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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2

        

         

       성민혁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볼멘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그렇게 투덜거리는 와중에도 시선은 기괴한 형체의 황금 괴인에게 떨어지지 않았고, 언제든 출수할 수 있도록 자세가 잡혀 있었다.

         

       “저 형님은 거 귀찮은 일만 나한테 시킨단 말이지.”

         

       김종수가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짬을 때린다고 한들 감당 못 할 일은 절대로 때리지 않았고, 혹여 위험한 일이라면 하겠다는 것도 만류하고 직접 나서서 해결해주곤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노력에 비해서 터무니없을 정도로 적은 과실을 수확하는 사건 같은 경우에는 온갖 핑계를 대며 후배에게 떠넘기곤 했으니.

         

       다만 그런 일을 해결한 뒤에는 넘치는 돈으로 거하게 술을 사주거나, 가족에게 갖다 주라며 큼직큼직한 것을 안겨주기도 하였으니…. 어찌 보면 귀찮은 일을 가져오는 선배요, 어찌 보면 통 큰 선배이기도 했다.

         

       ‘거 귀찮기는 하지만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 여긴 것 같은데.’

         

       김종수는 절대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짬 때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 저 주술사인지 뭔지를 상대하는 것은 성민혁이 충분히, 손쉽게 감당할 수 있는 일일 터.

         

       그는 가만히 눈앞의 존재를 살펴보았다.

         

       괴인.

       황금으로 이루어진 갑주를 입고 있는 벌레 인간.

       사람인지 괴물인지 알 수 없는 형상의 존재.

         

       어째서 우물에서 튀어나왔는지도 모르겠고, 어째서 사채업자를 죽인 것인지도 모르겠고, 어째서 도망갈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멀뚱멀뚱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더럽게 찝찝하네.’

         

       성민혁은 번들거리는 눈으로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괴인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근처에 후배가 있다면 자신도 똑같이 짬 때리고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기괴한 모습이었으니까.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아니꼬우면 검귀보다 선배여야 했고, 짬 때리려면 근처에 후배가 있어야 했는데.

         

       성민혁은 언제든 기를 끌어올릴 준비를 한 채 괴인을 노려보았다.

         

       노려보았다.

       노려보고, 또 노려보았다.

       번들거리는 눈을 노려보았고, 고개를 돌리지 않고 노려보고, 기감으로 탐색하면서도 노려보고….

         

       그는 그렇게 계속 노려보기만 하다가 갑자기 짜증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 씨발….”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까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눈이라도 깜빡여야 할 것 아닌가?

         

       눈싸움하자는 것도 아니고.

       대체 왜 저런 행동을 한단 말인가?

         

       “대체 뭐하러 온 거야?”

         

       성민혁은 짜증이 나서 자신도 모르게 질문을 던져버렸다.

       그랬다가 앞서 김종수가 ‘주술’이라고 한 것을 떠올리고는 화들짝 놀라 제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진성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번들거리는 눈으로 그 질문에 대답했으니.

         

       “나는 통일 대한민국을 위해서 이 자리에 있느니라.”

         

       그 대답이라는 것은 호국회가 참 좋아할 만한 것이었다.

         

       나라를 위해.

       대한민국을 위해.

         

       호국회가 그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문구가 아니던가.

         

       성민혁은 귀에 달게 들리는 그 말에 저도 모르게 질문을 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질문을 던지는 것이 주술이라면 그 대답 역시 주술일 터.

       어떤 효과인지 모르는 주술의 대상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가 아무리 강한 무인이라고 한들, 예측할 수 없는 주술은 위협적이었으니까.

         

       하지만 진성은 안심하라는 듯 말을 이었다.

         

       “나는 미래를 보았느니라. 땅에 찬란한 태양과도 같은 불길이 피어오르고, 그 빛이 온 세상을 뒤엎었더랬지. 땅거죽을 뒤집어버리고 솟구쳐오른 흙먼지는 먹구름이 되었고, 끔찍한 검은 비를 곳곳에 뿌려놓았다. 그 불길은 옛적에 일본에서 두 번 피어오른 그것과도 같아 참으로 찬란하면서도 모든 것을 흔적도 없이 증발시키는 태양 그 자체였으니. 아, 그것을 보고는 참으로 황망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느니라.”

         

       그가 한 말은 성민혁이 던진 질문의 연장이었으며, 그를 현혹하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성민혁은 그 말을 듣고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라는 거야…?”

         

       마치 짐승에게 경을 읊어준 것 같은, 초등학생에게 대학교 강의를 들려준 것 같은 반응이었다.

         

       그 반응을 보고 진성은 피식 웃었다.

         

       ‘저러니 맡기고 갔구나.’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무식한 귀신은 부적도 몰라본다.

         

       성민혁 역시 그와 같았다.

       말로 현혹하고 싶어도 무식하기 짝이 없으니 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현란하게 비유를 사용한다고 한들 그것을 이해하기는커녕 왜곡하거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그렇다고 말로 구슬리기에는 단순한 데다가 이미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 있으니 거기에 끼어들기 또한 쉽지 않을 것이니.

         

       ‘호국회를 만나 구슬리려고 했거늘, 어디 사람 탈 쓴 짐승이 와서는.’

         

       그가 알기론 본래 이 말세 우물은 호국회가 관리하고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중요하면서도 위험도 자체는 떨어지는 환경이었기에, 호국회 측에서 ‘유망주’라고 여기는 이들이 이곳에 있어야만 했는데….

         

       ‘쯧. 호국회 대신에 애국단이 점령하고, 그것도 유망주가 아닌 잔머리만 잘 굴러가는 노인네가 담당하고 있었으니.’

         

       게다가 나이를 허투루 먹은 것이 아닌지 혓바닥을 잘 놀리는 사람이 상대하기 힘든 인간을 두고 가기까지 했다. 참 골치 아픈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평화적인 방법으로 홀릴 수가 없다면….

       강제로라도 홀리면 그만이 아닌가?

         

       “좋은 질문이다. 그러니 간단하게 말해주겠느니라.”

         

       진성은 짧게, 하지만 무게감 있게 말했다.

         

       “나는 미래를 보았다. 그리고 내가 죽인 것들은 뒈져 마땅한 것들이었느니라.”

         

       그 말에 성민혁은 황당하다는 듯 진성을 바라보았다.

         

       “뭐라고?”

         

       어찌나 어이가 없었는지 주술을 주의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잊어버린 듯했다.

         

       “아니 씨, 그…. 하.”

         

       미래를 본다.

         

       그 말에 성민혁은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더니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러곤 이미 헬기를 타고 사라져버린 김종수에게 문자를 보냈다.

         

       [ 형님. 이 새끼 미래를 본다는데요? ]

         

       그러자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답장이 돌아왔다.

         

       [ 주술사니까 점술은 당연히 볼 줄 알겠지. 무어 그런 걸 가지고 연락하나? ]

       [ 아니 그런 느낌이 아닌데. 진짜 미래 보는 새끼 같다니까요? ]

       [ 거 참. 애가 갑자기 왜 이러나. 평소처럼 헛소리라고 여기면 되는데 왜 이렇게 안절부절못해? ]

       [ 아니 씨, 진짜 분위기가 이상하다니까요. ]

       [ 허튼소리 말고 일이나 잘 처리하거라. 도망치고 숨는 것에 재주가 있어 보이니 놓치지 않게 집중 좀 하고. ]

         

       “이 형님은 참….”

       “마침 잘되었다.”

         

       성민혁은 조용히 문자를 바라보다가 불평을 내뱉으려 했지만, 바로 옆에서 들리는 소리와 화들짝 놀라며 몸을 튕겨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본래 그가 있던 자리에 목을 자라처럼 길게 늘어뜨린 괴인의 머리통이 있음을 보고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어우, 깜짝이야. 이 새끼야, 뭐하자는 거야?!”

         

       자신도 모르게 놀라 던진 질문.

       그 질문에 진성은 입이 찢어질 듯 웃었다.

         

       아니, 실제로 입이 찢어졌다.

       황금 가면의 턱 부분이 쩍 갈라지며 호선을 그렸고, 귀까지 닿을 듯 길게 늘어진 웃음이 그려졌다. 그리고 그려진 선은 점점 깊어지더니 깊은 구멍이 되었고, 그 구멍 안에서 흐느적거리는 것들이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툭.

       투둑.

       투두두두둑.

         

       “올바른 질문을 셋이나 던져 대답을 들었음에도 대가를 지불하지를 않으니. 허, 이거 참 곤란하고 또 곤란하다.”

         

       흐느적거리는 것들은 지폐로 이루어져 있었다. 금가루가 잔뜩 묻은 지폐를 접어 만든 것 같은 수많은 곤충이 살아있는 것처럼 바닥에서 꿈틀대었고, 몸을 이리저리 비틀면서 역겨운 풍경을 자아내었다.

         

       그러다가 웅크린 공 같은 것이 서서히 몸을 일으키더니 주름 가득한 날개를 다림질이라도 한 것처럼 쭉쭉 펼치더니 날갯짓을 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날아오르는 것은 나비 같기도, 나방 같기도 하였는데, 그 모습이 얼핏 보면 구름으로 보일 정도였다.

         

       수없이 많은 지폐 벌레들이 진성의 주변을 맴돌자 바닥에 떨어진 것들 역시 질 수 없다는 듯 몸을 꿈틀거리며 형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뾰족하게 말린 지폐의 끄트머리를 다리처럼 이용해 움직이는 거미가 있었다.

       네모나게 접힌 몸통과 양 끝에 튀어나온 작달막한 뾰족한 수많은 다리를 움직이는 지네가 있었다.

       기다란 뒷다리로 톡톡 튀어 다니는 귀뚜라미와 꼽등이가 있었다.

         

       지폐로 만들어진 역겨운 것들은 진성의 주위에서 들끓었다.

         

       “이보게. 내가 질문에 대답을 해주었는데, 어찌 삯을 주지를 않는가.”

         

       지폐로 만들어진 것들은 진성이 나무라도 되는 것처럼 그의 몸통에 다닥다닥 들러붙었다. 지네와 거미는 다리를 타고 올라가 몸에 붙고, 날개를 접고 몸에 붙었다가 제 자리라고 주장하는 듯 날개를 펼치기도 하였고, 귀뚜라미와 꼽등이는 몇 번 톡톡 튀더니 갑옷의 상체 부근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렇게 달라붙은 벌레들은 다시 지폐의 형태로 돌아가 스티커처럼 황금 갑옷의 표면에 붙었고, 그러한 행위가 몇 번 반복되자 진성의 온몸은 지폐로 뒤덮이게 되었다.

         

       그 모습이 마치.

         

       붕대 대신에 지폐를 휘감은 미라 같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지각해서 죄송합니다…ㅠㅠ
    이따 밤에 한 편 더 올리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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