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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2

       * * *

       

       

       

       

       진짜 이 나라의 차르. 아나스타샤 차리나. 그 차리나께서 매우 해맑게 웃으며 직접 훈장을 들고 세르게이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표도로프 조병창의 세르게이군. 아, 미안하네. 자네 말고도. 세르게이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아서. 시인 세르게이도 있고, 다양하거든.”

       

       

       하기야, 솔직히 흔하디흔한 이름이긴 하다.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아마 세르게이란 이름만 해도 수백만명은 되지 않을까.

       

       물론, 이름이 흔하다고 해도 상관없다.

       

       어쨌든 자신은 훈장을 받을 수 있으니까.

       

       

       “아닙니다!”

       “탄약 분류의 장인이라고 들었는데. 탄약은 군인에게 빠질 수 없는 영혼의 파트너지. 자네처럼 청년 노동자들이 성실하게 일할수록 나라가 발전하는 법이지, 그럼, 앞으로도 일을 잘해주길 바라네. 자, 국가 두마의 의원들은 앞날이 창창한 표도로프 조병창의 세르게이군에게 박수를!”

       

       

       두마 의원들의 박수와 함께 차리나는 직접 세르게이의 가슴에 훈장을 달아주었다.

       

       무려 차리나의 얼굴이 새겨진,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으로, 가문 대대로 내려도 모자람이 없는 그 훈장을!

       

       훈장이 기름 떼 묻은 셔츠의 가슴팍에 달리자마자. 세르게이는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대답 시원시원해서 좋군 그래.”

       

       

       차리나께서는 세르게이를 응원하며 어깨를 몇 번 두드려주고는 다음 사람으로 넘어갔다.

       

       차리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세르게이는 생각했다.

       

       역시 외모며 분위기며 그 여성 기자가 차리나가 맞구나-라고.

       

       아무렴 가까이에서 본 여자의 분위기를 모를 리가 없으니까.

       

       비록 텔레비전은 아니지만, 라디오 방송으로 훈장수여식은 진행되었다.

       

       그리고.

       

       

       “차리나께서 훈장을 직접 수여하신다고? 이 늙은이도 일 열심히 하면 되나?”

       “나도. 나도 다음에는 받을 거야!”

       

       

       훈장수여식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무려 전쟁영웅이며, 전러시아의 성녀 겸 차르이자, 몽골초원의 대칸, 동로마의 황제인 사실상 선대 차르의 유일한 후계자가 직접 훈장을 수여한다.

       

       대가리가 깨져도 무조건 차르를 외치던 차르정 시절의 신민과 귀족들에게는 받아야만 하는 매우 당연한 굿즈였으며.

       

       

       “우리 같은 평민도 폐하를 알현할 수 있다!”

       “우리의 어머니 차르 폐하를 위해 열심히 일하자!”

       

       

       일찍이 내전 중에 각종 개혁을 약속하고 정책을 시행하면서 아나스타샤에게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일반 평민들도 자극을 받고 더욱 열심히 일하였다.

       

       

       “차르께서 노동자들을 친히 위로해주시는데, 노동자들은 무엇하는가! 인간이 아닌 기계의 부속품처럼 일하라!”

       

       

       여기에는 알렉세이 가스테프란 남자의 역할도 있었다.

       

       실제 역사에서 결국 대숙청으로 축출된 그는 합중국의 새로운 체제 아래에서 노동자를 더욱 독려하는 가속주의 운동가로 평가되었다.

       

       외국에서도 아나스타샤 훈장 수여식에 대해서 평가는 극과 극이었다.

       

       일단 ‘러시아는 황국의 우방이자 황국은 러시아의 우방국’으로 여기는 일본에서는 훈장이 논의되기는 했다.

       

       

       “아무리 그래도 천황폐하께서 직접 훈장을 수여하는 건 좀.”

       “아니, 러시아야 내전 때문에 노동자 눈치 보는 거면 모를까. 우리는 굳이?”

       “황국신민이라면 고작 훈장따위에 연연하지 않는다!”

       

       

       물론 논의되기만 했다.

       

       그야 신주에 사는 천황폐하의 신민이라면 훈장 따위에 연연해하지 않고, 누구든 따라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흠, 우리야 뭐 노동자 눈치볼 것도 없으니.”

       “공화정에서 군주가 훈장을 수여할 일은 없지.”

       

       

       영국과 프랑스는 당연히,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볼 뿐이고.

       

       

       “하, 차리나 저 여자는 우리가 하려는 일을 알고 있나?”

       

       

       공산독일은 비슷한 시기에 제작 중이던, 리프크네히트 훈장과 룩셈부르크 훈장을 폐기해야만 했다.

       

       그야 노동자를 위한 나라에서 제국주의 수괴인 차리나가 만든 훈장을 따라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 * *

       

       

       훈장 수여식이 끝났다.

       

       무슨 놈의 세르게이란 이름이 이리도 많은지 모르겠다.

       

       당장 아나스타샤 훈장 수여를 받은 사람만 해도 세르게이가 많다.

       

       특히 그 일류신이란 사람도 세르게이 일류신이더라.

       

       세르게이 예세닌이라는 시인도 있었고.

       

       이 둘 중, 세르게이 일류신은 비행기 설계가 뛰어나 이고르 시코르 스키의 추천으로 아나스타샤 훈장을 수여받았고.

       

       모스크바 작가협회에서는 이반 부닌의 추천으로 세르게이 예세닌이란 시인이 러시아 시문학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훈장을 수여받았다.

       

       사실 좀 이것저것 좀 진지하게, 월요일 아침 교장 선생님 훈화말씀처럼 해볼까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많더라고.

       

       대충 아나스타샤 훈장만 수십 명에게 직접 내려주었고.

       

       그나마 나머지 다른 훈장은 따로 마리아를 비롯한 크렘린 대변인이 직접 수여했다.

       

       라디오로도 훈장 수여에 관련하여 방송이 널리 퍼졌으니, 반응은 어떤지 궁금한데.

       

       그래서 마리아를 시켜 알아보았다.

       

       

       “반응은 어때?”

       “정말 대단합니다. 이 말이 아니면 안 되겠네요.”

       

       

       정말 대단합니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어. 나는 그 말만 듣고 아하 그렇구나 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좀 자세히 말해 봐.”

       

       

       굳이 내가 반응을 들으려는 이유는 그거다.

       

       괜히 민심이 개차반 같으면 안 되니까.

       

       최소한 반응은 살피고 다음에 훈장을 유지하든 없애든 해야지.

       

       개인적으로는 없애도 괜찮다고 본다.

       

       반응이 영 좋지 않으면, 빨갱이스럽다고 우려된다고 하는 말이 나온다면, 굳이 이 제도를 계속할 이유가 없거든.

       

       귀족 출신들이야 어차피 더는 뭐라 할 처지는 아니니, 걱정은 안 되지만, 사람이 그런 게 있잖아.

       

       현시점에서 러시아 합중국은 차르 빠돌이만 있다.

       

       군주주의자들이 있는 만큼, 내 행위가 차르인데 빨갱이 짓을 너무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오면 좀 그렇다. 

       

       

       “그 폐하의 라디오 방송은 이미 러시아 사람이라면 모를 리 없잖아요? 그 라디오 방송으로 훈장 수여식이 들리니까. 너도 나도 공장에서 일하겠다고 난리입니다.”

       

       

       너도 나도 공장에서 일하겠다.

       

       이거 주작질 냄새가 솔솔 나는데.

       

       

       “괜찮나? 정말? 그냥 모스크바만 본 것은 아니고?”

       

       

       모스크바는 그래도 차르가 있는 도시잖아.

       

       차르 빠돌, 빠순이가 다른 지역보다 많은 건 매우 당연한 것이고.

       

       

       “애초에 전러시아의 국민이 존경하는 차르께서 직접 훈장을 수여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렇기는 해. 애초에 이곳에서는 레닌훈장도 뭐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을 거 아닌가.

       

       그렇다면 문제될 건 없지.

       

       

       “어휴.”

       

       

       이거 내가 괜한 일을 벌인 게 아닌가 몰라.

       

       이거 누가 칼들고 협박하는 거 아닌가?

       

       왜 권력자들 그런 거 있잖아. 비위 맞춰주려고 몰래 뒤에서 측근들이 여론 조작하고 그러는 거.

       

       아니면 뭐 상관없지만. 그런데 이거 좀. 빨갱이스럽지 않나?

       

       조금 많이 그런 냄새가 나긴 하는데 음.

       

       좋게 좋게 생각하자. 애초에 나는 차르잖아. 황제라고.

       

       근본도 없는 빨갱이 아이돌 빡빡이 레닌과 달리 나는 명문 황가인 로마노프 가문이라고.

       

       내가 훈장 수여하면 아이돌이 주는구나 하고 받으면 되는 것이다.

       

       

       “뭐 그래도 재미있는 점이 한 가지 있네요.”

       “뭐야?”

       “공산독일에서 자기네 서기장 훈장을 만들려고 했었다는데, 폐하의 훈장 이야기를 듣고 폐지했다고 합니다.”

       “아, 그런가.”

       

       

       그럼 내가 선점한 거니 나쁘지 않잖아?

       

       

       “다른 나라는 이런 훈장이 없나?”

       “영국에는 대영제국 훈장으로 등급별로 있기는 합니다만, 적어도 공장에서 일하는 일개 직원에게 수여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심지어 군주의 얼굴이 새겨진 것도 아니구요.”

       “그래?”

       

       

       하기야 그놈들이 일개 공장 노동자에게 직접 훈장을 수여했다는 기록은 들어 본 적이 없는 거 같다.

       

       그럼 내가 공장의 일개 노동자를 상대로 직접 훈장을 수여한 유일한 군주라는 거 아닌가?

       

       

       “예. 심지어 폐하는 현존하는 군주 중 가장 으뜸가는 분이시니까요.”

       

       

       그래. 내가 국가두마의 반대도 무릅쓰고 수여한 것이다.

       

       딱 훈장 수여하기 전 날 국가두마에서 그러더라고.

       

       일개 노동자를 차르께서 만나는 게 말이 되냐-뭐 이러면서 말이지.

       

       

       “뭐 그렇다면야 나야 좋은 일이긴 한데.”

       

       

       다른 나라의 반응은 어떤가?

       

       

       “영국과 프랑스는 어떤 반응인지 알아?”

       “오흐라나에서 올라온 보고로는 영국과 프랑스는 별반응은 없고, 일본에서는 한번 논의되었다가 흐지부지되었습니다.”

       

       

       일본에서 한번 논의가 되었다고? 그 일본에서?

       

       

       “일본에서 논의가 된 건 어떻게 알아?”

       “주러 일본대사 쪽에서 농담조로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흠, 그놈들은 자기들이 우리 우방이라고 여기고, 우리가 저놈들 우방으로 여기는 놈들이다.

       

       심지어 지금 내가 일본에게 말해 준 것도 있어서, 나에게 호감을 가진 상태라는 거지.

       

       그 증거로 지금 모전구가 당당하게 북만주와 마주한 남만주총독부에 있는 거 아니겠나.

       

       그런데 일본대사가 그런 말 할 정도라면.

       

       어지간히도 그놈들 눈에 러시아는 지들과 대등한 동맹국에 가까운 무언가인 듯하다.

       

       뒤통수치기 딱 좋은 포지션이 되는 건 좋은데 말이야.

       

       

       “하기야. 그 잘나신 천황의 신민이라면 훈장 같은 건 없어도 일 잘한다. 그런 식으로 넘어갔겠지.”

       “폐하께서는 일본에 대해 잘 아시는 거 같습니다.”

       

       

       잘 안다고 해야 하나 이걸.

       

       그 광기 어린 대일본제국이 유지된 것은 결국 천황의 존재 때문이잖아.

       

       그만큼 천황의 정통성은 대단하지.

       

       

       “아, 남만주 총독 있잖은가. 무타구치 렌야라고. 그자를 북만주에서 봤는데, 자기네 천황이란 작자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하더군. 더군다나 수천 년이나 된 왕조야. 그만한 자부심이 없는 게 이상하지.”

       

       

       왕조의 역사가 깊은 한국도, 왕가 자체는 수차례 바뀌지 않았나.

       

       반면, 일본은 천황의 권위가 없을 때도 왕조는 유지되었지.

       

       뭐 메이지유신 이후로 천황뽕이 좀 커지긴 했지만 말이야.

       

       

       “아, 그렇습니까?”

       “뭐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말이야.”

       

       

       만일 2차대전에서 일본이 원래 역사대로 진행된다면 천황가를 보존해 줘야 말아야 할까.

       

       그건 좀 고민이긴 하다.

       

       천황가지고 일본인들 가지고 놀아도 재미있을 거 같기는 한데, 무타구치 렌야가 정권을 세우려면 허수아비 천황이라도 남겨둬야겠지.

       

       우리의 히로히토 씨는 죽어야 할 수도 있지만.

       

       

       “폐하, 그러고 보니 오늘은 채점 하시는 날입니다.”

       “아, 그래. 국가 두마에 가 봐야지.”

       

       

       두마의 반응은 어떨까?

       

       

       

       

       

       * * *

       

       

       기대감을 품고 참석한 국가두마에서는 난리가 났다.

       

       가장 먼저 백군부의 운게른이 굉장히 배신감에 차오른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온 것이다.

       

       

       “폐하. 어찌하여 폐하의 훈장은 우리가 제일 먼저 받지 않은 것입니까?”

       

       

       아, 그래. 그런가. 뭐 저런 반응이 나올 수 있겠다 싶긴 했다.

       

       로마국민당은 아나스타샤 팬클럽이니. 크흠.

       

       나도 모르게 그 기세에 밀려 뒤로 주춤거렸다.

       

       

       “어, 음. 그게 그리도 탐이 났나요?”

       

       

       그거 그렇게 탐할 만한 게 아닌데.

       

       고작해야 훈장 하나다. 그냥 노동자들 잘 굴려 먹으려고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그렇게 적극적인 반응이면 내가 좀 그래.

       

       

       “폐하. 부디 소장에게도 폐하의 훈장을 내려주십시오!”

       “뭐, 그건 노동자용이고, 따로 군인용이나, 국가 두마 의원들에게 내리는 용도도 만들어 둘테니 너무 그러지 말고.”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이거 순간 좀 무서워 보였는데, 괜찮나.

       

       왜 굿즈에 집착하는 아이돌 빠돌이 같지.

       

       자, 두마에서는 좀 더 실질적인, 성과를 듣고 싶다.

       

       

       “자, 그럼 훈장 제도로 인한 성과는 어떻습니까?”

       “폐하. 훈장 덕에 노동자들의 업무 효율이 굉장히 좋아졌습니다.”

       

       

       내 물음에 게오르기 리보프가 대답했다.

       

       

       “그렇습니까?”

       “예, 밤새서 야근하려는 자들도 생기고 있다고.”

       

       

       아니, 그건 좀.

       

       

       “야근을 하면 제가 바라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각별히 주의하도록 하세요. 복지가 최우선입니다. 굳이 할 거라면 로테이션. 그러니까. 시간제 교대 근무로 야간에 일할 사람을 따로 모집하세요. 물론 이것도 기업에 따라 야간근무가 필요한 경우에만 해당입니다.”

       

       

       그리도 일하고 싶다면 조건부로 일해라.

       

       뭐 그것도 결국 어쨌든 야간근무가 가능한 곳만 해당함. 이고 그조차도 밤새 야간근무가 아닌 교대근무라는 소리지.

       

       애초에 딱 할 만큼만 하라고 하는데, 차르의 훈장 하나 받고 싶어서.

       

       

       “알겠습니다.”

       “폐하, 중요한 소식이 한 가지 있습니다.”

       “예?”

       

       

       중요한 소식이라. 대체 무엇일까.

       

       보통 이렇게 기분 좋은 소식이 있다면 다음은 안 좋은 것인데.

       

       

       “영국이 공산독일을 가엾이 여겨 최소한 산업 부흥을 위한 기술자와 인력을 파견하고 베르사유 조약을 좀 더 축소했다고 합니다.”

       “그래요?”

       

       

       그 미친놈들이 기어이 저질렀구나.

       

       기술자와 인력을 파견했다고?

       

       방공협정에 가입해놓고 그런 수작을 벌여?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전익기는 뭐 몇년 좀 빠를지는 모르지만, 막 을미사변으로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친 고종이 우주전함 끌고 오는 정도의 오버테크를 타지는 않아요.

    기존에 Ho-229와 비슷한 수준의 폭격기로만 나오고 러시아가 미래 전익기의 스타트를 끊었다~이 정도가 되지. 막 활약하는 수준이 나올지는 상황을 봐야 알구요.

    작가의 첫 대역이 후삼국 무렵인데, 조총을 갑자기 등장시키는 일을 벌여 좀 욕을 먹은 적이 있어서 오버 테크에 예민합니다.

    현재 러시아인들은 어머니 조국보다는 어머니 차르가 입에 더 달라붙어있어요.

    비중은 적지만, 혹시 몰라 알렉세이 가스테프 사진을 첨부하였습니다.

    선작,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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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Status: Ongoing Author:
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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