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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2

    오늘은 상쾌한 날이다.

    날아갈 것 같다는 건 이런 느낌일까?

    그녀는 종이조각 하나를 자랑스레 펼쳐본다.

    헬레나 루스핀드.

    평균 99점, 학년성적 1등!

    드디어 다시 되찾은 왕좌다.

    “이 점수라면 아빠도 분명…….”

    헬레나는 자신이 1등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을때의 아빠의 표정을 떠올려본다.

    얼마나 냉정했는지, 솔직히 잘못하면 울어버릴 뻔 했는데.

    항상 눈물은 루스핀드가문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말버릇처럼 해오던 그가 자신이 우는 모습을 보면 결코 좋은 말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며 참았다.

    갑자기 2학년으로 편입된 10살짜리 수인혼혈.

    그녀석이 오고나서부터 자신은 더이상 학년 1등이 아니었다.

    입학시험 만점, 운동능력 만점, 마법시험은 조금 삐걱대긴 했어도 만점.

    그야말로 문무겸비, 재수없을 정도로 완벽한 녀석이야.

    “허, 루크 이루시?”

    딱히 이름을 알고 싶어서 조사하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티그 아카데미를 다니다보면 알기 싫어도 알 수 밖에 없다

    루크 이루시가 또 만점을 받았다더라, 운동회에서 루크 이루시가 무슨 활약을 했다더라, 루크 이루시가 수업시간에 선생님에게 망신을 줬다더라, 루크 이루시가 교장과 이야기해서 자율출석을 따냈다더라, 루크 이루시가 마법경시대회에서 1등을 했다더라, 루크 이루시가 음악실의 귀신을 퇴치했다더라.

    어딜가나 루크 이루시, 루크 이루시.

    현재 아카데미의 소문 대부분은 그 여자애가 중심이었다.

    이 모든 소문이 루크가 전학온지 고작 반년도 안 된 시기인데다 학교엔 제대로 오지도 않는데도 퍼지는 소문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일부러 돋보이고싶어서 나대는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을 수 밖에 없다.

    여자애같지도 않은 그 촌스러운 이름으로 말이다.

    ‘그래도 음악실의 귀신 얘기는 허풍이겠지.’

    티그 아카데미에 귀신이라니, 있을리가 없잖아!

    아무튼, 다시 되돌아와서.

    헬레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창문유리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창문에 비친 자신의 표정은 정말이지 밝았다.

    “헬레나, 너는 최고야.”

    자신이 1등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1등이라는 뜻이다.

    자신의 위에 그 누구도 없다는 이야기다.

    “후후후.”

    이제는 다시 1등을 되찾았으니까, 아마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칭찬을 해 주시지 않으려나?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아빠에게 성적표를 보여주고싶다는 생각을 하던 헬레나의 발걸음은 조금 경쾌했다.

    그리 들떠서 복도를 걷고 있으니, 어느 교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크, 오늘은 표정이 되게 좋네? 무슨 일 있었어?”

    “하하. 그럴 일이 있었단다.”

    ‘이목소리는 분명…….’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다.

    루크 이루시, 학교엔 제대로 나오지도 않으면서 보란듯이 만점으로 1등을 받아가던 괘씸한 여자애.

    하지만 지금은 자신에게 그 왕좌를 빼앗긴 패배자!

    문득 헬레나는 루크가 지금 어떤 기분일지 너무나 궁금해졌기에 이동하던 발걸음을 멈추곤 그 교실의 뒷문을 열어 안쪽의 수인혼혈 여자애의 표정을 살폈다.

    “아, 메리. 추천해준 책은 고마웠다. 많은 공부가 되었어.”

    “그래? 다행이다. 사실 나는 읽어본 적 없거든. 그냥 어린이 추천도서로 추천해준거였는데.”

    “하하, 그런 거였느냐? 어쩐지. 메리, 네가 읽기엔 조금 복잡해보이더구나.”

    “우……. 너무해!”

    “하하하. 장난이란다, 장난.”

    쟤는 1등을 놓친게 분하지도 않은걸까?

    어떻게 저렇게 태평한거야?

    “아, 맞다. 루크! 나 프린트가지러 잠깐 교무실 갔다올게!”

    “그래, 그러거라. 항상 수고가 많구나, 메리.”

    “뭘, 내가 반장이잖아!”

    그렇게 혼자남은 루크는 책상서랍에서 뭔가 책을 꺼내서 읽기 시작한다.

    책의 표지를 보니 그건 딱 봐도 어려워보이는 법률서적이었다.

    혹시 저학년주제에 허세라도 부리려는걸까?

    1등을 놓쳤으면 교과서나 들여다 보고 있을 것이지, 학교시험이랑 하등 상관도 없는걸 저렇게 태평하게 보고있다니!

    헬레나는 그 모습에 참지 못하고 루크의 반으로 발을 들였다.

    성큼성큼, 당당한 발걸음으로 루크의 자리까지 다가간 헬레나는 팔짱을 끼며 외쳤다.

    “야, 루크 이루시!”

    “아, 너는 그때 그…….”

    루크는 살짝 표정이 미묘한 모습으로 변했다.

    일전에 ‘촌스러운 할아버지’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루크로서는 자신이 미움받게된 계기를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루크가 당황한 표정으로 헬레나를 올려다보다가 문득 표정을 고치고는 물었다.

    “이렇게 다시 보게 되는구나. 뭔가 할 말이 있는게냐?”

    하지만 헬레나는 그 평온한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은 1등을 놓쳤을때 얼마나 분했는데, 이 녀석은 어떻게 이렇게 태연할 수 있는걸까?

    1등엔 별로 관심도 없어서?

    그럼 대체 그동안 왜 자신에게서 1등을 빼앗았단 말인가?

    ‘나는 1등을 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그리 생각하니까 굉장히 불쾌했다.

    “당연하지! 네 그 태평한 표정, 맘에 안들어! 1등을 나한테 빼앗겼으면 조금은 더 분해해야하는거 아니야?”

    “1등을 빼앗기다니……아!”

    헬레나가 몰아붙이자, 루크는 다시 한순간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문득 깨달은 듯 감탄성을 내뱉었다.

    “그렇구나, 네가 이번 시험의 1등이느냐? 정말 축하한다. 열심히 노력했구나.”

    그렇게 말하며 루크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헬레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어, 어?”

    헬레나는 크게 당황했다.

    이렇게 칭찬을 받을거라고 생각해서 온 건 아니었는데, 그녀는 오히려 루크가 조금이라도 화를 내는 반응을 듣고 싶어서 온 거였다.

    예상치못한 칭찬에 헬레나는 얼굴로 점차 피가 몰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얼굴은 이미 새빨갛게 변했을지도 모른다.

    ‘키, 키가…….’

    일어선 키는 헬레나보다 루크가 아주 조금 더 컸다.

    분명 자신이 루크보다는 1살 언니일텐데.

    동생보다 작다는 사실이 부끄러울만도 하지만 어째선지 그다지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대체 왜일까?

    ……어쩌면 이건 루크가 수인이라서 그런걸지도 모르겠다. 수인은 다들 빠르게 자라니까.

    게다가 치마 뒤쪽으로 살랑거리는 꼬리는 이미 2차성징이 시작되었다는 증거.

    당연히 자신보다 클 수밖에 없을지도……?

    “…….”

    루크는 갑자기 얌전해진 아이의 반응이 참으로 귀여웠다.

    대체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얘야, 네 이름은 무엇이지?”

    “헤, 헬레나 루스핀드…….”

    “그렇구나, 헬레나. 잠깐만 기다려보거라.”

    “어, 어……?”

    루크는 그 말을 하면서 헬레나의 머리에서 손을 떼고 가방을 뒤적였다.

    그리고 가방에서 꺼낸 것은 바로 ‘멜론 빵’.

    하도 많이 만들어서 그런지, 요즘도 매일 가방에 가지고다니던 루크의 간식거리다.

    ‘시루드는 하도 많이 먹어서 그런지 조금 질린 것 같지만.’

    “자, 헬레나. 받거라. 내가 직접 만든 엘프식 멜론빵이란다. 맛은 시루드가 보장할게야. 그렇지?”

    갑작스런 질문에 시루드는 살짝 어깨를 들썩였다가 대답했다.

    “어? 어. 맞아. 확실히 맛은 있어.

    매일매일 먹으면 아무래도 질리긴 하지만, 처음 먹어볼땐 확실히 맛있기는하다.

    “하하, 그러니 헬레나, 내게 쌓인 불만을 풀어줬으면 좋겠구나.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사과할테니, 내게 무슨 불만이 있는지 말해주겠느냐?”

    “어……?아니, 그런건 없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있기는 했는데 이젠 별 상관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달까…….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다행이로구나.”

    루크는 씨익 웃었다.

    그 미소에 헬레나는 영문을 모른 채 얼굴을 붉힐 수 밖에 없었다.

    ‘왜, 대체 왜 웃는거야……?’

    그런데,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정말 시골의 할아버지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칭찬을 해주는 기분이 들었다고 할까…….

    하지만 그 기분을 들게 한 사람은 자기보다 한살 어린 동생인데다, 같은 여자아이라는 사실이 헬레나의 머릿속을 엉망으로 뒤섞고 말았다.

    결국 헬레나는 벌개진 표정으로 메론빵을 품에 안아든 채로 몸을 뒤로 빼내는 것 밖에 하지 못했다.

    “흐, 흥! 됐어! 아무튼, 앞으론 좀 더 노력하라구!”

    “하하하. 그래, 그러지.”

    그렇게 루크는 도망치듯 자리를 뜨는 헬레나의 뒷모습에 인사를 하며 다시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태연하고 자연스럽게 웃으며 시루드를 향해 말한다.

    “참 귀여운 아이야, 그렇지 않느냐?”

    그리고 그 모습을 시루드가 조금 질린듯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건…….”

    시루드는 목까지 올라온 말을 참았다.

    루크는 귀엽다는 말 듣는거 싫어하니까.

    “응, 귀엽네.”

    ———

    “질시언 허드니, 마을 하나를 완전히 몰살하고 약탈하는 잔혹한 방식으로 도적질을 했지. 참수형이었다.”

    “트레판 재귀라스, 밝혀진것만 약 300명이 넘는 아녀자들을 강간했다. 피해자 중엔 귀족영애, 타국의 공주도 있었다. 차륜형이었지.”

    “졸틴 바이퍼, 마족에게 아군의 정보를 팔고 그 대가로 자신의 안전과 부를 약속받았다. 결과, 5000명의 불필요한 사상자가 나왔지. 그중 민간인은 2000이상이었다. 화형이었지.”

    “그외에도 입에 담기 어려운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있다. 크레인 트레져, 헤르페 카르가스, 루스 라인펠트…….”

    그 뒤로도 범죄자들의 이름과 죄목, 형벌에 관한 내용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특이한 것은, 듣다보니까 저게 다 동화속 영웅담에 나오는 악당들의 이름이었다.

    대체 루크는 몇명이나되는 동화속 악당의 이름을 외우고 있는걸까……?

    하긴, 불사왕과 루크 이루시, 케일 프롭슨의 모험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정말 길었고, 그들이 해치운 악당의 수 역시 결코 적은 수가 아니었다.

    예르나는 자신이 멈추지 않으면 루크의 명단 읊기가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손을 들고 외쳤다.

    “……알겠어, 이제 그만! 멈춰!”

    예르나의 멈추라는 말에 루크는 잠깐 입을 다물고 예르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예르나. 그들은 죽어야했어, 그렇지?”

    “그래, 죽어야했네.”

    5000년 전 범죄자가 사형으로 죽든말든 루크와 자신에겐 별 상관이 없지.

    “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아무도 죽이면 안돼. 그건 옛날얘기잖아!”

    ‘휴, 괜히 걱정했네.’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으니, 루크가 문득 떠오른 듯이 말했다.

    “혹시 강도도 죽이면 안돼나?”

    “당연히, 안돼. 그냥 전화로 경찰을 불러.”

    “……그럼 만약 상대가 살인자라면? 그래서 날 죽이려고 한다면?”

    “……그것도 결국 죽이면 안되긴 하는데……. 아, 만약 그런 사람 만나면 굳이 싸울 생각 말고 바로 도망쳐? 알겠지?”

    “음……. 알겠네. 노력해보지.”

    “그래. 하지만, 급하면 무슨 수를 써서든 네가 안다치는게 중요하니까.”

    예르나는 잠깐 숲에서 루크가 용으로 변했던 순간, 다이튼을 손쉽게 제압했던 장면을 떠올렸다.

    다이튼은 나름대로 무력에서 중상위권에 속하는 숲지기인데, 그리 간단히 제압할 수 있었다.

    “정말 급할땐, 어쩔 수 없을때는.”

    애한테 이런말을 해도 될지 잘 모르겠지만, 안했다가 나중에 후회하는 것 보단 나을 것이다.

    “상대가 어떻게 될 지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아. 너만 안 다친다면.”

    어차피 14세 미만인 아이에게 법적인 책임은 지울 수 없을테니까.

    “음, 알겠네. 명심하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소년법 악용;
    촉법소년 멈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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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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