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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3

       레카체프 서커스 학교가 세워진 것은 28년 전의 일이었다.

         

       당시 제국의 황제는 반백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교회의 위상을 꺾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는 황실 행사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던 주교의 강론을 폐지하더니 그 자리에 광대의 풍자극을 끼워 넣었다. 조롱의 대상은 주로 부패한 귀족들과 성직자들이 대상이었다.

         

       거기다 그는 주일마다 사람들에게 교회에 가는 대신 극장에 가는 것을 장려했다. 수도 안에는 황제 본인이 직접 후견인으로 나서서 국립극장을 짓기까지 했다.

         

       그의 행보 중 가장 파격적인 것은 유서 깊은 대성당들을 사들여 극장으로 개조한 것이었다.

         

       예테린푸르크의 ‘성 빅터 성당’ 역시 그러한 수난을 겪었다.

         

       성 빅터 성당은 성자 빅터가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받지 않고 구호를 베풀었던 장소에 세워진 기념물이었다. 절름발이를 일으켜 세우고 장님을 눈뜨게 했던 그의 이적에서 따와 성당은 ‘기적궁(奇蹟宮)’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었다.

         

       기적궁의 소유권을 빼앗은 황제는 궁정 광대를 기적궁의 관리자로 보내 그곳을 곡예사를 양성하는 장소로 만들었다.

       광대는 도시 내의 모든 칠장이를 불러 원래 새하얬던 성당을 온갖 종류의 다채로운 색으로 칠했다.

       그리고 당시 이름 높았던 곡예사 5명을 끌어들여 교수로 삼았다.

         

       그렇게 한 명의 광대와 다섯 명의 곡예사가 모여 만들어진 곳이 바로 ‘레카체프 서커스 학교’였다.

         

       이와 같은 황제의 행보에 대해 교회 측은 어비스의 마귀들이 지상에서 날뛰던 암흑시대가 부활할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수십 년이 흘러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황제는 교육의 발달과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영적인 힘을 강화하고 어둠에 대한 공포를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실제로 요즘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책과 전등’이 어비스의 마귀들이 가장 겁내는 것이라는 말이 돌 정도였으니, 황제는 시대를 앞서 내다보는 선구안을 가진 사람이라 할 만했다.

         

       서커스 학교 앞에 서 있는 황제의 동상은 그러한 내력을 바탕으로 세워진 것이었다.

         

       나이든 예테린푸르크 토박이들에게는 여전히 기적궁이라 불리는 건물 앞은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서커스 그랑프리가 시작된 이후로 경연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이곳을 자주 찾았지만, 오늘은 그 규모가 평소의 몇 배는 되었다.

         

       그중 10대의 비중이 유독 높았다.

       형형색색의 옷으로 차려입은 그들은 자신을 쳐다보는 관광객들과 곡예사들의 시선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예테린푸르크에 머무르는 서커스단들이 섣불리 영입을 시도하지 않고 오늘을 기다린 것은 바로 그들 때문이었다.

         

       오늘은 레카체프 서커스 학교의 신입생 선발 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레카체프는 매년 뛰어난 곡예사들을 배출하기로 정평이 난 곳이었다.

       현재 스타로 이름난 사람들의 절반 가까이가 레카체프 출신이었다.

         

       이곳에 입학하고자 찾아오는 10대 중에는 대형 서커스단의 단장을 부모님으로 둔 아이도 있었고, 유명 곡예사의 제자도 있었다.

         

       대회 참가자들이 이곳에 온 이유는 입학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올린 학생을 스카우트하기 위해서였다.

         

       레카체프 입학자격은 누구나 탐낼 만한 것이기는 하나, 서커스 그랑프리에 참가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았다.

       하물며 본선에 진출해서 하늘도시 히포드롬의 무대, 원더 스테이지에 선다면?

       그건 곡예사라면 누구도 마다하지 않는 큰 영예였다.

         

       원래라면 이런 노골적인 스카우트 활동 따위 레카체프에서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레카체프는 6대 극장에 선발되면서 대회 기간에만 스카우트를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서서 ‘드래프트’라는 규칙을 만들어 세상 물정에 어두운 학생들이 불공정 계약에 당하는 것을 방지했다.

         

       그래서 입학시험을 관람하는 서커스단 사람들은 드래프트의 규칙에 따라 시험이 끝나는 시점까지 아이들에게 접촉하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접수를 마친 입학 지망생들은 그제야 조금 긴장감이 풀리는지 근처에 있는 다른 지망생들과 함께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서로 어떤 재주가 특기인지, 어떤 곡예사를 희망하는지, 입학할 것인지 아니면 입단할 것인지, 어떤 서커스단을 노리고 있는지에 대해 떠들어댔다.

         

       이곳에 온 아이들은 보통의 또래들과 동떨어진 생활을 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자신과 비슷한 친구들이 잔뜩 모여있다는 사실 자체를 즐거워했다.

         

       그때, 한 여자아이가 어느 곳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황금 카니발이다!”

         

       잡담을 나누던 아이들이, 그리고 그들을 살피던 어른들도 그녀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황금 카니발.

       <크리스티앙 가이드>로부터 별 3개를 받은 3개의 서커스단 중 하나.

       현 업계 No.1 마술사인 로드 판타스틱이 이끄는 기획형 드림팀.

         

       그들이 예테린푸르크에 와 있다는 소식은 들었다.

         

       설마 로드 판타스틱이 직접 나온 것일까?

         

       순식간에 조용해진 학교 앞 광장.

         

       사람들의 시선을 한눈에 받은 서커스단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검은 망토를 두른 금발의 마술사에 피부가 바싹 탄 노인, 해골 가면을 쓴 광대와 한여름에 두꺼운 옷으로 몸을 가린 여인, 그리고 10대 소녀 둘이었다.

         

       “누구……요?”

       “황금 카니발?”

       “왜 있잖아. 내가 저번에 설명해준 그 별 3개짜리 중 하나,”

       “우승 후보 중 하나죠.”

       “그런데 왜 우리를 보고 그런 소리를……?”

         

       원더스타인은 자신들을 가리키며 소리친 여자아이가 배꼽을 붙잡고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것을 봤다.

         

       “후후, 장난꾸러기가 있는 모양이군요.”

         

       TT2에서는 이곳도 장미 풍차 카바레처럼 원더스타인의 혼이 깃든 보석에 의해 마인들이 날뛰는 소굴로 변했었다.

         

       이곳의 보스와 정예들은 주로 교수와 학생들이었다.

         

       그러나 원더스타인은 아는 학생을 만날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TT2의 배경이 되는 것은 앞으로 4년 뒤의 일이었다.

         

       그들은 아직 입학하지 않았다.

       ‘아직은.’

         

       방금 수천 명의 사람을 속여 먹은 장난을 보인 여자아이도 게임에서는 고학년 네임드로 나왔다.

       양치기 소녀라는 별명을 가진 광대였는데, 부전공으로 길들이기를 선택해 늑대를 몰고 다녔다.

         

       그제야 속은 것을 안 사람들은 소녀를 바라보며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간 장난. 또 장난. 광대들은 진짜 저게 싫다니까!”

       “크힛힛, 나는 마음에 드는데? 광대는 모름지기 황제 앞에서도 혀를 놀려야지, 암!”

       “천지 분간 못하는 아이로군. 미운털 박히겠군. 선발되기 싫은 건가?”

       “난 반대로 생각하는데? 자기 얼굴 잘 팔았잖아. 계산하고 한 거면 저거 진짜 영악한 거야.”

         

       사람들은 양치기 소녀에 대해 투덜거리면서도 뜻하지 않은 주목을 받게 된 이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누구야?”

       “남자가 무척 잘생겼는데!”

       “아, 그거다. 그 루즈의 개막식에서 일어난 재판!”

       “이름이 뭐였더라……?”

       “프랑크 원더스타인!”

       “맞아! 괴물서커스의 익살꾼! 원더스타인!”

       “그 옆에 애가 그 부단장이라는 어릿광대 아가씨인가?”

       “잠깐, 저 옆에 해골 가면은 그럼…….”

         

       엘라는 자신들을 가리키며 쑥덕거리는 사람들을 보며 미소지었다.

       무명이었던 자신들이 어느새 이렇게나 유명해졌다.

         

       원더스타인뿐만 아니라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도 있었고, 스벤이나 유라크네의 정체에 대해서도 추론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정보를 꿰고 있는 사람들은 관객이라기보다 업계 관계자들이었지만 그것만 해도 엘라는 뿌듯함을 느꼈다.

         

       “원더스타인 서커스단 지나갑니다!”

         

       엘라는 별로 길을 막고 있지도 않은 사람들을 해치는 시늉을 하며 앞장섰다.

       이왕 주목된 시선을 활용해서 이름이라도 한 번 더 귀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그녀는 멀리서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그리는 양치기 소녀를 향해 엄지를 척 올려주었다.

         

       한편, 원더스타인과 반대 방향에서 들어오던 진짜 황금 카니발 사람들은 뜻밖의 사태에 당황했다. 이제 막 그들이 얼굴을 드러내고 주변 사람들도 알아보기 시작하면서 이목을 모으려는 찰나에, 수험생들 가운데 웬 광대 계집애 한 명이 그들을 발견하고는, 반대 방향을 가리키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끌고 가버렸다.

         

       사람들은 황금 카니발이 교정 중간에 들어서고 나서야 그들이 들어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뭐야, 여기 있잖아.”

       “이봐, 진짜 황금 카니발은 여기야!”

         

       그러나 ‘양치기 소녀’ 효과 때문인지 시선이 모이는 속도도 늦었고, 반응도 기대보다 시큰둥했다. 지금 와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봤자 이미 첫 등장의 임팩트는 원더스타인 쪽으로 넘어가 다 김이 새버린 뒤였다.

         

       로드 판타스틱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그의 콧수염은 분노로 떨렸다.

         

       “아버지…….”

         

       그의 옆에 서 있던 레이나가 그를 달래려 했지만 역효과였다.

       판타스틱은 딸을 싸늘한 눈으로 노려봤다.

         

       “밖에서는 ‘단장님’이지.”

       “……네. 단장님.”

       “몇 번을 말하는 거냐. 이 덜떨어진 년.”

         

       그는 그렇게 말을 툭 던지고는 황금색 망토를 휘적거리며 학교 건물 앞에 선 교수로 보이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이야, 올해도 아주 유망한 신인들이 아주 많이 모였군그래?”

         

       로드 판타스틱은 필요하면 얼마든지 자신을 꾸밀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고향 친구라도 만난 사람처럼 반가운 얼굴로 교수와 악수를 하고는 수험생들을 둘러봤다.

         

       그를 향한 시선들에 경외감이 한층 더 깊어졌다.

       이것은 그가 의도했던 바였다.

         

       아직 입학시험도 통과 못 한 병아리들에게 교수와 친분을 과시하여 이런 식으로 아득한 급의 차이를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최고의 실력을 가졌으면서도 책략을 부리는 데 한 치의 주저함이 없었다.

       그는 공연도, 축제도, 자식을 키우느 것도 모두 승부라고 생각하는 남자였다.

         

       “레이나, 괜찮니?”

         

       황금 카니발 소속의 절룩거리는 30대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는 등으로 사람들이 그녀의 얼굴을 못 보도록 가리며 속삭였다.

         

       레이나는 그를 향해 조금 쓸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문제없어요. 저 인간이 저러는 게 한두 번도 아니잖아요. 서커스에 미친 인간.”

       “어…….”

         

       절름발이는 표독스럽게 내뱉는 그녀의 입과 달리 눈에는 물방울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 어색한 소리를 냈다.

         

       “자, 가죠. 로드 판타스틱의 딸이 울적한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되잖아요?”

         

       레이나는 그를 지나치면서 표정을 싹 고쳐 보였다.

       도도하고 고고한 ‘황금 천칭’ 레이나의 모습으로.

         

       그녀는 마치 빈민가를 시찰 온 귀족 아가씨처럼 고개를 척 들고 오만한 눈빛으로 학교 앞에 모인 아이들을 둘러봤다.

         

       “와, 누구지?”

       “엄청 예쁘다.”

       “그 있잖아. 로드 판타스틱의 딸.”

       “아, 황금 천칭…….”

       “재수 없어. 우리 아빠가 맨날 비교해서 귀에 딱지가 앉았단 말이야.”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사람들 앞에 선 그녀의 표정에는 한 치의 빈틈도 없었다.

         

       학교 건물 위에서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는 일군의 학생들이 있었다.

         

       “어휴, 저 계집애는 왜 저렇게 도도하게 굴어?”

       “‘황금 천칭’ 좋아하시네. 흥. 찰리 선배에게 한 번 발린 주제에.”

         

       교수들을 도와 시험 준비를 마친 학생들은 위층에 올라가 교정을 내려다보며 사람들 품평을 하고 있었다.

         

       이번 수험생들은 매가리가 없어 보인다는 둥.

       저 서커스단은 우리가 덤비면 단장 이하 다 바를 수 있다는 둥.

       저 관객은 서커스보다 여자들 치마 밑에만 관심있어 보인다는 둥.

         

       그렇게 떠들던 아이들은 로드 판타스틱의 딸인 레이나를 발견하고는 4년 전에 있었던 전설적인 입학시험에 대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도 로드 판타스틱은 자신의 딸을 데리고 왔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걸작’이 입학시험의 모든 과목에 최고점을 획득하게 함으로써 레카체프에 망신을 주려 했다.

         

       업계 최고 명문이 고작 이 정도냐고.

         

       실제로 그의 의도는 성공할 뻔했다.

       레이나는 당시 수석의 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워 버렸다.

         

       그러나 그때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이 있었다.

         

       그게 바로 찰리였다.

         

       그는 부모도 없었고, 스승이 유명한 곡예사도 아니었다.

       이름 없는 시골의 서커스 학교 출신이었다.

       17년 전의 테러 이후로 모자라는 곡예사를 공급하기 위해 우후죽순으로 생긴 그런 곳이었다.

         

       그런 촌뜨기에게 황금 천칭이라 불리는 레이나가 패배하고 말았다.

       총 25가지 입학시험 과제 중에서 12승 13패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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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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