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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3

        식당 의자에 앉은 로즈마리는 양다리를 그네처럼 흔들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됐지? 됐겠지? 틀림없이 됐을 거야.’ 

       

        내면의 거울을 깊이 들여다 본 순간 끝난 것이나 진배없다. 에테르는 다른 오브제로 인해 잃어버렸던 기억을 모두 되찾았을 것이고, 자신이 알고 있던 큰 언니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겠지.

       

        하지만 아직 기뻐하기는 이르다.

       

        ‘우리와 함께할 생각이 있는지 그것부터 확인해야 해.’

       

        마왕군에서 한 번 나갔던 전적이 있는 만큼 언니가 마왕군의 편을 들어줄지는 미지수.

       

        애당초 큰 언니는 종족 따위에 구애받지 않는다. 믿을 수 없는 존재라면 신이라도 배척하며, 인의가 두터운 이라면 티끌만도 못한 존재와도 상종할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다.

       

        원래부터 그런 언니다. 기억을 되찾았다고 해서 금안족의 편에 붙으리라고 단정 짓는 것은 섣부른 판단인 셈이다. 만약 상황이 안 좋으면 마왕님과 대립하는 위치까지 갈 수도 있다.

       

        ‘그 엘프놈 때문이야. 어떻게든 찾아내서 몰래 죽여버리지 않으면….’

       

        연애인지 뭔지는 몰라도 큰 언니는 그 엘프와 꽤 가까운 사이인 듯하였다. 그 녀석 때문에 언니가 아카데미 생활에 성공적으로 적응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된 이상 회유는 쉽지 않겠지. 인간에 대한 불신을 심어주겠답시고 억지스러운 상황을 만들었다가 오히려 꾸민 일이라는 것이 발각당한다면? 

       

        ‘어우.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

       

        마왕성을 버섯농장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조리 있게 잘 움직여야 한다.

       

        로테, 프레이와 함께 식당 벨이 울리기만을 기다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래도 하스펠트가 한 번 뒤통수를 세게 후려갈겼으니 가능성은 있겠지?’

       

        하스펠트가 연구비 문제로 큰 언니를 클리온 황자에게 팔아넘기려던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의 전말을 주도한 건 로즈마리 자신이다. 블랜튼을 통해 황가를 세뇌하여 하스펠트 교수에게 에테르를 넘기라고 독촉했다.

       

        ‘그때 계획이 성공했으면 지금쯤 모든 게 수월하게 풀렸을 텐데.’

       

        아쉽지만 뭐 어쩌겠는가. 실패하는 날도 있는 거지.

       

        아무튼, 배후는 로즈마리였지만 그녀는 어디까지나 등을 떠민 것에 불과하다. 거래에 응한 건 분명 클라이스 하스펠트였다. 그녀는 그녀의 자유의지로 큰 언니와 막대한 양의 금화를 맞바꾸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어리석은 점이다. 어떤 인간은 툭툭 건드려주기만 해도 잘못된 선택을 내리고 마니까.

       

        로즈마리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우매한 새끼들.

       

        -띵동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야호!”

       

        엘랑카야 산맥도 식후경이라 하였다.

       

        벨이 울리자마자 요호족 소녀가 의자에서 뛰쳐나갔다. 프레이는 접시를 차례대로 날랐다.

       

        고소한 향기가 나는 비프스튜가 가장 먼저 올라온다. 직화로 구운 토마호크 스테이크와 허브 솔트를 곁들인 찐 감자, 적당히 익은 완두콩이 그 뒤를 잇는다.

       

        발사믹과 오리엔탈 드레싱이 뿌려진 샐러드에선 싱그러운 빛깔이 돌았고, 카우렐리아에서 공수해 온 닭고기를 잘게 썰어 소테한 프리카세는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돌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에테르가 즐겨 먹는 카르보나라. 요리사가 후추를 많이 넣은 것인지 알싸한 풍미가 있었다.

       

        이건 개인적인 건데, 로즈마리는 후추의 매운맛을 내는 피페린 성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건 단맛을 내는 베릴륨과 섞어 먹으면 그나마 나은데…. 문제는 다른 사람 눈앞에서 독성 물질을 향신료랍시고 넣을 수 없다는 것이다.

       

        상관없을 것이다. 이건 언니 몫이니까.

       

       제국 경제를 망가뜨려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의 식사는 여전히 호화롭다. 물론 많이 비싸지긴 했지만, 예상과는 달리 학식의 인상 폭이 그리 크지 않다.

       

        ‘이사장이 손을 쓴 모양이군.’

       

        쓸데없는 곳에서 유능하다니까, 그 양반은. 

       

        뭐, 그건 그렇고.

       

        “히히, 맛있겠다!”

       

        로즈마리는 프레이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단순히 그녀의 작은 체구나 행동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었다.

       

        ‘이 몸이 용족도 아닌 수인과 겸상이라니….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된 걸까.’

       

        시대가 변해도 너무 변했다. 왕족으로 살았을 시절에는 이런 일은 꿈도 못 꿨는데.

       

        그렇다고 떨어져서 먹기도 뭣하다. 이 꼬맹이는 언니와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다. 어떻게든 감시하고 있다가 배신을 종용할 틈을 만들어야 한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적어도 로즈마리가 보기에 두 소녀에게는 감정의 균열이 안 보인다.

       

        한 명은 지나치게 착하고, 다른 한 명은 순수함 그 자체다.

       

        이런 평면적인 인간군상이 제일 싫다. 워낙 한결같아서 중상모략이 잘 안 통하기 때문이다. 배신을 하기는커녕 배신당하더라도 조금 슬퍼하고 말겠지.

       

        한 1천 번 정도 뒤통수를 맞다 보면 이런 사람이라도 변할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이나 수인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다.

       

        “그나저나 에테르는 왜 이렇게 늦지?”

        “그러게. 뭔가 문제라도 있나?”

        “제가 어디 계신지 알아보고 올게요.”

       

        이때다 싶어 로즈마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마력초를 물고 불을 붙인다. 수십 년을 해온 노련한 솜씨 덕택에 스코프로 언니의 위치를 수색해내는 것은 금방이었다.

       

        “어디 보자….” 

       

        언니가 어떻게 변했는지가 가장 궁금한데.

       

        “찾았…! 어?”

         

        [다 죽여버릴 거야.]

       

        로즈마리의 동공이 달덩이처럼 커진다.

       

        “뭐, 뭐, 뭐, 뭐야……?”

       

        로즈마리는 무게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하마터면 놀라서 뒤로 넘어질 뻔했다. 

       

        로즈마리는 마력초가 끝까지 타들어 가는 것도 모른 채 에테르의 동선을 살폈다.

       

        기숙사에서 철판 비스름한 무언가를 챙긴 에테르가 구내식당을 향해 오는 중이다. 금빛 눈동자에는 이채가 서려 있어서 평소보다 은은하게 빛나 보였다.

       

        결연에 찬 엄숙한 낯빛. 가스램프처럼 빛나는 눈.

       

        금안족이 무언가에게 적의를 품으면 보이는 감정 표현이다. 로즈마리도 버멜을 잡으러 갔을 때 저런 비슷한 표정으로 지하실에 쳐들어갔기에 잘 알고 있었다.

       

        “다 죽여 버리겠다니…. 누구, 누구를 죽이겠다는 거지…?”

          

        로즈마리의 머릿속이 분주하게 돌아간다. 

       

        마왕군인가. 제국인가.

       

        확률은 반반이다.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기 전까지는 추측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나 로즈마리는 일련의 사고를 거친 뒤 입꼬리를 올렸다. 승리를 확신하는 눈이었다.

       

        ‘그래, 언니. 인간을 모조리 쓸어버리는 거야.’ 

       

        마지막으로 에테르에게 도리깨질을 한 사람이 하스펠트였다. 그러니 그녀에 대한 불만을 인간에 대한 적의로 돌린 것이 분명할 터.

       

        그게 아니더라도 로즈마리는 에테르에게 큰 잘못을 한 적이 없다. 이렇게 귀여운 의자매를 시체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당치도 않는 소리다. 

       

        “언니, 여기예요 여기!”

       

        최대한 화색을 띤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코앞에서 죽음이 걸어오고 있었다.

       

       

        **

       

       

        가볍고도 무거운 점심이 끝난 뒤, 로즈마리는 에테르와 단둘이 남을 때를 노렸다.

       

        “잠깐 저희 둘이서 얘기 좀 할까요?”

       

        에테르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로즈마리는 옳다구나 싶어서 그녀를 한적한 오솔길로 데리고 갔다.

       

        안 되겠다. 궁금해서 더는 못 참아.

       

        “…언니, 제가 누구인지 기억해요?”

       

        대답은 딜레이 없이 돌아왔다.

       

        “블루베리가 틸레트 편입은 왜 했어?”

       

        블루베리 소리를 들은 로즈마리의 얼굴이 생일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밝아졌다.

       

        에테르는 구천지대계에 해당하는 마왕군 간부 전원을 별칭으로 부르는 버릇이 있었다. 예를 들어서, 공동 2석이자 여동생인 아카샤는 ‘카샤’로 줄여 부르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 언니는 종종 자신을 ‘블루베리’라고 불렀다.

       

        다른 이유야 없다. 로즈마리의 머리카락이 블루베리 색이라서 그럴 뿐.

         

        즉, 기억을 잃었다면 절대로 입에 담을 수 없는 애칭이다.

       

        뛸 듯이 기뻤지만 로즈마리는 일단 감정을 절제한 채로 필요한 말만을 전달했다.

       

        “왜 있기는요. 언니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발 좀 담갔죠.”

        “필요 없으니까 돌아가.”

        “아직 복귀하실 생각 없으신가요?” 

        “그래.”

       

        로즈마리는 품에서 마력초 두 개비를 꺼냈다. 하나는 자신이 물고, 다른 하나는 윗사람인 언니의 입에 물려주었다.

       

        “골든슈타인이군.”

        “어라, 이거 아세요?”

        “예전에 요호족에게서 권유받아 피웠던 적이 있었다. 저번에 쓸데없는 사업한다고 말했던 게 이거였나?”

        “네. 이것도 작전의 일환이랍니다.”

       

        에테르는 입꼬리만 쭉 올렸다. 부자연스럽게도 광대 근육은 움직이지 않았다.

       

        후우, 하고 날숨을 내쉰다. 두 무리의 매연이 우거진 나무 사이를 헤집고 올라간다.

       

        “내가 누구 편에 서 있는 줄 알고 그딴 걸 얘기해?”

        “제국 편을 들었더라면 제게 그런 말을 하지 않으셨겠죠.”

        “…떠보는 솜씨 많이 늘었다, 너.”

        “전부 언니에게 배운 거랍니다.”

        “곡학아세 한 번 끝내주게 하는군. 그런 식으로 아부한다고 4석이 3석 되진 않아.” 

        “글쎄요.”

       

        마력초를 다 태운 로즈마리는 부채로 입을 가리며 눈웃음을 지었다. 

       

        천하의 에테르라고는 해도 자신이 이 짧은 시간에 스코프를 켜고 언니의 ‘죽여버리겠다’ 발언을 들었다는 사실은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정보의 주도권은 지금 자신에게 있었다.

       

        “아무튼 집으로 돌아오실 생각이 당장은 없다는 거죠?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그건 너도 알고 있지 않아?” 

        “뭘요?”

        “입학식 때 드레이크 3백 마리를 풀어서 그중 한 마리를 통해 나와 대화했잖아. 그때 이런 말을 했었지.”

       

        -어떻게 거길 시험 쳐서 들어갈 생각을 했을까? 그래서 난 네가 부러워. 나라면 절대 그런 일 못 벌이거든.

       

        “그 발언은 분명 내가 본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을 상정하고 한 것이었다.”

        “후흐, 예리하시네요.” 

        “그 와중에 반말도 찍찍 내뱉고 말이야. 안 그래?”

        “그땐 기강 잡느라 어쩔 수 없었어요.”

        “허어, 날 상대로 기강을 잡으려고 했다…?”

       

        에테르가 입매를 비틀자 로즈마리는 덫에 걸린 쥐처럼 움찔거렸다. 아무래도 말실수했다.

       

        “그, 그게 언니 기강 말고, 다른 것들 기강 말이에요…!”

        “알아. 농담이다.”

        “휴우….” 

       

        확실히.

       

        본연의 모습을 되찾으니 농담이라도 무섭게 들린다. 

       

        “나중에 돌아가든 말든 연구는 해야지. 그런 면에서 틸레트는 환경이 참 좋아.”

        “성에 가면 이것보다 더 좋은 장비가 많이 있어요.”

        “대신 날 도와줄 자가 없어.”

        “원하시면 성으로 끌고 갈 수 있도록 도와드릴 수 있어요.”

        “그럴 필요 없다니까.”

       

        언니가 여기서 무얼 연구하든 로즈마리의 관심분야는 아니었다. 다만, 언니가 원한다면 기다려 주는 수밖에.

       

        “그래서 뭘 연구하려고 하셨던 건데요?”

       

       기억을 잃기 전 연구하던 플레어는 봉쇄했다. 그러나 언니는 플레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생각을 안 하고 있다.

       

        “보면 몰라?”

        “불초인 저로서는 와닿지 않아요.”

       

       그렇다면 다른 연구로 아카데미에 체류하고 있다는 뜻인데.

       

       로즈마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알고 싶다는 제스처를 취하자 에테르는 질겅질겅 씹던 마력초를 뱉고는 입술을 뗐다.

       

        “나중 가면 알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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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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