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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2

       시간이 흘러 미노타우로스 토벌전 당일이 되었다.

       

       평소에는 개인 내지는 팀 단위로 움직이던 모험가들이 미궁으로 향하는 비석 앞에 우르르 몰려있는 모습은 뭐랄까.

       

       “무슨 미궁 철거반 같네요.”

       

       “막대한 수익을 내는 판 그레이브를 침략하는 나라가 없는 이유야.”

       

       무장이 전부 제각각이고, 오와 열을 맞추기는커녕 대충 근처에 널브러져 있을 뿐이지만…….

       

       슬슬 초보자 딱지를 떼고, 뭔가 죽이는 일에 이골이 나기 시작한 사람은 이만큼이나 모아두니 분위기가 제법 살벌했다.

       

       정작 저 안에 들어가 있는 모험가들은 기다리기 지쳤는지 지루해 보이는 표정이었지만.

       

       “그나저나 강해 보이는 모험가들이 되게 많네요. 저렇게 떡하니 보험이 있는데 제대로 된 전투가 가능하긴 해요?”

       

       “응. 놀랍게도 가능해.”

       

       내가 1층의 계층 수호자를 소환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지금.

       

       사실상 2층의 수호자인 미노타우로스는 모험가들이 상대할 수 있는 첫 계층 수호자다.

       

       지금껏 살아남았다는 건 일반적인 몬스터 상대로 어찌어찌 안정적인 승리를 거뒀다는 뜻.

       

       하지만 그런 이들도 처음 겪는 보스전에는 고생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이들을 위해 최소 2계층 이상 깊은 곳에서 활동하는 모험가를 보호자로 붙여보았으나.

       

       “미궁은 바보가 아냐. 목숨을 보호받는 순간 그간 쌓아둔 대부분의 공적이 구해준 이에게 흘러가.”

       

       “아. 그러겠네요. 이 미궁의 공헌도 시스템을 짠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사랑의 여신님이니까요.”

       

       누군가를 죽이는 것보다 살리는 것이 훨씬 더 많은 공적을 얻을 수 있다. 미궁이 평가하는 것은 전투 내역 같은 게 아니다.

       

       그 안에서 행하는 모든 것이지.

       

       모든 것이 위험으로 가득 찬 공간에서 다른 누군가를 돕는 것은 고결한 일이라 판단한 거겠지.

       

       “고결……혹시 리디아 님도?”

       

       “……뭐, 내 이명이 고결한인 이유가 그래서긴 해.”

       

       죽음이 가득 찬 미궁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고, 언제나 명예롭게 행동하려 하는 것.

       

       위험한 이가 있으면 돕고, 악한 이가 있으면 징벌하며, 돌파할 때는 선두에, 후퇴할 때는 최후미에 서서 용기와 헌신을 보여주는 이.

       

       리디아가 같은 고위 모험가 중에서도 강한 편에 속하는 이유가 바로 그래서다.

       

       “토벌한 몬스터 수는 비슷하다 해서 행적이 같은 것은 아니니까.”

       

       “오오. 근데 그런 이른바 착한 일은 어떤 부분을 성장시켜 주나요? 힘을 쓰면 근력을, 오래 싸우면 체력을 올려주는 식이잖아요. 약간의 랜덤성은 있긴 하지만…….”

       

       “글쎄. 나도 잘 몰라. 일단 추측하기로 육체적인 부분은 아냐. …근데 요나는 그냥 여신님한테 물어보면 되는 거 아냐?”

       

       “에이. 그거 신탁이고 계시에요? 그렇게 쉽게 내려오는 게 아니라구요. 뭐어 제가 물어보면 답해줄 것 같긴 한데….”

       

       직접적인 말을 전하지 못하니, 풀돌 여신상을 통해 뭔가 전하려 들겠지. 다만, 그럴 때마다 가챠 확률이 안 좋은 쪽으로 기울어 간다는 문제가 있다.

       

       이번에 100골드 가까이 쓰면서 어찌어찌 패널티를 초기화시켰는데 이걸 엄한 데에 낭비할 수는 없지.

       

       “여신님에게 부담이 될 테니까요. 그리고 저도 짐작 가는 게 있긴 하고요.”

       

       “짐작?”

       

       “네. 아무래도 정신력이 아닐까 싶어서요.”

       

       이번에 사랑의 화신을 얻으며 대폭 늘어난 정신 내성. 덩달아 정신력도 강해졌는데, 거기서 예상치 못한 시너지가 일어나더라.

       

       평소보다 한층 더 많은 양의 힘을 수월하게 조절할 수 있었던 것. 즉, 3대 이능인 오러, 마나, 신성력의 출력과 컨트롤이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것이다.

       

       그리고 리디아는 오러의 총량도 총량이지만, 무슨 마법처럼 오러를 흩뿌릴 정도로 한 번에 엄청난 출력을 자랑한다.

       

       주변 일대를 뒤덮는 불길 같은 오러와, 그리하여 전개되는 리디아의 영역은 아마 다른 오러 사용자는 따라 하기 힘든 기예이리라.

       

       “제 생각은 그래요. 정답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럴 수가…내 천재적인 재능이 아니었다고…?”

       

       아무래도 리디아는 그냥 자기가 천재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바들바들 떠는 리디아. 덩달아 그 폭력적인 가슴이 잘게 진동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구경하는 것도 잠시.

       

       저 멀리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큰 키와 잘빠진 몸매. 납작…아니, 민첩한 가슴과 밝은 금발. 묘하게 재수 없는 이목구비를 지닌 재벌 2세 엘프.

       

       로즈마리였다. 뒤에는 일전에 보았던 호위인 상체 근육 개쩌는 궁수 눈나도 있었고.

       

       리디아에게 한방에 제압당하긴 했지만, 겉모습만 보면 무슨 인간병기란 말이지.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며 외쳤다.

       

       “여기! 여기요!”

       

       “힉!”

       

       이쪽을 발견한 로즈마리가 식겁하며 바로 고개를 틀었지만 이걸 어떻게 참겠는가.

       

       바로 호다닥 달려가 로즈마리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마음 같아서는 어깨동무를 하고 싶었는데, 로즈마리의 키가 생각보다 커서 쉽지 않더라.

       

       “왜 봤으면서 모른척해요?”

       

       “그, 그건….”

       

       “전 이렇게나 친근하게 인사를 했는데 왜 안 받아줘요?”

       

       “그으…갑자기 존댓말을 하니까 놀라서….”

       

       “아니, 그때는 제가 화나서 그런 거고요. 나이가 차이가 100살도 넘게 나는 사람한테 어떻게 반말하겠어요? …그래서 왜 모른척했어요? 엘프는 놀라면 막 고개 돌리고 그래요?”

       

       “어으. 그게. 그러니까…으읏….”

       

       고개를 푹 숙이고 우물쭈물대는 로즈마리. 머리를 들이밀어 밑에서부터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여기서 포인트는 최대한 눈을 멍하게 떠 동공을 풀어주는 것.

       

       그 상태에서 망가진 축음기처럼 기계적으로 같은 말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흐이익!”

       

       패션 얀데레 연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좋아 죽으려고 하는 로즈마리.

       

       오들오들 떨고 있는 그녀의 손을 붙잡아 끌었다.

       

       “이리 와요.”

       

       “히끅.”

       

       창백해진 안색으로 얌전히 따라오는 로즈마리. 호위일 터인 베리는 도저히 눈앞의 참상을 지켜보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누가 보면 인신매매 현장인 줄 알겠네.

       

       그렇게 데려온 뒤에는 리디아의 옆에 서서 고개를 까딱였다.

       

       “미궁에서 저희 옆에 꼭 붙어서 싸우세요.”

       

       “왜, 왜지?”

       

       “그래야 위험할 때 살려줄 수 있잖아요?”

       

       예상치 못한 말을 들었다는 듯 눈을 크게 뜨는 로즈마리. 하지만 호위인 엘프 눈나는 착잡한 표정으로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여차할 때 도와줄 수 있다는 건, 여차할 때 슥삭 할 수 있다는 소리입니다. 여기서는 말하는 대로 따르시는 게 좋다고 봅니다.”

       

       흠칫한 로즈마리가 나와 리디아를 차례로 바라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니, 다 들리거든요? 그런 거 아니에요. 실수로라도 로즈마리가 죽으면 계획이 곤란해져서 그런 거지.”

       

       “그럼 계획대로 내가 너를 회합에 데려가면….”

       

       “이용 가치를 다한 말을 살려둘 이유가 어디에 있죠?”

       

       “……!”

       

       “라는 말이라도 하길 바라시는 것 같은데. 솔직히 억울하네요. 먼저 시비를 걸어 대응했을 뿐인데 무슨 악의 축이라도 보는 것처럼 보실 줄이야.”

       

       로즈마리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괜찮아요. 걱정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

       

       고장난 인형처럼 삐걱이며 끄덕이는 로즈마리.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리디아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

       

       잠시 뒤. 길드 소속의 모험가가 도착해 그녀의 인솔을 따라 손에 손잡고 다 같이 미궁에 들어갔다.

       

       유능한 길잡이이기도 한 것인지 미궁에 도착하자마자 주변을 살피더니, 망설임 없이 길을 안내하는 길드의 모험가.

       

       좁은 토굴을 수십 명이 일렬로 늘어선 모습은 꽤 장관이더라.

       

       중간중간에 만난 몇몇 몬스터들이 겁 없이 달려들긴 했지만……비교적 후위에 있는 내가 나설 것도 없이 선두의 모험가들 선에서 정리되더라.

       

       하기야. 계층 수호자에 도전할 정도면 2층의 일반 몬스터는 손쉽게 쓰러뜨리는 수준일 테니 당연한 일인가.

       

       그렇게 길드의 길잡이를 따라 한참을 내려갔다. 깊게, 더 깊게.

       

       중간에 모르가나를 쓰러뜨리며 단번에 강해진 내가 진입해 본 적 없는 깊은 곳까지 거침없이 헤집고 나가는 토벌대.

       

       슬슬 코볼트는 사라지고, 여러 마리의 새끼를 거느린 퀸 스파이더나 흙으로 된 조잡한 골렘이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이 또한 순식간에 사냥당했다.

       

       전리품은 간단하게 마석만 빼가고 나머지는 그냥 버려둔 채, 계속해서 나아가기를 얼마나 계속했을까.

       

       점점 가까워지는 거대한 심박 소리. 중간중간의 공동은 어느새 나오지 않았고, 그저 좁은 통로만이 길게 이어진 길.

       

       그 끝에는 지상의 광장을 연상시킬 정도로 넓게 탁 트인 장소가 있었다.

       

       두-근! 두-근!

       

       그리고 대지의 신의 심장이 눈앞에 있었다.

       

       “와아.”

       

       절로 흘러나오는 감탄. 다른 모험가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흙과 바위로 이루어진 거대한 심장이 규칙적으로 맥박치며 둔중한 소리를 퍼뜨린다.

       

       2층 전체에 울려 퍼져, 길을 찾는 기준이 되는 만큼 엄청 시끄럽지 않을까 했는데 막상 가까이서 보니 그렇지만도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껏 귀에 들리는 소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육체가 아닌 더욱 깊은 무언가, 어쩌면 영혼이라 부르는 것을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물론 눈앞의 심장은 단순한 환영이고, 과거의 메아리일 뿐이라는 건 안다.

       

       알면서도 차오르는 경외심에 감탄하는 사이.

       

       두-.

       

       쉴 새 없이 두근거리던 심장이 돌연 그 움직임을 멈췄다.

       

       뒤이어 담담하게 들려오는 길드 모험가의 목소리.

       

       “옵니다. 다들 준비하세요.”

       

       쩌적.

       

       그녀의 경고가 끝나자마자 큼직한 심장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아니, 심장이 워낙 거대해 작게 보이는 것이지 실제로는 상당한 크기의 균열.

       

       뿌득, 으드득. 쩍!

       

       요란한 소리와 함께 안쪽에서부터 균열이 부서지고 비틀어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심장의 외벽을 부수며 환영이 실체를 낳는다.

       

       두 발로 걷는 소. 타락한 과거의 영웅. 대지의 신의 사랑과 슬픔을 한 몸에 받는 자.

       

       -부오오오오!!

       

       미노타우로스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요즘 제가 다른 일로 너무 바빠 연재시간이 좀 들쑥날쑥하네요.

    하지만? 주5일 이상일뿐? 연재시간은 자유니? 지각은 아니지 않을까요?

    언제나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EP.132

EP.132





       시간이 흘러 미노타우로스 토벌전 당일이 되었다.


       


       평소에는 개인 내지는 팀 단위로 움직이던 모험가들이 미궁으로 향하는 비석 앞에 우르르 몰려있는 모습은 뭐랄까.


       


       “무슨 미궁 철거반 같네요.”


       


       “막대한 수익을 내는 판 그레이브를 침략하는 나라가 없는 이유야.”


       


       무장이 전부 제각각이고, 오와 열을 맞추기는커녕 대충 근처에 널브러져 있을 뿐이지만…….


       


       슬슬 초보자 딱지를 떼고, 뭔가 죽이는 일에 이골이 나기 시작한 사람은 이만큼이나 모아두니 분위기가 제법 살벌했다.


       


       정작 저 안에 들어가 있는 모험가들은 기다리기 지쳤는지 지루해 보이는 표정이었지만.


       


       “그나저나 강해 보이는 모험가들이 되게 많네요. 저렇게 떡하니 보험이 있는데 제대로 된 전투가 가능하긴 해요?”


       


       “응. 놀랍게도 가능해.”


       


       내가 1층의 계층 수호자를 소환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지금.


       


       사실상 2층의 수호자인 미노타우로스는 모험가들이 상대할 수 있는 첫 계층 수호자다.


       


       지금껏 살아남았다는 건 일반적인 몬스터 상대로 어찌어찌 안정적인 승리를 거뒀다는 뜻.


       


       하지만 그런 이들도 처음 겪는 보스전에는 고생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이들을 위해 최소 2계층 이상 깊은 곳에서 활동하는 모험가를 보호자로 붙여보았으나.


       


       “미궁은 바보가 아냐. 목숨을 보호받는 순간 그간 쌓아둔 대부분의 공적이 구해준 이에게 흘러가.”


       


       “아. 그러겠네요. 이 미궁의 공헌도 시스템을 짠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사랑의 여신님이니까요.”


       


       누군가를 죽이는 것보다 살리는 것이 훨씬 더 많은 공적을 얻을 수 있다. 미궁이 평가하는 것은 전투 내역 같은 게 아니다.


       


       그 안에서 행하는 모든 것이지.


       


       모든 것이 위험으로 가득 찬 공간에서 다른 누군가를 돕는 것은 고결한 일이라 판단한 거겠지.


       


       “고결……혹시 리디아 님도?”


       


       “……뭐, 내 이명이 고결한인 이유가 그래서긴 해.”


       


       죽음이 가득 찬 미궁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고, 언제나 명예롭게 행동하려 하는 것.


       


       위험한 이가 있으면 돕고, 악한 이가 있으면 징벌하며, 돌파할 때는 선두에, 후퇴할 때는 최후미에 서서 용기와 헌신을 보여주는 이.


       


       리디아가 같은 고위 모험가 중에서도 강한 편에 속하는 이유가 바로 그래서다.


       


       “토벌한 몬스터 수는 비슷하다 해서 행적이 같은 것은 아니니까.”


       


       “오오. 근데 그런 이른바 착한 일은 어떤 부분을 성장시켜 주나요? 힘을 쓰면 근력을, 오래 싸우면 체력을 올려주는 식이잖아요. 약간의 랜덤성은 있긴 하지만…….”


       


       “글쎄. 나도 잘 몰라. 일단 추측하기로 육체적인 부분은 아냐. …근데 요나는 그냥 여신님한테 물어보면 되는 거 아냐?”


       


       “에이. 그거 신탁이고 계시에요? 그렇게 쉽게 내려오는 게 아니라구요. 뭐어 제가 물어보면 답해줄 것 같긴 한데….”


       


       직접적인 말을 전하지 못하니, 풀돌 여신상을 통해 뭔가 전하려 들겠지. 다만, 그럴 때마다 가챠 확률이 안 좋은 쪽으로 기울어 간다는 문제가 있다.


       


       이번에 100골드 가까이 쓰면서 어찌어찌 패널티를 초기화시켰는데 이걸 엄한 데에 낭비할 수는 없지.


       


       “여신님에게 부담이 될 테니까요. 그리고 저도 짐작 가는 게 있긴 하고요.”


       


       “짐작?”


       


       “네. 아무래도 정신력이 아닐까 싶어서요.”


       


       이번에 사랑의 화신을 얻으며 대폭 늘어난 정신 내성. 덩달아 정신력도 강해졌는데, 거기서 예상치 못한 시너지가 일어나더라.


       


       평소보다 한층 더 많은 양의 힘을 수월하게 조절할 수 있었던 것. 즉, 3대 이능인 오러, 마나, 신성력의 출력과 컨트롤이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것이다.


       


       그리고 리디아는 오러의 총량도 총량이지만, 무슨 마법처럼 오러를 흩뿌릴 정도로 한 번에 엄청난 출력을 자랑한다.


       


       주변 일대를 뒤덮는 불길 같은 오러와, 그리하여 전개되는 리디아의 영역은 아마 다른 오러 사용자는 따라 하기 힘든 기예이리라.


       


       “제 생각은 그래요. 정답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럴 수가…내 천재적인 재능이 아니었다고…?”


       


       아무래도 리디아는 그냥 자기가 천재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바들바들 떠는 리디아. 덩달아 그 폭력적인 가슴이 잘게 진동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구경하는 것도 잠시.


       


       저 멀리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큰 키와 잘빠진 몸매. 납작…아니, 민첩한 가슴과 밝은 금발. 묘하게 재수 없는 이목구비를 지닌 재벌 2세 엘프.


       


       로즈마리였다. 뒤에는 일전에 보았던 호위인 상체 근육 개쩌는 궁수 눈나도 있었고.


       


       리디아에게 한방에 제압당하긴 했지만, 겉모습만 보면 무슨 인간병기란 말이지.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며 외쳤다.


       


       “여기! 여기요!”


       


       “힉!”


       


       이쪽을 발견한 로즈마리가 식겁하며 바로 고개를 틀었지만 이걸 어떻게 참겠는가.


       


       바로 호다닥 달려가 로즈마리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마음 같아서는 어깨동무를 하고 싶었는데, 로즈마리의 키가 생각보다 커서 쉽지 않더라.


       


       “왜 봤으면서 모른척해요?”


       


       “그, 그건….”


       


       “전 이렇게나 친근하게 인사를 했는데 왜 안 받아줘요?”


       


       “그으…갑자기 존댓말을 하니까 놀라서….”


       


       “아니, 그때는 제가 화나서 그런 거고요. 나이가 차이가 100살도 넘게 나는 사람한테 어떻게 반말하겠어요? …그래서 왜 모른척했어요? 엘프는 놀라면 막 고개 돌리고 그래요?”


       


       “어으. 그게. 그러니까…으읏….”


       


       고개를 푹 숙이고 우물쭈물대는 로즈마리. 머리를 들이밀어 밑에서부터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여기서 포인트는 최대한 눈을 멍하게 떠 동공을 풀어주는 것.


       


       그 상태에서 망가진 축음기처럼 기계적으로 같은 말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흐이익!”


       


       패션 얀데레 연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좋아 죽으려고 하는 로즈마리.


       


       오들오들 떨고 있는 그녀의 손을 붙잡아 끌었다.


       


       “이리 와요.”


       


       “히끅.”


       


       창백해진 안색으로 얌전히 따라오는 로즈마리. 호위일 터인 베리는 도저히 눈앞의 참상을 지켜보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누가 보면 인신매매 현장인 줄 알겠네.


       


       그렇게 데려온 뒤에는 리디아의 옆에 서서 고개를 까딱였다.


       


       “미궁에서 저희 옆에 꼭 붙어서 싸우세요.”


       


       “왜, 왜지?”


       


       “그래야 위험할 때 살려줄 수 있잖아요?”


       


       예상치 못한 말을 들었다는 듯 눈을 크게 뜨는 로즈마리. 하지만 호위인 엘프 눈나는 착잡한 표정으로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여차할 때 도와줄 수 있다는 건, 여차할 때 슥삭 할 수 있다는 소리입니다. 여기서는 말하는 대로 따르시는 게 좋다고 봅니다.”


       


       흠칫한 로즈마리가 나와 리디아를 차례로 바라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니, 다 들리거든요? 그런 거 아니에요. 실수로라도 로즈마리가 죽으면 계획이 곤란해져서 그런 거지.”


       


       “그럼 계획대로 내가 너를 회합에 데려가면….”


       


       “이용 가치를 다한 말을 살려둘 이유가 어디에 있죠?”


       


       “……!”


       


       “라는 말이라도 하길 바라시는 것 같은데. 솔직히 억울하네요. 먼저 시비를 걸어 대응했을 뿐인데 무슨 악의 축이라도 보는 것처럼 보실 줄이야.”


       


       로즈마리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괜찮아요. 걱정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


       


       고장난 인형처럼 삐걱이며 끄덕이는 로즈마리.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리디아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


       


       잠시 뒤. 길드 소속의 모험가가 도착해 그녀의 인솔을 따라 손에 손잡고 다 같이 미궁에 들어갔다.


       


       유능한 길잡이이기도 한 것인지 미궁에 도착하자마자 주변을 살피더니, 망설임 없이 길을 안내하는 길드의 모험가.


       


       좁은 토굴을 수십 명이 일렬로 늘어선 모습은 꽤 장관이더라.


       


       중간중간에 만난 몇몇 몬스터들이 겁 없이 달려들긴 했지만……비교적 후위에 있는 내가 나설 것도 없이 선두의 모험가들 선에서 정리되더라.


       


       하기야. 계층 수호자에 도전할 정도면 2층의 일반 몬스터는 손쉽게 쓰러뜨리는 수준일 테니 당연한 일인가.


       


       그렇게 길드의 길잡이를 따라 한참을 내려갔다. 깊게, 더 깊게.


       


       중간에 모르가나를 쓰러뜨리며 단번에 강해진 내가 진입해 본 적 없는 깊은 곳까지 거침없이 헤집고 나가는 토벌대.


       


       슬슬 코볼트는 사라지고, 여러 마리의 새끼를 거느린 퀸 스파이더나 흙으로 된 조잡한 골렘이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이 또한 순식간에 사냥당했다.


       


       전리품은 간단하게 마석만 빼가고 나머지는 그냥 버려둔 채, 계속해서 나아가기를 얼마나 계속했을까.


       


       점점 가까워지는 거대한 심박 소리. 중간중간의 공동은 어느새 나오지 않았고, 그저 좁은 통로만이 길게 이어진 길.


       


       그 끝에는 지상의 광장을 연상시킬 정도로 넓게 탁 트인 장소가 있었다.


       


       두-근! 두-근!


       


       그리고 대지의 신의 심장이 눈앞에 있었다.


       


       “와아.”


       


       절로 흘러나오는 감탄. 다른 모험가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흙과 바위로 이루어진 거대한 심장이 규칙적으로 맥박치며 둔중한 소리를 퍼뜨린다.


       


       2층 전체에 울려 퍼져, 길을 찾는 기준이 되는 만큼 엄청 시끄럽지 않을까 했는데 막상 가까이서 보니 그렇지만도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껏 귀에 들리는 소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육체가 아닌 더욱 깊은 무언가, 어쩌면 영혼이라 부르는 것을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물론 눈앞의 심장은 단순한 환영이고, 과거의 메아리일 뿐이라는 건 안다.


       


       알면서도 차오르는 경외심에 감탄하는 사이.


       


       두-.


       


       쉴 새 없이 두근거리던 심장이 돌연 그 움직임을 멈췄다.


       


       뒤이어 담담하게 들려오는 길드 모험가의 목소리.


       


       “옵니다. 다들 준비하세요.”


       


       쩌적.


       


       그녀의 경고가 끝나자마자 큼직한 심장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아니, 심장이 워낙 거대해 작게 보이는 것이지 실제로는 상당한 크기의 균열.


       


       뿌득, 으드득. 쩍!


       


       요란한 소리와 함께 안쪽에서부터 균열이 부서지고 비틀어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심장의 외벽을 부수며 환영이 실체를 낳는다.


       


       두 발로 걷는 소. 타락한 과거의 영웅. 대지의 신의 사랑과 슬픔을 한 몸에 받는 자.


       


       -부오오오오!!


       


       미노타우로스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요즘 제가 다른 일로 너무 바빠 연재시간이 좀 들쑥날쑥하네요.

    하지만? 주5일 이상일뿐? 연재시간은 자유니? 지각은 아니지 않을까요?

    언제나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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