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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3

       양혜인의 상황을 보고 마음이 편치 못한 것은 이수아도 마찬가지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바로 지금 이수아의 상황이, 양혜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둘의 상황을 완전히 같은 선상에 두고 비교할 수는 없다. 양혜인은 사라와 언제나 함께 다니던 사용인으로서 ‘사라’가 고립되는 상황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존재였고, 이수아는 멀리 떨어진 채로 그저 시선을 돌리고 있었던 간접적인 가해자였으니까.

        

       ……아니, 아니다.

        

       그게 아니었다.

        

       실제로는 완전히 같은 상황이었다.

        

       양혜인도 ‘사라’를 ‘적극적으로’ 학대한 것은 아니다. 그저, 끝도 없는 무관심으로 조금씩 구석에 몰아넣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행위는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을 사회로부터,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고립시키기 위해서는 그 사람 주변의 구성원들이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되어야 했으니까.

        

       그러니까, 이수아도 결국에는 똑같은 가해자일 뿐이다.

        

       하늘이는 올해가 되어서야 ‘사라’를 만났고, 소희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지금의 사라 곁에 있는 사람 중에 ‘사라에게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에 반해, 이수아 자신은 어땠었는가.

        

       ……‘사라’가 학교에서 고립되는데 협력했던 존재가 아니던가.

        

       이유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결국 그 별것도 아닌 이유를 진심으로 믿고, 거기에 동참한 것은 이수아 자신이었으니까.

        

       마지막의 마지막에 마음을 고쳐먹었다는 것도 이제는 별다른 위로가 되지 않았다.

        

       ……결국, 이수아가 중학생 시절 내내 보아온 ‘사라’는 사라와는 다른 존재였으니까.

        

       이수아의 인사를 받아준 것도, 그날 함께 사진을 찍어 준 것도, 모두 사라였다.

        

       그것이 기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덕분에 이수아는 자기 잘못을 제대로 인지할 수 있었으니까.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많은 일이 있었는데도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라와 ‘사라’가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면, 자신이 진짜로 잘못을 저지른 상대인 ‘사라’는 과연 이수아의 잘못을 받아줄까?

        

       ……받아주기야 하겠지.

        

       하지만, 분명 양혜인의 상황과 완전히 똑같을 것이다. 그저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애초부터 별 상관없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끝이겠지.

        

       그걸 두고 정말로 ‘용서받았다’고 할 수 있는 걸까?

        

       ……앞으로, 사라에게 평생 조금씩 갚아가겠다고 생각했었다.

        

       ……자기 나름대로 사라를 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라’가 진짜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수아가 준비하고 있던 모든 일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사라에게 있어 이수아가 친구일 수는 있겠지만, ‘사라’에게 있어 이수아가 친구일 수 있을까?

        

       지난 3년 동안, ‘사라’에게 이수아는 그저 자신을 따돌리던 수많은 학생 중 하나였을 뿐인데.

        

       ……만약 ‘사라’였다면, 그날 그런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을까?

        

       “다들 분위기가 왜 이래?”

        

       ‘사라’의 말에, 이수아는 겨우 상념에서 돌아왔다.

        

       “상황을 하나하나 정리해야 하잖아. 뭐, 너희들이 돕고 싶지 않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도울게!”

        

       그 말을 듣고, 이수아는 자기 자신도 놀랄 만큼 큰 소리로 대답했다.

        

       “힛!?”

        

       그 목소리에 깜짝 놀란 ‘사라’는 눈을 크게 뜨고 이수아를 돌아보았다.

        

       그저 놀란 듯 크게 뜬 눈이었지만, 이수아의 눈에는 그 시선이 조금은 다르게 보였다.

        

       ‘너가?’

        

       물론, ‘사라’에게 있어 이수아는 대단하지 못한 존재일 테고, 그 정도의 생각을 해주고 있을지 아닐지도 알 수 없었지만.

        

       “……뭐, 좋아.”

        

       잠시 이수아의 얼굴을 바라보던 ‘사라’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이더니 대답했다.

        

       “수아는 그렇다는데, 너희들은 어때?”

        

       그저 편의상 ‘너희들’이라고 묶어서 표현하긴 했지만, 그 ‘너희들’ 안에는 사라가 존댓말을 쓰는 상대인 양혜인도 포함되는 모양이었다.

        

       그걸 보고 이수아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에게 지독한 혐오감을 느꼈다.

        

       그나마 사과라도 건넨 양혜인과는 다르게, 이수아는 아직 제대로 된 사과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러고는 ‘사라’가 도와주겠다는 말을 받아주자마자 마음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아냐, 이래서는 안 돼.

        

       지은 죄가 컸다.

        

       당연히 그저 미안하다는 말로 끝내서는 안 될 죄였다. 누구에게 그 무게를 떠넘겨서도 안 되고, 핑계를 대서도 안 되는 죄.

        

       ……언젠가, 반드시, 제대로 사죄해야 할 죄였다.

        

       ……어떻게 해야 사라가 그 죄를 용서해줄지, 아니, 최소한 ‘죄’라고 인식해줄지 알 수는 없었지만.

        

       *

        

       음, 다들 완전히 의욕에 불타네.

        

       소희와 하늘이, 그리고 수아까지는 그렇다 쳐도, 양혜인까지 저렇게 의욕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어쩌면 이것도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사람의 평가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보아온 양혜인은, 가끔 보내오는 호기심 어린 시선 아니면 거의 항상 기계적인 모습만 보이던 사람이었으니까.

        

       ……뜬금없이 너무 의욕적이라 그 사람이 화가 난 것은 감점 요소였지만, 뭐, 그거야 어떻게든 해결하면 될 일이고.

        

       사실 해결이라는 것도 그렇게 대단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사람이 나의 의식 안에서 천천히 쉬며 머리가 식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 그게 내가 할 일이었다.

        

       “그럼, 다음부터는 이렇게 하자.”

        

       그리고, 기왕이면 그 사람이 다시 나의 몸으로 돌아왔을 때 고민 같은 거 할 필요 없게 만들어두는 것도 좋겠다.

        

       사실 내가 하는 생각은, 오늘 밤 꿈속에서 이야기를 꺼냈다간 바로 쓴소리 듣기 딱 좋은 생각이긴 했다. 문제 대부분을 대충 덮어버리고, 남들이 다시는 이야기 꺼내지 않게 만드는 거니까.

        

       어떤 의미에선, 일부러 이렇게까지 노력해준 그 사람을 조금 배신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안. 나는 네가 고생하는 것도 보기 싫어.

        

       특히 나 때문에 고생하는 건 보기 싫으니까.

        

       “우선, 양혜인 씨.”

        

       나는 양혜인을 불렀다.

        

       그때까지도 허리를 숙인 채 어깨를 미세하게 떨고 있던 양혜인이 내 말에 고개를 들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쏟을 것같이 붉게 충혈된 눈이었지만, 그래도 눈물은 흘리고 있지 않았다. 참 대단한 프로의식이다. 하긴, 내 직속 메이드로 3년을 있으면서 그렇게 무표정하게 있었으니 아마 앞으로도 잘해주겠지.

        

       “지금부터 어머님께 오는 연락은 전부 일방적으로 끊어주세요.”

        

       제일 첫 번째로, 어머님과의 관계를 끊는다.

        

       물론 ‘완벽하게’ 끊어내는 것은 불가능할 거다. 아무리 그래도 어머님은 어머님이었다. 나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어린 시절의 그 상냥한 어머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랬으니 아까 소희가 부드럽게 안아줬을 때 나도 모르게 의식 전환이 일어날 뻔한 거고.

        

       그 은근한 그리움에 이끌려 어머님을 다시 만나게 되면, 나는 또 감정의 격류를 견디지 못하고 어머님께 안기겠지.

        

       그나마 내가 이렇게 이성적으로 생각하며 저런 말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감정과 기억이 그 사람과 다소 섞였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가지지 못했던 감정과 추억들. 그 모든 것들이, 나의 비어있는 마음 곳곳, 구멍 난 곳을 메꾸어 무너지지 않도록 해주고 있었다. 그게 의도한 것이건 아니건, 그 사람은 나를 이렇게도 구해주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관계를 끊어둔다면 그 사람은 분명 나의 결정을 존중해줄 것이다. 내가 의식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도 어머님과 만나는 것은 지양하겠지.

        

       “알겠습니다.”

        

       양혜인은 군말 없이 허리를 숙였다.

        

       “아, 그리고, 일 그만두겠다는 말도 하지 말고요. 지금부터 양혜인 씨는 다시 이 저택의 관리인이에요. 만약 누가 뭐라고 하거나 따르지 않겠다고 하거나 하면 그냥 다 내쫓아버려요. 어차피 이 저택은 내 거라면서요?”

        

       그 사람이라면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겠지만, 나는 내 집에서 내가 초대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떠드는 걸 봐주고 있을 만큼 마음이 넓지 못하다.

        

       그 사람들의 태도에 아무것도 못 하던 시절의 나라면 모를까, 그 사람이 이렇게까지 저택 안을 휘어잡아주었는데 활용하지 못하면 오히려 미안하지.

        

       “……알겠습니다.”

        

       다시 허리를 깊게 숙이면서 인사하는 양혜인에게서 눈을 돌려, 소희와 하늘이, 그리고 수아를 보았다.

        

       소희와 하늘이는 뭔가 굳은 결심을 한 표정이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마음먹을 필요도 없는데.

        

       애초에 뭔가 대단한 일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해둔 일을 내 손으로 깔끔하게 정리해낼 생각인 거다. 그 사람이 다시 삶으로 돌아왔을 때, 누군가가 참견해서 어지르지 못하도록.

        

       그러니까 이제는 그렇게 힘겨운 싸움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나에게는 이제 이 세 사람이 있으니까.

        

       인생에 어머님 하나뿐이었던 나에게, 그 사람이 선물해준 새로운 관계들.

        

       어쩌면 내가 지금 이 순간에 어머님을 그리워하지 않고 있을 수 있는 것은 모두 그 덕분일지도 모르지.

        

       누군가를 믿을 수 있다는 것도.

        

       다만, 이 세 사람 중 이상하게 반응이 이질적인 사람이 하나 있었다.

        

       바로 수아였다.

        

       나머지 두 명이 ‘열정적인’ 모습이라면 수아는 ‘처연한’ 모습이었다.

        

       ……내 이야기가 그렇게 슬펐나?

        

       ……뭐, 이 세 사람 다 굳이 따지자면 나와 경쟁하는 관계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친구는 친구다.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친구.

        

       그러니까, 수아와는 언제 한 번 제대로 대화를 나눠보도록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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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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