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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2

   EP.132

     

   전심전력. 사전적 의미로 온 마음과 온 힘을 한곳에 모아쓴다는 뜻.

     

   그리고 91층부터 이어진 나의 행보는 그 말이 아주 어울리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후우……”

     

   91층부터 99층까지 모든 층에서 전심전력 스킬을 사용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냈다.

     

   탑을 오르는 것에 시간제한이 있었다면 절대 행하지 못할 작전.

   몸의 회복과 전심전력의 쿨타임을 기다리며 최상의 컨디션이 이루어졌을 때만 다음 층을 향했기에 늦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무의 정원을 오르며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이 수차례 있었다.

   게다가 상대 모두가 전투 계열의 성좌들이라 그랬던 것인지 그들 또한 신체를 각성하는 스킬이 하나씩은 있었다.

     

   신체의 일부를 거대화 해 강력한 공격을 가한 성좌.

   각력의 강화로 공중을 뛰어다니며 사방팔방에서 나의 목을 노렸던 성좌.

   생명력을 마력으로 치환해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 준 성좌까지.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은 것이 바로 나라는 사실이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라는 말이 있듯, 결국 정상에 도달한 나는 그들보다 강했다.

     

   끼익……

     

   마지막 문이었다.

   천월신공의 스승인 화영이 도달했었던 무의 정원 끝자락.

     

   그리고 그곳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을 때,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침묵 속에서 가만히 않아 있던 한 남자의 등이었다.

     

   “……”

     

   [무의 정원 – 100층 完]

     

   100층에는 천장이 없었다.

   언제 밤이 된 것인지 하늘에는 마치 보석을 수놓은 듯 보이는 별이 무의 정원이라는 마천루의 꼭대기를 비추고 있었고 나는 한동안 감상에 젖어 하늘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왔군.”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

   그의 물음에 나는 속삭이듯 응답했다.

     

   “반갑습니다.”

     

   한동안 나와 그의 대화는 이물질로 인해 막혀 버린 수로처럼 더 이상 이어질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도 오고 가는 긴장감이 있었고 나는 그것을 느끼며 조용히 명상에 들어갔다.

     

   그와의 싸움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검을 휘두르고 마력을 퍼부으며 서로의 목숨을 취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처절한 싸움.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아직까지 단 한 번도 목숨을 잃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나의 머릿속에서 치러진 필사의 일격과 필살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승리가 정확히 그려진 장면은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자네 왜 가만히 서 있나? 내가 등을 보이는 지금이 가장 기습하기 좋은 때가 아닌가?”

     

   그의 말이 끝나자 검을 쥐고 있는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함부로 달려들어 검을 휘두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상대가 다음 수를 알고 있다면 그건 기습이 될 수 없으니까요.”

   “훌륭하군.”

     

   저런 괴물을 상대로는 허를 찌른다는 개념은 통하지 않았다.

   내가 잘하는 것은 필수적인 부분이었고 내가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실수를 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 같은 규격 외의 강자라면 실수 따위는 없을 테니, 그 실수를 유도하는 것이 도전자인 나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아직 아쉬워.”

     

   스윽.

     

   가만히 앉아 있던 그가 몸을 일으켰다.

   그저 일어났을 뿐이지만 느껴지는 위압감이 있었고 그가 서서히 뒤를 돌았을 때는 과도한 긴장감 때문에 다리가 후들거린다는 착각이 들었다.

     

   “혹시 자네 그거 아는가?”

     

   그리고 그 순간 들어온 질문.

     

   “뭘 말입니까?”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도전자들 중에서 나를 보고 무릎을 꿇지 않은 자는 네가 두 번째라는 거.”

     

   격의 차이. 그리고 그 격의 개념을 무시한 채, 몰려오는 필요 이상의 위압감.

     

   “그리고 내 눈을 피하지 않은 것도 자네가 두 번째야. 보통은 눈을 내리깔면서 다리를 보는 경우가 다반사거든. 그리고 겁먹었냐는 말에 그런 쭉정이들이 하는 변명은 하나같이 진부하더라고.”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경외라고 말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나도 처음 그와 눈을 마주쳤을 때는 자리를 피하고 싶다는 두려움을 느꼈으니까.

     

   “뭐라고 하던가요?”

   “먼저 공격할 줄 알고 움직임을 파악한다나 뭐라나. 꼭 지들이 뭔가 된 줄 아는 것들이 그런 말을 하더군.”

     

   선수(先手)의 양보는 고수가 하수에게 베푸는 나름의 배려였다.

   게임이든 싸움이든 먼저 공격을 한다는 사실은 그 상황의 흐름을 먼저 틀어쥘 수 있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싸움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선수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특히 그것이 목숨을 건 혈투라면 다시 흐름을 가져오는 것도 쉽지 않을뿐더러 심한 경우에 같은 수준에서도 상대에게 휘둘리다가 목을 내어 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내가 5층의 마왕을 손쉽게 제압한 이유.

     

   전쟁과 싸움의 성좌라는 그가 그 단순한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근데 나는 먼저 공격을 할 생각이 없다네.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온 도전자인데 전력을 한 번은 구경해 줘야 예의가 아니겠는가?”

     

   어찌 보면 오만하다고 표현해도 부족할 것이 없는 그의 말.

   하지만 그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었다.

   무의 정원을 오르며 깨달음을 얻고 강해진 지금에서도 감히 승리가 예상이 안 되는데 더 이상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자네. 멸망한 세계의 정복자라고 했지?”

   “……맞습니다.”

   “정복자라…… 내가 조금 전에 자네를 보고 왜 아쉽다고 했는지 알겠는가?”

   그는 잠시 침묵했다.

     

   “그대의 이름이 듣고 싶다.”

     

   그의 물음에 나는 머릿속에 의문이 떠올랐다.

   91층에서 만났던 성좌는 나의 성좌 명을 물었지만 그는 나의 이름을 묻고 있었기에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조금 궁금해졌기 때문이었다.

     

   “김시인 입니다.”

   “김시인. 김시인…… 발음이 어렵군. 하지만 어감은 듣기 좋아.”

     

   그가 나의 이름을 몇 차례 중얼거리더니 나를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나는 탈람바르라고 하네. ‘전신戰神’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사용하던 이름이 좋거든.”

     

   탈람바르.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라는 이명을 가진 남자가 말했다.

     

   “가끔 살아오며 자신의 과거를 지우고 싶어 하는 존재들이 있다네. 과거의 자신이 너무 못 나서, 겁쟁이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워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죄를 지어 늘 그것에 시달려서. 가끔은 아무 이유가 없기도 해.”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그렇기에 항상 부족했던 과거를 짊어지고 미래를 향해 움직여야 하고 노력하지 않은 어린 자신을 들쳐업고 억지로 달려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스스로를 인정하는 것. 각자가 성장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정이 그것임에도 불구하고 흔들리는 미래를 마주할 용기가 없기에 가장 중요한 그 순간을 외면하는 것이다.

     

   “그리고 탑은 그런 자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내린다. 부족의 수치라 불리던 탈람바르가 새로운 기회를 얻어 살아갈 수 있도록, 부족 전쟁에서 부모와 친구를 모두 잃고 도망친 탈람바르가 부끄러움도 모르고 모두를 버린 자신을 잊고 새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지.”

     

   성좌가 되는 순간, 나 또한 나의 업적에 따라 탑에게 새로운 이름을 받았다.

     

   그 순간부터 성좌들은 나를 김시인이라 부르지 않았다.

   학창 시절 따돌림을 당해 무기력한 삶을 살았던 나의 과거는 그 순간부터 잊혀졌다.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살며 나를 맞이할 그 누구도 없는 외로운 시기의 나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그들이 성좌와 계약을 하는 순간, 그들은 누군가의 화신이 되었을 뿐, 자신을 잊게 된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인가?”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의 목소리가 격양된다.

     

   “과거의 자신은 자신이 아닌가? 두려움에 도망을 친 나는 내가 아닌 것인가?”

     

   탈람바르의 말이 나의 뇌리에 박힌다.

     

   나는 나다.

   지금의 나도 나였고 과거의 나도 나였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는 것.

   역사가 그러했다. 우리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살아갔고 현재를 통해 미래를 설계한다.

     

   ‘멸망한 세계의 정복자…’

     

   그것은 튜토리얼이 시작된 이후의 나의 업적을 담은 것이지, 나를 만들어 낸 나의 인생을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이름이었다.

     

   “나는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다. 허나 나는 전쟁을 좋아하지 않지. 내가 검을 드는 이유는 과거의 내가 가지고 있다. 하나만 묻겠다. 그대는 왜 투쟁하고 있는가?”

     

   내가 싸우는 이유.

   그것은……

     

   “끝을 보고 싶습니다.”

   “그래, 그리고?”

     

   내가 경험한 그 어떤 호수보다 깊은 황금빛 눈동자가 나를 응시한다.

     

   “알고 싶습니다. 이 탑의 끝에 누군가가 있는지. 그리고 묻고 싶습니다. 우리가 왜 죽어야 했고 왜 싸워야 했고 왜 당신들의 유희에 난입해 이런 개 같은 짓거리를 이어갔어야 했는지.”

   “그러하군.”

     

   나를 향해 끄덕여지는 고개가 눈에 들어왔다.

     

   그에게서 이해를 바란 것이 아니었다.

   가르침을 바란 것도 아니었고 이런 투정을 부릴 상대를 찾던 것도 아니었다.

     

   “나는 탈람바르로서 그대를 상대하고 싶다. 살기 위해 처음으로 검을 들게 된 이름, 심장이 뜨거워지는 박투를 펼쳤던 그때의 이름, 그리고 성좌가 되기 전, 탑을 오르며 목숨을 걸고 싸워왔던 그때의 이름. 그것이 나의 근본이고 나의 정체성이니! 그대는 어떠한가?”

     

   탈람바르의 눈에서 묘한 불꽃이 피어오른다.

     

   “저도 김시인이 좋은 것 같군요.”

     

   플레이어가 아닌, 누군가의 화신도 아닌.

   그렇다고 성좌도 아닌 내가 가고자 하는 길.

     

   “좋은 눈빛이다 강한 자여. 이제 그대를 꺾음에 아쉬움이 없어지는 구나.”

     

   검을 꺼내 들었다.

     

   이제야 선명해지기 시작한 목표.

   탑의 정상을 보기 위한 첫 단추를 이제야 끼울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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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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