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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3

       흐아아!

         

       미래 망상하다가 깜빡했지만 들어온 별장이 귀족파의 은신처였지!

         

       어쩐지! 어쩐지!

         

       이 사람 귀족파의 수상쩍은 은신처에 집주인처럼 너무 당당히 들어오더라!

         

       으아아!

         

       아니야! 아니야!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멀쩡하면 살 수 있다고 했어!

         

       그런데 사람굴은 호랑이굴이 아니니까 정신이 멀쩡해도 살 수 없는 거 아닐까?

         

       허억, 나쁜 깨달음.

         

       파스텔은 창백해졌다.

         

       “일단 공화파 전향을 제대로 했는지 검증하긴 해야 하는데.”

         

       나스타샤 공작이 싱긋 웃었다.

         

       “사적으론 그리 압박하고 싶진 않네! 친구의 자녀에게 강압적으로 굴면 너무 못된 어른이지?”

         

       앗!

         

       엄마 친구님?

         

       인맥 구원줄을 발견한 파스텔은 표정이 밝아졌다.

         

       엄마 사랑해요!

         

       “엄마와 친구세요?”

       “블로섬? 네 아버지를 얘기한 거지만 그것도 그렇긴 하네?”

         

       뭔가 미묘한 뉘앙스였다.

         

       그 이유는 나스타샤 공작이 밝게 웃으며 바로 부연 설명해 줬다.

         

       “블로섬은 네 아버지를 두고 다퉜던 한때의 연적이니까 친구라고 하기엔 자존심이 살짝 아쉬워. 결국 내가 졌지만.”

         

       방긋.

         

       한때의 연적.

         

       역하렘 데리고 걸어가는 블로섬과 그걸 보며 손수건을 물어뜯는 공작영애 나스타샤.

         

       엄마 무슨 짓을?!

         

       파스텔은 이 자리가 다른 의미로 불편해졌다.

         

       내게 해결 불가능한 시련이.

         

       엄마 절반만 사랑해요……!

         

       파스텔은 허둥지둥 탈출로를 찾다가 나스타샤 공작의 소녀 체형을 보고 빠른 주제 전환을 시도했다.

         

       “엄청 동안이시네요!”

         

       물감 범벅인 예술가 차림새도 그렇고 하시는 행동이나 분위기도 뭔가 소녀소녀한 게 젊게 사시는 기분!

         

       “그러게. 나도 삼십 줄 될 동안 그대로일 줄은 몰랐어.”

         

       나스타샤 공작이 웃었다.

         

       “네 아버지에게 고백했을 때 사귀면 도둑놈 같아서 싫다는 대답을 들었는데 그 걱정이 맞았네?”

         

       아버지……!

         

       파스텔은 마음속으로 절규했다.

         

       아빠는 내 인생에 도움되는 게 없어!

         

       정말정말 없어!

         

       “그것도 한때의 일이지만.”

         

       나스타샤 공작이 그림 도구를 정리했다. 그리고 파스텔 초상화를 들고 살펴보더니 끄덕였다.

         

       “초상화 잘 뽑혔다. 갈 때 가져가? 잊지 말고.”

       “앗, 네.”

         

       슬쩍 초상화를 살펴봤다. 샤랄랄라 파스텔이 그려져 있었다. 꽃잎 한 장 그려있지 않건만 완연한 벚꽃이 핀 듯한 아우라였다.

         

       우왕, 나 이렇게 생김?

         

       왜 인기가 많은지 알 거 같아!

         

       나스타샤 공작이 손을 털었다.

         

       “말 나온 김에, 네 아버지와 연락이 안 되는데 요즘 뭐 하는지 알고 있어?”

       “아버지요?”

         

       엄마 부활을 위해 교단에 가입한 뒤 사악한 일에 힘쓰고 계세요. 본인 입으로 마계에 있을 테니 동참할 거면 찾아오라는 말도 들었죠. 완전 나쁜 아빠.

         

       라고 말하기엔 굉장히 곤란.

         

       “저도 잘 몰라요.”

         

       그렇게 답하다 파스텔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라라.

         

       잠깐만 이거 젊을 때 고백했다가 차인 여자가 아내를 잃은 남자에게 연락을 취하려던 상황인 건가?

         

       나 지금 무자각 상태로 불륜을 예방한 것?

         

       휴우~.

         

       엄마! 나 이렇게나 좋은 자녀라구!

         

       정작 아빠는 자식도 버리고 엄마 부활에 몰두하고 있으니 불륜은 머릿속에 있지도 않겠지만!

         

       파스텔은 그런 아빠가 좋은 아빠인지 나쁜 아빠인지 모르겠어요~.

         

       “긴장은 풀린 거 같으니 본론으로 들어갈까?”

         

       나스타샤 공작이 파스텔 앞자리에 의자를 가져왔다. 앉더니 다리를 꼬고 차분히 말했다.

         

       “우리 공화파는 모든 귀족의 가입을 환영하지만 스파이까지 받아들이는 건 아니야. 특히 왕당파 이력이 확실한 가문은.”

         

       으아아.

         

       아직 긴장 안 풀렸는데.

         

       아마 평생 안 풀리겠지마안.

         

       파스텔은 손가락을 꼼지락댔다.

         

       “저 질문 있어요.”

         

       의아해하는 시선이 왔다.

         

       “귀족파와 공화파는 다른 건가요?”

         

       중요한 질문.

         

       귀족파 은신처인 줄 알았는데 와보니 공화파라고 해서 당혹스럽다.

         

       하지만 나스타샤 공작은 이 질문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표정이 심각해졌다.

         

       “생각보다 더 진지하네? 혹자는 우리를 두고 공화가 아니라 귀족이라 부르지만 그쪽이야말로 잘못됐어. 중우정치와 공화정치도 구분하지 못한 채 어떻게 변화를 논할까?”

         

       갈색 눈동자가 저 어딘가를 바라봤다.

         

       “몽상에 빠지지 않는 해답이 교육일 순 있겠지만 주장 이전에 신민의 문해율부터 확인하고 오는 게 좋겠지. 체제가 선행되고 제도가 뒤를 이으며 문화가 뒤따를 때 몽상은 현실이 되는 거야.”

         

       갑자기 등장한 맥락 밖 논점에 파스텔은 쭈그러들었다.

         

       “그, 그게 아니고 사교계에 귀족파와 공화파가 따로 있나 해서요.”

       “응? 뭐가?”

       “네?”

       “응?”

         

       나스타샤 공작은 어안이 벙벙해했다.

         

       “설마 말 그대로 귀족파와 공화파가 따로 있느냐고?”

       “네!”

         

       드디어 말이 통했다!

         

       나스타샤 공작이 생각하더니 난감해하는 미소가 됐다. 손가락이 입가를 문지르다가 파스텔을 가리켰다.

         

       “입장을 내려놓고 친구의 자녀에게 사적으로 조언해 주자면, 무지를 너무 가장하는 건 정계 활동에 좋지 않아. 모호한 신뢰성은 아군에게도 괜한 의심을 받게 되거든.”

         

       허억, 너무 좋은 조언.

         

       요즘 무슨 짓만 해도 엘리가 의심스럽게 관찰하는 눈길이 부담스럽던 참이었다.

         

       내가 무슨 짓을 했다구우!

         

       근데근데 진짜진짜 중요한 사실.

         

       저 정말 모르는데요오!

         

       귀족파와 공화파가 다른 건가?!

         

       파스텔은 억울해졌다.

         

       “연기가 아니라 저 진짜 몰라요. 하늘섬에서 빈둥대던 변방 파스텔이라구요.”

         

       나스타샤 공작이 난감해했다.

         

       “사교계 조사도 안 하고 왔다는 걸 믿으라고? 귀족파나 공화파나 같은 대상을 가리킨다는 걸 모를 만큼?”

       “그건 그건.”

         

       사교계 조사했는데.

         

       분명 했는데에.

         

       그게 병실에서 악마님에게 정계 구도 물어보기였을 뿐이고.

         

       그때 악마님은 그냥 왕당파와 귀족파의 대립이라고 설명해 주셨고.

         

       근데 와보니까 명칭이 귀족파가 아니라 공화파였고.

         

       어라라 그럼 둘이 다른 건가? 싶었을 뿐이고.

         

       “아직 서툴지만 피는 진하네.”

         

       나스타샤 공작이 꼰 다리를 반대 다리로 바꿨다. 그러더니 웃으며 턱을 괬다.

         

       “변방에선 그 외견으로 속아 넘겼을지 모르겠지만 여긴 웃으며 비수를 찌르는 사람이 수두룩해. 어제 황제에게서 총독직도 받은 사람이 순진한 척하면 누가 넘어가겠어.”

         

       허억.

         

       분명 병실에서 조용히 수여된 총독직이었는데 어느새 정보가 넘어간.

         

       그보다 지금 황제의 스파이인지 검증하겠다고 면담하는 거였으면서 정작 뒤로는 제가 왕당파 기념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구요?

         

       뭐야?! 뭐야?!

         

       무서워어!

         

       파스텔은 파르르 떨었다.

         

       왕당파엔 가입했지만 이런 무서운 사람과도 싸우기 싫어어!

         

       “경험 부족이 만드는 경계심이려나?”

         

       나스타샤 공작이 입술을 누르며 고민했다. 그러다 빙긋 웃었다.

         

       “너무 그렇게 숨길 필요 없어. 이 자리는 네 모호한 입장을 명확히 확인하려는 목적이니까. 적아 구분이네.”

         

       파스텔은 고양이 앞의 생쥐 상태가 됐다. 평범한 생쥐와 다른 점이라면 머리에 벚꽃 리본이 달렸다는 것뿐이었다.

         

       탈출! 탈출!

         

       두뇌 자원을 몽땅 끌어모아 탈출로를 모색했다.

         

       과제: 공화파와 적대 관계가 되지 않은 채 하늘섬으로 도망치기.

         

       그 방법은, 방법은…….

         

       파스텔은 고민 끝에 생쥐에서 고슴도치로 진화하기로 했다.

         

       다른 말로는 가시 세우고 허세 부리기였다.

         

       하압-!

         

       크래프트 모드……!

         

       대놓고 덜덜 떨던 몸이 점점 진정됐다. 분홍 눈동자가 공작을 차분히 직시했다.

         

       그러다 분홍 눈동자가 접히고 몸이 살짝 꼬였다. 한번 봐달라는 어리광이 살포시 맺혔다. 부모 친구라는 관계를 줄타기하는 능글맞음이었다.

         

       “그렇지만 목줄을 손에 놓지 않는 사람에게 진심을 보이긴 어렵다고 생각해요. 존중은 상호존중일 때 아름답잖아요.”

         

       나스타샤 공작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피가 짙네.”

         

       꼰 다리가 풀렸다.

         

       “어제 우리는 만찬 준비를 잘못해 후작을 기절시킨 황제를 압박하려 준비했어. 크래프트 가문이 전향을 간 보는 듯하니 아예 총대를 메게 해 전향을 못박자는 의도도 있었지.”

         

       나스타샤 공작이 그림 공방 구석을 뒤적였다. 알록달록한 물감병이 달그락댔다.

         

       “먼저 전대 폭군의 얘기를 꺼내 정계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드는 거야. 그러면 이 사안의 원흉이자 아직 중앙정계에서 외톨이인 크래프트 후작은 당장 왕당파로 돌아가기 어려워질 테지?”

         

       나스타샤 공작이 몸을 일으켰다.

         

       “그때 이 진짜 증거품을 보여줘서 완전히 공화파로 전향하는 것과 정계에서 외톨이인 상태로 황제 모함 혐의를 받으며 왕당파와 공화파의 협공을 받을지를 선택하게 하면 파벌 줄타기 못 하고 공화파로 전향해야 할 테니까.”

         

       나스타샤 공작의 손엔 마석 후추통이 들려 있었다. 파스텔이 가진 것과 똑같은 생김새였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후작이 총독직을 받은 걸 보고 의견이 갈렸어. 애초에 왕당파에 마음이 있었나?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나? 후자엔 많은 의견이 있었지만…….”

         

       나스타샤 공작이 빙그레 웃었다.

         

       “모략을 취소하고 황제를 회유해 이 사안에만 해당할 약점부터 파훼한다.”

         

       다가오더니 마석 후추통을 건네졌다.

         

       “어리숙한 자는 모략의 성공만을 생각하지만 탁월한 자는 모략의 유연성을 고려하지.”

         

       배신의 성공보다 후속 처리를 계산해야 하듯.

         

       “피가 짙어.”

       “글쎄요.”

         

       소녀는 태연히 증거품을 돌려받았다.

         

       “이 정도는 상식 영역이죠.”

         

       분홍 눈동자가 부드럽게 접혔다.

         

       “이제야 공평해졌으니 일 얘기를 해볼까요, 공작?”

         

       나스타샤 공작의 입이 벌어졌다.

         

       “나도 이 나이엔 안 이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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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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