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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3

     

    -쏴아아….

     

    누군가 하늘에 구멍을 뚫어서 푸른색을 쏟아내는 것 같은 거센 빗방울, 그 탓에 아침이지만 여전히 우중충한 회색빛의 하늘.

     

    그러나 아침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든, 그것은 아침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저 두꺼운 비구름 뒤쪽에는 분명히 햇빛이 존재하겠지.

    비가 그치면 무지개를 드리우면서 말이다.

     

    하지만 하늘은 마치 한동안 내리지 않던 비를 이번기회에 모두 쏟아붓고 말겠다는 듯 보였다.

    어쩌면, 오늘 안에 무지개를 보는 것은 글렀을지도 모르겠다.

     

    ‘화단은 잘 있을까.’

     

    원래 오늘은 학교를 쉬고 예르나와 함께 숲에 가려고 한 날이었다.

    헌데 이렇게 비가 많이 오면 숲은 어떻게 되었으련지.

    물론 화단엔 기초적인 보호마법을 걸어뒀기 때문에 이런 궂은 날씨에도 그다지 걱정할 수준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요즘 한동안 숲에 가질 않았다보니 조금 걱정이 된다.

     

    곁눈질로 비가 내리는 창문 너머를 흘겨보던 루크는 주섬주섬 몸을 일으키다가, 문득 목 언저리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이물감에 표정을 찡그렸다.

     

    “…….”

     

    루크가 이상함을 느끼는 부분은 공교롭게도 평소 반창고를 붙이고 다니던 그 부근이었다.

    그런데 평소같이 겉이 아프거나 가렵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뭔가 목에 걸린 것 같은, 그런 답답한 느낌.

     

    하지만 굳이 아픔을 내색하기는 싫어서 루크는 표정을 관리했다.

    그러자 곧 예르나가 부스스한 표정으로 눈을 뜨고는 루크의 옆모습을 보며 배시시 웃으며 아침인사를 건넸다.

     

    “루, 잘 잤어?”

     

    “예르나, 그대야말로…… 윽.”

     

    말을 건네려니 갑자기 목 부위가 따끔하는 바람에 루크는 말을그만두고 말았다.

    그러자 예르나가 자신의 표정을 바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꾸곤 묻는다.

     

    “왜 그래? 어디 아프니?”

     

    ‘이런, 순식간에 들켰군.’

     

    아무리 대마법사이고 아픔은 익숙해서 잘 참을 수 있다고 해도 아픈 건 아프다보니 갑자기 따가운 느낌이 들면 본능적으로 그런 신음소리는 나오고 만다.

    미리 대비를 해 두었어야 했던 건데.

     

    루크는 어쩔 수 없이 별 것 아니라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조금, 목이 아파서…….”

     

    “그러니? 혹시, 감기야?”

     

    “글쎄…….”

     

    감기라…….

    이 몸으로도 감기는 걸리는 걸까?

    뭐, 과거에도 감기는 있었고, 마법사라고 감기에 걸리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마법사가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편견은 마법사 자신의 철저한 자기관리에 있었다.

    추우면 마법으로 몸을 데운다. 더우면 마찬가지로 마법을 써서 체온을 낮춘다.

    더러운 곳은 클린으로 치우고, 젖은 몸은 금방 말려버린다.

     

    애초에 감기에 걸릴 환경에 자신의 몸을 던져 넣지 않는 것이다.

    루크도 물론 그리 할 수야 있긴 해도, 굳이 그러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자신은 그냥 마법사가 아니라 불사의 키메라가 아닌가?

     

    불사자도 감기에 걸리나?

    아닐거라 생각했다.

    레니에가 감기에 걸리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으니까.

    아니면, 자신의 ‘불사’는 레니에가 가졌던 ‘불사’와는 성질이 다른 형태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겠지, 마법으로 구현한 불사와 신이 부여한 불사는 성질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자신이 가진 것은 ‘완전한’ 불사가 아닐지도 모르고.

     

    상처가 좀 빠르게 낫는 정도로 자신의 몸을 과신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어쩌면, 정말 ‘죽지만’ 않는 형태의 불사라서 병에는 그다지 면역이 없는 것일지도.

     

    레니에는 그냥 불사자가 아니라, 신의 총애를 받던 성녀.

    몸에 흘러 넘치는 신성력은 레니에가 감기따위에 걸리도록 방치해두지 않았지만, 지금의 자신에게 신성력 비슷한 힘은 없다.

     

    게다가, 자신은 포션이나 영약의 효과를 받기도 한다.

    약은 신체에 영향을 준다는 부분에선 독과 다름없는 것인데, 약효를 받는다는 것은 곧 독의 효과도 받는다는 것이다.

    독과 병은 마법적으로 비슷한 성질을 갖기 때문에 어쩌면 병에 대한 내성이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상하기는 하다.

    용이나 마수도 감기에 걸리던가?

     

    “정말 감기인가?”

     

    뭐, 아무렴 상관은 없을 것이다.

    감기약정도는 언제든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

    저번에 우유를 만들 때 쓰다가 남은 것들을 쓰면 되겠지.

     

    루크가 그리 생각을 하고 있으니, 예르나가 말했다.

     

    “그럼 병원에 가야하지 않을까?”

     

    “굳이 병원에 갈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군. 그냥 집에서 좀 쉬면 나을 것 같네.”

     

    “그러니? 그럼, 더 아파지면 꼭 말해?”

     

    “알겠네, 내 걱정은 말게. 예르나, 먼저 화장실 좀 쓸 테니 그동안 조금 더 쉬고 있게나. 오늘 그대는 출근을 해야 하니까.”

     

    “응, 알겠어…….”

     

    예르나는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매번 걱정하지 말라고 하기는 하지만, 사실 그럴 때마다 예르나가 걱정을 그만두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예르나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만은 진심인데, 이게 정말이지 쉽지가 않다.

     

    루크는 일단 씻기 위해서 몸을 일으켰다.

     

    몸을 씻기 전에 이를 닦는 것은 루크의 오랜 버릇들 중에 하나였다.

    마법사에게 자신의 몸은 말 그대로 ‘재산’이었으므로, 자기관리가 철저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마법재료가 될 수도 있는 머리카락을 매일 관리하는 것처럼, 이빨 역시 훌륭한 마법재료가 될 수 있으므로 관리한다.

     

    그러니 자연스레 이를 닦는 버릇도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이 시대에서는 이를 닦는 행위를 더욱 더 좋아하게 되었다.

    칫솔도 치약도 품질이 아주 좋고 신기해서, 루크는 이를 닦고 난 후의 그 상쾌한 느낌을 정말 좋아했다.

     

    칫솔에 적당량 치약을 짜내고, 입 안에 넣어 칫솔질을 시작한다.

    아침에 약해진 정신력을 일깨우는 듯한 감각.

    칫솔질을 한번 할 때마다 한 걸음, 한 걸음을 이성에 다가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루크는 그 감각도 참 좋았다.

     

    -치카치카치카…….

    -쏴아아아아아…….

     

    이를 닦는 소리와 창 밖에서 내리는 비의 소리가 어우러지는 것이 마치 하나의 연주같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이 연주가 정령에게 들린다면, 어떤 감정이 들까.

    우울? 안정감? 역시 한마디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겠다.

    이럴 때 파이가 있었다면 어떤 반응을 했을까 조금 궁금하기도 하다.

     

    그렇게 한동안 칫솔질이 이어진 후, 이제 슬슬 입 안에 거품이 꽤나 많이 들어차 뱉어내야겠다고 생각 할 무렵이었다.

     

    “에…….”

     

    갑자기 뭔가 코를 간지럽히는 감각에 입은 살짝 벌려지고 눈은 게슴츠레 감겼다.

     

    재채기였다.

     

    “에……에치!”

     

    루크가 재채기를 하는 것 자체는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다.

    마나가 무료인 숲에서는 평소 일상생활에도 마력과 마법을 실어 호흡기까지 보호하기 때문에 이런 재채기를 할 일이 없었지만, 사용하는 마나가 곧 비용인 예르나의 집에서는 마법의 사용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으니까.

     

    그나저나, 재채기를 하고 나니 목과 입 안쪽이 굉장히 따가웠다.

     

    “켁, 켁. 아…….”

     

    하필 목이 아플 때 재채기가 나와서 그런걸까, 아주 성가신 느낌이라고 생각하며 루크는 재채기로 감겼던 눈을 떴다.

    그리고, 목격했다.

     

    합성소재의 칫솔이 시커멓게 그을린 채로 녹아 있는 장면을.

    칫솔에선 새하얗게 연기 한 줄기가 솟아오르는 중이다.

     

    마치, 무언가 강한 열을 직사하여 칫솔을 태운 것처럼 말이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읍.”

     

    말을 하려던 루크는 입 안에 느껴진 고통에 입을 다물었다.

    이 감각, 이 고통.

    이건, 화상이다.

    입 안에 화상을 입었다.

     

    ‘대체 왜?’

     

    루크는 순간 이게 무슨 일인지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의 변화였기 때문이다.

    열? 마법을 쓰거나 마법이 사용된 흔적은 없다.

    그런데 사방에 발화할 것이 하나도 없는 화장실에서 대체 열이 어디서 나온단 말인가?

    설마, 누군가 자신을 암살하려고 칫솔에 수를 써뒀다는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칫솔에 무슨 짓을 했다면 자신이 발견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이건 도대체 무슨 일이라는 말인가.

     

    외부의 공격? 아니다. 마력엔 변함이 없었고, 밖에는 예르나도 있다. 게다가 화장실엔 아무도 없고, 오로지 루크 자신뿐이지 않은가.

    ‘설마, 치약이 터졌나?’

    말이 안되는 상상인건 알지만, 이게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설마 치약이 문제였나.

     

    “루크, 아직 목욕 안 하지? 언니 잠깐 화장실 좀 쓸게?”

     

    “잠깐 기다, 에…….”

     

    ‘이런, 또 재채기가?’

     

    하필이면 타이밍도, 안 맞는다고 루크는 속으로 한탄했다.

    지금 들어오면 이 알 수 없는 현상에 대한 실마리를 붙잡을 수 없을텐데.

     

    벌컥, 화장실의 문이 열리는 순간에 맞추어 터져나오는 재채기에 루크는 무심코 입을 가리고 말았다.

     

    “에 – 츄!”

     

    그리고 그 순간 문을 연 예르나가 본 장면은, 자기 손을 향해 불을 뿜어내는 루크의 모습이었다.

     

     

    ——

     

    드래곤 브레스, 어째서 그 단순한 걸 생각하지 못 한걸까.

    설마하니 인간의 형태임에도 브레스를 뿜을 수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목 언저리의 그 불편한 것은 단순히 뾰루지나 여드름 같은 게 아니라 역린이었던 모양이다.

     

    역린, 그것은 용의 급소라고 불린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용이 불을 뿜기 위한 기관을 제어하는 신경이 밀집된 장소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게 뾰루지나 여드름, 또는 벌레에 물린 자국이 아니라는 것 쯤이야 조금 생각해보면 알 수 있었지만, 역린이라고는 생각 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은가, 용이 인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를 할 수 있다곤 해도 굳이 인간의 몸으로 변신을 하는 걸 즐기지는 않는데다, 만약 하더라도 굳이 자신의 약점인 역린을 고증해 만들 이유가 없다.

     

    게다가 용과 타종족이 섞인 자식은 브레스를 뿜을 수 없기 때문에 역린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자신 같은 돌연변이 키메라가 아니라면 브레스를 뿜을 수 있는 인간형 종족의 역린은 볼 수조차 없다.

    그러니 당연히 어떻게 생긴건지 알 수 있을리가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목이 아팠던 이유는 브레스가 나올 징조였던 모양이다.

     

    ‘설마 내게 내장 발화기관까지 생성될 줄은…….’

     

    아마도 그동안 불을 뿜을 수 없었던 이유는 육신이 덜 자랐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건 설마 육신의 성장에 기뻐해야 하는 건가?

     

    “그럼, 최소한 감기는 아닌거네.”

    “그언 거 각궁.”

     

    예르나는 제 브레스로 화상을 입어버린 루크의 손에 약과 붕대를 감아주고 있었다.

    루크는 그냥 놔두면 금방 나을 거라고는 했지만, 그렇다고 아이가 손에 화상에 물집까지 잡혔는데 그냥 놔둘 수야 없지 않은가.

     

    “그 불, 뿜는 거 제어하는 건 아직 안 되는 거야?”

    “혀으미아 모아슬분, 아으멘 애처할 수 이슬거다.”

    “처음이라서 몰랐고, 다음엔 대처할 수 있을 거라는 소리야?”

    “그애.”

    “근데, 아까부터 발음이 왜 그러니?”

    “입 아니 뜨거어서 그어타.”

     

    루크는 이것이 참 의아했다.

    자신의 혀는 뜨거운 것을 잘 삼키지 못 할 정도로 열에 예민한, 말 그대로 ‘고양이 혀’다.

    그런데 입 안에서 불을 뿜는다고? 그게 무슨 농담이란 말인가?

     

    자신이 정말 ‘설계’된 존재라면, 대체 이런 이율배반적인 설계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어쩌면, 나는 정말 ‘키메라로 설계된 존재’가 아닐지도 모르겠군. 내가 만들었다면 혀나 브레스, 둘 중 하나는 버렸을 테니까.’

     

    자신이 자신을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설계미스를 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아.”

     

    예르나는 루크에게 고개를 돌린 채 입가를 가렸다.

    루크가 다친 건 분명 좋은 일이 아닌데, 왜 웃음이 나오는 걸까?

     

    “왜 그어응가? 호시, 나 애무에 우는 게야? 우지 마거아, 하우 디엔 다 나을 거니까.”

    “아, 아니. 우는 건 아닌데……흑!”

     

    몸을 돌리고 웃음을 참으며 몸을 들썩이고 있으니 우는 줄 알고 루크가 걱정해주고 있다.

    근데 웃음을 참느라 진짜 울 것 같은데, 어쩌지.

     

    저 말투는 정말 반칙인 것 같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비가 오면 관절이 쑤시듯 역린이 쑤시는 루크 할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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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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