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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2

        소녀는 이질적인 복장을 하고 있었다.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것까지는 나와 똑같았으나, 브로치 대신 검은 넥타이를 매었다.

       

        겉옷으로는 마도사를 상징하는 로브 대신에 검정 트렌치코트를 걸친 채였다. 발밑까지 내려오는 코트 사이로 깔맞춤을 한 슬랙스 바지가 눈에 들어온다.

       

        전반적으로 현대적인 복식이었다. 저 상태로 지하철역 한복판에 던져놓아도 무리가 없다.

       

        나처럼 웨이브 펌이 들어가 있는 검은색 머리 때문인지 분위기가 아예 똑같다. 아카샤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진짜 도플갱어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여기가 네 무덤이다.]

        “무덤…?”

        [또한 나의 무덤이기도 하지. 여긴 네 영혼이 잠들어 있는 장소이자, 잠들 장소이기도 하다.]

       

        난해한 말이다.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물었다.  

       

        “…너, 누구야.”

        [누구긴 누구야. 너지.] 

       

        칠흑의 소녀는 오케스트라 연주자처럼 팔을 휘적거리며 염화를 이었다.

       

        [물론 한때는 너와 내가 다른 사람이었다. 사는 세계도 다르고, 성별도 달랐으며, 종족은…. 뭐, 됐다. 다르다고 치자. 하여간 눈동자 색이나 살아온 환경 등등을 포함하여 모든 초기조건이 상이하였지. 우리는 본래라면 엮이지 못할 관계였다.]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꽤나 장황한 설명이다.

       

        하지만 왜일까. 기시감과 위화감이 같이 느껴진다.

       

        [그런데도 만들어진 인격은 엇비슷하더라. 성격이 같고, 행동양식이 같고,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 같았으며,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까지 모조리 같았다. 심지어 무엇에 신뢰를 느끼고, 무엇에 배신감을 느끼는지조차도 말이야.]

       

        원래 이 몸의 주인과 내가 성격이 닮았다는 말을 버멜에게서 한 번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소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쟤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지?

       

        [원체 달랐을 육체가 한 몸에 모였으니 이제 내가 너고, 네가 곧 나라고 할 수 있겠지.]

        “궤변이야.”

        [당장은 그럴 거다.]

       

       뭔가 머리가 아프다. 관자놀이에서부터 시작해 편두통이 점점 올라오고 있다.

       

        소녀는 옥좌에서 일어나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조명이 그 광량을 더하며 반경 10m 내외를 은은하게 비추었다. 시루떡처럼 넓게 펴진 빛무리 아래로는 어느새 테이블 하나와 의자 네 개가 나타나 있었다.

       

        [네가 내면의 거울을 들여다봤다는 것까진 알고 있어. 여기 앉아서 봤거든.]

       

        나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자, 아무데나 앉아.]

       

        침착하자. 여기는 정신세계다. 꿈에서 칼 맞는다고 죽는 사람 없잖아. 어음, 아닌가?

       

        대신 정신력 수치가 실시간으로 깎여 나가고 있다. 소녀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렇다고 의미 없는 아픔은 아니었다. 물 속에서 물감이 퍼지는 것처럼 아주 조금씩 머리로 들어오는 정보가 있다. 대부분은 슬프거나 돌아버릴 것 같은 기억이었지만, 극소수는 행복한 경험이었다.

       

        [아, 쓸데없는 기억을 주는 것 같아서 미안하군.]

       

        -딱

       

        손가락질 한번에 말끔히 사라지는 두통. 동시에 뭉근하게 입력되던 정보의 파도가 잦아들었다.

       

        [나도 겪어봐서 안다. 타인은 믿기 어려운 존재라는 거 말이야. 그래도 나는 회의감을 무릅쓰고 모두에게 기회를 한 번씩 더 주기로 했지. 괜히 망각의 랜턴을 스스로 쪼인 게 아니야.]

        “…실험 대상을 자신으로 삼았다는 소리군.”

        [그렇지. 자비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져야 해. 본인도 예외는 아니지.] 

       

        머릿속을 헤집었던 기억의 파편은 차마 입밖으로 꺼내지 못할 만큼 더럽고 역겨운 것들 투성이였다.

       

        이 소녀는 1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세 자릿수에 달하는 음해와 통수를 받았다. 당연히 내가 당했던 것에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이 정도면 인간불신에 시달려도 할 말이 없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시험하려고 하는 것이다. 

       

        [믿었던 이에게 9백 하고도 아흔아홉 번을 당했다. 이번에도 나를…. 그러니까 너와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자가 있으면 트라이얼은 이걸로 종료다. 더는 실험할 가치가 없어.]  

       

        에테르는 코트를 벗고 의자에 걸터앉았다. 

       

        […생각해 보니 지금 이런 걸 이야기할 때가 아니었네. 누군가와 대화를 한 건 오랜만이라 그만 울분을 토해내고 말았어. 이 토픽은 잠시 치워두도록 하지.]

        “아냐, 상관없어.”

        [뭐야. 동정하는 거야?]

        “멋대로 찾아왔는데 이 정도 비위는 맞춰 줘야지.”

        [그런 건 솔직해서 좋아.]

       

        무표정이었던 소녀의 얼굴이 살짝 풀어진다. 저건 나름 만족하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지어본 표정이라 잘 안다.

       

        ‘나’에 대한 이해는 대강 완료했다. 에테르는 사악한 존재가 아니다. 화내면 겉잡을 수 없는 유형일 뿐.

       

        [잘 아네. 사실 이쪽에서 딱히 바라는 점은 없어. 용건 있으면 얘기하고, 없으면 말아.]

       

        여기가 관건이다. ‘나’를 잘 구슬려서 이 세상을 해피 엔딩으로 이끌어야 한다. 에테르가 중립을 선포하고 있는 거라면, 마수보다는 인간의 편에 서게 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이유야 뭐, 내가 원래 인간이었으니까 그런 거고.

       

        나는 심호흡을 한 뒤 입을 열었다.

       

        “그러면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줘.” 

        [부탁? 허어, 뭘 원하는지는 말 안 해도 알 것 같은데.]

        “그러면 이야기는 금방 끝나겠네.”

        [서두를 필요는 없어. 여기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흐르거든.]

        “오늘 점심 메뉴에 크리미 파스타 있어. 식권 매진되기 전에 가야 해.”

        […쯧.]

       

        됐다. 대화 주도권을 이쪽으로 가져왔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눈앞의 소녀는 면 종류를 좋아한다는 사소한 기벽까지 나와 똑같다는 걸 알았다. 인정하기엔 아직 이르지만 우리 둘의 정신상태가 한없이 닮았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아니, 지금까지의 언동을 보면 아예 똑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단지 가지고 있는 ‘세이브 파일’만 다른 걸까?

       

        여기서 에테르에게 부탁하면 모든 기억을 되찾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러면 기존의 나는 어디로 간 건지 알 길이 없게 된다.

       

        따라서 이 선택지는 최대한 뒤로 미룬다. 대신 원래 목적을 말해주자.

       

        “네 지식을 전달받고 싶어. 사적인 기억은 제외하고 말이야.” 

        [연구에 미쳤구나.]

        “너도 똑같잖아. 내 인생사 풀어줘도 관심 하나 안 가질 거면서.”

       [잘 아네. 나도 옛날 이야기보다는 마도연구가 더 좋아.]  

       

        ‘시시콜콜한 과거사보다는 당장의 지식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라는 뉘앙스로 대답한 시점에서 에테르는 이미 마왕군으로부터 등을 돌렸다는 게 확실시된 상황이다.

       

        “내 머릿속에서 봐서 알고 있지? 로즈마리가 플레어 스크롤 사용을 금지했어. 이걸 소형화해서 이사장에게 납품해야 하는데, 이래서야 연구를 진척하지 못해. 어디 다른 방법 없을까?”  

       

        침묵은 길지 않았다. 에테르는 아무렇지도 않게 상식을 비트는 대답을 내놓았다.

       

        [플레어 따위 말고 다른 걸 사용하면 되지.]

       

        이건 또 무슨 발상이야.

       

        “플레어가 없으면 레이저 핵융합이고 뭐고 아무것도 못 한다니까? 중요한 거라서 이게 없으면 안 돼.”

        [핵이라. 너네 세계에서는 그렇게 부르나 보네.]

       

        에테르는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가소롭다는 듯한 반응이다.

       

        아닌가? 좋아하는 건가? 나지만 표정 읽어들이기 참 힘들다.

       

        [적어도 이 아렌스 대륙에서 ‘흑주’는 마왕조차도 못 다루는 나만의 고유마도다. 완성에 플레어가 필수적이진 않지.]

        “그래? 그러면 네 도움 좀 받자.”

        [지식만 날름 먹으려고 하다니, 좀도둑 같아서 뭣한데.]

        “대가라도 원해?”

        [대가, 대가라….]

       

        에테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음식을 곱씹는 사람처럼 입을 우물거리며 미간을 한데 모았다.

       

        [다른 건 필요 없어. 지식은 거저 넘겨줄게. 또한 당장은 너에게 육신의 주도권을 맡기도록 하지.]

        “오.”

        [그러나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모든 이가 너와의 신의를 저버리려고 한다면, 그때 가서는 내가 직접 배신으로 점철된 이 더럽혀진 세상을 정화할 거야.]

        “아.”

       

        뭔가 까다로운 페널티가 붙어버렸다.

       

        뒤통수 한 번만 맞아서 급발진하면 그대로 세계 멸망이라는 소리잖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모든 인간이 그러진 않겠지. 난 사람을 믿는다.]

        “마수면서 그런 말을 하네.” 

        […말조심 해. 난 마수가 아니니까.]

       

        -따악!

       

        마지막 말에서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 에테르가 손가락을 내쳤다. 조명과 함께 그녀의 얼굴이 칠흑 속으로 멀어져간다.

       

        어둠이 내려앉은 곳에서 나는 끔찍한 비명에 시달리다가 그대로 거울 밖으로 튕겨 나오고 말았다.

       

        “……어우.”

       

        담이라도 걸린 것처럼 온몸이 뻐근하다.

       

        지금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싶어서 시계를 확인했다. 못해도 5분에서 10분이 지나가 있었다.

       

        뭐야. 시간 아주 천천히 흐른다며.

       

        [잘 다녀오셨어요?]

       

        “으악!”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개구리처럼 튀어올랐다. 

       

        [뭐에요. 왜 갑자기 질겁하고 그래요?]

       

        “…십년감수했네. 갑자기 말 거니까 놀랐잖아.”

       

        [어…. 뭐야, 말하는 거 보니까 평소의 주인님이네. 기억 떠올리신 건 없나 봐요?]

       

        기억? 기억이라면 보따리채 싸 들고 왔다. 전부 학문 관련된 지식이었지만.

       

        출퇴근시간 지하철처럼 머릿속이 꽉 채워진 느낌이 든다. 지금이라면 막힘없이 연구를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울 한 번 봤다고 이 정도 효과다. 나는 나도 모르게 감탄을 내지르며 박물관을 뛰쳐나왔다.

       

        “파스타는 나중에 먹지 뭐.”

       

        구내식당을 가기는 갈 거다. 그 전에 마석이 담긴 보따리를 정리하고 기숙사에도 들러야 한다.

       

        동아리 부실에서 마석 꾸러미를 내려놓은 뒤 기숙사로 튀어갔다. 캥거루가 뛰어다니는 것처럼 날랜 걸음으로 계단을 몇 개씩 넘어 올라갔다. 방문을 열고 책상 앞까지 다가갔다. 책상 서랍에는 자물쇠 다섯 개가 달려 있었다.

       

        자물쇠들을 차례대로 풀었다. 철컥거리는 소리가 연달아 터지자 스테로이드를 맞은 것처럼 심장이 쿵쿵거렸다.

       

        [그건….]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지.

       

       이걸 왜 잊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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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설급 고유마도 ─ 백야(白夜) (미완성)]

       

        스코프로 감정할 수 없도록 철판을 덧대어 보존해 놓은 백야를 커다란 전용 배낭에 집어넣었다. 이제부터 이 가방은 내 감정 이입의 객관적 상관물로써 동행한다. 또한 이 가방과 나는 물아일체임을 선포한다.

       

        “다 죽여버릴 거야.”

       

        혹시나 감시 중일지도 모르는 블루베리를 위해 뻘소리도 한 번 내뱉는다.

       

        좋아. 이제 밥 먹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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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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