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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2

       “아버지는…….”

        

       미아 크로우필드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당신의 어머니께서…… 백작 부인이 당신에게 복수심을 심었을지 모릅니다. 저나 앨리스, 아니면 황실에 복수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을지 모르죠.”

        

       “…….”

        

       고개를 푹 숙인 그녀에게 나는 계속 말했다.

        

       “하지만, 당신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당신의 어머니도. 만약 복수를 시도한다면 그것만으로도 크로우필드는 끝입니다.”

        

       “그건…….”

        

       “그리고 그렇다면, 차라리 당신 어머니는 처음에, 백작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바로 복수해야 했습니다. 아직 명분이 서 있을 때. 무언가 알고 있다면 폭로하기 좋은 순간은 그 순간이 아닙니까? 주변 귀족들도 모두 환영했을 겁니다. 황제를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정치적으로 큰 타격이 되었겠지요. 하지만 크로우필드는 복수를 곧장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어째서일 것 같습니까?”

        

       “…….”

        

       “황실과 크로우필드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오갔기 때문입니다.”

        

       미아 크로우필드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늘어져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당장은’ 그런 짓을 했다가는 황제도 꺼낼만한 카드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누구나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대놓고 드러낼 수 없는, 끔찍한 근거가. 당신 어머니는 복수하기 위해 그 근거의 흔적을 지워야 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 남자는.”

        

       담담히 듣고 있던 앨리스가 말을 받았다.

        

       “그걸 이용했겠지. 크로우필드가 근거를 지우고 있다는 걸 이용해서, 아마 이런 집을 살 수 있었을 거야. 과거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이가 입을 여는 것만큼 명분에 해가 되는 것도 없을 테니까.”

        

       그렇게 말을 받는 앨리스의 표정에는 다소 괴로운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한 학기를 함께 지낸 친구니까. 심지어 나름대로 목숨을 걸고 함께 싸우기도 했고.

        

       남자를 그냥 죽여버리는 방법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남자가 그런 상황에 대한 대비도 없이 부인을 협박했을 리는 없다. 적어도 허세라도 부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남자 자체의 이용 가치도 있었다. 거래한 곳이 이곳뿐만은 아니었을 테니까. ‘마약을 사간’사람이 그 남자라면, 어딘가 다른 영지에 팔기도 했을 것이다. 후에 ‘명분’을 세울 때, 그걸 약점 삼아 명분에 동참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극도로 ‘예의 없는’ 짓이기는 하겠지만.

        

       이렇게 잡혀버렸으니 남자도 그냥 입을 열어버리겠지만.

        

       “…….”

        

       미아 크로우필드는 천천히 손을 들어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당신이 우리 아버지를 죽였죠.”

        

       “…….”

        

       아주 잠깐, 나는 그 말에 대답해야 하나 고민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학기 초만 하더라도 나는 미아 크로우필드와 제대로 대화하던 그 첫날에 대놓고 그 말을 했었는데.

        

       나는 너의 아버지를 죽였고, 그 아버지는 마약에 미친 소아성애자였다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것과 똑같은 말을 꺼내기가 무척 어려웠다. 말이 물체가 되어 목에 걸린 것처럼 잘 나오지 않았다.

        

       이것도 시간의 무게라는 거겠지. 미아 크로우필드와…… 완전히 친구가 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알고 지내온 시간이 그 말을 내뱉는 것을 꾹 눌러 막고 있었다.

        

       “예.”

        

       그래서, 나는 그 한 마디밖에 할 수 없었다.

        

       그다음에 있었던 일은 한순간이었다.

        

       “미아!”

        

       앨리스가 비명을 질렀다.

        

       숨쉬기가 어려웠다.

        

       나보다 키가 작은 미아 크로우필드가, 나의 목을 양손으로 꽉 틀어쥐고 있었다. 온 힘을 다해서. 작은 손이었지만 사람의 목을 조르기에, 충분한 힘이었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한순간이었다.

        

       앨리스가 달려들어 미아 크로우필드를 떼어내기도 전에, 미아 크로우필드의 손에서 힘이 풀렸다.

        

       그 손은 내 몸에서 흘러내렸다. 아래로, 아래로.

        

       미아 크로우필드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니, 엎드렸다.

        

       바닥에 엎드린 채,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미아…….”

        

       앨리스가 따라서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지만, 차마 미아 크로우필드의 몸에 손을 대지는 못했다.

        

       “당신이…… 당신도.”

        

       아주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미아 크로우필드는 물었다.

        

       “당신도, 알고 있었죠.”

        

       “예.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이곳으로 오기도 전부터.

        

       “……여기였나요?”

        

       “여기였습니다.”

        

       “여기 있던 아이들, 마지막까지 있던 아이들은, 전부 어디로……?”

        

       “저도 모릅니다.”

        

       황실에서 받아 갔을지, 백작가에서 처분했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 이후에 여기 다시 돌아와 본 적은 없으니까.

        

       “……몇 명이나……?”

        

       “알 수 없습니다.”

        

       증거는 이미 다 불탔을 테니까. 여기 있던 아이들은, 아마 그대로 없어졌을 거다. 누구에게 이름조차 알리지 못한 채.

        

       “아아…….”

        

       미아 크로우필드가 내던 신음은, 이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절규가 되었다.

        

       문밖에 있던 기사 몇 명이 반사적으로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가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

        

       백작가 저택으로 돌아간 미아 크로우필드는 백작 부인의 옆을 비척비척 걸어서 스쳐 지나갔다. 인사도, 포옹도 없었다.

        

       자기 눈조차 마주치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미아 크로우필드를 보고 백작 부인은 우리에게 증오 섞인 눈빛을 보인 뒤 휙 돌아서서 그 뒤로 따라 들어가 버렸다.

        

       그 저택을 뒤로 하고, 우리는 미리 준비되어있던 증기 자동차에 올랐다.

        

       뒷좌석에 앨리스와 나란히 앉았지만, 차가 출발하고도 한동안 우리는 대화가 없었다. 운전기사가 있었기에 말을 골라야 하는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서로 하하 호호 웃을만한 기분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잘한 일일까?”

        

       한참 동안 말이 없던 앨리스가 겨우 입을 열어서 한 말은 그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에 대한 대답을 이미 준비해두었다.

        

       “잘하셨습니다.”

        

       아무런 숨은 뜻도 없는 진심이었다. 처음에는 황제의 명령을 위조했다는 말에 할 말을 잃었었지만…… 결국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다.

        

       적어도 학기 중에 일어나는 것보다는, 미아 크로우필드에게도 나을 것이다.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앨리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만약 황실이 하는 짓이, 다른 귀족들이 하는 좋지 않은 일들과 같다면…….”

        

       그 건물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당당하던 앨리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내 옆자리에 앉은 앨리스는 그저 괴로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일들을 벌할 수 있는 권리가, 과연 나한테 있는 걸까?”

        

       “…….”

        

       나는 한동안 창밖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런 권리를 줄 수 있는 권한은 나한테도 없었다. 나도 한때는 그 고아원에 있던 애였지만, 지금은 황제의 하수인이 되어있었으니까.

        

       그렇다고 앨리스의 탓도 아니지. 백작이 벌인 짓이 미아 크로우필드의 탓이 아닌 것처럼.

        

       “적어도,”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적어도, 황녀님께서 그런 일을 할 생각을 하셨다는 것 자체가, 황녀님이 황제 폐하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뜻이겠죠.”

        

       내 말에, 앨리스는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고마워.”

        

       한참을 고민하던 앨리스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그런 것이었다.

        

       *

        

       “네 정체라.”

        

       앨리스를 방으로 데려다준 뒤, 나는 곧장 황제를 만나러 갔다. 앨리스가 생각할 거리가 많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이곳에 앨리스와 나란히 서 있었을 거고, 이런 질문을 하지도 못했을 테니까.

        

       “그것을 왜 나한테 묻느냐?”

        

       대놓고 재미있다는 듯 되물어보는 황제를 보고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다시 물었다.

        

       “저를 이곳으로 데리고 오셨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루카스를 그 고아원에 배치하셨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걸 이제 와서 물어보는 것이 궁금하긴 하다만.”

        

       황제는 잘 정리된 금빛 턱수염 위에 손을 올린 채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굳이 물어보지는 않겠다. 그 이유를 알아맞히는 것도 재미있겠지.”

        

       “저는 이 자리에 수수께끼 놀이를 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황제를 노려보면서 말했지만, 황제는 여전히 나를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너의 정체는 이미 네가 잘 알고 있지 느냐?”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혹시 황제는, 이미 눈치채고 있는 것일까? 사실 내가 책으로 읽지 못한 다른 진실이라도 있어서, 내가 다른 세상에서 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걸까?

        

       “너는 나의 딸이다.”

        

       하지만 나의 그 불안함은 금방 사라졌다. 순간 안도의 한숨을 쉬지 않은 것은, 그만큼 내가 짜증 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사실에 감사했다.

        

       “그러니까, 그런 대답 말고—”

        

       “음? 나는 진실을 말하고 있다만. 네가 원하는 대답이 이것이다.”

        

       황제는 웃으며 말했다.

        

       “너는 내 딸이다. 나의 재능을 확실하게 물려받은. 어쩌면, 너의 어머니의 재능도 물려받았을지 모르겠다. 물론 너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기억에는 없다만.”

        

       너무나 간단하게.

        

       마치 자기 친딸이 ‘나는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야?’하고 물었을 때처럼.

        

       “……예?”

        

       “너는.”

        

       황제는 웃는 얼굴 그대로, 내 쪽으로 몸을 조금 기울이면서 말했다.

        

       “나의 딸이라고 했다.”

        

       ……그리고 저건…….

        

       클레어에 관한 이야기겠지.

        

       그리고 ‘황제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할 거고.

        

       황제가 자기 ‘아이’들을…… ‘아이들’처럼 생각할 수 있었던, 이유.

        

       “…….”

        

       이쪽 세상으로 오고 나서 처음으로, 나는 황제 앞에서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화려한비밀 님,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해당 부분은 제가 오타를 수정하다가 또 오타가 나버린… 곳으로 보입니다. 죄송합니다. 최대한 빠르게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알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후원으로 말씀해주시기 전에 제가 먼저 수정을 했어야 했는데… 독자님 덕분에 잘못된 곳을 찾아 수정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독자 여러분의 말을 귀기울여 듣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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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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