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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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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이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이는 단 한명도 없다고 생각했는지 다음 방까지 이어진 길은 매우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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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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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거대한 체육관을 떠올리게 만드는 커다란 지하 동공 안에 서 있었다. 그의 시선 끝에는 매끈한 벽이 자리하고 있었다. 가로와 세로가 15m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벽에 마법진이 빼곡하게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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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을 꺼낼까? 아니… 여기까지 왔는데 그러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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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으로 치자면 마검은 공략본이나 핵이나 다를 바 없었다. 여기까지 제힘으로 도착한 만큼 끝까지 제힘으로 도착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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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갖 함정에 온몸이 갈렸다가 돌아오길 반복해버린 탓에 피아를 찾겠다는 목적은 반쯤 잊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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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청 대단한 마법진 같기는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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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안은 마법진에 가까이 다가갔다. 형광 하늘색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마법진은 멀리서 볼 땐 벽에 새겨져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림처럼 그려져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
    ​
    ‘이거 그냥 지우면 되는 거 아니야?’
    ​
    ​
    리안은 그나마 살아남은 옷 소매로 마법진 한쪽을 슥슥 지워보았다. 그 어떤 마법을 사용해도 흠집조차 낼 수 없는 마법진이 ‘주부’의 손길 아래 가볍게 지워졌다. 아니, 지워지다 못해 반짝반짝 윤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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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우웅…
    ​
    ​
    마법진 일부가 훼손되자 힘을 잃고 붕괴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빛이 사그라들고 진한 갈색의 그림만이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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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쩌적..쿠구구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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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법진이 그려져 있던 벽에 금이 가더니 이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리안은 떨어져 내리는 바윗덩어리를 보곤 눈을 왕방울만 하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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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와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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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기를 부리듯 쿠웅,쿵! 떨어지는 바위를 유연하게 피해 뒤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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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록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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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흙과 돌먼지가 시야를 가렸다. 기침을 하며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으로 닦고 있자니 흙먼지가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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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이익?”
    ​
    ​
    그 너머에서 나타난 건 네 발로 기어 다니는 키메라였다. 얼굴은 카멜레온, 상체는 인간, 하체는 사자 등.. 다양한 동물로 조합된 키메라 10마리가 침을 질질 흘리며 새롭게 나타난 먹잇감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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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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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멍한 얼굴로 10마리의 키메라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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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에에엑!”
    “어어억?!”
    ​
    ​
    굶주린 키메라들이 리안에게 달려들었다. 카멜레온 입이 벌어지고 날카로운 이가 리안의 어깨를 사정없이 깨물었다. 다른 키메라가 리안의 옆구리를 깨물었고 또 누군가는 머리를 깨물었다.
    ​
    ​
    살점의 일부를 꿀꺽 삼킨 키메라의 몸은 움찔움찔 변화하기 시작했다. 키메라는 다양한 생명체를 합성하면 할수록 폐사할 확률이 굉장히 높다. 
    ​
    ​
    폐사할 확률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방법이 하나 있으니, 바로 섭취한 생물을 흡수하고 진화하는 것이다. 리안을 습격한 키메라의 몸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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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어난 이후 무언가를 섭취하여 진화해왔던 키메라들에게 리안을 먹고 몸이 변화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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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섭취한 게 리안이 아니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
    ​
    “키힛?”
    ​
    ​
    카멜레온 머리를 가진 키메라가 커다란 살점을 꿀꺽 삼킨 순간, 키메라는 몸 안쪽에서 탄산이 터져나가는 듯한 부글부글하는 감각을 느꼈다. 기이한 느낌에 키메라가 리안에게서 떨어져 제 몸을 내려다보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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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르르륵.
    ​
    ​
    “키이익?!”
    ​
    ​
    배가 파도치는 것처럼 마구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배가 이리저리 꿀렁꿀렁 하다가 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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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아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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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로 터져버렸다. 키메라의 살점이 이곳저곳으로 철퍽하고 떨어져 내렸다. 그게 시작이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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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킷?”
    “키힛?”
    ​
    ​
    파아앙! 파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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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안을 한입이라도 먹었던 키메라들이 하나, 둘 풍선처럼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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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에게 달려들어 살점을 집어삼킨 키메라의 수는 여덟마리. 두 마리는 입을 붙일 곳이 없어 리안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틈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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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아앙! 퍼어어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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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지지 않은 건 리안을 먹지 못했던 키메라 두 마리뿐이었다. 두 마리의 키메라는 멍한 얼굴로 처참하게 터져나가는 제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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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키메라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다크 판타지 세계의 키메라는 무시무시한 몬스터, 이성 없이 인간을 해치는 존재지만 개그 세계에선 흔히 볼 수 있는 존재 중 하나였다.
    ​
    ​
     그 탓에 본능만이 남아있던 녀석들이 ‘이성’ 비슷한 걸 가지게 되었다. 그 탓에 남은 두 마리의 키메라는 겁에 질려 리안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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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으, 개를 키우면 키운다고 경고문이라도 적어놓을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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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흉폭하다, 달려든다, 상대를 마구 깨물어버린다. 개그 세계 개들의 특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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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굴 한쪽이 금으로 이루어져 있거나, 몸 전체가 철로 된 개, 흐물흐물 거리며 걸어가는 외계인 강아지 등. 개그 세계에선 워낙 다양한 형태의 개들이 살아가고 있기에 리안에겐 키메라조차 조금 특이하게 생긴 개처럼 느껴졌다.
    ​
    ​
    자리를 털고 일어난 리안의 얼굴과 몸은 전과 다를 바 없이 매끈했지만 둥그런 잇자국들이 남아있었다. 개그 세계에서 개에게 물리면 생기는 자국이었다. 
    ​
    ​
    “끼잉…낑.”
    “끄응…”
    ​
    ​
    분명 눈알이 터지고, 배가 갈라져 장기가 흘러나와 삼켜지는 걸 똑똑히 보았는데 멀쩡한 꼴로 일어나니 키메라 두 마리가 겁에 질려 몸을 떨었다.
    ​
    ​
    리안은 굳이 몸을 웅크린 채 덜덜 떠는 개.. 아니, 키메라까지 처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무너진 돌 더미를 지나 키메라들이 갇혀있던 공간에 발을 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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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이한 문양이 새겨진 벽면이나, 벽에 세워진 기둥, 파랗게 타들어 가는 커다란 횃불. 딱 봐도 보스 룸 같은 방이었다. 던전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기민하게 알아차린 리안은 씩 시원하게 웃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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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 보자… 아, 저쪽에 문이 있네.’
    ​
    ​
    커다란 공간에 비해 작은 문을 발견하곤 곧바로 가까이 다가갔다. 키메라가 문을 넘어갈 수 않도록 온갖 마법진이 떡칠되어 있었지만.
    ​
    ​
    뽀드득.
    ​
    ​
    주부의 손길에 깔끔하게 지워지고 말았다. 리안은 땀을 닦는 시늉을 하곤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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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 음? 생각보다 좁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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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원룸 크기만 한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방 가운데엔 무슨 목적으로 사용되는지 알 수 없는 제단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위에 성인 남자 주먹 두 개를 합친 것만 한 크기의 동그란 구슬이 받침대 위에 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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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과 천장, 바닥에는 찬란하게 빛나는 마법진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는데 검보라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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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슬 보상방… 같은 게 나올 줄 알았는데. 음, 이게 보상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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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방 가운데에 놓인 재단에 다가가 구슬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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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리안이 막 키메라를 해치우고 던전 최심부에 도착했을 무렵 동굴.
    ​
    ​
    피아는 잔혹한 현실에 절망하여 입술을 깨물고 있었고 노인은 피아의 절망을 기분 좋게 음미하고 있었다.
    ​
    ​
    ‘리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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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아는 언제나 그랬듯 아득한 절망 속에서 보다 깊게 리안을 찾으며 기도했다. 
    ​
    ​
    ‘부디 아이들에게 자비를 구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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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아의 몸을 중심으로 옅은 신성력이 넘실거렸다. 눈에 보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한때 신성력을 사용한 적 있던 노인은 기민하게 눈치챘다.
    ​
    ​
    “오오, 자네 사실은 신실한 신도였군! 그렇다면 내 특별히 그대를 먼저 신의 품으로 보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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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인은 진심으로 제 행동이 신을 위한 행동이라 믿는지 느물느물 기분 나쁘게 웃으며 피아에게 다가왔다. 피아는 신념이 담긴 눈으로 자세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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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곳에서 죽더라도 아이들은 반드시 구하겠다는 의지가 선명하게 담겨있었다. 그런 피아를 보며 노인이 돌연 인자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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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걱정하지 말게. 고통은 금방 끝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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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자한 얼굴과 달리 휘둘러지는 칼은 그 어떤 검사보다도 위협적이고 빨랐다. 노인의 몸으로 낼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무시무시한 속도에 피아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하지만 그뿐, 몸은 노인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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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날이 그녀의 목을 베기 위해 사선으로 휘둘러지자 피아의 시간이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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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 혼자 느린 세계에 살아가는 것처럼 몸이 느릿하게 뒤로 움직였다. 하지만 노인은 혼자서 다른 시간 선에 살아가는 것처럼 평범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정도로 노인의 움직임이 빠른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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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의 검이 동물을 도살하려는 것처럼 목을 파고드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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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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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이 갑작스럽게 옆으로 비틀려 동굴 벽을 두드렸다. 얼마나 강하게 휘둘렀는지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동굴 벽이 움푹 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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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허어억! 끄아아아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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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는 노인의 공격이 기이하게 비틀렸다는 것에 한 번, 끔찍한 비명에 한 번 더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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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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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검으로 가슴을 꿰뚫었을 때처럼 아픈 척을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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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생각에 몸을 뒤로 물린 채 경계 섞인 시선으로 노인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면서 슬금슬금 아이들 쪽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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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케헥,켁! 꾸에에에엑!! 키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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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인은 제 가슴팍을 주름진 손으로 박박 긁으며 비명을 내질렀다.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커지고 피부가 벗겨져 핏물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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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각 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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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뭐에 쓰는 거지? 점 볼 때 쓰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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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노인의 심장을 덥석 들어 반들반들한 면을 쓰다듬어보다가 두유를 먹기 전 흔드는 것처럼 마구 흔들기 시작했다. 이내 반들반들한 면을 문지르는 게 꽤 기분이 좋은지 구슬을 찰싹찰싹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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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에 촥촥 감기는 게 꽤 괜찮은 구슬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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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이 심장은 이제 제껍니다.(찰싹찰싹)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리안은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이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이는 단 한명도 없다고 생각했는지 다음 방까지 이어진 길은 매우 짧았다.

“으음.”

리안은 거대한 체육관을 떠올리게 만드는 커다란 지하 동공 안에 서 있었다. 그의 시선 끝에는 매끈한 벽이 자리하고 있었다. 가로와 세로가 15m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벽에 마법진이 빼곡하게 그려져 있었다.

‘마검을 꺼낼까? 아니… 여기까지 왔는데 그러긴 좀…’

게임으로 치자면 마검은 공략본이나 핵이나 다를 바 없었다. 여기까지 제힘으로 도착한 만큼 끝까지 제힘으로 도착하고 싶었다.

온갖 함정에 온몸이 갈렸다가 돌아오길 반복해버린 탓에 피아를 찾겠다는 목적은 반쯤 잊은 상태였다.

‘엄청 대단한 마법진 같기는 한데…’

리안은 마법진에 가까이 다가갔다. 형광 하늘색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마법진은 멀리서 볼 땐 벽에 새겨져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림처럼 그려져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이거 그냥 지우면 되는 거 아니야?’

리안은 그나마 살아남은 옷 소매로 마법진 한쪽을 슥슥 지워보았다. 그 어떤 마법을 사용해도 흠집조차 낼 수 없는 마법진이 ‘주부’의 손길 아래 가볍게 지워졌다. 아니, 지워지다 못해 반짝반짝 윤이 났다.

우우웅…

마법진 일부가 훼손되자 힘을 잃고 붕괴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빛이 사그라들고 진한 갈색의 그림만이 남게 되었다.

쩌적..쿠구구궁!

마법진이 그려져 있던 벽에 금이 가더니 이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리안은 떨어져 내리는 바윗덩어리를 보곤 눈을 왕방울만 하게 떴다.

“으와앗!”

묘기를 부리듯 쿠웅,쿵! 떨어지는 바위를 유연하게 피해 뒤로 물러났다.

“콜록콜록..!”

흙과 돌먼지가 시야를 가렸다. 기침을 하며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으로 닦고 있자니 흙먼지가 가라앉았다.

“키이익?”

그 너머에서 나타난 건 네 발로 기어 다니는 키메라였다. 얼굴은 카멜레온, 상체는 인간, 하체는 사자 등.. 다양한 동물로 조합된 키메라 10마리가 침을 질질 흘리며 새롭게 나타난 먹잇감을 바라보았다.

“어…”

멍한 얼굴로 10마리의 키메라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키에에엑!”

“어어억?!”

굶주린 키메라들이 리안에게 달려들었다. 카멜레온 입이 벌어지고 날카로운 이가 리안의 어깨를 사정없이 깨물었다. 다른 키메라가 리안의 옆구리를 깨물었고 또 누군가는 머리를 깨물었다.

살점의 일부를 꿀꺽 삼킨 키메라의 몸은 움찔움찔 변화하기 시작했다. 키메라는 다양한 생명체를 합성하면 할수록 폐사할 확률이 굉장히 높다.

폐사할 확률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방법이 하나 있으니, 바로 섭취한 생물을 흡수하고 진화하는 것이다. 리안을 습격한 키메라의 몸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태어난 이후 무언가를 섭취하여 진화해왔던 키메라들에게 리안을 먹고 몸이 변화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변화였다.

…섭취한 게 리안이 아니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키힛?”

카멜레온 머리를 가진 키메라가 커다란 살점을 꿀꺽 삼킨 순간, 키메라는 몸 안쪽에서 탄산이 터져나가는 듯한 부글부글하는 감각을 느꼈다. 기이한 느낌에 키메라가 리안에게서 떨어져 제 몸을 내려다보는 순간.

구르르륵.

“키이익?!”

배가 파도치는 것처럼 마구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배가 이리저리 꿀렁꿀렁 하다가 이내.

파아앙!

그대로 터져버렸다. 키메라의 살점이 이곳저곳으로 철퍽하고 떨어져 내렸다. 그게 시작이라는 듯.

“킷?”

“키힛?”

파아앙! 파아아아앙!

리안을 한입이라도 먹었던 키메라들이 하나, 둘 풍선처럼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리안에게 달려들어 살점을 집어삼킨 키메라의 수는 여덟마리. 두 마리는 입을 붙일 곳이 없어 리안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틈을 보고 있었다.

파아앙! 퍼어어엉!

터지지 않은 건 리안을 먹지 못했던 키메라 두 마리뿐이었다. 두 마리의 키메라는 멍한 얼굴로 처참하게 터져나가는 제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키메라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다크 판타지 세계의 키메라는 무시무시한 몬스터, 이성 없이 인간을 해치는 존재지만 개그 세계에선 흔히 볼 수 있는 존재 중 하나였다.

그 탓에 본능만이 남아있던 녀석들이 ‘이성’ 비슷한 걸 가지게 되었다. 그 탓에 남은 두 마리의 키메라는 겁에 질려 리안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졌다.

“으으, 개를 키우면 키운다고 경고문이라도 적어놓을 것이지…”

흉폭하다, 달려든다, 상대를 마구 깨물어버린다. 개그 세계 개들의 특징이었다.

얼굴 한쪽이 금으로 이루어져 있거나, 몸 전체가 철로 된 개, 흐물흐물 거리며 걸어가는 외계인 강아지 등. 개그 세계에선 워낙 다양한 형태의 개들이 살아가고 있기에 리안에겐 키메라조차 조금 특이하게 생긴 개처럼 느껴졌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리안의 얼굴과 몸은 전과 다를 바 없이 매끈했지만 둥그런 잇자국들이 남아있었다. 개그 세계에서 개에게 물리면 생기는 자국이었다.

“끼잉…낑.”

“끄응…”

분명 눈알이 터지고, 배가 갈라져 장기가 흘러나와 삼켜지는 걸 똑똑히 보았는데 멀쩡한 꼴로 일어나니 키메라 두 마리가 겁에 질려 몸을 떨었다.

리안은 굳이 몸을 웅크린 채 덜덜 떠는 개.. 아니, 키메라까지 처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무너진 돌 더미를 지나 키메라들이 갇혀있던 공간에 발을 디뎠다.

기이한 문양이 새겨진 벽면이나, 벽에 세워진 기둥, 파랗게 타들어 가는 커다란 횃불. 딱 봐도 보스 룸 같은 방이었다. 던전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기민하게 알아차린 리안은 씩 시원하게 웃음 지었다.

‘어디 보자… 아, 저쪽에 문이 있네.’

커다란 공간에 비해 작은 문을 발견하곤 곧바로 가까이 다가갔다. 키메라가 문을 넘어갈 수 않도록 온갖 마법진이 떡칠되어 있었지만.

뽀드득.

주부의 손길에 깔끔하게 지워지고 말았다. 리안은 땀을 닦는 시늉을 하곤 문을 열었다.

“어디… 음? 생각보다 좁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원룸 크기만 한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방 가운데엔 무슨 목적으로 사용되는지 알 수 없는 제단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위에 성인 남자 주먹 두 개를 합친 것만 한 크기의 동그란 구슬이 받침대 위에 놓여있었다.

벽과 천장, 바닥에는 찬란하게 빛나는 마법진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는데 검보라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슬슬 보상방… 같은 게 나올 줄 알았는데. 음, 이게 보상인가?’

리안은 방 가운데에 놓인 재단에 다가가 구슬을 내려다보았다.

***

리안이 막 키메라를 해치우고 던전 최심부에 도착했을 무렵 동굴.

피아는 잔혹한 현실에 절망하여 입술을 깨물고 있었고 노인은 피아의 절망을 기분 좋게 음미하고 있었다.

‘리안님…’

피아는 언제나 그랬듯 아득한 절망 속에서 보다 깊게 리안을 찾으며 기도했다.

‘부디 아이들에게 자비를 구원을…’

피아의 몸을 중심으로 옅은 신성력이 넘실거렸다. 눈에 보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한때 신성력을 사용한 적 있던 노인은 기민하게 눈치챘다.

“오오, 자네 사실은 신실한 신도였군! 그렇다면 내 특별히 그대를 먼저 신의 품으로 보내주지!”

노인은 진심으로 제 행동이 신을 위한 행동이라 믿는지 느물느물 기분 나쁘게 웃으며 피아에게 다가왔다. 피아는 신념이 담긴 눈으로 자세를 잡았다.

이곳에서 죽더라도 아이들은 반드시 구하겠다는 의지가 선명하게 담겨있었다. 그런 피아를 보며 노인이 돌연 인자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걱정하지 말게. 고통은 금방 끝날 테니.”

인자한 얼굴과 달리 휘둘러지는 칼은 그 어떤 검사보다도 위협적이고 빨랐다. 노인의 몸으로 낼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무시무시한 속도에 피아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하지만 그뿐, 몸은 노인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칼날이 그녀의 목을 베기 위해 사선으로 휘둘러지자 피아의 시간이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졌다.

피아 혼자 느린 세계에 살아가는 것처럼 몸이 느릿하게 뒤로 움직였다. 하지만 노인은 혼자서 다른 시간 선에 살아가는 것처럼 평범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정도로 노인의 움직임이 빠른 탓이다.

노인의 검이 동물을 도살하려는 것처럼 목을 파고드는 순간.

카가각!

검이 갑작스럽게 옆으로 비틀려 동굴 벽을 두드렸다. 얼마나 강하게 휘둘렀는지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동굴 벽이 움푹 파였다.

“커허어억! 끄아아아악!”

“….!”

피아는 노인의 공격이 기이하게 비틀렸다는 것에 한 번, 끔찍한 비명에 한 번 더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함..정인가?’

단검으로 가슴을 꿰뚫었을 때처럼 아픈 척을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에 몸을 뒤로 물린 채 경계 섞인 시선으로 노인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면서 슬금슬금 아이들 쪽으로 이동했다.

“케헥,켁! 꾸에에에엑!! 키아아아악!”

노인은 제 가슴팍을 주름진 손으로 박박 긁으며 비명을 내질렀다.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커지고 피부가 벗겨져 핏물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그 시각 리안.

‘뭐에 쓰는 거지? 점 볼 때 쓰는 건가?’

그는 노인의 심장을 덥석 들어 반들반들한 면을 쓰다듬어보다가 두유를 먹기 전 흔드는 것처럼 마구 흔들기 시작했다. 이내 반들반들한 면을 문지르는 게 꽤 기분이 좋은지 구슬을 찰싹찰싹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손에 촥촥 감기는 게 꽤 괜찮은 구슬이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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