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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3

       

       

       “끄, 끝났다···.”

       

       “더는 못 움직여···.”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주변은 어느새 검은 갑각으로 뒤덮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미들의 사체가 쌓여있었다.

       

       마치 산처럼 쌓여있는 시쳇더미 사이로, 더는 쓸 수 없을 정도로 닳아버린 옷과 실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이봐, 다들 살아있어?!”

       

       “어, 어떻게든.”

       

       “젠장, 부상자 찾는 것도 일이군!”

       

       “도와줘! 다리가 끼어서 움직일 수가 없어!”

       

       “치유 능력자는 어디에 있어?! 급해! 지금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고!”

       

       

       힘겹게 거미들의 갑각을 치우며 발걸음을 옮겼다.

       

       주변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죽어가는 동료를 도와달라며 외치는 사람, 지쳐 쓰러진 사람.

       

       바쁘게 움직이는 치유 능력자와 부상당한 초인들의 신음소리.

       

       끔찍한 파도를 견뎌내기는 했지만, 그 대가는 컸던 걸까.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들은 끝났다는 사실에 기뻐하기는커녕, 그 후폭풍으로 인한 또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분명, 이쪽이었지.

       

       주변에서 들리는 신음들을 애써 무시하며 동료들이 있던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 찾았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나는 동료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라이라와 하율의 모습.

       

       두 사람의 주변에는 어느 정도 커다란 공터가 형성되어 있었다.

       

       아마 라이라가 치운 거겠지.

       

       라이라의 상태는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마치 병에 걸린 환자처럼, 계속해서 헛구역질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웨에에에엑···.”

       

       “괜찮으십니까?”

       

       “아니, 안 괜찮아. 퉷.”

       

       

       커다란 상처라도 입은 걸까.

       

       슬쩍 보기로는 아예 마수의 파도 사이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던데.

       

       나는 공격받은 적이 없지만, 설마 독이 있는 개체가 있었던 걸까.

       

       그런 걱정들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런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는 듯, 라이라는 자꾸 자기의 목을 손으로 쑤셔대고 있었다.

       

       ···뭐하는 거지?

       

       

       “우웩, 웩···.”

       

       “···그렇게 끔찍합니까?”

       

       “궁금하면 저기 바닥에 고여있는 거 한번 먹어보지그래?”

       

       “사양하죠. 이런 모습을 보고도 시도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라서.”

       

       “잘 생각했어. 진짜 끔찍하거든. 웩···.”

       

       

       아.

       

       그러고보니 라이라는 능력을 사용하면 웨어울프로 변하지.

       

       최근에는 늑대의 모습으로도 변하게끔 능력이 조금 성장한 모양이었지만, 웨어울프가 되면 이성을 잃어버리는 건 같았지.

       

       싸우는 도중에 마수의 체액을 마셨고, 정신이 돌아왔는데도 그 맛이 혀에 남아있었던 걸까.

       

       

       “으, 짜증 나. 도대체 왜 먹은 기억도 없는데 이런 맛을 느껴야 하는 거야? 썩은 생선을 먹어도 이것보단 낫겠다.”

       

       “물이라도 조금 드릴까요?”

       

       “아니, 됐어. 여기에 물이 있을 리가 없잖아. 네 몸을 먹고 싶지는 않거든.”

       

       “···.”

       

       “마음만은 고맙게 받을게.”

       

       

       자신의 몸을 주려고 했던 거야···?

       

       자신이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는 아는 걸까.

       

       하율이 머쓱하게 웃었다.

       

       

       “그런데, 그 뱀년은? 죽어버렸나? 하긴, 그쯤 되면 갈 때도 되긴···.”

       

       “죽긴 누가 죽어요?! 아직 안 죽었거든요?!”

       

       “좋아. 이렇게 말하면 올 줄 알았지.”

       

       “···아.”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도망가려는 거, 누가 모를 줄 알아?”

       

       

       언제 이곳 주변에 있었던 걸까.

       

       아니, 라이라는 도대체 스피라가 이곳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아낸 걸까.

       

       시우처럼 추적이나 탐지에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라이라의 말대로 혼란스러운 틈을 타 도망가려고 한 걸까.

       

       스피라의 얼굴이 잔뜩 굳었고, 그와 대비되듯 잔뜩 구겨져 있던 라이라의 얼굴이 환해졌다.

       

       

       “진짜 뱀술로 만들어버리기 전에 빨리 와.”

       

       “···히잉.”

       

       “히잉은 무슨 히잉이야. 죽는다?”

       

       “···네.”

       

       “옳지.”

       

       

       보통 저런 건 개과인 라이라가 당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노닥거리며 할 시간은 없기에 나는 천천히 그들에게 걸어갔다.

       

       

       “아, 수장님. 왔···어우, 야.”

       

       “세, 세상에···. 조금 대담하시네요···.”

       

       “···.”

       

       

       스피라와 라이라가 호들갑을 떨어댔다.

       

       이렇게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벌써 몇 시간을 싸워댔는지, 벌써 날이 점점 저물어가지만 아직은 밝았으니까.

       

       알몸으로 돌아다닌다면 이런 반응을 보일 법도 했다.

       

       

       “···내놔.”

       

       “네? 그게 무슨···.”

       

       “네 옷, 내놔.”

       

       “네?!”

       

       “알았어!”

       

       “흐꺄아아아아악?!”

       

       

       그러나 저런 호들갑에 일일이 반응해 줄 정도로 나는 한가하지도 않았고, 이 녀석들에게 알몸 정도를 보여준다고 한들 부끄럽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당당히 스피라의 옷을 빌리기로 했고, 라이라의 협조 덕분에 손쉽게 옷을 빌릴 수 있었다.

       

       

       “히, 히이이이익···! 도, 돌려주세요···! 추워요···!”

       

       “이거, 어떻게 착용하는 거야?”

       

       “···브래지어 써본 적 없어?”

       

       “응. 레오타드만 입었으니까.”

       

       

       브래지어를 착용하면 뭔가 내가 여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 착용하지 않았었는데.

       

       이제 그런 것에 연연할 이유는 없었다.

       

       최대한 시우에게 도움이 되려면 이런 것도 착용해야 할 상황이었으니까.

       

       ···문제는, 내가 이런 걸 착용할 줄 모른다는 점.

       

       이럴 줄 알았으면 한번 써보는 거였는데.

       

       난처한 눈빛으로 손에 들린 브래지어를 바라보고 있자니, 라이라가 내게 다가와 브래지어를 가로챘다.

       

       

       “손들어봐.”

       

       “아, 고마워.”

       

       “어때?”

       

       “···음, 가슴이 좀 끼네.”

       

       “그건 또 충격인데···! 너무해! 저도 가슴 꽤 있다고요! 이런 꼴로 밖에 나갔다가는···! 히익!”

       

       “걱정 마. 네 그 뱀 꼬리를 보고도 욕정할 사람은 아마 없을 테니까.”

       

       “진짜 너무해?!”

       

       

       이 정도로 충분하려나.

       

       최대한 실을 많이 확보하기 위해 브래지어까지 착용했지만, 걱정이 가시질 않았다.

       

       최대한 빨리 도착하려면 실을 사용해야 하지만···. 가는 도중에 실을 너무 많이 사용해버리면 정작 싸울 때 도움이 되지 않아.

       

       아무리 생각해도 조금 모자랄 것 같아 초조하던 찰나.

       

       이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하율이 입을 열었다.

       

       

       “···혼자 가실 생각입니까?”

       

       “그래야지. 별다른 방법이 없잖아.”

       

       

       물론 나보다 아멜리아가 훨씬 빠르다는 것은 알고 있다.

       

       아멜리아에게 업힌다면 상당히 빠르게 도착하겠지.

       

       문제는, 그녀의 위치를 모른다는 거다.

       

       다행히 운 좋게도 이 사체들 탓에 시야가 제한되기 전에 이 녀석들의 위치를 파악해서 이곳에 오기는 했다.

       

       덕분에 옷가지를 구해 시우에게 갈 방법을 찾기도 했고.

       

       총알이 부족한 채로 전쟁터로 나가는 군인의 심정이지만, 어쩔 수 없지.

       

       부족한 것도 아닐 테니까.

       

       

       “···이곳에서 세 시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아멜리아가 있을 겁니다. 도로시도 함께.”

       

       “뭐? 그걸 어떻게···.”

       

       “아무래도, 능력이 능력이니까요. 인식 범위가 넓어서, 그쪽 주변에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율은 작게 미소 지으며 내게 말했다.

       

       

       “둘 다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도로시 양은 그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 꼭 필요하고, 아멜리아 양은 그곳에 빨리 도착하기 위해 필요하죠.”

       

       “···고마워.”

       

       “별말씀을.”

       

       

       그때.

       

       하율에게 귀찮음과 짜증을 느껴 죽이려고 했을 때.

       

       정말 죽여버렸다면, 도로시와 아멜리아를 데리고 가지 못했을까.

       

       의도치 않은 일이기는 했지만···.

       

       하율을 동료로 받아서 다행이라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아멜리아, 도로시.”

       

       “깜짝이야! 너, 너 어디서 나왔어? 그 옷은 또 뭐야? 아까는 다른 옷···.”

       

       “그런 이야기 할 시간 없어. 빨리 가야 해.”

       

       “···시우 말하는 거지?”

       

       “그래. 지금 당장.”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두 사람도 지금 시우가 무슨 상황일지 알고 있기에, 그 이상의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건?”

       

       “하율이 해줄 거야. 우리가 먼저 가서 도와줘야 해.”

       

       “알았어.”

       

       

       아멜리아가 나와 도로시를 한쪽 팔에 하나씩 들쳐메려고 하기에, 손으로 제지하고 능력을 사용했다.

       

       옷의 일부분을 살짝 사용해 아멜리아의 허리에 빠르게 실로 공 하나를 만들어 냈다.

       

       두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이게 조금 더 빠를 거야. 도로시, 안쪽으로.”

       

       “···공?”

       

       “최대한 튼튼하게 해놨어. 조금 어지러울지도 모르겠지만···. 버틸 수 있지?”

       

       

       도로시가 고개를 끄덕이고 일부러 비워둔 입구를 통해 공 안쪽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이내 나도 안쪽으로 들어갔다. 

       

       가볍게 안쪽에 만들어 둔 손잡이를 꽉 쥐고, 입구를 실로 꽉 묶은 뒤 아멜리아에게 말했다.

       

       

       “이제 가도 돼! 최대한 빨리!”

       

       “맡겨주시라.”

       

       

       통, 통.

       

       아멜리아가 몸을 푸는 걸까.

       

       그녀의 허리에 묶인 공이 위아래로 잠깐 흔들리더니, 이내 호흡을 위해 살짝 뚫어둔 구멍 사이로 엄청난 속도로 공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으, 으와앗···!”

       

       “어때?! 버틸만해?!”

       

       “더 빨리! 최대한 빨리!”

       

       “좋아.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닌, 아멜리아 고속버스! 이용 감사합니다!”

       

       

       이게 최대 속력이 아니었다는 듯 걱정스레 물어보는 아멜리아에게 더욱 빨리 달려달라고 요청하자, 초인임에도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로 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달려가 줄게!”

       

       

       기다려, 시우야.

       

       금방 갈게.

       

       

       

       ***

       

       

       

       “후우, 후우···. 너, 꽤 끈질기구나···!”

       

       “크르르르륵···!”

       

       “하, 젠장. 너만 없었다면 훨씬 오래 버텼을 텐데.”

       

       

       최선을 다했다.

       

       시우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맴돌았다.

       

       정말 죽을 뻔했던 위기도 여러 번 넘겼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만큼 체력이 빨리 소모되어 버렸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하고 싶었고, 저 소녀 한 명만 있을 때는 그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난입한 저 마수.

       

       저 마수 하나 때문에, 순식간에 체력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하, 젠장. 이건 못 피하겠는데.”

       

       

       시우는 눈앞의 소녀가 팔을 변형시켜 휘두르는 궤적과 마수가 물어뜯는 위치를 모두 파악하고 생각했다.

       

       더는 무리라고.

       

       피할 수 있는 최선의 방향은 보였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아 피할 수 없다고.

       

       이내 소녀의 팔이 휘둘러졌다.

       

       그 팔을 회피한 뒤, 억지로 몸을 비틀어보려고 했지만 실패.

       

       시우의 몸을 마수가 강하게 물어뜯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맞춤법 검사기 이슈때문에 조금 늦었습니다

    검사기가 가끔 문장을 고쳐주기는 커녕 다 헤집어 놓아버리네요

    죄송합니다

    오늘은 오타가 평소보다 많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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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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