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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4

       “죽음의 너머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어느 날. 용사는 나에게 물었다.

       

       

       “죽음의 너머?”

       

       “네. 생명이 끝을 맞이하면 죽음이 오기 마련이니, 그 죽음 또한 끝이 오지 않겠습니까? 그 죽음의 너머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죽음의 끝…. 저승의 가장 밑바닥을 말한다면, 그곳에는 저승의 세 신이 있지.”

       

       

       나의 말에 용사는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저승의 이야기라면 예전에도 해주시지 않았습니까. 저승의 신들의 재판을 받고, 벌을 받아 혼백을 씻겨져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고.”

       

       “그래. 그랬었지.”

       

       

       함께 여행하던 때에 해줬던 이야기인데,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구나.

       

       나는 용사가 누워 있는 침대 옆 탁자에 놓여있는 사과 하나를 집어들었다.

       

       마력의 칼날로 세심하게 껍질을 깎아낸 후, 한입 크기로 잘라 용사의 입에 가져다준다.

       

       하지만, 용사는 잘라낸 사과를 입에 넣지 못했다.

       

       

       “먹지 못하겠느냐?”

       

       “네. 입맛이 없군요.”

       

       “아침도 먹지 못했으면서.”

       

       

       나는 작게 혀를 찼다. 내가 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수명을 늘려줄 수 있건만. 용사는 거부하고 있었다.

       

       

       “생명이 태어나고, 살아가며, 늙어서, 죽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닙니까? 누님과, 생명의 여신님과 함께 하였다고 하여 그 이치에서 벗어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내가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네. 제 작은 고집입니다.”

       

       

       용사는 피곤한 얼굴로 다시 침대에 누웠다.

       

       

       “이야기를 되돌리지요. 죽음의 너머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혼백을 씻겨지고, 다시 태어나게 되지. 때묻지 않은 혼을 품고서.”

       

       “그렇다면 저승의 세 신의 재판을 통과한 영혼은 어떻게 됩니까?”

       

       

       용사의 말에 나는 잠깐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그 심판을 통과한 영혼은…. 아직까진 없구나.”

       

       “어지간히도 재판의 기준이 깐깐한 모양이군요.”

       

       

       실제로도 그러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가? 그 모든 일들에도 악의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가? 모든 것에 선의가 깃들어 있는가?

       

       아니면, 그런 악의조차 의미가 없어질 정도의 위업을 이루었는가?

       

       영웅이라 불리울 정도로? 세계에 칭송받을 정도로?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런 영혼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판결을 내리는 세 신들에게도 조금 완화해야 하지 않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실은…. 재판에서 통과한 영혼이 없어서, 아직 그 너머에 향하게 될 곳이 만들어지지 않았구나.”

       

       

       만약, 그 장소를…. 일단 낙원이라 임시로 이름 붙여두고.

       

       낙원을 만들기 전에는 재판에서 통과한 영혼을 따로 모아둘 생각이긴 했지만…. 음….

       

       

       “그래도 괜찮은겁니까?”

       

       “기준을 통과할 영혼이 없었으니 말이다. 미리 만들어둬도 괜찮지만….”

       

       

       용사와 함께 세상을 여행하는게 생각했던 것보다 즐거웠으니까. 나중으로 미뤄두었었지.

       

       

       “일단은 임시로 미뤄둔 상태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네가 그 재판을 통과하는 첫번째 영혼이 될 것 같으니 말이다. 슬슬 만들어 둬야겠지.”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 생각해둔 방법도 있고 말이야.

       

       

       “제가요? 제가 한 일이 뭐가 있다고 그러십니까.”

       

       “세상을 위한 선업을 행해오지 않았느냐.”

       

       

       용사로서, 세상을 구하며 몬스터들을 물리친 용사의 위업은 그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는 선업일테니.

       

       용사가 그 재판에서 통과하지 못한다면, 누가 통과한단 말인가?

       

       

       “네가 재판에서 통과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통과하지 못할거다.”

       

       

       내 말에 용사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그정도로 대단하다고는 생각치 않습니다만….”

       

       “가슴 펴거라. 너는 이 세계에서 최초의 영웅이라 불릴만한 존재가 될테니까.”

       

       

       늙은 용사는 살짝 뻣뻣한 움직임으로 가슴을 펴보이더니, 기침을 토해냈다.

       

       나는 그런 용사의 손을 잡고서 생명을 북돋는 것으로, 용사의 몸을 조금 편하게 해주었다.

       

       

       “정말로…. 필요하지 않느냐?”

       

       “네. 이미 충분합니다.”

       

       

       용사는 일으켰던 몸을 다시 침대 깊숙히 뉘였다.

       

       

       “제 아내가 먼저 떠난지 오래 지났습니다. 알고 지내던 이들 대부분도 이젠 없고, 딸도 이제는 주름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으며, 손주들도 일가를 이루었으니…. 이 생애를 더 이어갈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렇긴 했지.”

       

       

       용사의 나이는 100살을 넘어가고 있었다.

       

       용사의 딸은 60대가 넘어가는 할머니가 되어 있었고, 그 손자 손녀들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키워서 가정을 이룰 정도가 되었으니.

       

       이젠 용사의 후손으로 작은 마을을 만들 지경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젠 아르카디아의 건국왕도 없고. 음. 정말로 친구라 부를 이들은 아무도 남지 않았군요.”

       

       “그래도 그 녀석은 죽기 전에 고향땅을 다시 밟아보지 않았느냐.”

       

       

       아카드의 땅에 저주는 사라졌다. 그 땅은 이제 생명이 다시 태어나는 곳이 되었다.

       

       아카드의 마지막 왕자는 죽기 전에 고향땅으로 돌아가, 흔적만 남은 도시의 흔적에서 편안한 표정으로 잠이 들었고, 두번 다시 깨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의 소원이었으니까요. 마지막에는 고향에서 잠들 수 있어서 행복했을 겁니다.”

       

       “음.”

       

       

       그토록 고향이 그리웠으리라. 고향에서 묻히고 싶었을 정도로.

       

       

       “그런 큰 나라를 세운 위업으로도 저승의 재판을 통과하지 못하다니…. 너무나도 깐깐하군요.”

       

       “그 녀석의 경우에는…. 재판이 보류된 상태니 말이다.”

       

       

       그의 영혼은 선업과 악업, 그리고 위업으로 뒤엉켜 있어서, 판결을 쉽사리 내리지 못하는 상태였다고 하니까.

       

       인간들 사이에서 건국왕이라고 칭송받을 정도의 위업을 세웠으니,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통과할 것 같긴 하지만.

       

       

       “재판에서 통과해서 가게 될 곳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으셨다고 하였지요?”

       

       “그래. 저승의 재판을 통과하고 세 신의 인정을 받을 정도의 존재라면…. 그에 합당한 장소가 필요할텐데, 어떠한 것이 좋을지 아직도 고민이라서 말이다.”

       

       

       천국. 천당. 낙원.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게 될 장소지만,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는 구상해 두었지만 어떠한 형태로 만드는지는 아직도 고민이니 말이지.

       

       물질적이지 않은 장소. 영혼만이 존재하는 장소. 행복만이 존재하는 장소. 영원히, 행복할 수 있는 장소.

       

       그러한 것이 낙원일지도 모르지만…. 음…. 모르겠다.

       

       영원한 행복이 낙원일까? 변하지 않고, 이 세상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행복하다면?

       

       그건, 관점을 바꾸면 박제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행복한 공간에 영원히 지내도록 하는, 박제와 같은 것이 아닐까?

       

       모르겠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모르겠다. 신이라 불리우면서, 신에 가까운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무엇 하나 제대로 아는 것이 없구나.

       

       

       “고민이 많으신 것 같군요.”

       

       “그래. 고민이 끝이 없지.”

       

       

       차라리 모든 것을 방치하고,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멀리서 방관하고 있다면 편했겠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깊숙히 손대고 있었으니.

       

       

       “편하게 생각하시죠. 편하게.”

       

       “편하게 생각할 수 있을리 없지 않느냐.”

       

       

       존중받아 마땅할 영혼들이 오게 될 장소인데. 어설프게 만들었다가는 곤란하다고.

       

       

       “그 영혼이 원하는 장소를 만들어내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원하는 장소?”

       

       “네. 저의 경우에는…. 이 마을과 같은 풍경이겠군요. 이곳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삶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으니까요.”

       

       

       음…. 그렇게 한다면, 곤란하려나. 언젠가 그 낙원에 들어가게 될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얼마나 넓은 곳이 필요할지 모르니까.

       

       거기에, 그곳에 들어간 사람이 주변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을 바란다면…. 더욱 더 곤란해지고 말이야.

       

       쉽지 않다. 어느 하나 쉬운게 없어.

       

       

       “뭐, 저는 그곳에 가고 싶진 않지만요.”

       

       “무, 뭣이?!”

       

       

       아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인데?!

       

       네가 들어가지 않는다면, 누가 들어가냔 말이야!

       

       

       “그 곳에는 재판을 통과한 사람들만 들어간다고 하셨었지요?”

       

       “그래. 그랬지. 재판에서 통과할 정도로 엄선된 존재만이 들어가게 될 것이지.”

       

       “그렇다면, 제 아내는 그곳에 없을 것 아닙니까.”

       

       

       용사의 말에 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네가 네 아내를 그렇게 끔찍할 정도로 아끼는 줄은 몰랐구나.”

       

       “그러게요. 같이 살면서 정이 붙은 것인지…. 이제 와서 얼굴 한번 보고싶지 뭡니까.”

       

       

       용사는 작게 웃어보였다.

       

       

       “하지만, 저승의 재판을 받고 영혼이 씻겨진다면, 너에 대한 기억 역시 완전히 씻겨졌을텐데. 그럼에도 너의 아내라고 생각하느냐?”

       

       “뭐, 기억 같은게 뭣이 중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그 사람 기억은 한번 날아갔었는데. 그래도 같이 잘 살지 않았습니까.”

       

       

       나는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누님께서 만드는, 저승의 재판을 통과하는 영혼이 가는 곳에 들어간다면…. 그 사람을 두번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되겠지요?”

       

       “그럴 가능성이 높지. 네 아내가 다음 생에서 저승의 재판을 통과하더라도, 그때의 영혼은 다른 기억을 쌓았을테니.”

       

       “흐음…. 그렇다면, 저 역시 환생을 하고 싶군요.”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나고 싶단 말이냐?”

       

       

       용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이구…. 이 미련한 놈아….

       

       

       “저승의 재판에서 통과하지 못한 영혼은, 기억이 완전히 씻겨지고 새로운 생을 살아가게 된다. 더 이상 네 아내라고 하기 힘든데도, 그 아이를 만나기 위해 다시 태어나겠다는 말이냐?”

       

       “네. 어리석은 선택이지요?”

       

       

       나는 별다른 말을 못했다.

       

       이보다 더 어리석은 선택이 있을까.

       

       하지만.

       

       

       “오냐. 네 선택을 존중하마.”

       

       “정말이십니까?”

       

       “단, 너는 내가 만들 공간…. 낙원에 가줘야겠다.”

       

       “네? 제 선택을 존중해 준다고 하셨잖습니까.”

       

       

       그래. 존중은 하지.

       

       그래도, 네가 낙원의 첫번째 입주자라는 사실은 변치 않으니 말이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TheMelalo님 3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후원 메세지… 고정이라…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감사합니다…!

    세심한우유님 5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일단 예약…!

    글이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거나, 이거 좀 불탈지도 모르겠네… 라고 생각하면, 댓글 확인을 늦게 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소심해져서 그래요. 소심해져서… 쪼그라든다… 쭈글쭈글…

    그래서 오타 확인이나 뭐 그런게 늦으면 제가 쪼그라들어서 쥐구멍에서 안나오고 있는겁니다. 뭐, 대충 그런겁니다.

    그래도 쓰는 걸 멈추진 못하지만요. 사실 처음부터 잘 쓰면 되는 일이지만…. 그러기에는 제가 너무 모자라네요.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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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ther You Call Me a Guardian Dragon or Not, I’m Going to Sleep

Whether You Call Me a Guardian Dragon or Not, I’m Going to Sleep

늬들이 날 수호룡이라 부르든 말든 난 잘거야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story of a human reincarnated as the Creator God of a new world, and her observation logs of the burgeoning new world and life. — Dragons, which have existed since before the birth of human civilization, became the guardian dragons of the empire. But whether you guys call me that or not, I’m going to sl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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