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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3

       -부오오오오오!!

       

       2층 미로의 중심. 대지의 신의 심장을 찢고 나와, 환영으로부터 실체를 얻은 미노타우로스가 포효한다.

       

       탁 트여있을 이 중심부를 가득 채우는 막대한 성량. 그 안에 담긴 절절한 적의에 순간 몸이 멈칫한다. 하지만.

       

       “정신 차려! 다들 흩어져서 무기 들어!”

       

       “쫄지 마라! 이미 몇 번이고 연습했던 일 아니냐!”

       

       “명심해라! 가까이 붙지 말고, 정면에 있지 말고, 오인사격 조심해라!”

       

       보호자로 동반한 중견 모험가들의 외침에 정신을 차리고 일사불란하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합동 훈련을 한 건 아니지만, 너무나 공략법이 명확하고, 수백 년간 연구 되어온 미노타우로스이기에 마치 짜기라도 한 얼추 맞아 떨어지는 움직임.

       

       리디아 또한 옆으로 빠지며 손을 흔들었다.

       

       “요나 화이팅.”

       

       “똑똑히 지켜봐 주세요!”

       

       빵긋 웃으며 주섬주섬 무언가 꺼내는 로즈마리의 뒷덜미를 잡고 미노타우로스와 거리를 벌렸다.

       

       “흐악! 무, 뭐야! 나도 다 생각이 있다! 갑자기 이렇게 옮기면 위험하지 않나!”

       

       “항상 리디아 님 시야에 있으라는 말 기억하죠? 저희가 너무 멀리 떨어지면 안 돼요.”

       

       “이익!”

       

       분하다는 듯 잇소리를 내는 로즈마리였으나, 이내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아공간 반지에서 큼직한 활을 꺼낸다.

       

       “후우. 됐으니까 너도 빨리 마법 시전해. 공헌도는 채워야 할 거 아냐.”

       

       “공헌도 말이죠….”

       

       현재 미노타우로스는 중무장한 탱커 대여섯 명이 발목을 붙잡고, 그 사이에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모험가들이 계속해서 딜을 넣고 있었다.

       

       내가 입고 있는 모르가나의 로브 때문인지 나 또한 원거리 딜을 넣는 마법사로 착각한 것이리라.

       

       물론 아니지만.

       

       “그런 거 없는데요?”

       

       “……뭐?”

       

       “아니, 뭐. 마법을 쓸 줄은 아는데 하나같이 사정거리가 짧거든요. 그리고 전 근접직이라 저기 섞여서 싸울 생각이에요.”

       

       “그런 무장으로는 한 대 맞으면 죽어!”

       

       “중갑을 입어도 한 대 맞으면 죽는 건 똑같은데 뭘 새삼스레.”

       

       이번에 오러 스킬인 잠력 폭발을 얻으며 신체의 내구도 확 성장했지만, 그래봐야 평범한 모험가 수준이다.

       

       예전부터 탱커 노릇을 해오며 내구도를 성장시켜 온 저들에겐 한없이 못 미치는 수준.

       

       하지만.

       

       “달리 말하면 한 대도 안 맞으면 괜찮다는 소리예요!”

       

       “…….”

       

       어이없어하는 로즈마리. 그런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 주었다.

       

       “따라오라는 말은 안 할게요. 하지만 아까 말했던 것처럼 리디아가 저랑 로즈마리를 한눈에 넣을 수 있는 각도를 의식하면서…알겠죠?”

       

       “어, 응?”

       

       로즈마리가 어버버하는 사이 그대로 소리를 먹는 발걸음을 사용해 존재감을 숨겼다.

       

       “어어어?!”

       

       눈앞에 사람이 있는데 없는 것 같은 기이한 광경에 기겁한 로즈마리를 뒤로 하고 미노타우로스를 향해 돌진했다.

       

       투명 망토는 쓰지 않았다. 이런 난전에서 육안으로 확인조차 못 한다면 모르고 내가 있는 곳을 향해 공격을 날릴 수 있으니까.

       

       대지를 걷어찰 때마다 가까워지는 거리. 그만큼 전투의 소음 또한 커져갔다.

       

       -부오오오오!!

       

       낮지만 강렬한 울음소리를 터뜨리며 주먹을 휘두르는 미노타우로스. 2m는 훌쩍 넘은 거구와, 꽉 들어찬 근육에서 나오는 힘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콰앙!

       

       실제로 이를 잘못 받아낸 탱커의 대형방패에서 폭발음이 들려왔으니까.

       

       “커헉!”

       

       방금 공격을 막아낸 인간 여자가 피를 토하며 옆으로 튕겨 나간다. 방패를 들고 있었던 팔은 꺾여선 안 될 방향으로 꺾인 상황.

       

       그래도 죽지는 않았는지 꿈틀거리고 있자, 사제들이 멀리서 힐을 해주기 시작했다.

       

       아직 경지가 낮은 사제들이라 원거리 힐의 효율이 떨어지겠지만 응급처치 수준은 되겠지.

       

       지금까지는 미노타우로스의 주먹질을 잘만 흘려 막았으나, 실수로 딱 한 번 정면에서 받아냈을 뿐인데 이렇게 가버리다니.

       

       이거 진짜 내가 스치면 사망이겠네.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대폭 늘어난 오러를 전신에 둘렀다.

       

       전신에 활기가 돌며 뜀박질 속도가 한층 가속한다.

       

       요즘 리디아에게 조금씩 오러 사용법을 배우고 있는 덕에 전보다는 한층 나아진 운용 능력 덕에 가능한 일.

       

       잡아 늘인 찰흙처럼 늘어지는 풍경 속에서 단숨에 미노타우로스의 배후를 점했다.

       

       뒤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나를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는 이가 있었지만 알게 뭔가. 가까이서 보니 가죽이 약간 그을린 것 말고 멀쩡하더만.

       

       딜이 부족한 딜러에게 인권은 없는 법이다.

       

       피식 웃으며 오러를 발바닥 부근에서 작게 폭발시키며 뛰어올랐다.

       

       달려오는 속도를 그대로 살린 도약. 순식간에 미노타우로스의 키와 비슷한 높이까지 뛰어오른 것을 확인하고서야 허리를 한껏 비틀었다.

       

       그렇게 눈앞의 탱커들을 후려치는 데 집중한 미노타우로스의 뒤통수에 닿기 직전.

       

       “흐읍!”

       

       비틀린 허리를 단숨에 원상 복귀시키며 공중에서 한 바퀴 회전했다.

       

       전신의 근육이 용수철 같은 탄력으로 폭발적인 속도를 자아낸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타이밍에 맞춰 팔을 크게 휘두른다.

       

       달려가던 가속도, 전신의 회전력, 그리고 정확한 순간에 휘둘러진 팔.

       

       지금 이순간. 내 모든 힘이 단검에 집중되었으니.

       

       서걱-!

       

       물리적 충격에 강하다는 가죽이 단숨에 베이며 살 한 뭉텅이가 뜯겨나간다.

       

       다만, 워낙 덩치가 큰 놈이고 맷집도 좋아 유니콘 단검 정도로는 숨통을 끊을 수 없다는 게 좀 아쉽네.

       

       -쿠어어어?!

       

       갑작스레 뒷목을 후벼 파인 미노타우로스가 고통스런 비명과 함께 뒤를 돌아본다.

       

       아직 공중에서 낙하 중이라 움직이지 못하는 내겐 꽤 위험한 상황. 이대로 대충 후려치기만 해도 즉사겠지. 다만.

       

       “타올라라! 격렬한 불꽃!”

       

       그렇게 되기 전에 녀석의 안면에 마법을 박아주면 그만이다.

       

       화르르륵!

       

       -부오오옥!!”

       

       이글거리는 분노의 눈빛이, 한층 이글거리는 큼직한 화염에 휩싸여 감긴다.

       

       나를 향해 휘두르려던 손으로 자신의 얼굴에 붙은 불을 두드려 끄는 미노타우로스.

       

       2성급 마법. 마탑 기준으로는 나름 3서클에 속하는 마법이다. 거기에 사정거리가 코앞인 대신 화력만큼은 확실한 마법 아닌가.

       

       기대를 배신하지 않겠다는 듯, 지금껏 수많은 화살과 마법에도 큰 피해를 입지 않았던 미노타우로스의 안면이 까맣게 그을렸다.

       

       단순히 겉가죽만 탄 건 아닌지, 입에서 까만 연기를 뱉어내는 녀석.

       

       허나, 미노타우로스는. 한때 혼자 수없이 많은 침입자를 쓰러뜨리던 불굴의 영웅이었던 자가 겨우 이 정도로 죽을 리 없지.

       

       맹렬한 불길에 눈을 감고 있던 미노타우로스의 눈꺼풀이 번쩍 뜨였다.

       

       한쪽이 열기로 하얗게 변색된 눈. 아직 멀쩡한 반대쪽 눈이 매서운 기세로 이쪽을 노려본다.

       

       “바, 방금 전의 일격은 대체…….”

       

       “멍청아! 지금 그게 문제냐! 어그로 다 끌렸잖아!”

       

       “딱 붙어서 막아! 진열 무너지면 다 같이 뒤지는 거야!”

       

       바로 앞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본 탱커들이 다급히 나와 미노타우로스의 앞을 가로막는다.

       

       동시에 옆에서 쏟아지는 자잘한 마법과 화살들.

       

       탱커들이야 전열이 무너지며 토벌전 자체가 엉망이 되는 걸 경계하는 느낌이라면, 원딜러들은 자기 공헌도를 채우기도 전에 미노타우로스가 쓰러질지 몰라 조바심 낸다는 느낌이었다.

       

       다만, 내게 쉽게 당했다 하여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본래 멀리서 천천히 짤짤이로 죽여야 하는 녀석을 무턱대고 공격하기 시작하면 제대로 될 리가 있나.

       

       강제로 위력을 높인 마법은 컨트롤이 무너져 빗나가거나, 허공에서 흩어졌고.

       

       화살에 무리하게 오러를 담으려던 시도는 허무하게 실패해 활이 부러지거나, 본인이 리바운드로 무너진다.

       

       그로 인해 잠깐 집중됐던 화력에 공백이 생겼고, 이는 어떻게든 튄 어그로를 수습하려던 탱커들의 재앙으로 다가왔다.

       

       -부어어어어!

       

       괴성을 내지르며 가장 앞에 있던 드워프 전사를 걷어차는 미노타우로스.

       

       본래라면 깊은 상처를 내진 못해도, 움직임을 방해하는 마법들에 묶여 제 위력을 내지 못했을 발길질이 정통으로 들어갔다.

       

       카직!

       

       금속이 접히는 소리와 함께 갑옷 채로 찌그러진 드워프. 다른 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먹에 얻어맞고, 짓밟히고, 때로는 그대로 붙잡혀 내동댕이쳐지기도 한다.

       

       “꺄아아악!”

       

       “이 멍청한 년들! 왜 공격이 끊긴 거야!”

       

       “선배! 도와주십쇼 선배!!”

       

       아비규환 그 자체. 중상을 입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일어나는 이가 있는가 하면, 포기하고 구원을 요청하는 이도 있었다.

       

       아직 죽은 이는 없지만, 말 그대로 개판이 된 상황.

       

       “아니. 이게 뭔…?”

       

       아무리 내가 극딜을 넣으며 미노타우로스의 신경을 끌었다고는 하나, 겨우 이거 하나로 이렇게 무너질 줄이야.

       

       내가 없었으면 무난히 공략했을 녀석들이기에 조금 미안하면서도, 예상외의 상태가 되자 바로 폭주해서 자멸하는 모습이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뭐어. 이렇게 됐으니 어쩔 수 없지.

       

       방금 유니콘 단검을 쑤셔 넣으면서 대충 감이 왔다. 이 정도는 잠깐이라면 나 혼자 커버할 수 있다. 

       

       물론 말 그대로 ‘전력’을 다해야 하니 주목을 피하기는 어렵겠지만…….

       

       그 부분은 이미 각오가 끝났다. 이브를 찾기 위해 퍼뜨린 소문, 로즈마리를 통해 만난 고위직 엘프들에게 보여줄 권능.

       

       어차피 내 존재가 알려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러니 조금 정도는 먼저 내비쳐도 되겠지.

       

       ……신전 상대로 눈 가리고 아웅이라도 하려면 약간의 양념은 쳐야겠지만.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모험가들 사이를 지나며 포도 맛 사탕을 거칠게 씹었다.

       

       마치 무슨 금지된 비약이라도 먹는 것처럼 비장한 표정으로.

       

       그리고는 주머니를 톡톡 두드려 풀돌 여신상을 향해 작게 기도했다.

       

       ‘성역 전개. 내 몸에 딱 달라붙도록 최대한 좁게 부탁해.’

       

       우웅-

       

       어째서인지 평소보다 흥분한 것처럼 음흉하게 진동한 여신상을 중심으로 뿜어져 나오는 빛.

       

       동시에 이번에 새로 얻은 잠력폭발을 발동시켰다.

       

       후광처럼 밝게 뿜어져 나왔어야 할 신성력이 아직 신념을 덧칠하지 못해 투명한 오러와 뒤섞여 불꽃처럼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이미지하는 것은 리디아의 오러 운용 모습. 다만, 그보다는 조금 위태롭게. 마치 목숨을 불태우는 것처럼 화려하게.

       

       도망치던 이들도, 맞서 싸우기 위해 가까스로 일어선 이도, 심지어는 당장이라도 이쪽을 향해 돌진할 것 같은 미노타우로스조차 잠시 멈춰 이쪽을 바라본다.

       

       그 시선을 즐기며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와 바 랏!”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탕 옴뇸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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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3

EP.133





       -부오오오오오!!


       


       2층 미로의 중심. 대지의 신의 심장을 찢고 나와, 환영으로부터 실체를 얻은 미노타우로스가 포효한다.


       


       탁 트여있을 이 중심부를 가득 채우는 막대한 성량. 그 안에 담긴 절절한 적의에 순간 몸이 멈칫한다. 하지만.


       


       “정신 차려! 다들 흩어져서 무기 들어!”


       


       “쫄지 마라! 이미 몇 번이고 연습했던 일 아니냐!”


       


       “명심해라! 가까이 붙지 말고, 정면에 있지 말고, 오인사격 조심해라!”


       


       보호자로 동반한 중견 모험가들의 외침에 정신을 차리고 일사불란하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합동 훈련을 한 건 아니지만, 너무나 공략법이 명확하고, 수백 년간 연구 되어온 미노타우로스이기에 마치 짜기라도 한 얼추 맞아 떨어지는 움직임.


       


       리디아 또한 옆으로 빠지며 손을 흔들었다.


       


       “요나 화이팅.”


       


       “똑똑히 지켜봐 주세요!”


       


       빵긋 웃으며 주섬주섬 무언가 꺼내는 로즈마리의 뒷덜미를 잡고 미노타우로스와 거리를 벌렸다.


       


       “흐악! 무, 뭐야! 나도 다 생각이 있다! 갑자기 이렇게 옮기면 위험하지 않나!”


       


       “항상 리디아 님 시야에 있으라는 말 기억하죠? 저희가 너무 멀리 떨어지면 안 돼요.”


       


       “이익!”


       


       분하다는 듯 잇소리를 내는 로즈마리였으나, 이내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아공간 반지에서 큼직한 활을 꺼낸다.


       


       “후우. 됐으니까 너도 빨리 마법 시전해. 공헌도는 채워야 할 거 아냐.”


       


       “공헌도 말이죠….”


       


       현재 미노타우로스는 중무장한 탱커 대여섯 명이 발목을 붙잡고, 그 사이에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모험가들이 계속해서 딜을 넣고 있었다.


       


       내가 입고 있는 모르가나의 로브 때문인지 나 또한 원거리 딜을 넣는 마법사로 착각한 것이리라.


       


       물론 아니지만.


       


       “그런 거 없는데요?”


       


       “……뭐?”


       


       “아니, 뭐. 마법을 쓸 줄은 아는데 하나같이 사정거리가 짧거든요. 그리고 전 근접직이라 저기 섞여서 싸울 생각이에요.”


       


       “그런 무장으로는 한 대 맞으면 죽어!”


       


       “중갑을 입어도 한 대 맞으면 죽는 건 똑같은데 뭘 새삼스레.”


       


       이번에 오러 스킬인 잠력 폭발을 얻으며 신체의 내구도 확 성장했지만, 그래봐야 평범한 모험가 수준이다.


       


       예전부터 탱커 노릇을 해오며 내구도를 성장시켜 온 저들에겐 한없이 못 미치는 수준.


       


       하지만.


       


       “달리 말하면 한 대도 안 맞으면 괜찮다는 소리예요!”


       


       “…….”


       


       어이없어하는 로즈마리. 그런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 주었다.


       


       “따라오라는 말은 안 할게요. 하지만 아까 말했던 것처럼 리디아가 저랑 로즈마리를 한눈에 넣을 수 있는 각도를 의식하면서…알겠죠?”


       


       “어, 응?”


       


       로즈마리가 어버버하는 사이 그대로 소리를 먹는 발걸음을 사용해 존재감을 숨겼다.


       


       “어어어?!”


       


       눈앞에 사람이 있는데 없는 것 같은 기이한 광경에 기겁한 로즈마리를 뒤로 하고 미노타우로스를 향해 돌진했다.


       


       투명 망토는 쓰지 않았다. 이런 난전에서 육안으로 확인조차 못 한다면 모르고 내가 있는 곳을 향해 공격을 날릴 수 있으니까.


       


       대지를 걷어찰 때마다 가까워지는 거리. 그만큼 전투의 소음 또한 커져갔다.


       


       -부오오오오!!


       


       낮지만 강렬한 울음소리를 터뜨리며 주먹을 휘두르는 미노타우로스. 2m는 훌쩍 넘은 거구와, 꽉 들어찬 근육에서 나오는 힘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콰앙!


       


       실제로 이를 잘못 받아낸 탱커의 대형방패에서 폭발음이 들려왔으니까.


       


       “커헉!”


       


       방금 공격을 막아낸 인간 여자가 피를 토하며 옆으로 튕겨 나간다. 방패를 들고 있었던 팔은 꺾여선 안 될 방향으로 꺾인 상황.


       


       그래도 죽지는 않았는지 꿈틀거리고 있자, 사제들이 멀리서 힐을 해주기 시작했다.


       


       아직 경지가 낮은 사제들이라 원거리 힐의 효율이 떨어지겠지만 응급처치 수준은 되겠지.


       


       지금까지는 미노타우로스의 주먹질을 잘만 흘려 막았으나, 실수로 딱 한 번 정면에서 받아냈을 뿐인데 이렇게 가버리다니.


       


       이거 진짜 내가 스치면 사망이겠네.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대폭 늘어난 오러를 전신에 둘렀다.


       


       전신에 활기가 돌며 뜀박질 속도가 한층 가속한다.


       


       요즘 리디아에게 조금씩 오러 사용법을 배우고 있는 덕에 전보다는 한층 나아진 운용 능력 덕에 가능한 일.


       


       잡아 늘인 찰흙처럼 늘어지는 풍경 속에서 단숨에 미노타우로스의 배후를 점했다.


       


       뒤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나를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는 이가 있었지만 알게 뭔가. 가까이서 보니 가죽이 약간 그을린 것 말고 멀쩡하더만.


       


       딜이 부족한 딜러에게 인권은 없는 법이다.


       


       피식 웃으며 오러를 발바닥 부근에서 작게 폭발시키며 뛰어올랐다.


       


       달려오는 속도를 그대로 살린 도약. 순식간에 미노타우로스의 키와 비슷한 높이까지 뛰어오른 것을 확인하고서야 허리를 한껏 비틀었다.


       


       그렇게 눈앞의 탱커들을 후려치는 데 집중한 미노타우로스의 뒤통수에 닿기 직전.


       


       “흐읍!”


       


       비틀린 허리를 단숨에 원상 복귀시키며 공중에서 한 바퀴 회전했다.


       


       전신의 근육이 용수철 같은 탄력으로 폭발적인 속도를 자아낸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타이밍에 맞춰 팔을 크게 휘두른다.


       


       달려가던 가속도, 전신의 회전력, 그리고 정확한 순간에 휘둘러진 팔.


       


       지금 이순간. 내 모든 힘이 단검에 집중되었으니.


       


       서걱-!


       


       물리적 충격에 강하다는 가죽이 단숨에 베이며 살 한 뭉텅이가 뜯겨나간다.


       


       다만, 워낙 덩치가 큰 놈이고 맷집도 좋아 유니콘 단검 정도로는 숨통을 끊을 수 없다는 게 좀 아쉽네.


       


       -쿠어어어?!


       


       갑작스레 뒷목을 후벼 파인 미노타우로스가 고통스런 비명과 함께 뒤를 돌아본다.


       


       아직 공중에서 낙하 중이라 움직이지 못하는 내겐 꽤 위험한 상황. 이대로 대충 후려치기만 해도 즉사겠지. 다만.


       


       “타올라라! 격렬한 불꽃!”


       


       그렇게 되기 전에 녀석의 안면에 마법을 박아주면 그만이다.


       


       화르르륵!


       


       -부오오옥!!”


       


       이글거리는 분노의 눈빛이, 한층 이글거리는 큼직한 화염에 휩싸여 감긴다.


       


       나를 향해 휘두르려던 손으로 자신의 얼굴에 붙은 불을 두드려 끄는 미노타우로스.


       


       2성급 마법. 마탑 기준으로는 나름 3서클에 속하는 마법이다. 거기에 사정거리가 코앞인 대신 화력만큼은 확실한 마법 아닌가.


       


       기대를 배신하지 않겠다는 듯, 지금껏 수많은 화살과 마법에도 큰 피해를 입지 않았던 미노타우로스의 안면이 까맣게 그을렸다.


       


       단순히 겉가죽만 탄 건 아닌지, 입에서 까만 연기를 뱉어내는 녀석.


       


       허나, 미노타우로스는. 한때 혼자 수없이 많은 침입자를 쓰러뜨리던 불굴의 영웅이었던 자가 겨우 이 정도로 죽을 리 없지.


       


       맹렬한 불길에 눈을 감고 있던 미노타우로스의 눈꺼풀이 번쩍 뜨였다.


       


       한쪽이 열기로 하얗게 변색된 눈. 아직 멀쩡한 반대쪽 눈이 매서운 기세로 이쪽을 노려본다.


       


       “바, 방금 전의 일격은 대체…….”


       


       “멍청아! 지금 그게 문제냐! 어그로 다 끌렸잖아!”


       


       “딱 붙어서 막아! 진열 무너지면 다 같이 뒤지는 거야!”


       


       바로 앞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본 탱커들이 다급히 나와 미노타우로스의 앞을 가로막는다.


       


       동시에 옆에서 쏟아지는 자잘한 마법과 화살들.


       


       탱커들이야 전열이 무너지며 토벌전 자체가 엉망이 되는 걸 경계하는 느낌이라면, 원딜러들은 자기 공헌도를 채우기도 전에 미노타우로스가 쓰러질지 몰라 조바심 낸다는 느낌이었다.


       


       다만, 내게 쉽게 당했다 하여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본래 멀리서 천천히 짤짤이로 죽여야 하는 녀석을 무턱대고 공격하기 시작하면 제대로 될 리가 있나.


       


       강제로 위력을 높인 마법은 컨트롤이 무너져 빗나가거나, 허공에서 흩어졌고.


       


       화살에 무리하게 오러를 담으려던 시도는 허무하게 실패해 활이 부러지거나, 본인이 리바운드로 무너진다.


       


       그로 인해 잠깐 집중됐던 화력에 공백이 생겼고, 이는 어떻게든 튄 어그로를 수습하려던 탱커들의 재앙으로 다가왔다.


       


       -부어어어어!


       


       괴성을 내지르며 가장 앞에 있던 드워프 전사를 걷어차는 미노타우로스.


       


       본래라면 깊은 상처를 내진 못해도, 움직임을 방해하는 마법들에 묶여 제 위력을 내지 못했을 발길질이 정통으로 들어갔다.


       


       카직!


       


       금속이 접히는 소리와 함께 갑옷 채로 찌그러진 드워프. 다른 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먹에 얻어맞고, 짓밟히고, 때로는 그대로 붙잡혀 내동댕이쳐지기도 한다.


       


       “꺄아아악!”


       


       “이 멍청한 년들! 왜 공격이 끊긴 거야!”


       


       “선배! 도와주십쇼 선배!!”


       


       아비규환 그 자체. 중상을 입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일어나는 이가 있는가 하면, 포기하고 구원을 요청하는 이도 있었다.


       


       아직 죽은 이는 없지만, 말 그대로 개판이 된 상황.


       


       “아니. 이게 뭔…?”


       


       아무리 내가 극딜을 넣으며 미노타우로스의 신경을 끌었다고는 하나, 겨우 이거 하나로 이렇게 무너질 줄이야.


       


       내가 없었으면 무난히 공략했을 녀석들이기에 조금 미안하면서도, 예상외의 상태가 되자 바로 폭주해서 자멸하는 모습이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뭐어. 이렇게 됐으니 어쩔 수 없지.


       


       방금 유니콘 단검을 쑤셔 넣으면서 대충 감이 왔다. 이 정도는 잠깐이라면 나 혼자 커버할 수 있다. 


       


       물론 말 그대로 ‘전력’을 다해야 하니 주목을 피하기는 어렵겠지만…….


       


       그 부분은 이미 각오가 끝났다. 이브를 찾기 위해 퍼뜨린 소문, 로즈마리를 통해 만난 고위직 엘프들에게 보여줄 권능.


       


       어차피 내 존재가 알려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러니 조금 정도는 먼저 내비쳐도 되겠지.


       


       ……신전 상대로 눈 가리고 아웅이라도 하려면 약간의 양념은 쳐야겠지만.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모험가들 사이를 지나며 포도 맛 사탕을 거칠게 씹었다.


       


       마치 무슨 금지된 비약이라도 먹는 것처럼 비장한 표정으로.


       


       그리고는 주머니를 톡톡 두드려 풀돌 여신상을 향해 작게 기도했다.


       


       ‘성역 전개. 내 몸에 딱 달라붙도록 최대한 좁게 부탁해.’


       


       우웅-


       


       어째서인지 평소보다 흥분한 것처럼 음흉하게 진동한 여신상을 중심으로 뿜어져 나오는 빛.


       


       동시에 이번에 새로 얻은 잠력폭발을 발동시켰다.


       


       후광처럼 밝게 뿜어져 나왔어야 할 신성력이 아직 신념을 덧칠하지 못해 투명한 오러와 뒤섞여 불꽃처럼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이미지하는 것은 리디아의 오러 운용 모습. 다만, 그보다는 조금 위태롭게. 마치 목숨을 불태우는 것처럼 화려하게.


       


       도망치던 이들도, 맞서 싸우기 위해 가까스로 일어선 이도, 심지어는 당장이라도 이쪽을 향해 돌진할 것 같은 미노타우로스조차 잠시 멈춰 이쪽을 바라본다.


       


       그 시선을 즐기며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와 바 랏!”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탕 옴뇸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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