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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2

       8월 11일은 서커스 그랑프리가 시작된 지 정확히 10주 하고도 하루가 되는 날이었다.

         

       이날은 대회 운영진이 금지하고 있던 새로운 단원의 영입이 제한적으로 풀리는 날이기도 했다.

         

       그 규정은 참가자끼리의 부정적인 야합과 거래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서커스단 몇이 힘을 합쳐 서로 인원을 돌려쓴다거나, 특정 시험을 통과하는 데 유리한 용병들이 해당 도시에 죽치고 앉아 팀을 바꿔가며 매번 시험을 치른다면, 그건 대회의 공정성에도 어긋나고,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도 재미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운영진은 첫 10주 동안은 모든 종류의 영입과 거래를 완전금지했다.

       그 기간이 지나고 나서는 특정한 조건을 만족하는 경우에 한하여 일부 허용했다.

         

       6대 극장에서 치르는 시험의 내용에 대해서는 이미 모두 공개되었다.

         

       덕분에 참가자들은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자신들에게 어떤 인재가 필요하고 자신들이 어떤 재주가 모자라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 때문에 금지 규정이 풀리는 날, 6대 극장이 있는 도시에서 새로운 단원을 영입하기 위해 서커스단끼리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예테린푸르크만은 예외였다.

       이곳에 머무르는 참가자들은 11일이 되었는데도, 사람을 구하는 데 그렇게 열정적이지 않았다.

         

       이는 그다음 주 월요일에 있을 특별한 행사 때문이었다.

       이 도시에 있는 서커스단들은 대부분 그날을 위해 신규 단원의 자리를 비워두었다.

         

       항상 사람 부족에 시달리는 우리 서커스단도 마찬가지였다.

       루즈에서의 활약 덕분인지 우리가 괴물서커스라는 것을 알면서도 찾아오는 곡예사들이 꽤 있었다.

         

       개막식 이전이었다면 얼씨구나 하고 환영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우리를 찾아온 곡예사들은 하나같이 우리의 향상된 실력에 못 미치는 자들이었다.

       하긴 자기 실력에 자신 있는 사람은 모두 다음 주 월요일을 기다리지 굳이 지금 시점에 우리 서커스단에 들어오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대회 규정상, 현재 우리가 추가로 뽑을 수 있는 인원은 1명뿐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자리를 아무에게나 내줄 수 없었다.

         

       우리도 다른 서커스단처럼 다음 주 월요일을 기다리기로 하고 방문객들을 모두 돌려보냈다.

         

       그리고 기다리던 그 날이 왔다.

       우리는 아침을 일찍 먹고 마차를 타고 별장을 나섰다.

         

       “줄타기 곡예사는 필요 없어. 유라 언니가 워낙 뛰어나서 말이야. 차력사 역시 마찬가지야. 우몬만 한 애가 어디 있겠어? 쏴도 밴딕 정도 붕대 휘두르는 솜씨면 나쁘지 않아. 문제는 땅재주야. 요벨은 아직 실력이 많이 부족해. 이왕 보충할 거면, 땅재주에 뛰어난 사람을 뽑으면 좋겠어. 땅재주는 여러 명이 함께 하면 효과가 커지니까 말이야.”

         

       엘라는 내 옆에 앉아 노트를 넘기며 조잘거렸다.

         

       그녀는 모자가 내 뺨을 짓누를 정도로 내 옆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대화하는 도중에도 계속 나와 눈을 마주치면서 눈웃음을 치거나 미소를 지었다.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지난 3주 동안 그녀의 기억이 어떤 상태인지는 대강 파악이 끝났다.

       그녀가 가진 나에 대한 불행한 기억은 모두 사라지거나 왜곡되어 있었다.

         

       그녀의 가장 큰 트라우마였을 고향에 대해 벌인 학살 건은, 고향에 전염병이 퍼졌고 내가 그들을 구해준 것처럼 포장되었으며, 그 희생자 수도 상당히 줄었다.

         

       그녀에게 있어 나는 고향을 구해준 은인이자 첫 번째 관객이었으며, 함께 서커스단을 시작한 공동창업자이자 무대 위의 파트너였다.

         

       바뀐 것은 맨 앞의 고향 부분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그녀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그만큼 그녀가 원더스타인에게 가졌던 애증에서 증오의 부분이 차지하고 있던 영역이 컸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에 대해 그녀의 호의와 신뢰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두터웠다.

       제일 좋아하는 사람 운운했던 것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물론 시스템상 보이는 엘라의 호감도는 그대로였다.

       사신의 낫에 찔리기 직전에 떴던 알림대로 31에서 조금의 변동도 없었다.

         

       아마 마법 같은 방식으로 올린 호감도 상승은 시스템이 인정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엘라가 이렇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마음의 작용이 아닌 사신의 낫이 건 저주에 의한 것이니 말이다.

         

       “이봐 듣고 있는 거야?”

         

       그녀는 내가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눈을 부라렸다.

       그러나 내가 뭐라고 변명하기도 전에 그녀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되물었다.

         

       “잠 제대로 못 잔 거 아냐? 어젯밤 늦게까지 당신 방에 불이 켜져 있던데.”

         

       그때, 내 왼쪽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크헛헛, 당연하지. 내가 어젯밤 늦게까지 약술을 가르쳐줬거든.”

         

       내 왼쪽에 앉은 노인이 엘라를 향해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그녀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뭐예요? 당신 진짜야? 이런 중요한 일정 전날에 정말 식물 공부 따위로 잠을 설친 거야?”

       “식물 공부 따위? 감히! 동물 따위를 기르는 것보다 식물이 훨씬 낫지!”

       “재미 하나도 없는 것 같던데요?”

         

       내 양쪽에서 고성이 오갔다.

         

       가스통은 서커스단의 손님 겸 고령자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내 옆자리를 차지했다.

       덕분에 늘 내 옆에 앉던 유라크네가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엘라와 가스통이 싸우는 모습을 보며 뒤에 앉아 있는 스벤이 웃음을 터뜨렸다.

         

       “핫핫, 그러고 보니 저 두 사람이 저렇게 나온 뒤로, 이거 두 분은 단장님 옆자리에 전혀 못 앉고 있네……크헉!”

         

       스벤의 목이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오른쪽으로 꺾였고, 그의 척추는 보이지 않는 각도에서 들어온 공격으로 왼쪽으로 꺾였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그의 양옆에 앉은 마야와 유라크네였지만, 두 사람은 양팔로 팔짱을 끼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나는 그녀들이 가지고 있는 다른 팔들의 존재를 알았기에 조용히 미소지었다.

         

       “엘라 양, 그만 하세요. 저는 식물 돌보는 일에 관심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에요.”

         

       가스통이 불만에 찬 신음을 냈다.

         

       “다 엘라 양을 치료하기 위해서라고요.”

         

       내 말에 엘라는 뜨끔한 표정을 짓더니 내 시선을 피하고 고래를 돌렸다.

         

       “아……치, 치료 말이지? 그렇지. 미안해…….”

         

       내가 치료를 언급할 때마다 그녀는 어딘가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것을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였다.

         

       치료를 받을 때마다 그녀는 불행한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는 게 확실했다.

       꿈이라는 것의 특성상 일어나는 순간 희미해지겠지만, 다음 단계의 치료로 가면 그것을 실제 기억으로까지 떠오르게 할 수 있었다.

         

       그녀의 치료에 진척이 생기는 것을 확인한 덕분에 나는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정신계 마법을 사용하는 것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긴 하겠지만 다른 부작용 없이 그녀를 원래대로 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귀찮은 찰거머리가 한 명 달라붙었다는 것을 빼면 나는 이 방법에 만족했다.

         

       “그다음 치료 방법은 접붙이기에 대한 것을 익히고 난 다음 전수해주겠네.”

       “접붙이기와 약학이 무슨 상관이죠?”

       “……싫으면 배우질 말든가.”

         

       노인네와 어린애처럼 불퉁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리자 나는 어쩔 수 없이 웃으며 그를 달랬다.

         

       “알겠습니다, 영감님. 배우지요.”

       “잇! 나 치료 안 받아도 되니까 배우지 마!”

       “그럴 순 없어요. 엘라 양을 위한 일입니다.”

       “우웃…….”

         

       마차 안이 진정되고 나자 나는 알림창을 확인했다.

       거기에는 역시나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지난 3주 동안 나는 버릇처럼 퀘스트 알림창을 열었다.

       혹시나 새로운 단원 퀘스트가 뜨지 않나 싶어서였다.

         

       단원 퀘스트는 시스템이 단원의 바람을 감지해서 퀘스트의 형태로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소원을 접수한 지 3주가 지났지만, 그들의 몸을 치료하라는 단원 퀘스트는 뜨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봤을 때, 퀘스트는 불가능하거나 메인 퀘스트와 상충하는 요구는 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단원들을 모두 해방해달라는 엘라의 요구가 수백 번은 떴을 것이고, 이스미 구릉지를 탈출할 때도 당장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고 싶다는 단원들의 요구가 떴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역으로 생각해보면, 단원들의 그렇게까지나 바라는데도 퀘스트가 뜨지 않는다는 말은 그것이 ‘시스템’, 즉 마신 키르쿠스의 입장에서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아니면, 가능한 방법이 있지만. 그들을 치료하는 것이 메인 퀘스트가 유도하는 상황과 어긋나기 때문일까?

         

       나는 후자이길 바랐다.

       어떻게든 그들의 바람을 들어주고 싶었다.

         

       아무리 선한 의도로 한 거짓말이라도, 그들이 제공하는 호감도가 주는 이득을 즐기기만 한다면, 내 어린 시절을 착취했던 사이비 목사와 다름없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 남은 2년 동안의 여정에서 정말 단원들의 몸을 고칠 방법을 발견하기를 원했다.

         

       별장에서 극장 앞 광장에 도착하기까지 무려 1시간 반이나 걸렸다.

         

       예테린푸르크는 제국 동부에서 제일 큰 도시였다.

       인구나 크기가 루즈의 몇 배는 되었다.

         

       물론 게임에서는 괴물들에 의해 반파되었다는 설정으로 루즈와 비슷한 크기만 구현되었지만 말이다.

         

       나는 마차가 익숙한 풍경으로 들어서는 것을 지켜보았다.

         

       “우와아!”

       “이렇게 큰 곳은 처음이야!”

         

       옆과 뒤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엘라, 유라크네, 스벤은 창문에 달라붙어 바깥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입을 다물 줄 몰랐다.

         

       늘 침착한 마야조차 놀라운 눈으로 주변을 훑어봤다.

       제국의 황성까지 들어가 본 적 있다는 가스통만이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나는 그리운 고향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말했다.

         

       “예테린푸르크의 중심지인 ‘테트로미노’입니다.”

         

       수십만 명은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사각형의 거대한 광장이 펼쳐져 있었다.

       그 크기도 크기지만 바닥의 블록이 무엇보다 특이했다.

       J, L, T, Z, S, O, I, 4개의 정사각형으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문자를 형상화한 색색의 블록들이 바닥에 깔려 한 치의 빈틈도 없이 꽉 짜여 있었다.

       그것들은 어떠한 규칙 없이 무작위로 놓인 것처럼 보였다.

         

       그 크기와 바닥에 깔린 특이한 블록의 형태 때문에 이 광장에는 온갖 괴담이 퍼져 있었다.

         

       블록들의 패턴에 숨은 수수께끼를 풀면 마신의 궁전으로 초대를 받는다거나, 그것을 파악하기 위해 수십 명의 수학자가 달려들었다가 단체로 미쳐버렸다거나, 혹은 광장 어딘가에 숨어 있는 딱 하나 검은색 정사각형의 ‘빠진 블록’ 위치에 비밀스러운 보물이 숨겨져 있다거나.

         

       나는 그 괴담들과 관련해 맵 곳곳에 숨겨진 이스터에그들을 소개하는 특집을 했던 것을 떠올리며 미소지었다.

         

       그때, 사람들의 목소리와 시선이 한곳으로 집중되었다.

         

       “와! 저것 좀 보세요! 저기가 바로 그…….”

       “허, 놀랍군.”

       “엄청나군요.”

         

       마차가 향하고 있는 방향의 끝.

       광장의 한쪽 구석에는 눈이 아플 정도로 강렬한 색채를 발하는 건물이 있었다.

         

       저곳이 바로 오늘 우리의 목적지였다.

         

       뾰족하게 생긴 중앙의 첨탑을 중심으로 서로 높이가 다른 9개의 탑이 비대칭적인 균형미를 이루며 배치되어 있었다.

         

       탑들의 꼭대기에는 양파형의 돔들이 얹어져 있었는데, 어떤 건 단색으로, 어떤 건 두 가지 색이 나선 형태로, 어떤 건 3가지 색이 격자 형태로, 탑마다 칠해진 방식이나 색이 각각 달랐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색을 다 사용하겠다는 건축가의 강렬한 의지가 드러나는 무지갯빛의 건물이었다.

       저곳이 바로 TT2의 예테린푸르크 스테이지에 등장하는 메인 던전이었다.

         

       서커스 그랑프리의 예선전이 열리는 6대 극장 중 하나.

       업계 최고의 명문이라 일컬어지는 엘리트 곡예사 양성소.

         

       레카체프 서커스 학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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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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