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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4

    <134 – 훈련도구>

     

    1.

    뽈뽈거리며 열심히 하급반을 순회하고 오니 희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훈련도구 시제품이 완성됐어요.”

    “벌써요?”

    “여기 로지니랑 생산직 친구들이 도와줬거든요. 화력을 빠르게 올려서 주조시간이 크게 단축됐답니다. 역시 돈이면 안 될 일이 없네요. 호호!”

     

    아카디아가 보여주는 장비들.

    시험 삼아 장갑이랑 신발을 신어보니 사이즈가 달라서 발뒤꿈치에 공간이 남고, 장갑도 어른 걸 빌려 쓴 것처럼 헐렁헐렁했다.

    그렇지만 무게감만큼은 조나의 저택에서 착용했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거에요!”

    “만족했다니 다행이네요. 그런데 정말 이렇게 무거운 훈련도구를 착용하고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 가능한가요?”

    “하다보면 어떻게 다 적응되어서 괜찮아져요!”

     

    애초에 여기는 상태창도 있는 세상.

    능력치도 있는 게임세계다.

    범인보다 월등히 뛰어난 능력치를 지닌 기프트 아카데미 입학생들이라면 자신의 능력치에 쉽게 적응할 수 있는 고중량 일상생활훈련의 효과를 크게 보겠지.

     

    ‘머, 조나가 만든 거에 비하면 별로지만.’

     

    인체공학적인 느낌이 부족하다.

    너무 큰 장갑과 신발은 살을 누르고 피부가 쓸리는 느낌이 든다.

    실시간으로 무게중심이 맞춰지는 오토벨런스 기능도 없다.

    물론 1학년들이 만든 훈련도구, 그것도 이제 막 만든 프로토타입 시제품에 그런 걸 기대하는 건 날도둑놈 심보다.

    눈치가 있으면 힘내서 제작한 아카디아와 로지니, 다른 생산직 1학년들에게 투정을 할 수는 없지!

     

    “이거 모브한테 가져다줘도 괜찮아요?”

    “그러세요. 사이즈는 안 맞아서 불편하겠지만 그 부분은 갑옷 입을 때 솜이나 면, 천을 안에 덧대 입는 것처럼 뭐든 덧대서 어떻게든 하면 될 거랍니다.”

     

    그런데 속에 입을 속갑옷까지는 생각을 안해둬서 그런지 이게 또 고민이 된다.

     

    ‘뉴비한테 입힐 건데 아무거나 입혀도 되나?’

     

    천만에. 원래 뭣도 모르는 뉴비는 돈질로 꼬시는 게 제일이다.

    취미에 비싼 장비부터 도배하고 들어가면 돈이 아까워서라도 열심히 하지 않겠는가.

    등산이나 낚시, 자전거, 뭐든간에 한국인이 취미를 시작하면 으레 돈질로 풀템 장착부터 시작하고 들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해도 태반은 비싼 장난감 사다가 대대로 풀 플레이트 갑옷을 자손들에게 물려주듯이 취미장비도 고이 모셔놓기 마련이지만.

    적어도 뉴비가 훈련도구에 곁들어 입을 속갑옷마저 장롱이나 보관함에 처박힐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애초에 낙제위기인 주제에 그렇게 게으르고 절박할 줄 모르는 바보들은 기프트 아카데미에서 한 학기도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모브는 꽤 성실한 편이지.’

     

    허접한 인상과 달리 모브는 제법 건강이 좋은 편인데, 그런 그가 눈가에 다크써클이 낄 정도로 밤잠을 줄여가며 열심히 수련하고 있다.

    그 성실함을 봐서라도 어디 옆집 하급반 학생에게 장비로 기가 죽는 일은 없게 해야지.

     

    ‘좋아. 하나 맞춰주자!’

     

    훈련도구도 모두가 공을 들여 만들어준 마당에 속갑옷 정도야 나 혼자 어떻게든 해줘야지.

     

     

    * *

     

     

    철인양성에 누구보다 진심인 플라톤 교수.

    지나치게 가혹한 교육 커리큘럼으로 인해 학생들에게는 그다지 인기가 없는 교수인 그는 강의시간 외에는 사적으로 찾아오는 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

    눈을 마주쳐도 언제 프로틴을 먹이려고 들지 모른다며 기겁하며 피하는 학생들이 대부분!

     

    “훗. 나약한 녀석들.”

     

    교수는 개의치 않았다.

    진정한 철인의 경지는 저런 겁쟁이들이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약간의 고독함.

    약간의 쓸쓸함.

    그마저도 성장과 단련의 재료로 갈아 넣으며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하는 육체개조에 매진할 줄 아는 자만이 철인에 또 한 걸음 가까워지기 마련이니.

    배움에 끝은 없다고 주장하듯이 조각상의 몸이 되고도 플라톤 교수는 나날이 개인수련에 매진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그런데 오늘, 평상시의 수련 도중에는 있을 수도 없고 일어날 리도 없는 일이 벌어졌다.

    사적으로 자신을 찾아와 말을 건네는 학생이 나타난 것이다.

    플라톤 교수는 쇠질을 멈추지 않으며 말했다.

     

    “학점이의신청은 받지 않네.”

    “저희 아직 중간고사도 안 봤는데요!”

    “그럼 과제인가? 과제평가 이의신청도 받지 않네.”

    “과제 때문에 온 것도 아닌데요!”

    “그럼 뭣 때문에 왔지? 동아리 지도교수가 되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라면 이미 <괴력박살부>와 <육탄감응일천부>를 맡고 있으니 거절하겠네.”

    “솜갑옷을 구할 곳이 있는지 여쭤보러 왔어요!”

    “솜갑옷?”

     

    졸업이 급해서 학점이나 점수 하나를 꼬치꼬치 캐물어가며 점수를 올려달라고 때 쓰는 고학년의 방문인 줄 알았더니, 솜갑옷 같은 소리가 나온다.

    고학년답지 않은 순수한 목소리부터 뭔가 이상하다 싶더라니, 정말로 솜털도 안 빠진 1학년 어린아이 오크노디가 찾아왔다.

     

    “친구의 훈련도구가 사이즈가 안 맞아서 덧대 입을 갑옷이 필요하거든요.”

     

    수줍게 웃으며 애교 부리듯이 말하는 모양새가 아주 여우같은 꼬맹이였다.

    나이를 먹으면 남자 꽤나 울리고 다닐 느낌이다.

    매스각키 황녀처럼 허접 허접~♡ 하고 사람을 놀리는 암흑진화만 안 한다면 커서 뭐가 될지는 몰라도 장래가 아주 기대되는 여학생!

     

    “훈련도구를 보여줄 수 있겠느냐?”

     

    학생들에게는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플라톤 교수도 여러 가지 의미로 장래가 기대되는 오크노디 1년생에게는 부드럽고 온화한 표정을 지었다.

    오크노디가 신이 나서 등에 짊어졌던 훈련도구를 쿵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작게 흙먼지가 이는 것이 눈으로도 중량이 제법 들어간 것임이 느껴졌다.

     

    “호오.”

     

    손으로 들어보니 근육에 미미한 자극이 왔다.

    과연, 1학년 치고는 제법 중량이 들어간 신발과 장갑이었다.

     

    “누군진 몰라도 중갑착용훈련을 미리 하는 학생이 있다니, 매우 칭찬하고 싶구나.”

     

    갑옷을 입지 않고 휘두르는 검과 무거운 갑옷을 입고 휘두르는 검은 실리는 무게부터 요구되는 근력, 검의 궤적과 체력소모까지 모든 것이 다르다.

    크게 되길 원하는 학생이라면 이렇게 미리 미리 예습과 적응훈련을 해두는 것이 정답이었다.

    물론 학생들은 이런 짓을 하지 않는다.

    아카데미의 일정이 바쁘다는 핑계로 놀 거 다 놀고, 먹을 거 다 먹고, 쉴 거 다 쉬면서 소중한 1학년의 시간을 쓰레기처럼 허비하기 때문이다.

     

    “모브라고 하급반 학생인데 엄청 성실해요!”

    “그러냐?”

     

    오크노디가 이렇게까지 칭찬한다면 확실히 보통 학생은 아니다.

     

    “마침 지금은 강의가 없으니 이리로 오라고 해라.”

    “넹!”

     

    잠시 후, 말라깽이 사내자식 한 놈이 나타났다.

    나쁜 습관으로 생긴 불균형한 자세도 없고, 근육의 질은 그리 뛰어나지 않지만 제 딴에는 나름 열심히 연마한 티가 난다.

    나름 심공에도 재능이 있는지 본능적으로 마력을 발현해서 근육이 꽤 압축되어 있다.

     

    “재능은 있구나.”

    “가, 감사합니다…?”

     

    플라톤 교수의 손이 모브의 팔뚝, 복부, 허벅지를 가볍게 툭툭 쳤다.

    모브는 이게 무슨 상황이지? 설마 오크노디가 그를 교수에게 팔아넘기고 학점을 받으려는 건가? 하고 두려움에 빠졌지만 당연히 그럴 의도는 아니다.

     

    ‘육체피로가 보기보다 심하군.’

     

    운동으로 파괴된 근육이 회복되는 시간이 거듭되는 운동으로 부상이 누적되는 속도를 미처 다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상하체로 부위별로 나누어 운동을 하며 피로의 수준이 다름에도 이럴 정도면 정말 어지간히 독하게 마음을 먹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마음에 들었다!”

     

    하급반치고는 싹이 보이는 재능과 1학년답지 않게 심상치 않은 독기.

    교수는 그에게서 자신의 조국, 피렌체 왕국의 부흥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피 말리는 기분으로 보냈던 먼 옛날의 자신을 떠올렸다.

    이런 학생이라면 충분히 도울 가치가 있다.

     

    “너에게 바르메츠의 목화로 만든 솜을 내어주마.”

     

    바르메츠는 최초의 목화라고도 알려진 <환상의 식물>인데, 실제로 정령계에서 자생하던 바르메츠를 중간계에 심음으로써 목화종이 탄생했다.

    열학한 중간계의 토양에 의해 열화 되고 또 열화 된 목화조차 의복에 쓰이며 유용하게 사용되니 그 원조 격인 바르메츠 목화솜의 가치를 짐작할 수 있다.

    1학년들이 그 가치를 알기나 할지는 의문이었는데 뜻밖에도 오크노디가 아까워 죽겠다는 얼굴을 했다.

     

    ‘보통 부유한 것이 아니면 이 목화솜의 가치는 쉽게 알 수 없을 텐데?’

     

    오크노디의 이쁘장한 외모나 교복과는 별개로 늘 팔에 차고 다니는 팔꿈치까지 올라오는 흰 장갑을 보고는 납득했다.

    돈이 굉장히 많은 부잣집 아이구나.

    아카데미에 만연한 오크노디에 대한 소문조차 듣지 못할 정도로 플라톤 교수는 육체단련에 진심이었다.

     

     

    * *

     

     

    [플라톤 교수가 모브의 수준을 보고 만족했습니다.]

    [모브가 바르메츠 목화로 만든 솜을 받습니다.]

    [프로토타입 중량훈련세트가 바르메츠 목화를 안에 덧대며 제품품질이 <우수(3)>등급으로 승급합니다.]

    [충격흡수 기능이 추가됩니다.]

    [열흡수 기능이 추가됩니다.]

    [장비내구력이 매우 많이 향상됩니다.]

     

    플라톤 교수는 프로틴 수프를 학생들에게 곧잘 건네주며 약을 파는 위험한 교수라고 인식되곤 하지만, 실제로는 은근히 통이 큰 교수님이다.

    신체개발에 관심만 있으면 동아리 지도교수도 기꺼이 맡아주고 자잘한 도움도 아끼지 않거든.

    <괴력박살부>.

    <육탄감응일천부>.

    저 두 동아리가 대표적이다.

    호기심에 들어가서 겪어본 소감은 차력부랑 헬스부에 가까웠지만.

     

    “모브는 운도 좋네!”

    “응? 내가?”

    “저거 엄청 비싼 거야.”

    “얼마나?”

    “음…”

     

    게임 속에서의 가치를 떠올려보고는 계산을 마쳤다.

     

    “마장갑옷 한 벌 가격!”

    “헉!!”

     

    귀족들도 그 비싼 값어치 때문에 미처 포인트로 착용허가를 받지 못한 마갑옷.

    거기에 버금가는 같은 무게 당 황금보다 비싼 목화솜의 존재에 모브는 기절할 것처럼 놀랐다.

     

    “저거 흘리면 어떡해? 쓰고 나면 손발에 묻어서 솜이 딸려 나올 텐데, 그거 한 올씩만 흘려도 금보다 더한 걸 버리는 거잖아!”

    “아, 그거라면 걱정 말고 일단 착용해보게.”

     

    플라톤 교수가 호탕하게 웃으며 부츠와 장갑 안에 솜을 힘으로 붙여 넣고 들이밀었다.

    중간에 우지직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잘못 들은 거였으면 좋겠다.

     

    “윽… 무겁군요.”

    “그래도 착용감은 괜찮지 않나?”

    “네. 교수님 덕분에 많이 나은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뭘 이 정도가지고. 진짜 감사할 건 이제부터지.”

    “네?”

    “바르메츠 목화솜을 흘릴까봐 걱정된다고 했지?”

     

    설마 문제의 근원을 없앰으로써 걱정도 없앤다면서 만들고 보니 의외로 탐나는 훈련도구를 뺏어가려는 건 아니겠지?

    옆에서 불안스레 구경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걱정은 기우로 끝났다.

    빼앗는 게 아니라 개조를 하고 있거든.

     

    우지직

     

    플라톤 교수는 일말의 악의도 없이, 어디까지나 호의에서 비롯된 마음으로 신발과 장갑의 손목과 발목부위를 힘으로 구겨 발목과 팔목에 딱 맞췄다.

     

    “악?!”

    “자네 걱정거리를 하나 없애주었네.”

     

    플라톤 교수가 무척이나 뿌듯해하며 말했다.

     

    “절대로 벗겨지지 않는 신발과 장갑을 신으면 솜을 흘릴 일도 없지. 이제 자네 힘으로는 절대로 이 신발과 장갑을 벗을 수 없네.”

     

    교수는 훈련도구를 강탈하지는 않았다.

    대신 저주받은 아이템마냥 장비해제가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었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물리적으로 저주받은 아이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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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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