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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3

        

        

        

        

        

       “다 와 갑니다, 화이트 황녀님.”

        

        

       메르헨 아카데미는 오랜만에 인산인해를 이루며 활기를 되찾았다.

        

       햇볕이 쏟아지는 아침. 활짝 열린 교문. 앳된 얼굴의 수험생들이 각자의 각오를 품고 교정을 거닐었다.

        

       입학시험 당일이었다.

        

        

       불미스러운 사건이 잇달아 터졌음에도 메르헨 아카데미 입시 경쟁률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대륙 최고의 아카데미라는 명망은 여전했고, 황실이 직접 나서서 마족이라는 재해로부터 메르헨 아카데미를 보호하겠다고 선언한 상황.

        

       제5황녀가 메르헨 아카데미에 입학하겠다는 정보까지 공공연하게 퍼진 마당에, 수험생들은 안도감마저 드는 것이었다.

        

        

       제르베르 황국과 메르헨 아카데미 부지를 잇는 연륙교를 지날 때면 탁 트인 아킨스 해의 정경을 감상할 수 있다.

        

       수많은 호위병을 대동하고, 으리으리한 마차가 연륙교를 지나는 도중이었다. 금빛 테두리가 새겨진 고급스러운 파란색 마차. 제르베르 황국의 황실을 상징하는 색이다.

        

       그 호화로운 마차 내부, 한 소녀가 회색 눈동자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신분을 막론하고, 누구든지 그녀를 보거든 ‘새하얀 눈’을 연상할 것이었다.

        

       햇빛을 반사하는 흰 눈 같은 순백의 머리칼은 뒷머리를 땋아 말아 묶은 채였고, 그 자리에는 어여쁜 붉은 리본 끈을 깔끔하게 묶어 고정했다.

        

       인형처럼 말끔하고 뽀얀 피부, 하얀색과 붉은색이 어우러진 고급 드레스.

        

       백설, 스노우화이트 황녀. 통칭 화이트였다.

        

        

       “…….”

        

        

       맞은편에 앉아 있는 기사의 말에 화이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여기사, 메를린 아스트레앙. 검성 제랄드 아스트레앙의 딸로, 아카데미 재학 중 화이트의 전속 호위 기사로 발탁된 검술의 천재였다.

        

       메르헨 아카데미에 이제 곧 도착한다라…. 메를린의 말에 담긴 속뜻은 화이트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화이트는 그저 아련한 표정으로 아킨스 해 너머 수평선만 지그시 바라볼 뿐이었다.

        

        

       “…메를린.”

       “예, 황녀님.”

        

        

       눈을 한번 깜박이고.

        

       화이트는 메를린을 바라보며, 겁에 질린 얼굴로 덜덜 떨기 시작했다.

        

        

       “지, 지금이라도 돌아가면 안 되나요…?”

        

        

       방금 전까지 깊은 사색에 잠겨 있었던 듯한 무거운 분위기와는 몹시 대조적인 겁쟁이 어투였다.

        

        

       “안 됩니다. 황명입니다.”

       “저 광활한 바다를 보세요. 수많은 생명이 저 바닷속에서 잉태되겠죠. 거기에 마족이 없을까요? 있죠, 있고 말고요! 오오, 그렇게 생각하니…! 여기, 마족이 그렇게 많이 나온다잖아요? 여긴 마경이라고요, 마경! 대체 여긴 왜 폐교…, 아니 그건 너무 갔고, 왜 휴교하지 않는 거죠? 아무리 이리저리 생각해봐도 너, 너무 위험하지 않아요? 어서 돌아가는 편이 좋겠는데요오?!”

       “무슨 말씀을 하시든 황제 폐하의 뜻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놈의 황명, 황명…!

       

       화이트의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아버지,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겁니까…!

       

       

       화이트는 황녀 중 유일하게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는 나이대였다.

        

       아무리 이 나라에서 드높은 권위를 지닌 황녀라고 해도, 제 또래와 함께 공부하고 청춘을 구가하며 성장해 나가고 싶은 것이 화이트의 순수한 바람이었다.

        

       애당초 자신은 황권 분쟁에서 아예 논외로 취급되는 존재. 그야말로 온실 속 화초이니, 그런 서글한 마음을 품게 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게다가 물밑에서 이루어지는 차기 황권 쟁탈전은 지켜보는 것조차 심적인 부담감이 몹시 컸다. 어쩔 수 없이, 황궁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물씬 들고 마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카데미에 가고 싶다고…, 카를로스 황제에게 말씀드린 게 화근이었다.

        

        

       ‘그것도 하필 메르헨 아카데미를….’

        

        

       메르헨 아카데미에 가고 싶어요.

        

       그리 말하고 얼마 뒤, 메르헨 아카데미에 마족들이 연이어 튀어나와댔지….

        

       거기다 대마법사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검은 괴물까지. 그런 수상쩍은 괴물은 어디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인가? 아카데미랑 황실 기사단은 뭐 하는데 그 정체를 파악하지 못 하는 거냐고.

        

       화이트에게 메르헨 아카데미는, 언제든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마경으로 인식이 탈바꿈되어 있었다.

       

       황실 기사단이 지켜준다? 그 정도론 안심할 수 없었다. 자신은 겁이 많은 성격이니까.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 무심코 두려워지고 마는 것이었다.

        

       그래서 메르헨 아카데미에 갈 마음을 접겠다고 하자, 이번엔 카를로스 황제가 화이트의 등을 떠밀었다.

        

       성국 바르디오의 고귀한 신분을 지닌 헬리제 교단의 성녀, 비앙카 앙투라제.

        

       불과 화원의 나라, 화봉국-호란의 무녀, 미야.

        

       그 두 사람이 메르헨 아카데미에 입학하려 한다는 정보를 얻은 까닭이었다.

       

       마침 화이트가 메르헨 아카데미에 가겠다고 했으니, 그 둘과 반드시 친분을 쌓으라나 뭐라나. 그것이 황국의 미래를 위한 일이란다….

        

       황비도 황제와 똑같은 견해를 내세웠고.

        

       결국, 궁지에 몰린 화이트는 메르헨 아카데미 입시를 위한 특훈을 강제로 받고서 울며 겨자 먹기로 입학시험을 치르러 온 것이었다.

        

       입학시험을 대충 치르고 탈락하면 되지 않느냐고?

        

        

       ‘안 된다. 절대로 안 된다…!’

        

        

       화이트에게 맡겨진 책임은 몹시 무거웠다.

        

       성녀, 무녀와 메르헨 아카데미에 함께 소속된다면 그만한 사교의 장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 작은 섬에서, 전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이들과 아카데미 동기가 되어. 시도 때도 없이 엮일 기회는 흔치 않은걸 넘어서 역사적으로 다시는 오기 힘들 것이었다.

        

       게다가 자신은 황녀다. 성위급 마탑의 최고위 마법사 같은 엄청난 인재들로부터 질 높은 교육을 줄곧 받아왔으니, 또래 중에서도 내세울 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자신했다.

        

       심지어 당연하게도, 황실 추천장까지 직접 아카데미에 전해졌으니 가산점은 덤이다.

        

       그런 자신이, 시험에 불합격해서 입학을 못한다? 그 뒤로 어떤 후폭풍이 들이닥칠지… 화이트는 그런 무시무시한 미래를 헤아릴 깜냥이 안 됐다.

       

       

       ‘성녀, 무녀도 무조건 입학시험에 통과하겠지.’

       

        

       그녀들은 지적 수준이 뛰어난 데다 강하다는 소문이 자자하니까.

        

       특히 무녀는 나라멸망급 마수를 사역마로 부릴 만큼 무시무시한 존재라고 들었다. 얼마나 대단한지, 화봉국에서도 진정한 ‘신녀(神女)’라고 떠받들어지는 존재란다.

       

       그녀 덕분에 화봉국은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그런 정보 하나하나가 모래주머니 같은 부담감으로 변모해 한층 한층 쌓여나가며, 화이트의 어깨를 무겁게 만들었다.

        

        

       “메를린, 나 무서워요오….”

        

        

       화이트는 공포감 어린 얼굴로 덜덜 떨었다.

        

       눈을 감고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며 고민하는 메를린. 포니테일로 묶인 담녹색 머리칼이 그녀의 고갯짓을 뒤따랐다.

        

       그녀는 뭐라 할지 고민하다가, 이내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곤.

        

        

       “음!”

        

        

       파이팅 자세를 취했다.

        

       메를린의 눈빛이 한 차례 반짝였다.

        

        

       “화이트 황녀님께 맡겨진 책임은 막중합니다. 이 나라의 미래…. 아니, 전 세계의 미래가 황녀님께 달려 있어요! 힘내십시오! 황녀님은 잘하실 겁니다!”

       “커헉…!”

        

        

       화이트는 부담감에 짓눌려 각혈할 것만 같았다.

        

        

        

       ……

       

        

        

       필기시험은 오르핀관에서 치러졌다.

        

       화이트는 울먹였다. 특훈의 성과가 고스란히 나왔기 때문이었다.

        

       상위권은 아니겠지만, 안전하게 메르헨 아카데미에 입학할 성적은 충분히 거두리란 확신이 들었다.

        

       돔 형태의 건물, 듀크관에서 실기시험까지 마저 치르고서 화이트는 혼이 나간 얼굴로 터덜터덜 걸어 나갔다. 호위로 붙은 메를린 아스트레앙의 당찬 걸음걸이하고는 무척 상반되어 보였다.

        

       그러든 말든 황녀다. 학생들은 긴장한 얼굴로 예를 차렸으나, 화이트는 그런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메를린.”

       “예.”

       “아마도 저, 합격할 것 같습니다….”

       “역시 화이트 황녀님. 훌륭하십니다.”

       “아니야, 그게 아니야…. 저는 제가 이 정도로 우수하길 바라지 않았어요…. 그동안 열심히 노력했던 건, 이러기 위해서가 아니었…!”

       

       

       콰당!

       

       

       관중석으로 이어지는 계단 쪽, 한 남자 수험생이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

       

       끄응, 하고 고통에 신음하는 소년. 고작 계단 세 칸 위였기에 굴러 넘어졌음에도 크게 다치진 않은 듯했다.

        

       수험생들의 시선이 모두 그쪽을 향했다.

        

        

       “으윽…, 누구야?!”

        

        

       소년은 화를 내려다 그만 헛숨을 집어삼켰다.

        

       계단 위. 한 소녀가 다리를 앞으로 뻗은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시큰둥한 표정. 그녀가 남자를 발길질로 밀어 찼다는 정황은 누구든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보란 듯이 그러고 있었으니.

        

       검은 베레모, 그 아래로 흘러내리는 흑옥빛 머리칼. 예쁘게 땋아 내린 구레나룻. 순한 눈매는 붉은 도화살 화장과 잘 어우러졌다.

        

       화봉국의 불과 매화 문양이 새겨진 검은색 로브는 그녀의 몸을 무릎까지 가리고 있었으나, 다리가 들려 있는 탓에 뽀얀 다리가 한껏 각선미를 자랑하고 있었다.

        

       로브 목깃에 달린 풍성한 검은 털을 보건대, 꽤 값이 나가는 고급 의복처럼 보인다.

        

        

       “무녀, 미야….”

        

        

       메를린이 나지막이 독백했다.

        

        

       “길. 방해되잖아.”

        

        

       흑진주빛 머리의 무녀는 발길질에 쓰인 다리를 내렸다. 무척 태평한 태도였다.

        

       듀크관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놀란 건 비단 남학생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수험생들도, 황녀 화이트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화봉국-호란의 무녀, 미야. 이번 입학시험에서 단연 수석을 차지할 만큼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인 소녀이자, 동방국의 지배자나 다름없는 무시무시한 권력자. ‘신녀’로 떠받들어지는 존재.

       

       대충 제르베르 황국 이야기로 비유하자면, 황제의 권력과 성녀의 권위가 모두 저 소녀 한 사람에게 몰아져 있다는 얘기였다.

       

       기본적인 교육이라도 받았다면 그녀가 누군지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수준.

        

       제르베르 황국에선 그 권력이 다소 약해질 터이나, 그 위상 만큼은 가히 범접할 수 없었다.

        

        

       ‘그런데….’

        

        

       화이트는 의문이었다.

        

       아무래도 저 남자 수험생은 단지 진로를 막고 있었을 뿐인 듯한데…, 그냥 비켜달라고 한 마디 하면 해결될 문제였잖아? 다짜고짜 발로 밀어 차다니.

        

       무녀는 순하고 어여쁜 얼굴과 성품이 영 맞물리지 않는 듯했다.

        

        

       “가시죠, 미야 님.”

       “네에~.”

        

        

       뒤따르던 여성 호위 마법사의 말에 무녀, 미야는 귀찮다는 듯이 대답하곤 발걸음을 재촉했다.

        

       화들짝 놀란 얼굴로 벌떡 일어나 사죄하는 소년. 그러나 미야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오, 만할라여….”

        

        

       허탈한 표정을 짓는 화이트. 속이 심란해져 이마에 손을 짚고 신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정신이 아찔해질 지경이었다.

        

       첫인상만 봐도 저런 인성 개박살 난 여자랑 친해져야 한다고…? 이 암울한 미래 어쩔 건데.

        

       도와달라는 의미로 메를린을 쳐다보았으나, 그녀는 그저 엄지손가락만 치켜세우며 두 눈을 반짝일 뿐이었다.

        

       ‘황녀님, 할 수 있습니다. 친해지십시오! 이 세계의 평화를 위해!’라고 하는 듯한 그 위풍당당한 표정이… 화이트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게 했다.

        

        

       

       한편.

        

       무녀, 미야는 듀크관을 나선 뒤 다소곳한 자세로 걸어가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황녀와 성녀, 무녀는 수험생 중에서도 유독 돋보이는 말끔한 미모를 자랑하는 데다, 세계적으로 유명하기까지 해 저마다 힐끔힐끔 그녀를 쳐다보기 일쑤였다.

        

       붉은 도화살 화장을 했음에도 차분하고 순해 보이는 눈은 신기한 듯 교정을 살폈다.

       

        

       “후후.”

        

        

       돌연 웃음소리를 흘리는 미야.

        

       뒤따르던 전속 호위병이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라고 묻자.

        

       미야는 손에 들고 있던 마도무기, 접혀 있는 검은 부채로 아랫입술을 툭툭 건드리며 호위병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날 지켜보고 있어.”

       “예? 누가…?”

        

        

       호위병은 허리춤에 찬 완드에 손을 가져가며 경계 태세를 취했다.

        

        

       “지금 마에가 얘기해주고 있거든. 평범한 시선이 아니야. 이건… 신비한 힘. 분명 그분이야.”

        

        

       미야는 뺨을 붉혔다. 마에는 나라멸망급 사역마, 구미호를 뜻했다.

       

       

       “후후, 그분께서 날 지켜보고 있다고…! 하아…!”

       

       

       날 가져요, 영웅 님.

       

       화봉국에서 무녀, 미야가 줄창 읊어대던 애원이다.

       

       ‘그분’이라 하면 검은 괴물, 이름 없는 영웅을 뜻했다. 마족들을 처단하고 다니며, 불과 수 개월 전엔 부유섬까지도 단신으로 처치한… 상상을 초월하는 존재.

       

       무녀 미야가 평소 사람을 버러지 취급하면서도, 이름 없는 영웅 만큼은 얼마나 동경하면서 집착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극적인 취급이지.

        

       그렇다고 신음까지 흘리며 흥분할 정도라니…. 이런 진풍경은 호위병으로선 처음 보는 것이었으나, 그리 놀랄 것도 아니긴 했다.

       

       그나저나.

       

       

       ‘뭔 시선?’

       

        

       호위병은 아무리 주위를 둘러 봐도 미야의 대답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신비한 힘이고 뭐고, 그저 메르헨 아카데미의 풍경밖에 보이는 게 없었기 때문.

       

       

       아이작이 [천리안]으로 메르헨 아카데미를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호위병이 알 턱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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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AWBDLH,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
Score 8.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possessed the weakest character in my favorite game’s Hell Mode. I want to survive, but the way the main character is being controlled is atrocious. It can’t be helped. I have to stop the bad ending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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