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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3

       ……그는 쉬고 싶었다.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할까?’

         

       잠을 잔 게 언젠지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았으며, 피로는 풀릴 틈이 없었다.

       매일 야밤을 지새우며 일을 해야 했고, 일이 끝난 뒤에도 쉴 시간 따윈 없다.

       항상 다음 일이 준비되어 있거나, 갑작스레 생겨버리니 말이다.

         

       “…하하.”

         

       기어이 그의 입에선 실성한 사람의 웃음이 터졌다.

         

       십 대 시절 중등부 아카데미에 다닐 적만 해도 여름 휴교일은 가문이 소유한 별장에서 여름을 즐기는 시간이었다.

       하녀들의 보살핌 등을 받으며 귀찮은 일은 할 필요도 없었고, 가문의 요리사가 영양 가득한 삼시세끼를 골고루 챙겨줬다.

         

       한데 지금은.

         

       “내가 어쩌다 이런 꼴이 됐을까…….”

         

       …데미안 폴렛은 현재 자신의 처지를 살피며 서글픈 넋두리를 내뱉었다.

         

       “조교님.”

       “…….”

       “여기 밥이요! 식사는 챙기고 하셔야죠!”

       “저, 저기 레이라 님. 그, 식사를 챙겨주신 건 감사한데, 그릇이….”

       “아, 이거요? 기사님이 무조건 이 그릇으로 주라고 해서요! 조교님 전용 그릇이라면서 기사님이 무조건 이 그릇에만 음식을 담아서 드리래요!”

       “…미친 인간.”

       “네에?”

       “…레이라 님에게 하는 말이 아닙니다, 썩을-!”

       “으응?”

         

       그녀는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겠다며 눈을 끔뻑거렸고, 데미안은 새삼스레 이 시녀님 또한 그 양반과 같은 과란 것을 되새겼다.

         

       하여튼 이 집구석에는 정상이 없다!!

         

       ‘개 밥그릇이라니! 적어도 사람 취급은 하란 말이다!!!’

         

       0.5평짜리 개집, 아니, [Made in 이한]이란 각인이 정성스럽게 각인된 하숙집에서 거주 중인 조교 데미안 폴렛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빌어먹게도 하늘은 왜 이리 맑은지, 원.

         

       ‘벼락이나 맞아라!’

         

       ……다만 벼락에 맞는다고 해서 저 괴물이 죽지 않으리란 사실이 그가 반항하지 못하는 원흉이 아닐까 싶었다.

         

       데미안은 서글펐다.

         

       * * *

         

       데미안 폴렛.

       마당에 마련된 0.5평 좀 안 되는 개집, 아니 약간(?) 소박한 하숙집의 입주자.

       원래 그는 휴교일을 아카데미 기숙사에서 보낼 예정이었지만 그는 빌어먹게도 기숙사가 아닌 강제적 하숙 생활을 해야만 했다.

         

       이유?

         

       …제 입으로 말하려고 하니 화병이 도져서 말을 못 할 것 같다.

         

       모처럼 망할 교관이 자리를 비워 쉬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복귀한 교관이 제 뒷목을 우악스럽게 움켜쥐고 ‘넌 방학에도 일해야지, 어딜 쉬려고 하냐?’고 그를 데리러 왔을 때-.

         

       …단언컨대, 인생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지금, 인생 중 가장 공포의 순간이라 생각했던 것이 달라졌다.

         

       ‘지금이 지옥이다.’

         

       데미안 폴렛은 이를 갈며 생각했다, 그의 교관은 양심이 없는 게 분명하다고.

         

       ‘제기랄! 내가 왜 이 개집에서 일을 하고 있는 건데!’

         

       눈물을 머금고 마당의 마련된 아늑한 개집, 아니 하숙집의 유일한 거주인인 데미안 폴렛은 서류작성에 열을 올렸다.

         

       원래는 교관이 처리해야 할 일이었다.

         

       교관이건 강사이건 아카데미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휴교일에도 바쁘다.

       바쁜 이유에는 다음 학기 강의 준비도 준비지만, 제출해야 할 서류가 기본적으로 열 장 이상 되었으며, 그밖에도 학과마다 요청해야 하는 것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교수건 강사건, 교관이건 정신없이 학술원을 들락거리며 요청해야 하는 것이 한가득이었다.

         

       데미안은 이 때문에 팔자에도 없는 서류 작성에 달인이 되어 갔고, 가면 갈수록 더욱 능숙하게 일을 처리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허나 그는.

         

       ‘전혀 안 기쁘다, 썩을!’

         

       욕지기만이 치밀어 오를 따름이었다.

       한때 욕설이라곤 모르고, 우아한 품격으로 무장한 귀족의 자제는 사라지고, 어엿한 일꾼이 되어가는 데미안이었다.

         

       그렇게 불만이 가득한 데미안은 당장에라도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안타깝게도.

         

       “조교야.”

         

       움찔!!

         

       “예, 예에! 교관님…!”

         

       그는 자동반사적으로 빠릿하게 일어서며 곧장 불만을 집어넣었다.

       감히 저 인간 앞에서 불만이 있다는 티를 낼 수 없었기에.

         

       남자, 이한은 땀을 구슬프게 흘리며 서서히 다가왔고, 곧 데미안이 처리하는 산더미 같은 서류들을 보더니.

         

       “일 제법 잘하고 있구나. 역시 바깥 공기 좋은 곳에서 일하니까 효율이 좋지?”

       “…….”

       “농담이고, 그것만 빨리 끝내. 그래야 너도 쉴 시간이 생기지.”

       “…원래 교관님이 하실 일입니다만.”

       “그런데?”

       “…….”

       “눈이 불순하다, 조교야.”

       “…깔겠습니다.”

       “응, 역시 눈치가 좋아. 현명해.”

       “…….”

       “속으로 욕하지 말고.”

       “…제 마음까진 저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한번 시험해볼까?”

       “……빌어먹을.”

       “허허, 고놈 참. 건방지긴 더럽게 건방져. 귀족이라 그런가?”

       “제발 그놈의 귀족 차별 좀 그만하십시오!”

         

       교관의 밑에서 구르게 된 지 어느새 반년.

       그동안 데미안이 들은 가장 많은 문장은 대개 이러했다.

         

       ‘귀족이라 그런가? 영 일처리가….’ ‘귀족이라 그런가? 싸가지가 없어.’ ‘귀족이라 그런가? 눈매가 더럽네.’

       -등등!

         

       창창한 젊은 나이에 벌써부터 화병이 생길 것만 같았다.

       혈압이 자꾸만 오르는 데미안이었고, 그는 어느 순간부터 아카데미 회복실 단골이었다.

       한데 더 충격적인 게 무엇인지 아는가?

         

       아직 이 짓을 2년 반이나 더 해야 한다는 거….

         

       그것이 진정으로 끔찍했고, 밤이고 낮이고 상관없이 몸서리가 날 악몽이었음이다.

         

       이런 스트레스 때문일까?

       회복실 사제가 일컫길.

         

       – 으음, 혹시 요새 스트레스가 많으신가요?

       – 무, 무슨 문제라도….

       – 스트레스성 탈모 증세가 보여서요. 젊은 나이에 어쩌다 이렇게….

       – …….

       – 괘, 괜찮으신가요?

       – …흑.

       – 우, 우세요?

         

       그는 20세 나이에 스트레스성 탈모를 얻게 되었다.

         

       …최악이었다.

         

       ‘서러워서 진짜.’

         

       데미안은 모든 게 더럽고 추잡했다.

         

       콰앙! 쾅-!

         

       ‘젠장 할, 나한테 일 몰아주고 자긴 훈련만 하네.’

         

       불만이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데미안이었지만, 차마 반항할 엄두가 안 났다.

       그가 제 생명줄은 쥔 장본인이라는 이유도 이유지만….

         

       ‘저런 괴물한테 반항해서 어쩌라고?’

         

       콰앙! 콰지직-!!

         

       샌드백, 무거운 철봉 수십 개를 쇠사슬로 묶어 만든 철봉 샌드백이 두들겨질 떄마다 형태가 바뀌고 반으로 접혀갔다.

       기어이 딱 열 번을 쳤을 때 쇠사슬이 견디지 못하고 파괴되는 광경….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스읍, 이거 내구도가 왜 이따위야? 이 아저씨 품질 믿고 물건 사는데, 안 되겠네.”

       “품질이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그럼 뭐가 문제냐?”

       “…그걸 몰라서 묻습니까?”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교관을 보며 할 말을 잃고 만다.

         

       또한 한편으로는 오싹하다.

         

       그도 그럴게.

         

       ‘덩치가 더 커진 건가? 아닌데, 그런 건 아닌데…. 그냥 더 발전한 건가?’

         

       안 그래도 폴렛 가의 부단장을 가지고 놀던 양반이, 반년 만에 더 무지막지하게 변해 버린 것은 데미안의 착각이 아니리라.

         

       강했다.

         

       가늠조차 안 되게.

         

       ‘…우리 가문 기사들이 떼로 덤벼들어도 이제 안 될 것 같네.’

         

       나름 명문 기사 가문인 폴렛 가의 후손인지라, 가문의 기사단에 대한 자부심이 있지만. 데미안은 객관적이었으며 본의 아니게 여러 일을 겪으며 눈이 높아진 상태였다.

         

       그런 뜻에서 교관의 실력은 감히 폴렛 가의 기사들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다.

         

       못해도….

         

       ‘대귀족 가문 기사단이 나서야 할지도…?’

         

       이미 그 대귀족 가문의 기사단과 붙어봤음을 모르는 데미안은 조심스레 교관의 실력을 예측했다.

         

       하며 후회한다.

         

       왜 자신은 입학식 날 괜히 입을 놀려서 저런 괴물과 엮이고, 이런 꼴로 살아야 하는 것일까?

         

       ‘객기였지, 기사 가문의 말예란 놈이 상대방 실력이 심상치 않은 것도 한눈에 못 알아봐?! 하여튼 등신…!’

         

       그리고 가장 등신은 실력자를 못 알아보고 나댔다가, 지금은 개집에서 거주 중인 자신이었지만.

         

       스스로를 욕하며 다시금 욕지기를 내뱉는 데미안이었다.

       

       “……빌어먹을.”

       “다 들린다, 조교야.”

       “…….”

       “울지 좀 마라. 하숙집까지 직접 만들어줬잖아? 집세도 안 받고 밥마저 꼬박꼬박 나오는 집이라니! 이득도 이런 이득이 없다?”

       “전 그 이득 싫습니다.”

       ”쯧쯧, 귀족이라 그런가? 배가 불렀어, 아주.”

       “제발 좀…!”

         

       차별을 멈춰주길 바라는 귀족이었다.

         

       * * *

         

       ‘이놈은 굴려야 해, 쓸데없이 시간 주면 잔머리만 굴릴 놈이야.’

         

       그가 저 떨거지 귀족 애송이를 개집 같은 곳에 던져두고 일을 시키는 건 마냥 자신이 편하자고 그러는 게 아니었다.

         

       …물론 서류 작업을 안 하고 싶은 마음도 있으니, 이용한다는 자각은 있다.

         

       그러나 이토록 모질게 대하는 이유 중에는 저놈이 어떠한 녀석인지를 알기에 더 굴리는 점도 있었다.

         

       반년 동안 밑에서 굴리며 안 것이지만, 데미안이란 인간은 천성적으로 못난 놈 타입이었다.

         

       하기에 결코 봐주거나 풀어줘선 안 된다. 저놈은 아마 약간이라도 풀어주면 기고만장해져서 옛날 버릇 도질 놈이었으니까.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냐고?

         

       ‘내가 저런 타입을 못해도 백 명은 넘게 봤을 거다.’

         

       전생 부사관 시절 무수한 폐급을 본 그로선 당연한 확신이었다.

       허나 모난 유형임에도 불구하고 데미안에게 특출 난 점이 몇 가지 있었다.

       눈치가 좋다는 점과 최소한의 양심과 도덕심이 있다는 점….

         

       즉, 개과천선의 여지가 있다는 의미였다.

         

       마물 사태 때 활약상을 들어만 봐도 천성이 마냥 악질은 아닌 것 같더라.

         

       ‘흔히 폐급에는 두 종류가 있지.’

         

       타이르면 사람이 되는 놈과, 타일러도 결국 짐승인 놈.

         

       그런 뜻에서.

         

       ‘이 새끼는 사람이 될 수 있어.’

         

       전자인 것이 중요한 바.

         

       비록 첫 만남은 더러웠고, 이후 관계 또한 지저분하기 그지없지만 미운 정도 정이라고 했으며, 그가 가르치는 생도 중 한 명인 이상 이한은 도전해 보기로 했다.

         

       ‘계속 굴리자.’

         

       미칠 듯이 굴린다면 언젠가 사람이 될 테지.

         

       곰도 100일 만에 사람이 됐다고 하던데, 3년이면 가능하지 않겠는가?

         

       ‘흐음, 서류 일 끝나면 배수로도 파게 할까?’

         

       그리고 말하는 거다.

         

       ‘아, 거기 파면 안 된다더라, 다시 메꿔라.’

       -라고.

         

       이미 한 사람을 불합리하게 굴리기 위한 커리큘럼을 완벽하게 짠 이한이었다.

         

       그때.

         

       똑똑.

         

       “실례합니다, 형제님.”

         

       이한의 귀한 시간을 방해하는 방해꾼이 있었다.

         

       “…또 왔네.”

         

       이한은 껄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요즘 이 시간만 되면 찾아오는 그를 보고 있자니 벌써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그렇게 대놓고 싫다는 표정을 짓는 이한이었으나, 상대는 이를 신경조차 쓰지 않으며.

         

       “부디 오늘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아니.”

       “이런, 안타까운 일이군요.”

       “…….”

       “그래도 꼭 좀 대화를….”

       “…제발 좀 가.”

         

       이한은 자꾸만 자신을 종교의 길로 이끌려고 하는 사제를 보며 말했다.

         

       “‘추기경’이란 사람이 한가한 것도 아닐 거면서.”

       “허허, 그런 과분한 자리를 내려놓은 것이 언제인데 그러십니까? 지금은 그저 일반 신도 중 한 명일 뿐이니 편히 대해주시지요.”

       “…….”

         

       …퍽이나 편하게 대하겠다.

         

       차라리 적의부터 내비치는 인간이 편하지, 이렇게 친절한 사람을 상대하는 게 훨씬 더 상대하기 힘든 기사였다.

         

       ‘…이게 이단 심문관?’

         

       전직 추기경 출신 이단 심문관이 더할 나위 없는 강적이었다.

         

       그것도 그럴게.

         

       ‘툭 치기만 해도 뼈가 부러지겠다.’

         

         

       보기만 해도 유교의 혼을, 노인공경을 치솟게 하는 ‘정상적인 어른’이 아닐 수 없기에.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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