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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2

   라헬른 아카데미 2기생.

   황녀를 시해하려 했던 메리 다이아나의 사촌 동생이자 다이아나 가문의 방계인 그는 경기장 위에 올라와 서 있었다.

     

   그의 앞에 있는 것은 제국의 지방 세력의 자제.

   글렌과 달리 상당히 두꺼운 검면의 자루를 들고 있는 그는 글렌을 보며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다이아나 가문의 위상도 다 떨어졌네. 제국의 귀족이라는 게 스타론의 편이나 들고 말이야.”

     

   모멸 섞인 말을 들은 글렌은 창을 빙글 돌려 쥐었다.

   그 자세는 무척이나 익숙해 그가 얼마나 창을 오랫동안 휘둘러 왔는지를 보여줬다.

     

   “스타론의 편을 든 게 아닙니다. 제 기사도를 따라 저와 같은 2기생이 불합리함을 겪는 게 싫을 뿐입니다.”

   “기사도는 얼어 죽을. 황녀 시해하려 한 미친 여자가 나온 가문에 기사도가 어디 있냐.”

     

   글렌은 눈썹을 꿈틀거리고는 그에게 창을 겨누었다.

     

   “누님이 한 짓은 사형당해도 할 말 없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그토록 존경하던 메리는 이제 없다는 걸 그도 잘 안다.

   황녀를 시해하려 한 메리는 평생 죄인의 낙인에서 도망칠 수 없으니까.

     

   “그러나 그렇다 한들 제가 기사도를 지키지 않을 이유도 없습니다.”

     

   글렌의 검은 눈이 흉흉하게 빛났다.

   그 기세가 상당해 제국파 일원도 주춤거릴 정도였다.

     

   1년간의 훈련으로 그들 또한 혹독하게 성장하긴 했으나.

   세상에는 재능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지방 세력의 일원인 그들의 평균은 아카데미에서 중간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분명 1년만 지나더라도 특급과의 아이들은 전원 그들을 압도적으로 추월할 게 분명했다.

     

   그러니 제국파 일원은 검을 꽈악 틀어쥐었다.

   그들의 콧대를 꺾을 수 있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다.

     

   “어디 몰락한 중앙 귀족이 지키는 기사도 좀 보자.”

   “시작!”

     

   심판 학생의 시작 음과 함께 제국파 일원이 즉시 검을 들어 올렸다.

   그가 행한 것은 당연히 방어였다.

     

   아까 전 발락을 꺾은 그다.

   그러니 이번에도 방어를 택해 다음 사람을 위해 체력을 빼줄 작정이었다.

     

   하지만 왜인지 검에는 아무런 타격도 오지 않았다.

     

   제국파 일원이 의아함을 보였을 때.

   글렌은 아까 전 자리에서 한 걸음도 떼지 않고, 창을 쥔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제국파 일원의 눈에 의문이 깃들었다.

   공격을 안 하고 저기서 뭘 한단 말인가.

     

   “잔머리를.”

     

   그러는 순간 뒤에서 혀를 차는 판드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닫는 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저쪽도 이쪽과 똑같이 공격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런, 썅, 아까 전 기사도 언급하지 않았느냐! 그런 놈이 비겁하게 나와?!”

   “왜 비겁을 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전투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습니다. 기사도를 그런 바보 같은 것에 논하지 마시죠.”

     

   글렌은 제국파 일원이 한심하듯 바라보았다.

     

   “그리고 상황이 틀어졌다고 바로 욕설을 내뱉으시다니. 중앙 귀족이 되고 싶은 거라면 우선 그 상스러운 말투부터 고치는 게 어떻습니까.”

     

   다음 말은 제국파 일원의 초점을 제대로 건드렸다.

   그의 얼굴이 열이 잔뜩 받아 새빨갛게 물들었다.

     

   [ 저거 너도 포함된 말 아니더냐? ]

     

   그리고 왜인지 크라슈도 해당하는 말이라서 뒷머리를 긁적였다.

   저놈은 왜 갑자기 팀킬 하는 걸까.

     

   [ 그보다 저 아이 너랑 똑같은 짓을 하려고 하는구나. ]

     

   크라슈는 그 말을 듣고, 글렌을 바라보았다.

   크림슨가든의 말대로 글렌은 크라슈와 똑같은 행동을 하나 하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창에 오러를 응축시키는 것이었다.

   창의 겉면에 미약한 오러의 층이 만들어지며 오러가 차츰차츰 창에 덧씌워지고 있었다.

     

   검귀의 거합술과 비슷하게 말이다.

     

   아직 제국파 일원은 눈치 못 챈 모양이지만 저런 기술을 자주 써온 크라슈의 눈에는 선명히 보였다.

     

   [ 입학식에서 본 걸 따라 하는 거겠지. 저놈도 난놈은 난놈이구나. ]

     

   그야, 그래도 메리와 같은 창의 명가 다이아나의 핏줄이니까 말이다.

     

   위력은 어떨지 몰라도 나쁜 선택은 아니다.

   저쪽이 어영부영하는 사이, 방어를 한다 해도 뚫어 버릴 한 방이 만들어질 테니까.

     

   “리드, 그럴 때가 아니야.”

     

   그러는 순간 판드라가 제국파 일원에게 경고했다.

   대련에서 바깥 녀석들이 말을 거는 건 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지만.

     

   이번 승부에서 반드시 이겨야 하는 판드라에게 그딴 건 없는 모양이다.

     

   제국파 일원인 리드는 판드라의 말을 듣고서야 글렌을 보았다.

   글렌의 창 위에서 금빛의 뇌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메리 녀석과 같은 색깔의 오러였다.

     

   “윽!”

     

   리드가 급히 검을 바꿔 쥐었다.

   그러고는 녀석이 바닥을 박찼다.

     

   ‘악수를 택했네.’

     

   크라슈는 방어를 포기하고 달려 나가는 리드를 보며 끝났음을 직감했다.

     

   상대와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택한 방어를 내려놨으니.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파지지지지직!

     

   터져 나온 금빛의 섬광과 함께 글렌의 창이 달려오는 리드를 향해 급습했다.

   글렌이 힘을 더 모으기 전에 치려 했던 리드는 검을 휘두르고 있었지만, 글렌의 창이 더 빨랐다.

     

   메리와 같이 엑셀이 없음에도 신속하기 그지없는 창이 리드의 검을 날려 버렸다.

   동시에 리드의 몸에 닿음과 함께 뇌기가 폭발하며 리드가 경기장 밖으로 튕겨 나갔다.

     

   쿠당탕!

     

   리드가 바닥을 나뒹굴고 그가 들고 있던 검이 바닥에 푹하니 박혔다.

   한순간에 승부가 난 것이다.

     

   판드라가 눈을 부라리는 것이 느껴졌다.

     

   글렌은 창을 빙글 돌리며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크라슈는 글렌에게도 여파가 없지 않음을 느꼈다.

     

   ‘무리했네.’

     

   고작 눈으로 보고 따라 하기에는 생각보다 힘든 기술이다.

   크라슈도 검귀의 팔을 얻었기에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었으니까.

     

   당연히 그 무리한 여파는 그대로 글렌의 몸에 드러났다.

   특히 팔 쪽이 희미하게 떨리는 것이 상당히 무리했음이 느껴졌다.

     

   어떤 식이든 다음 전투에서는 더 이상 크게 활약 못 할 것은 확실했다.

     

   “하링, 준비해야겠다.”

   “응.”

     

   그래도 수는 착실히 줄여 주고 있으니 됐다.

   크라슈는 아르솔더 쪽을 힐끗 보았다.

     

   마지막에 저놈만 남겨 주면 된다.

     

     

   * * *

     

     

   그다음 경기, 글렌은 의외로 생각보다 선전했다.

   처음에 제국파 일원이 했던 것처럼 그도 방어만 하며 상대의 체력을 깎아 냈기 때문이었다.

     

   그 탓에 무리한 글렌이 더 회복하기 전에 밀어붙이던 제국파 일원은 체력이 상당히 꺾여 나갔다.

   그가 지쳤을 때 글렌이 마지막으로 쥐어짜 넣었던 카운터가 정확히 맞아떨어졌고, 그 결과 제국파 일원 쪽이 뻗어 버렸다.

     

   물론 그걸로 글렌 또한 더 이상 경기를 치를 수 없게 되었다.

     

   “두 명이다.”

     

   글렌이 심판에게 부축받아 내려오며 발락에게 자랑하듯 말했다.

     

   “으이씨, 저쪽이 무슨 전략인지 내가 다 보여줬잖아. 내가 진 거 아니야!”

     

   발락은 분한 듯이 외치자 글렌은 씩하니 웃더니 크라슈 쪽을 힐끗 보았다.

   아까 전 크라슈와 비슷하게 힘을 모았던 글렌은 그게 얼마나 힘든 비술인지 몸소 체험했다.

     

   입학식 때 그걸 아무렇지 않게 터트리고 다니던 크라슈가 얼마나 노력했을지 그는 조금 전 결투로 알았다.

     

   ‘누님이 약한 게 아니라 본인이 강하다는 말.’

     

   그 말은 생각 이상으로 확실한 말일지도 몰랐다.

     

   “고생했다.”

     

   그러는 순간 내려온 글렌에게 크라슈가 툭 던지듯 말했다.

   그 말이 왜인지 자신의 기사도가 헛되지 않은 것 같아 글렌은 뿌듯한 마음이 차올랐다.

     

   “그래.”

     

   글렌의 대답과 함께 하링이 경기장으로 올라가려 했다.

   크라슈는 그런 하링의 어깨를 툭 잡았다.

     

   “넌 아직이야.”

   “응? 방금전에 준비하라면서.”

   “그거 말고.”

     

   크라슈는 하링의 독주머니를 스윽 가리켰다.

     

   “우리는 그게 있잖냐.”

     

   하링이 눈을 깜빡였다.

     

   “너희들 이리로 와봐.”

     

   그러거나 말거나 크라슈는 2기생들을 불러 모았다.

     

   제국파는 현재 3명이 리타이어.

   2기생으로 이루어진 크라슈 팀은 2명이 리타이어다.

     

   수만 따지고 보면 크라슈 쪽이 유리하긴 하지만 하링과 크라슈를 제외한 나머지 2기생들의 실력은 격차가 많이 난다.

     

   모여든 2기생들의 눈에 굳건한 의지가 차올라 있었다.

   발락과 글렌의 고군분투를 보고 자기들이 뭐라도 하겠다는 모습이었다.

     

   이래서 발락과 글렌을 먼저 내보낸 거다.

   이 녀석들이 먼저 나갔으면 지레 겁먹고 있었을 테니까.

     

   크라슈는 하링에게서 받은 독주머니를 열었다.

   그러고는 내용물을 살핀 뒤 한 명, 한 명에게 건네주었다.

     

   “너희 이기고 싶지.”

     

   크라슈가 질문하자 2기생 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여기 있는 건 전부 스타론 쪽 학생들이다.

     

   제국과 스타론은 먼 과거부터 다툼이 많았고, 스타론의 귀족 자제들은 당연히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그들의 몸에는 제국이라면 반드시 꺾어야 한다는 불사의 항쟁이 깃들어 있었다.

     

   게다가 지금 그들은 크라슈의 앞에 있다.

   스타론의 실세라 할 수 있는 발하임의 직계.

     

   그런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도 스타론 2기생들은 전력을 다할 터였다.

     

   “그렇다면 그거 하나씩 입에 넣고 가서, 싸우기 직전에 먹어.”

   “크, 크라슈 님, 이게 뭐랍니까?”

     

   한 명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그들도 라그렌 가문의 이야기는 들어 본 적 있을 것이다.

   그런 라그렌 가문의 직계인 하링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니 당연히 꺼림칙할 수밖에 없었다.

     

   “독단.”

     

   그리고 그들의 꺼림칙한 생각에 크라슈는 확신을 넣어 주었다.

   질문을 했던 이가 입을 꾹 다물자 크라슈는 그들의 어깨 위에 팔을 둘렀다.

     

   “걱정하지 마. 죽는 건 아니야. 그냥 조금 몸이 고생할 뿐이지. 별문제 없다. 하지만 내가 장담할게. 이거 하나면 너희들도 제국파 1기생을 쓰러트릴 수 있을 거다.”

     

   크라슈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끈기 하면 스타론인데. 우리 스타론에 약한 소리를 하는 이는 없잖으냐.”

     

   스타론 2기생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크라슈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고개를 기울였다.

     

   “왜 다들 대답이 없어.”

   “당연한 말입니다!”

   “이기겠습니다!”

   “스타론 만세!”

     

   크라슈는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악마 새끼. ]

     

   크림슨가든이 뭔가 말한 것 같긴 한데 크라슈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단지, 자기 말을 충실히 따르는 2기생들을 뒤에서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2기생 중 한 명이 독단을 입에 문 채 경기장으로 올랐다.

   그러자 마침, 올라오던 제국파 일원이 2기생을 보고는 코웃음을 쳤다.

     

   “하, 새파랗게 어린놈들이.”

     

   하링과 맞붙을 줄 알고 조금 긴장했던 그의 모습이 한순간에 풀렸다.

   완전히 얕잡아 보는 행동의 스타론 2기생은 욱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또한 자존심이 있다.

   이런 식으로 무시당하려고 라헬른 아카데미에 들어온 게 아니었다.

     

   그러니 결심이 섰다.

     

   까득!

     

   그가 입에 물고 있던 독단을 깨물었다.

   그러자 그의 오러가 샘솟아 오르며 근육이 이전과는 눈에 띄게 부풀었다.

     

   “훅!”

     

   당겨진 숨에서 넘치는 힘이 흘러나왔다.

   새롭게 각성이라도 한 듯 그의 시야가 탁 트이듯 열렸다.

     

   갑자기 자신감이 미친 듯이 샘솟기 시작했다.

     

   이거라면.

   이길 수 있다!

     

   “응?”

     

   제국파 일원도 무언가 안 좋은 예감을 느낀 듯 2기생을 돌아보았다.

     

   “시작!”

     

   그러는 순간 심판 학생이 대결 시작을 알렸다.

     

   쿵!

     

   찍은 발과 함께 2기생이 엄청난 도약과 함께 제국파 일원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놀란 제국파 일원이 급히 검을 들며 대응했지만 맞부딪친 검과 함께 그가 밀려났다.

     

   상상 이상에 힘이 느껴진 것이다.

     

   “그아아아아아아아!”

     

   2기생이 포효와 함께 까뒤집어진 눈으로 폭주했다.

   미친 듯이 달려드는 2기생의 공세에 제국파 일원이 당황하며 전투가 지속되었다.

     

   중간중간 제국파 일원은 분명 2기생에게 치명타가 될만한 공격을 꽂아 넣었다.

   육체 능력이 오르긴 했지만 다루는 능력이 미숙하기에 나온 결과였다.

     

   그러나 2기생은 통증을 느끼지도 못하는지 터프하게 그 공격을 버텨내고 자신도 공격을 먹였다.

     

   그 결과 둘은 사실상 방어를 포기한 처절한 전투를 벌였다.

     

   “이길 수 있어!”

   “베리아, 힘내!”

     

   치열한 맹공 속에서 같은 스타론 2기생들이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너도나도 그 광경에 감정 이입을 한 탓이었다.

     

   조만간 자기들도 같은 꼴이 되리란 것도 모르고, 그들이 필사적으로 응원한 순간.

     

   “크학!”

     

   결국 제국파 일원이 바닥을 나뒹굴고, 2기생도 덩달아 바닥을 나뒹굴었다.

   둘 다 쓰러진 채로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무승부가 나버린 것이다.

     

   “와아아아아아!”

     

   2기생의 엄청난 역습에 스타론 2기생들은 자기들 일인마냥 환호했다.

   정작, 2기생은 독단의 영향으로 입에 거품까지 물며 바들바들 떨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 모습을 보며 판드라가 안경 너머에 눈을 부릅뜨며 입을 벌렸다.

   그런 녀석과 눈이 마주친 크라슈가 악의적인 미소를 가득 그렸다.

     

   “아직 5명 더 남았다.”

     

   어서 와, 도핑 자폭은 처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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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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