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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2

       “…….”

        

       양혜인은 그 말에, 순간 목이 꽉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분명히,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있었다. 처음 이곳에 와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그저 ‘얌전한 애라 좋다’고 생각했던 것, 그 아이가 당하고 있는 온갖 부조리한 일들을 보고도 못 본 척했던 것, 자신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그 아이가 어떤 상태였는지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그리고—

        

       —그리고, ‘사라’가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생각했던 그 날, 사라가 무사한 것을 보고 그저 안도했던 것.

        

       그래, ‘사라’가 죽지 않아서 안도했던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이 돌봐야 하는 아이가 죽지 않은 것에 안도한 것이다.

        

       ……양혜인은 그날, 사라의 등 뒤에 난 상처를 보고 사라 스스로 낸 상처라고 생각했었다.

        

       사실 그렇게 생각했더라도, 그 자리에서 경찰과 상담을 받는 것이 정상이었다. 아니면 최소한, 등 뒤가 멍으로 가득 찰 동안 스스로를 학대한 사라가 어떤 정신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하기라도 했어야 했다.

        

       아무리 1차원적으로 생각했어도, 등 뒤에 난 상처를 치료하고 올 생각이라도 했어야 했다.

        

       그중에 그 어떤 선택지를 골랐어도, 그저 집으로 다시 데리고 오는 것 보다는, 도망치듯 그 자리를 피하는 것 보다는 훨씬 더 인간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양혜인은 그 모든 선택지 중 하나조차 고려하지 않았다.

        

       그저 그 순간, 그 자신의 처지만을 위해서 움직였던 것이다.

        

       연봉 5억 원이라는, 누가 들어도 혹할 법한 직장을 유지하기 위해서.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회사의 얼굴로 앉아있는 사람의 분노를 사지 않기 위해서.

        

       그 어떤 핑계로 당시의 선택을 포장하고 정당화하려고 해도 그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이상 양혜인은 결코 당시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무리 경찰 앞에서 증언하고 자신의 죄를 고하더라도.

        

       이미 늦어버린 선택으로 한 아이를 죽음에 몰아넣었던 자신의 과거는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게다가—

        

       “…….”

        

       양혜인은 자신을 올려다보는 사라를…… 아니, ‘사라’를 보았다.

        

       웃는 표정이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그것이 자신이 보일 수 있는 기본적인 표정이라는 듯, 굳이 그 외의 표정을 보일 필요가 없다는 듯.

        

       거기에는 분노도, 증오도, 힐난도, 원망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마, 여기서 용서를 구하면, 이 ‘사라’는 받아주리라. 그리고 자신의 안에 잠들어있는 또 다른 사라에게는 ‘용서하기로 했다’라고 말하겠지.

        

       아마 그 사라는 ‘사라’의 말을 믿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으로 정말로 끝일 것이다.

        

       양혜인이 사라에게 저질렀던 잘못은, 그대로 흐지부지된다.

        

       어쩌면 나름대로 죗값을 치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사라’가 바라기에 치루는 대가가 아니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공허한 심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사과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양혜인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죄는 너무나 명확했고, 이렇게 사과를 할 수 있는 순간도 앞으로 쉽게 오지 않을 거라는 것도.

        

       “죄송, 합니다.”

        

       그렇기에, 양혜인은 사과했다.

        

       천천히, 그리고 깊게 허리를 숙이고, 최대한 진심을 담아서.

        

       긴말을 할 수는 없었다. 하나하나 이야기를 꺼내면 그 모든 것이 그저 변명이 되어버릴 것 같아서.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붙이는 사족이 될 것 같아서.

        

       “뭐, 좋아요. 앞으로도 잘 지내봐요.”

        

       “…….”

        

       ‘사라’는 그 사과를, 너무나 가볍게 받아주었다.

        

       “…….”

        

       방 안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으음…….”

        

       양혜인은 여전히 허리를 숙이고 있었지만, ‘사라’는 마치 더 이상 거기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한 태도로 고민에 잠겼다.

        

       “이러면 하나 해결된 건가?”

        

       마치 그런 행동을 처음 해본다는 것 같은 ‘사라’는, 그저 한 문제 풀었다는 듯한 분위기로 그렇게 말했다.

        

       “……어…….”

        

       결국, 이번에도 입을 연 것은 하늘이었다

        

       “그, 내가 하나 말해도 될까?”

        

       “상관없어.”

        

       하늘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사라’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이며 대답했다.

        

       하늘은 숨을 살짝 들이마시고 말했다.

        

       “……사과받는 사람한테 어떤 태도를 요구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 결국 사과와 용서는 받는 사람한테 맞춰주는 거니까. 하지만…….”

        

       “하지만?”

        

       진짜로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라’에게, 하늘은 조금 고민하면서 말했다.

        

       “혹시, 정말로 화가 나지 않는 거야? 지금까지 그런 취급을 받으며 지냈잖아. 그러니까…… 너를 그렇게 따돌린 아이들에게 어떻게든 복수하고 싶다거나, 사용인들이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게 하고 싶다거나…….”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사라’를 보고, 하늘의 목소리가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조금 바보같이 느껴졌다.

        

       그래, 사과를 받아주는 것은 받아주는 사람의 마음이었다. 그런 것을 마치 옆에서 훈수 두듯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그런 거지? 옛날이야기의 악당들처럼, 뭔가 죗값을 치르게 한다거나.”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사라’는 말했다.

        

       “그렇, 지?”

        

       하늘은 조금 자신 없게 대답했다.

        

       “흐음.”

        

       ‘사라’는 그 자세 그대로 한참을 생각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지.”

        

       그리고 목을 긁적이며, 마치 과거의 기억을 되짚듯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니까…… 어렸을 때는, 그렇게 하고 싶었지. 사실 죗값을 치르게 하고 싶다기보다는 그냥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게 싫었으니까. 실제로도 가만히 있지 않았어. 너희들도 내가 써둔 거 읽었다며?”

        

       ‘사라’가 자신의 책상 서랍을 눈짓하며 말했다.

        

       “저기도 써 놨을 텐데? 사용인들을 때리고 할퀴고 깨물고 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바뀌지 않는 걸 어쩌겠어? 그 사람 다음부터는 할 수 있는 게 얼마 없어. 그냥 말없이, 바라지 않는 법을 배우는 거야.”

        

       “…….”

        

       ‘사라’는 마치 별일 아닌 옛날이야기를 꺼내듯 아무렇지 않았지만, 이야기를 듣는 처지에서는 함부로 입을 열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이야기였다.

        

       그저 남들과 같은, 평범한 것을 바랬지만, 아무것도 이룰 수 없었기에 바라지 않는 법을 배우고 만 어린아이.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 계속 ‘바라지 않고’ 살아온 것이다.

        

       그렇기에 ‘사라’는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이 처벌받기를 ‘바란 적이’ 없다. 자신에게 용서를 구하기를 ‘바란 적이’ 없다. ‘사라’가 바랬던 것은 그저 자신을 찾아오는 유일한 사람, 말을 걸어주는 유일한 사람인 최나경의 관심뿐이었다.

        

       “…….”

        

       하늘은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까지 대화가 성립했기에, ‘사라’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아이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바라고, 친구를 바라고, 가족과 부모의 사랑을 바라는 평범한 아이.

        

       하지만, 그건 상황을 너무 긍정적으로만 본 것이었다.

        

       ‘사라’가 사라에게 영향을 받아 원래의 ‘사라’보다 훨씬 더 밝고 적극적으로 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라’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사라’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부터, 이미 그 한참 전부터, 망가져 있었다.

        

       가족의 사랑이 가장 절실한 그 순간에 ‘사라’는 그 모든 사랑으로부터 유기되었다. 텅 빈 저택에 갇혀서…… 너무나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너무나 외로운 나머지, 그 외로움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마침내, ‘바라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바라는 존재가 지극히 한정적이었다.

        

       ‘사라’가 말하는 어머님, 즉, 최나경 아니면 사라. 이렇게 두 사람뿐.

        

       그나마 ‘사라’와 사라의 반응으로 보면 최나경을 만나는 것은 앞으로 주의할 듯싶었지만.

        

       지금 이렇게 ‘사라’가 바깥으로 나온 것도, 그저 사라가 죄책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그런 거야. 나는 딱히 바라는 거 없어. 내가 바란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전부 사과할 것도 아니고. 사과한다고 해서 내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내 어린 시절이 바뀌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지금까지 지내왔던 것처럼, 이렇게 지내면 그만이잖아?”

        

       ‘사라’는 그렇게 말하고는, 빙긋 웃어 보였다.

        

       “이렇게 친구들도 생겼고. 내가 어딜 가나 함께 해주는 사람도 있고. 돈 같은 게 부족할 일도 없잖아. 그러니까, 그걸로 된 거 아니야?”

        

       얼핏 들으면 그건 너무나도 긍정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마치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던 사람이, 드디어 약간의 재산을 얻은 뒤에 ‘이거면 됐어.’하고 만족했다는 듯 걸음을 멈춰버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철저하게 수동적인 존재. 옆에 누가 없으면, 그대로 무너질 위태로운 존재.

        

       그 방 안에 있는 사람 중, ‘사라’를 보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후원 감사합니다!

    익명으로 후원해주셨기에 독자닉네임 기능으로 인사드립니다!

    사실 이 작품과 다른 작품 중 하나를 두고 고민하다가 이 작품을 먼저 선택했습니다. 아마 선택하지 않은 작품은 전개를 조금 더 보완해서 이 작품이 끝나고 연재에 들어갈 것 같네요. 둘 다 현대가 배경이지만, 다른 쪽의 작품은 이 작품보다는 더 판타지에 가까운 내용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을 처음 설정할때는 이것 보다도 더 판타지 요소가 많을 예정이었습니다. 아직 최나경이 남자였던 설정에선 ‘사라’가 원래의 인격이 아닌 유령으로 나올 예정이었어요. 그런데 기껏 100화 가까이 연재한 다음 나올 캐릭터가 갑자기 유령이라는 극 판타지 설정이면 괴리감을 느끼는 분이 많을 것 같아 설정을 다소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원작의 사라도 일주일 정도 있다가 성불하는 조연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독자 여러분의 반응을 보니 제가 설정을 제대로 잡은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독자님께서 꾸준히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늘도 저의 소설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따라랏쥐님, 후원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저의 소설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일같이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께서 계시기에 이렇게 즐겁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처음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것도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었고, 이렇게 매일매일 글을 쓰는 것도 그런 분들이 기다려주시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모두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처음 쓸때만 하더라도 읽어주시는 분이 얼마나 될까 걱정을 많이 했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면 쓸수록 선작수도 늘고, 조회수도 늘고… 저의 글에 댓글을 달아주시고 추천해주시는 분들이 늘어서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유료 연재는 처음이라서 걱정이 많았었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께서 꾸준히 읽어주시니 너무나 기쁩니다. 제가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여러분 덕분이라는 것을 절대로 잊지 않고, 완결까지 꾸준히 연재해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후원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저의 소설을 읽어주시며 쓰신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도록, 앞으로도 꾸준히 노력하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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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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