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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2

        나는 산란으로 힘든 와중에도 모든 감각을 활짝 열었다.

        하지만 남편은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지금껏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내 남편은 나는 물론이고, 이 근처에서 감히 건드리려는 이들이 없을 정도로 기묘한 강함을 가진 존재였으니까.

       

        남편보다 더 거대한 덩치를 가진 괴물도 있었고, 남편보다 더 포악하고 흉악한 괴물도 많았다.

        하지만 그 어떤 존재도 남편을 보는 순간 겁을 집어먹고 물러섰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남편을 감도는 기묘한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 역시 처음 남편을 보았을 때는 겁을 집어먹었으니까.

       

        그렇기에 남편이 이곳을 지키는 한 누구도 이곳을 건드리지 않았고, 그 누구도 함부로 남편의 영역에서 난리를 치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나 들려왔던 남편의 사념이 끊기다니?

       

        ‘느낌이 좋지 않아.’

       

        당장에라도 밖으로 나가 상황을 확인하고 싶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지금 나는 산란을 시도하는 중이고, 알은 이미 자궁에서 빠져나와 골반을 벌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함부로 몸을 움직이려 하는 순간 알은 깨질 것이고, 애초에 알이 골반을 벌리고 있는 상태라서 움직일 수조차 없다.

       

        ‘젠장!’

       

        = 무슨 일이야?! 대답해!

       

        끙끙끙끙…….

       

        답답함과 불안함에 저절로 끙끙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진통은 계속되고 있고, 마음은 답답하고, 불안감을 나를 좀 먹어가고.

        그런 상황이 계속되던 어느 순간이었다.

       

        슈르르륵!

       

        ‘?!’

       

        무언가가 둥지의 입구를 통해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에게 아주 익숙한 것.

        남편의 황금이 입구를 통해 밀려오며, 내가 있는 둥지를 감싸기 시작했다.

       

        ‘이건?’

       

        = 부인.

       

        = 너?!

       

        황금 너머로 들려오는 남편의 사념에 일순간 긴장감이 풀렸다.

        다행이다.

        남편은 무사했다.

       

        = 그곳에 가만히 있어.

       

        = 뭐?

       

        하지만 안심하긴 아직 일렀던 모양이다.

        진통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남편의 황금은 둥지를 꼼꼼히 감쌌다.

        동시에 남편의 사념이 이어졌다.

       

        = 몸이 다 나을 때까지, 그곳에서 나오면 안 돼.

       

        오랫동안 나에게 배운 덕분에, 그의 사념은 이제 제법 대화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매끄러워졌다.

        하지만 그런 그의 사념에서 알 수 없는 떨림이 느껴졌다.

       

        텔레파시는 단순히 생각으로 대화하는 기술이 아니다.

        정확히는 ‘대화’하기보다는, 자기 ‘생각을 전달’하는 기술에 더 가깝다.

        단지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에게는 마치 ‘대화처럼’ 느껴질 뿐.

        그렇기에 텔레파시에서는 때때로 상대방의 감정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지금, 남편의 사념에서는 진한 ‘두려움’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에 대한 두려움인지는 몰랐다.

        상대방이 남편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강자이기에 느끼는 두려움일 수도 있고, 혹은 나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 가만히 있어!

       

        = 아, 안 돼!

       

        나는 서둘러 텔레파시를 보냈다.

       

        = 가지 마! 가면 안 돼!!

       

        부디 남편이 나의 사념을 듣기를.

        그리고 남편이 사라지지 않기를…….

       

        = 가지 마!!

       

        하지만 남편의 사념을 다시 들려오지 않았다.

        영원히…….

       

       

        *            *            *

       

       

        – 어…….

        – 음

        – ㅜ

       

        평소와는 달리 채팅창이 매우 조용했다.

        인간의 눈으로는 제대로 읽기도 힘들 정도의 속도로 올라가던 채팅창이, 이 순간만큼은 매우 느리게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옆에 놓아두었던 음료수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조금 착잡한 감정을 담아 말했다.

       

        “그것이 살아 있는 남편과의 마지막 대화였단다.”

       

        – 엄.

        – …….

        – 그렇군요.

       

        채팅창의 속도가 더더욱 줄어들었다.

        ……뭐지? 평소처럼 빠르게 올라갈 줄 알았는데, 왜 더욱 속도가 느려지는 것일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채팅창을 바라보았다.

        내가 뭔가 이상한 말이라도 했던가? 음?

       

        “왜들 그렇게 말들이 없느냐?”

       

        – 그냥요.

        – 그냥 좀 그럼.

        – 왠지 말 꺼내기 좀 힘든 분위기라서요.

        – 좀 그러네요.

       

        허 참. 신기한 일도 다 있구나.

        내가 방송을 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지만, 시청자들이 이렇게 얌전한 것은 거의 처음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그냥 평소처럼 하거라. 내가 익숙하지가 않구나.”

       

        – 라나님이 허락하셨다!

        – 일어나라!

        – 와아아아아아!!

        – 일어나랍신다!

        – 으랴아아!!

       

        그렇지. 이래야 내 시청자들이지.

        나는 마치 슈르네처럼 똥꼬발랄한 시청자들을 바라보며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하여간에 귀여운 아이들이다.

       

        – 슈르네 같다는 말은 욕일까 칭찬일까?

        – 칭찬 같은데 왜 기분이 나쁠까?

        – 몰?루

        – 그런데 그렇게 되면 사실상 넷째분은 아버지 얼굴을 모르겠네요?

       

        “그래. 슈르네는 아버지를 모른단다.”

       

        이야기에서 말했듯, 남편이 죽은 것은 사실상 슈르네가 알에서 태어나기 전이다.

        그렇기에 슈르네는 남편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은 아이이며, 그렇기에 내 아이들 중 가장 ‘드래곤다운’ 아이로 자라났다.

       

        “남편의 영향을 받은 우리가 있었기에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들어와 있지만, 사실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 중 가장 ‘드래곤’에 가깝지.”

       

        그런 말이 있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나 질투가 아닌, 무관심이라고.

       

        벨제투스와 헤니시아가 인간들을 탐탁지 않아 하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인간들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블레이즈는 자기 마음에 굉장히 솔직한 것이고, 벨제투스와 헤니시아는 자신들의 마음속에 있는 남편의 그림자를 씻어낼 수 없는 것이겠지.

       

        하지만 슈르네는 다르다.

        넷째 아이는 인간과 고대신에 의해 아버지가 죽은 것은 알지만, 그것을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아이다.

        그렇기에 그 아이에게 ‘인간’은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나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찌 보면 공평한 것이겠고, 어찌 보면 무관심하다고 할 수 있겠지.

        마치 ‘요정’처럼 말이다.

       

        – 그 후에는 어떻게 되었나요?

        – 궁금해요.

        – ㅇㅇ

        – ㄹㅇㅋㅋ

       

        “……그 후에 나는 불안해하면서도 무사히 슈르네의 알을 낳는 데 성공했단다. 그 후 지친 몸을 이끌고 남편이 만들어 낸 황금의 고치를 깨고 밖으로 나갔지.”

       

        남편은 몸이 회복된 이후에나 나오라고 했지만, 내가 어찌 그럴 수 있었을까?

        나는 산란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황금의 고치를 깨고 밖으로 나왔다.

        부디 남편이 무사하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밖으로 나온 나를 반긴 것은 남편이 아니었다.

       

        “황폐해진 광경이 보이더구나.”

       

        녹색 지옥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생명력이 넘쳤던 정글 숲은 검게 타올라 재가 되어 있었다.

        나와 내 아이들을 위협했었던 강대한 포식자들마저 뼈다귀가 되어 굴러다니고 있었고, 대지는 쩍쩍 갈라진 채 죽어 있었다.

        메마른 바람이 나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고, 그사이에 섞인 피 냄새가 나의 후각을 후벼 팠다.

        그리고 고개를 내린 곳에는…….

       

        “남편의 팔 한 짝이 반쯤 타버린 채 굴러다니고 있었지.”

       

        그때가 아마 드래곤이 된 이후로 처음 눈물을 흘렸던 때였을 것이다.

        성하지 못한 몸으로 몇 날 며칠을 울었더랬다.

        만약 세 아이들이 자신들의 부상을 제대로 돌보지도 않고 나를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나를 말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 자리에서 울다가 죽었겠지.

       

        “그 후엔 슈르네의 알을 품으며 몸을 추스렸단다.”

       

        아이들의 도움을 받으며 먹이를 먹고, 산란 후의 몸을 회복시키는 데 집중했다.

        정신을 차렸다기보다는, 그저 의무감에 의한 회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 복수는요?

        – 의무감?

        – ?

        – 복수는 안 해요?

       

        “그때 복수심이 있었던 것은 맞단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 복수심을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지.”

       

        왜냐하면 나에게는 지켜야 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남편은 필멸자인 나조차 어찌할 수 없는 초월자였다.

        그렇기에 남편을 죽인 존재는, 분명 남편보다 더 강대한 존재임이 분명한 상황이다.

        그 당시 초월자조차 되지 못했던 내가 덤벼들었다면, 나는 분명히 죽었겠지.

       

        “나에게 아무것도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면, 그렇다면 분명히 나는 분노에 몸을 맡겼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남편이 남겨 준 것들이 많았다.

        남편과의 추억, 남편의 팔, 남편의 황금…….

        하지만 무엇보다 소중했던 것은 나와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었다.

       

        “차마 아이들과 알을 두고 떠날 수가 없더구나.”

       

        그렇기에 나는 슬픔을 머금으며 복수를 포기했다.

        이미 독립한 세 아이들은 그렇다 쳐도, 아직 알에서 부화하지도 못한 넷째 아이를 포기할 수는 없었으니까.

        차마 남편이 자신을 희생해 살려 준 내 목숨과 넷째 아이의 목숨을 둘 다 포기할 수 없었다.

       

        – ㅠㅠㅠㅠㅠ

        – ㅠㅠㅠㅠ

        – ㅠㅠㅠㅠㅠ

        – ㅜㅜㅜ

        – 어머니ㅠㅠㅠ

        – ㅠㅠㅠㅠㅠㅠㅠㅠ

        – 아. 부모님 보고 싶다.

        – ㅜㅜㅜㅜㅜ

       

        채팅창이 이번에는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다만 이전과는 달리, 이번에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창에서는 강력한 ‘슬픔’의 감정과 ‘그리움’의 감정들이 느껴졌다.

        아마 시청자들이 나의 이야기를 듣고, 그 당시의 내 감정에 ‘공감’을 하였기 때문이겠지.

       

        ‘공감이라…….’

       

        공감은 어느 정도의 지능이 존재하는 존재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기술이다.

        하지만 내가 본 모든 생물 중, 가장 ‘공감’을 잘할 수 있는 존재는 인간 이외엔 없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강점이었기에…….

       

        ‘딱히 나쁜 감정은 들지 않는구나.’

       

        어깨를 한 번 으쓱거린 후 음료수를 다시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시청자들의 감정이 충분히 가라앉았다고 생각될 때쯤,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남편의 복수를 포기하고, 혼자서 슈르네의 알을 돌보며 살아갈 때였다.”

       

        먹이를 사냥하기 위해 둥지를 벗어난 나는, 우연한 기회에 인간들이 머무는 곳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뒷이야기의 내용은 다음날로 사라지고, 이곳에는 중간만 남는다!

    이것이 나의 절단마공!!

    음핫핫핫핫!!

    (새드 스토리로 인해 내상을 입어 심마가 든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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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Internet Broadc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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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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