 단검을 보면 아마 나나 제로를 살피는 걸 수도, 혹은 방금 전의 전투를 복기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왜 이 추적자가 발악하는 나를 상대하고도 크게 불쾌해하거나 개의치 않았는지 알겠다. 이미 내 숙소를 방문하기 전에도 한바탕 하고 왔기 때문이리라.

         

         ……생각해보니 열 받네.

         그녀랑 동급 취급이라니! 이게 말이 돼나?! 공권력만 보면 전력으로 튀는 말괄량이와 같은 선상에 놓여 지는 게? 나는 어디까지나, 하필 찾아온 게 에나마 코퍼레이션이어서 방어기재를 발동한 것뿐인데.

         

         억울하다 억울해. 정말로.

         

         “저… 저는 겨우 세 걸음 옮기기도 전에 잡혀서….”

         “…….”

         

         너는 뭘 또 아쉬워하고 있어, 그런 걸로 경쟁하는 게 아니라니까.

         

         운동부족이라며 호탕하게 웃어 젖히는 마리나와 그녀가 설파하는 해커와 빠른 발의 상관관계에 관한 이론을 주입-세뇌- 당하는 켄에게서 눈을 돌렸다.

         

         에나마는 네오 헤이븐의 메인 스토리나 분쟁에 연관이 깊고 그만큼 네임드 캐릭터도 많기에, 가능하다면 그 ‘윗분’과 만나기 전에 자잘한 세부사항이라도 좀 미리 알고 싶었지만….

         

         “……저기.”

         

         “질문은 따로 받지 않겠소이다. 소인의 상부의 뜻을 대변하거나, 여러분의 계약에 참견할 권한은 없기에.”

         

         무미건조한. 사적인 견해나 감정 따위를 일절 배제한 언사. 물어보기는커녕 질문의 지읒 글자도 어떻게 꺼내 보기 전에 단칼에 말이 끊어졌다.

         

         불만을 가지고 노려본다한들 상대는 최초부터 기업의 자산으로서, 기업의 일부로 태어나 키워지고, 길러져서 완성된 생물 병기. 어쭙잖은 논리나 이유를 들이미는 것 정도로는 입을 열지 않을 것이다.

         

         그걸 세뇌…라 부른다면 일종의 세뇌일 수도 있겠으나. 따지고 보면 비슷한 연구소 시험관 출신에 저 기괴한 구조를 가진 세기말 생명공학 기업에 대해 웬만한 관계자보다 많은 배경지식을 지닌 나로서는 저 매정한 태도도 이해가 갔다.

         

         저들은 단순한 기업의 하수인이 아닌, 국가와 국민. 더 나아가서는 어마어마한 대가족 같은 관계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에나마라는 집단이 기본적인 의식주 모든 걸 해결해준 건 당연.

         배움을 요구한다면 지식을 하사하고, 힘이 부족하다면 월등한 유전자를 베푼다.

         울타리 바깥의 망가진 세상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안전한 세상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우며… 무엇보다도 태어나게 해준 은혜-생명-까지 있다.

         

         같은 추적자는 곧 형제요, 다른 사원은 돌봐야 할 가축이며, 상관은 모시는 어른, 마지막으로 에나마 코퍼레이션이라는 기업은 수호해야 할 기치나 다름없으니.

         

         이게 객관적인 사실이던 아니던, 타인들이 자각 없는 노예라 비웃던 말던 그들의 뇌는 그렇게 믿고 있다.

         

         우연이나 사랑의 결실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태어난, 존재의 이유(Raison d’etre; 레종 데트르,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가 충족된 개조 인간의 신앙은 꽤 무섭다.

         게다가 본인들은 단순한 용돈이나 휴일 정도로 인식하기는 해도, 성과급에 휴가 또한 보장되니까 어지간한 회사원의 처우로는 명함조차 못 내민다.

         

         결국 저 태도를 바꾸려면 21세기 기준으로는 매국을 저지를 수준의 대가나 근거를 내밀어서 흥미를 끌어야 한다는 것인데….

         

         ……음, 적어도 이 형씨는 매국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속을 떠보는 건 포기하자.

         독사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게 분명한 수풀을 쿡쿡 찌르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쯧….”

         

         보란듯이 혀를 차고 얼굴을 돌려 창문 쪽을 바라보았다.

         죄인을 수감하는 용도로 쓰이는 차량이었다면 안에서 바깥 풍경이 보일리가 없었겠지만, 다행히도 그리 가혹한 대접을 하려는 건 아닌 모양이다.

         

         털털털… 하고 차가 굴러감에 따라 풍경도 뒤로 밀려난다.

         

         물론 명색이 메가코프의 관용차인 만큼 실제로 그런 힘 빠지는 소리가 나지는 않았지만, 호버링 기능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건 좀 의외다. 시간이 여유롭지 않다고 한만큼 최대한 서두를 줄 알았는데 왜일까?

         

         몰래 손을 움직여 차량 내벽을 더듬어본다.

         의료 서비스 분야를 독과점한 메가코프께서 싸구려 물건을 쓸리는 없으니… 이건 아마도 그런 재밌는 기능 대신 다른 부분에 집중한 결과물이리라.

         

         가령 내구성이나 안전성을 위해 합금 보강벽을 설치해서, 차량용 엔진으로는 도저히 띄울 수 없을 만큼 무거워졌다든가.

         

         어라…? 그렇다면 가혹하긴커녕 꽤 극진한 대접인데?

         되새겨보니 고작 용병 몇 명 픽업해오는데 추적자가 몸소 튀어나온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이거 생각보다 곤란한 일에 발을 들이민 건 아닌가 몰라.

         

         – 방금 막 의료 구역(Medical Sector) 심층부로 진입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에나마 코퍼레이션의 사유지입니다. 정말 이대로 계속 따라가도 괜찮으시겠습니까? –

         

         ‘이제 와서 내빼는 게 더 이상해.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치고 정신만 바짝 차리자고.’

         

         – 호랑이…… 식육목 고양이과 맹수, 확인했습니다. –

         

         탑재된 GPS 기능으로 이동 경로를 확인해주던 제로의 걱정이 머리속을 울렸다.

         

         여차할 때 벗어날 길이 점점 아득해지는 건 나도 별로 내키지 않았다. 아무래도 본사 건물로 초대된 것 같은데, 딱히 그런 황송함을 느끼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걸 제발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매일 팔 굽혀 펴기 100회, 윗몸 일으키기 100회, 스쿼트… 이걸 다 하면 엔지니어링 공부는 대체 언제 하나요…?”

         “크, 이래서 도련님이란…. 그런 건 한 번 읽어서 외우고 마는 거야!”

         

         “…니들은 아직도 그런 얘기나 하고 있었냐고!”

         

         왠지 마음 고생하는 이쪽만 손해보는 기분이라, 억울함을 듬뿍 담아 소리를 질러주었고.

         조금이라도 에나마를 껄끄러워하는 내 인상이 옅어 지기를 바라며 차가 멈출 때까지 그렇게 시시콜콜한 잡담에 어울렸다.

         

         ……….

         …….

         ….

         

         걷는다. 또 걷는다. 걷고 걷고 걷는다.

         이쪽에 완전 기억 능력자와 유사 완전 기억이 가능한 로봇이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길을 잃게 만들려는 속셈이 있나 싶을 정도로 깊게 들어간다.

         

         파라다이스 본사 건물이 위로 쭉 뻗은 형태였다면. 에나마 본사는 지면은 적당히, 대신 비밀 결사 성향이 강한 만큼 지하로 엄청나게 확장되어 있다는 건 머리로는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스태미너 빵빵한 가상의 게임 캐릭터로, 갈 수 있는 지역만 우다다다 주파하는 것과 내가 직접 기약없이 떠도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본 건물 지하도 아니고 부속 건물에 딸린 보조 연구 시설에 불과한 데도 이런 규모라니.

         더군다나 깊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인적이 드문 외진 곳인지 드문드문 보이던 직원이나 연구원의 모습도 뜸해진다.

         

         그에 따라… 일행들 사이에서 잡담도 뜸해졌고.

         

         “…이건 나도 슬슬 무서운데. 저기 새까만 형씨! 내가 인맥도 좀 많고 마켓 쪽에도 아는 사람이 있어서, 이렇게 으슥한 곳에서 쓱싹하더라도 어차피 다 밝혀지거든? 앞으로는 입조심 하면서 살살 테니까 우리 좀 그냥 보내 줄래?”

         

         “어렵게 모신 인재들에게 그런 짓을 할 의도는 없소이다. ……감히 그런 식으로 계속 모욕을 일삼으면 불운한 사고는 날 수도 있지만 말이오.”

         

         잡담 대신 튀어나온 험담에 마리나와 우리를 끌고 온 추적자 사이에 불꽃이 튀겼다.

         먼저 말로 떠드는 시점에서 반쯤 농담이라는 건 분명했으나, 다른 말로 하면 나머지 반은 농담이 절대 아니라는 거다.

         

         여러 안전장치를 동원한 비밀유지 서약이니, 계약이니 해도. 기업과 용병 상호간의 불신을 해결하지 못해서 피가 흐르는 일은… 당장 나만해도 생생하게 경험해본 것 같은데?

         

         “이제 도착했소이다.”

         

         삡Beep! 하는 전자음과 함께.

         앞서가던 그가 또 사원증을 긁자 시설 구획을 나누는 차단문이 열렸고.

         

         뒤따라 들어가며 슬쩍 모니터를 곁눈질하자 창고(Storage Section)라는 단어가 얼핏 보였다.

         

         뭔 놈의 창고가 외부인은 함부로 접근하지도 못할 만큼 구석진 곳에 있으면서 인증 절차까지 필요한가… 투덜거렸는데, 드러난 광경은 그런 의문을 보는 것만으로도 해소시켜 주었다.

         

         우선 정면에 보인 건 어딘가 심란해 보이는 남자. 굳이 고개 빳빳하던 추적자가 머리를 숙이지 않았더라도, 말끔한 행색과 명령을 내리는 게 익숙해 보이는 태도는 그가 상급자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여기가 창고인지, 아니면 서버룸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서버랙(Server Rack; 서버 진열장)들이 서있었으니.

         천장의 조명을 전부 꺼버려도 충분히 밝지 않을까 하는 헛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조용히 안경을 고쳐 쓴 남자가 우리를 한 명 한 명 확인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어제 보여준 퍼포먼스는 꽤 인상깊었습니다. 덕분에 사람을 다시 구하는 수고도 덜었으니… 수행비서인 카쿠바리覚張라고 합니다만. 허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

         

         우리끼리 잠깐 복잡한 시선이 교차했다.

         기업 고위 인사답지 않으시게 구구절절한 자기소개를 극적으로 줄인 건 고마우나. 풀어낸다는 본론이 세부적인 계약 조건에 관한 건지, 그게 아니라면… 설마 외부에 발설했다간 여럿 다칠 내용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듣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세상에는 발을 담그지 않으면 끝을 볼 수 없는 상황이 있는데 명백히 지금이 그 중 하나였으니까.

         

       

       

         “…좋습니다. 여러분은 지금부터 내부 데이터가 완전히 삭제된 이 서버들, 데이터 센터에서 적출해온 물건들의 자료 복원 작업에 투입되실 겁니다.”

         

         “일순위는 당연히 소실된 자료의 복구지만. 가능하다면 업계 종사자인 여러분이, 대담하게도 에나마 연구소를 습격한 사이버 테러리스트의 흔적이나 신원. 내지는 정체와 연관 지을 단서를 찾아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사측 역학 조사반이 추정하기를 범인… 또는 범인들은 하드웨어에는 일절 손을 대지 않고 오직 전산망 조작을 통해서만 DB를 건드린 프로 중의 프로라고 하더군요.”

         

       

       

         얘기가 이어짐에 따라 어색하지 않게 머리는 끄덕이고, 표정은 어찌저찌 굳힌 채로 계속 경청한다. 다른 두 명이 얼마나 흥미로워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나대로 너무 바빠서.

         

         들으면 들을 수록 머리가 맹렬하게 회전하고 묘한 기시감이 솟구쳐서 어지러웠다. 에나마의 연구소가 습격당하고 보관하던 극비 연구 자료가 전소됐다라….

         

         음……… 이거 분명 어디서 들어본 얘기 같은데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와! 정말 누가 그럤을까!’

    죄송합니다. 자고 일어나는 대로 바로 또 쓰도록 하겠습니다.
    어떻게 꼬박 하루가 넘어가서 연재분이 한 편이나 밀렸는지… 나는 죽었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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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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