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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2

        

         철렁한 가슴을 부여잡고 목젖 바로 언저리까지 튀어나온 쌍소리를 간신히 삼켰다.

         아니, 내가 잘 관리했다기보다는. 욕설을 삼키지도 못하고 그저 밖으로 내뱉아지려는 상태와 비틀린 채로 굳어버린 얼굴 근육 사이에 기적적인 균형이 성립하고 있다 하는 게 맞겠다.

         

         ‘이 시발 음흉한 에나마 놈들… 다 알고 데려온 거 아니야…?’

         

         창고에 다른 사람이 더 있어 보이진 않았고 만일 매복이 있었다면 제로가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어서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기는 했는데.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고 비유적으로 떠들던 게, 진짜 내릴 타이밍을 놓쳐서 호랑이 굴 안쪽까지 끌려온 기분이다.

         

         …정신 차리자. 아직 아무것도 확정된 건 없다.

         나머지 둘이 도매금으로 넘어가서 같이 온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정말 확신이 있었다면 추적자 한 명이 돌아다니면서 정중하게 마중을 나올 게 아니라 본격적인 대응 부대가 쫓아왔겠지.

         

         게다가 시간이 꽤 지났으니 그동안 다른 연구소가 공격받았던가… 하는 황당한 사건이 있었을 법도 하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나와 연관 짓기는커녕 저쪽이 말하는 것과 이쪽의 실체험이 같은 일이라는 보장도 없었으니까 괜찮다. 괜찮을 것 같다. ……아마도?

         

         “흐응……♪”

         “…….”

         

         의뢰는 대략적인 개요와 윤곽만 나온 상태임에도. 마리나는 어딘가 기분 좋아 보이는 콧소리를 내며 입가를 매만졌고, 켄은 사정없이 얼굴을 구겼다.

         

         어느새 옆으로 빠져 관찰자 입장에 사무치는 추적자의 눈길이 매서웠다.

         

         이 자리에서 감시할 대상이라곤 외부 해커들뿐이기에 당연할 수도 있지만, 온전히 실력을 평가받아서 모은 게 우리라면, 살짝 문제가 될 수 있는 인성이나 과거 행적(…)에 관한 불신은 부디 그만두어 줬으면 좋겠다.

         

         “업무 시한…… 그러니까 계약 기간은 약 3개월로 상정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 모든 외부 연락은 물론 차단, 숙식도 전부 이 안에서 해결하게 되실 예정이며 필요한 물품이 있다면… 여기 전담 요원에게 말씀하시면 다른 직원들이 공수해올 겁니다.”

         

         ‘전담 요원’으로 지시어가 굉장히 순화되었지만, 어쨌든 언급된 추적자 형씨는 날카로운 시선을 거두고는 슬쩍 고개를 숙여 보였다.

         비록 임시로 고용되는 형태라 해도 에나마를 위해 일한다 하니 최소한의 존중은 보여주려는 걸까.

         

         사실 그보다는 여기서 먹고 자고 합숙을 하면서까지 일해야 한다는 점이 더 거슬렸다.

         

         얼핏 보기만 해도 작업량이 만만치 않아 보여서 설마설마 했는데 이런 장기 의뢰일 줄이야…. 시간 낭비를 어떻게든 줄이고 죽어라 몰두하라는 건가? 일개 용병 겸 뒷골목 해커들이 무슨 의리가 있다고 메가코프 문제에 그렇게까지 힘써 주리라 믿는 거지…?

         

         “3개월간 여러모로 불편사항을 강제하는 만큼, 세 분의 수면 시간이나 여가 시간 자체도 특근 개념으로 포함. 거기에 사이버 엔지니어라는 고급 인력이라는 점도 더해 약 4억 크레딧가량이 기본급 예산으로 책정되어 있습니다.”

         

         “어우야.”

         

         뭐긴 뭐야. 존나게 많은 돈이겠지 그래.

         역시나 메가코프답게 씀씀이도 엄청(Mega)나시다.

         

         그동안 깨작대던 소일거리에 비해 0이 한두 개쯤 더 붙은 보수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비서 씨의 단어 선택을 들었을 때 집행 명목이 기본급 예산이라는 건 마땅히 상여금도 따로 있다는 건데….

         

         “…또한 원래 마감시한보다 자료 복구를 앞당기실수록 성과급이 추가됩니다. 구체적으로는… 하루마다 3천만 정도가 가능하겠군요. 또한 침입자의 흔적을 찾으실 경우 중요도에 따라 최대 1억, 아예 신원을 특정할 만한 증거를 확보해주신다면…….”

         

         거기서 말을 끊은 비서 씨는 씨익 하고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기대해도 좋다… 라는 희망적인 의미를 담은 건 잘 알겠는데, 이런 분위기에서 그래봐야 흉흉하게 느껴진다는 건 알려나 모르겠네.

         

         하지만 일단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가치는 충분히 제시 받았으니.

         인당 못해도 1억 3천만 크레딧과 성과에 따라서는 2억은 우습게 챙길 기회라면… 과연 들었던 말마따나 ‘큰 건’이 분명했다.

         

         “뭔가 특별히 궁금한 점이 있으십니까? 제 권한으로 열람할 수 있는 정보, 특히나 작업에 임하는데 필요하다면 아낌없이 제공할 수 있습니다만.”

         

         “음…….”

         

         고민하는 척을 하면서 주변을 눈치를 봤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길래 우리 같은 외부 인력을 조달했는지가 궁금하기는 하나, 여기서 선뜻 나서도 괜찮을지 믿음이 좀 부족했기에.

         

         때마침 켄이 포문을 열어준 건 딱 좋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에… 에나마의 연구소가 물리적으로 습격받거나, 대대적으로 공격당했다는 소식은 전혀 들은 적이 없는데… 이거 괜히 저희가 엄한 죄라도 뒤집어쓰는 건 아닌지….”

         

         질문 자체는 상대방을 향하고 있었으나 그 내용은 모두에게 해당되는 타당한 지적.

         의뢰주가 진실을 은폐한 채, 피고용자를 형편 좋게 부려먹으려 든다는 일은 언제나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법이다. 그리고 원죄를 덤터기 쓸 가능성도 있다면 더더욱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고.

         

         그런 교묘한 문제점이 해결된다면 우연히 찾아온 목돈 마련의 기회를 잡는데 나는 아무런 불만이….

         

         “…문제가 발생한 연구소가 사막 한가운데 외딴 곳에 있어서 세간에 일절 흘러 나가지 않도록 정보통제가 원활하게 이루어졌을 뿐입니다. 그 부분은 전적으로 에나마를 믿고 안심해주시길.”

         

         “픕?!”

         

         ““……?””

         

         …아주 많았다! 존나 불만밖에 없었다!!

         일단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온 당혹성으로 인해 집중된 이목은 침을 삼키다가 사레가 걸렸다며 손사래 쳐서 어찌저찌 반쯤 무마했다.

         

         사소한 생리적 실수에 곧바로 흰 눈 치켜 뜨는 매정한 사람은 여기 없었지만, 이미 내 안에서 의뢰를 받아서 크게 벌어본다는 선택지는 싹 사라졌다.

         

         세상에 경찰서에 취직하는 도둑도 아니고 나는 과거의 나와 대결할 생각도, 스스로 들어가서 누울 무덤을 파는 취미도 없었으니까.

         

         이미 위험한 부분까지 얘기를 들어버린 이상 저 작업이 끝마쳐질 때까지 어디 구류될 수도 있으나 차라리 그걸 감수하는 게 나으리라.

         

         그렇게 순조롭게 돌아가는 업무 협약 분위기와는 관계없이 갈 길을 가려던 찰나.

         거절하려는 결심을 굳힌 내게 제로가 전혀 새로운 견해를 제시해왔으니.

         

        – …아샤님, 이건 무조건 수락하셔야 합니다. –

         

         ‘엥…?’

         

         대체 왜 이놈아.

         

         실없는 소리를 할 녀석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위험한 다리를 건너는 걸 권유한 적 없는 애가 갑자기 안전 지향적인 결정에 반대를 하니 당황스러웠다.

         

         요즘 드로이드 부품이나 안드로이드 카탈로그를 열심히 들여다보더니 돈 욕심이 좀 생겼나?

         ……절대 아닌데. 그런 이유로 목숨 리스크를 감수하자 할 정도로 생각이 짧은 케어봇이.

         

         – 직접 남아서 일이 돌아가는 추이를 지켜보시고, 진행도를 제어할 둘도 없는 기회입니다. 만약 당장 발을 빼신다면… 오히려 저들이 너무 많은 걸 밝혀낼 지도 모릅니다. –

         

         ‘…오호라.’

         

         과연 말도 안 되게 합당하고 합리적인 이유가 존재했다.

         

         두 사람을 곁눈질했다.

         한 명은 추측이지만 완전 기억 능력자, 다른 하나는 약간 소심하지만 그 실력은 추천받아서 모인 해커 중에서도 유별나리만치 준비성이 철저한 전문가.

         

         실질적으로 다른 팀들보다 두 배 가까이 빨랐던 시스템 해킹 속도는 오롯이 둘이서 일궈낸 독보적인 기록인 만큼, 지금 내가 나 몰라라 하더라도 틀림없이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었다.

         

         든든했던 아군이 한순간에 견제해야 할 말썽거리들로 바뀐 건 그다지 달갑지 않았지만.

         다르게 보면 에나마와 나의 악연을 완전히 덮으면서도 저 치들의 돈까지 빼먹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얘들아, 진짜 미안한데 성과급은 포기해라. 사실 기본급만 해도 충분히 세잖아? 어디 가서 이력서에 당당하게 쓸 수 있는 일이 아니기도 하고 말이야.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데…? 이런 대기업이 뭐가 아쉽다고 저희한테….”

         

         “쯧쯧. 우리 부끄럼쟁이는 의심은 할 줄 아는데 크게 볼 줄은 모르는구나?”

         

         어딘가 껄끄러운 듯 웅얼거리는 켄을 제치고 마리나가 앞으로 나섰다.

         아직도 사람 좋은 미소를 띠고 계시는 비서 씨와 마주한 그녀는 그 너머의 의중을 읽어낸, 자신의 추측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기업에는 원래 이럴 때 쓰려고 채용한 직원들이나 협력 업체…. 사실 에나마쯤 되면 같은 메가코프인 엘리시움 사와 맺은 보안 협정이 분명 있을 텐데, 굳이 이렇게 크레딧을 뿌려가며 극비리에 일을 진행하려는 이유가 뭐겠어?”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추적자와 말없는 비서의 눈치를 한 번 본 마리나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보란듯이 서버랙에 기대고 섰다.

         

         세상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은 채로.

         

         “모두가 의심스러운 거야. 말 그대로 모두가. 다른 기업, 보안 전문가들, 심지어 내부 직원조차 함부로 믿지 못할 정도로. 그렇지 않고서야 업계 최고도 아니고 우리처럼 딱히 유명하지도 않은 하류 인생들을 구태여 발굴해서 쓰려고 들겠어?”

         

         거기까지 듣자 내가 친 사고가 여러 우연과 오해가 겹쳐 생각보다 큰 불신으로 번졌다는 자각이 들었다.

         

         이거… 자칫하면 원작에서 터져야 할 아마기 가문의 권력항쟁이 지나치게 일찍 터질 수도 있겠다는 최악의 가능성도 떠올랐고.

         

         내키지 않더라도 관여해야 할 이유가 또 추가되었네.

         

         “아마 너나 귀염둥이가 하기 싫다고 해도 발을 빼기는 늦었을 걸? 거기 비서 아저씨? 우리가 못한다고 하면 순순히 보내줄 거야?”

         

         “…당연히 안 됩니다. 여러분이 작업하시는 도중에 사람을 더 구할지언정, 이제 와서 또 다시 해커를 수소문하고 배경을 검증하기엔… 일정이 너무 촉박하군요. …발자취가 수상한 인물을 고용해야 할 정도로 말입니다.”

         

         그의 미소가 한층 깊어졌고. 내 피부엔 오싹 소름이 돋았다.

         수상하다는 대목에서 노골적으로 이쪽을 쳐다본 게 착각이라면 좋겠지만 그들이 내 배경은커녕 입국기록만 조사했더라도 무슨 의심을 하고 있을지는 뻔하디 뻔한 노릇이었다.

         

         …파라다이스 사와 저는 어디까지나 철저한 비즈니스 관계라는 점, 이 자리를 빌어서 명확히 하고 싶은데요. 네.

         

         다행히 협상 대표로 나선 마리나도 그다지 떳떳한 기록이 없는 건 마찬가지인지 황급히 주제를 돌렸다.

         

         “읏…! 어쨌거나! 아저씨 직함이 수행비서라고 했으니, 더 높으신 분의 의향에 따라 움직이는 거겠지? 그런 것 치고는 보수가 좀 짠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않아? 응?”

         

         “”와…….””

         “…….”

         

         배시시 웃으면서 두 손을 마주 비비는 그녀를 우리는 얼빠진 표정으로 쳐다보았고 에나마의 계약 담당자인 비서는 여전히… 약간 경직된 미소를 보여주셨다.

         

         결국 뭐야. 장황한 설명과 아슬아슬한 추측까지 일삼은 이유가 조금이라도 단가-몸값-을 올려보려는 수작이었어? 크게 될 인물이네 아주.

         

         허나 어떻게, 힘 좀 써보라며 부추기는 언사를 일삼던 경망스러운 입이 권위와 외압에 굴복하는 데는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원래는 계약이 종료되고 임금이 지불되는 날, 비밀유지서약용 칩을 임플란트에 심게 되어있으나. 귀하는 오늘 당장 수술부터 받고 가시는 게 좋을 것 같….”

         

         “자!! 우리 공주님과 도련님?! 빨리 일합시다 일…!!”

         

         자기가 언제 똥폼을 잡고 있었냐는 듯, 마리나는 전력으로 도망쳤다.

         …에나마 코퍼레이션의 자료 복구 의뢰 0일차. 투입된 직후에 있었던 일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기어이 고용된 범인. 이건 마치 은행의 돈을 털기 위해 은행에 취직한…!

    하루 치 밀린 게 해소가 안 되네요. 진짜 면목없고 죄송합니다….

    나니시 님이 정시 연재하던 작가를 돌려달라 말하시며 50코인을 후원! …무릎에 화살을 맞기 전까지는 저도…!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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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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