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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4

       [……]

       

       천마는 신경계를 내달리는 격통을 무시하고,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검은 무복에는 주먹만한 구멍이 뚫렸고, 그 너머의 가슴 또한 마찬가지. 심장을 뚫고 그대로 반대편까지 파고들어 몸 전체를 관통한 장창이 이내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천마는 뻥 뚫린 가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가슴의 상처에선 피가 왈칵왈칵 흘러내리고, 입가에서도 역류한 핏물이 흘러내리지만. 천마는 그런 사소한 것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녀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림에, 머리 위에 앉아있던 대붕이 또한 마찬가지로 고개를 기울였다.

       

       [거 참 희한한 노릇이구나.]

       

       천마는 저 멀리 서 있는 회귀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다루는 힘과 도구는 위대한 신들의 것인데, 정작 마음은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으니 말이다.]

       

       암만 마음에 미혹이 있었다고는 하나, 기본적으로 무의 정점에 달한 것이 그녀다. 싸우는 상대의 의도를 읽어내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 그녀가 보기엔, 적어도 회귀자는 창을 던지기 직전까지는 확실히 진윤을 노리고 있었다. 만약 단순히 ‘진윤을 노리는 척하면서’ 천마를 노릴 뿐인 속임수라면, 그녀가 속아넘어갈 리가 없었던 것이다.

       

       감정이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가 아니다. 창을 던지는 그 순간, 회귀자의 의도 자체가 손바닥을 뒤집듯 일변한 것이다. 단순히 생각이 바뀌었다는 수준이 아니라, 멀쩡히 돌아가고 있던 사고 회로에 아예 별개의 명령어가 끼어들었다고 해야 할까.

       

       하다못해 인격을 여럿 가졌다고 해도, 저딴 식으로 한없이 0에 가까운 찰나에 아무런 전조도 없이 마음을 바꿔먹는 건 불가능하다. 하다못해 차를 마실까, 술을 마실까 따위의 별 것 아닌 문제에도 이유를 필요로 하는 것이 인간이고 지성체다.

       

       건강을 생각해서 차나 한 잔 해야지ㅡ 하다가도, 그래도 오늘은 술이 땡기는데. 라며 욕망에 넘어가는 일도, 오늘은 대판 마셔야지ㅡ 라고 생각하다가도, 썩어들어가는 간장을 생각해서 시원한 차나 한 잔 시키는 일도 있겠지만.

       

       분명 술을 시킬 생각으로 점소이를 불러놓고, 그 생각 그대로 아무렇지도 않게 보리차를 시키는 것은 명백히 이상하다. 사람의 사고에 있어 필수적인 맥락이라는 것이 아예 존재하질 않는다. 설령 초일류의 독심술사라 할지라도 이 상황에선 필시 당황하고 말 테지.

       

       이래서야, 마치 누군가의 변덕스러운 지시를 충실히 따를 뿐인 인형이나 다름없다. 그 부자연스러운 간극에 허를 찔린 천마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회귀자를 쳐다보았다.

       

       [장난감만 보내놓고 이곳을 몰래 구경하는 누군가가 있구나. 이봐라, 게 누구냐?]

       

       가슴에 큼지막한 구멍이 뚫린 사람의 태도라고는 믿기지 않는, 마치 장난이라도 치는 듯한 태연한 말투.

       

       [게 누구냐?]

       

       그러나 괘종시계의 시계추처럼 규칙적으로 까딱거리는 고개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깊고 어두운 눈을 보는 순간. 그녀의 부상은 나약함의 증거가 아닌,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로 변모하고 만다.

       

       [게 누구냐?]

       

       마치 자신을 빤히 응시하는 듯한, 그 바닥 모를 우물과 같은 두 눈과 시선이 마주친 순간. 악마는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육신이라곤 존재하지 않음에도, 소름이 등골을 타고 오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누구냐고 물었건만 대답이 없구나, 고얀지고.]

       

       무심하게 회귀자를 쳐다보던 천마가, 이내 손바닥을 휘둘렀다. 별다른 살의도 없는, 마치 날파리라도 잡듯 가벼운 손놀림.

       

       쩌억ㅡ

       

       그녀의 손이 휘둘러짐과 동시에, 회귀자가 반응조차 못하고 무형의 충격에 얻어맞아 튕겨나갔다.

       

       쩌억ㅡ

       

       튕겨나가 허공을 날던 회귀자가, 연이은 손놀림에 다시금 뒤쪽으로 형편없이 밀려났다. 그런 상대를 마치 훈계라도 하듯, 천마가 계속해서 좌우로 손사래를 쳤다.

       

       쩍, 쩌억, 쩌적.

       

       “……!!”

       

       반항조차 못하는 회귀자를 상대로, 천마의 매질이 점점 박차를 가해갔다. 손아귀에 힘이 들어갈 때마다, 그녀의 눈에 점차 확연한 노기가 어렸다.

       

       [솔직히 말하마. 속아서 다친 것은 썩 나쁘지 않았다. 지금껏 이렇게 다칠 일이 없었던 만큼 신선하기도 했고, 애초에 당한 내 실책이기도 하고, 그다지 원망할 건 없다마는.]

       

       눈가를 좁힌 천마가 회귀자를, 정확히는 그 배후의 무언가를 싸늘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감히 진윤을 가지고 장난질을 친 건 용서할 수가 없구나.]

       

       분노를 가득 담은 손길에, 회귀자의 갑주에 새겨진 실금이 점점 커져갔다. 그렇게 갑옷이 깨지기 일보직전까지 몰린 시점에서, 끝없이 밀려나던 회귀자의 몸이 무언가에 가로막혔다.

       

       “……”

       

       달의 표면에 대자로 처박힌 회귀자는 전신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은신을 필두로 한 기습도 먹히지 않았고, 가진 바 마도서들을 희생하여 만든 대마법도 통하지 않았고, 어째선진 모르겠지만 개념계열의 즉사기도 상대에겐 큰 효과가 없는 것 같았다.

       

       죽어도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애초에 삶과 죽음의 경계를 뛰어넘은 것일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써먹은 수단은 전부 밑천이 바닥나고 말았다. 그렇다면 신들을 여럿 불러들여 싸우는 건 어떨까.

       

       회귀자는 잠시 고민한 끝에 그 방법을 선택지에서 제외했다. 분명 동일한 계통의 신들을 중첩시켜 불러낸다면 그 힘 자체는 경이로울 정도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대에게 미칠 정도는 아닐 것 같았다.

       

       적어도 오딘의 권능을 이용해 시전한 칠요의 주문이 실패한 시점에서 단순한 물리력으로는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 할 터. 그렇기에 회귀자는 그 대신 다른 방법, 현 시점에서 유일하게 남은 승산의 실마리를 움켜쥐기로 했다.

       

       콰앙ㅡ

       

       거기까지 생각한 시점에서, 천마의 주먹이 회귀자를 부술 듯이 짓눌렀다. 지금껏 회귀자의 몸을 지켜왔던 갑주가 산산이 부서지고, 미처 해소하지 못한 여력이 그 파편을 찍어눌러 심장을 비롯한 오장육부에 구멍을 냈다.

       

       “쿨럭…”

       

       투구 안쪽에 핏물 섞인 기침이 울리고, 그 직후 회귀자의 몸이 미동도 없이 멈췄다. 고동을 멈춘 채 싸늘하게 식어가는 심장을 살피고선, 천마는 별 미련 없이 달을 등지고 떠나가려 했다.

       

       [나를 잡을 거라면 적어도 내 아버지 정도는 되는 고수를 데려오거라.]

       

       스스로의 생과 사를 오롯이 스스로의 뜻으로 결정하기에 생사경이라. 그러한 경지조차 진작에 뛰어넘은 천마에게 있어, 심장이 꿰뚫리고 영육이 죽음을 맞는 것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설령 뇌가 불시에 뭉개진다 한들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터.

       

       회귀자의 배후에 있는 게 어떤 년놈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추적해서 잡는 게 쉬울 것 같지는 않았다. 괜히 억지로 쫓으려다 진윤이 정말로 위기에 처하면 본말전도일 터, 하여 천마가 일단은 진윤에게 돌아가려던 찰나였다.

       

       두근…

       

       실로 엷은, 그리고 희미한 심장의 박동 소리에. 천마가 움찔하며 멈춰섰다.

       

       [……]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천마와 죽은 회귀자뿐, 그러나 천마 자신의 심장은 아직 재생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한다면, 지금 이 소리는.

       

       냐옹ㅡ

       

       [……!!!]

       

       어디선가 들려온 고양이의 울음소리에, 천마가 안색을 굳히며 뒤돌아서자.

       

       분명 죽었을 터인 회귀자가, 어느샌가 두 다리로 서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멈췄던 심장이 다시 뛰고, 회귀자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설화 : 고양이의 아홉 목숨]

       

       

       사자의 소생이란 시간을 되돌리는 것만큼이나 난해한 일이라, 애초에 죽질 않거나 삶과 죽음의 경계를 뭉뚱그려 불멸하는 것에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로 대단한 업적이다. 천마는 의외라는 눈으로 회귀자를 잠자코 바라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생사에서 자유로운 건 나만이 아니라는 건가. 흥미롭구나. 그런데…]

       

       

       천마는 다시금 주먹을 내리치며 말했다.

       

       [그게 전부라면, 몇 번이고 죽을 뿐이 아니더냐.]

       

       잘은 몰라도 무한정으로 다시 되살아날 수 있는 것도 아닐 테고, 설령 그렇다 한들 좀 귀찮을 뿐이지 어찌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별 감흥도 없이 천마는 주먹을 휘둘렀고.

       

       [……어?]

       

       그 순간, 천마는 제멋대로 균형을 잃으려는 몸뚱아리를 자연스레 추스르며 의문을 표했다.

       

       [뭐냐, 방금 그건. 어떻게 네가 그걸…?]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천마는 더더욱 의아한 낯으로 물었다.

       

       [무공이라고는 전혀 알지 못하는 몸으로, 어떻게 무당의 가르침을 펼쳤지?]

       “……”

       

       천마의 물음에, 회귀자는 구태여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두 손으로 부드러운 원을 그리며 바닥을 딛고 섰다.

       

       “내게 임하라, 태극太極.”

       

       나의 힘이 아닌 상대의 힘으로써 상대를 제압하는 사량발천근의 묘리. 그 가르침을 창시한 장본인, 무당파의 개파조사가 회귀자에게 임했다.

       

       회귀자의 기세가 완전히 달라진 것을 알아챈 순간, 천마의 주먹이 재차 회귀자를 노리고 쏘아졌다. 아까에 비해 배는 강력한 위력, 아예 회귀자가 발을 딛은 달째로 부숴버릴 의도가 담긴 권격을 보고서 회귀자는 재차 입을 열었다.

       

       “내게 깃들라, 무아無我.”

       

       네 푼의 힘만 들여 천 근의 무게를 견뎌낼 수 있다 한들, 상대가 뿜어내는 힘이 천 근을 아득히 넘어선 거력이라면 의미가 없다. 천마도 그것을 알고 일격을 날렸을 터. 하여 회귀자는 곧이어 다음 성좌를 불러들였다.

       

       통상적으로 성좌란 한 사람이 하나만을 모실 수 있는 것이 기본이고, 설령 여러 성좌와 계약했다 한들 한 번에 불러낼 수 있는 건 하나의 성좌뿐이다. 예외가 있다면 태양이나 번개 등 아예 같은 현상을 주관하는 신들을 중첩해 불러내는 것이지만, 지금의 경우는 그것과 거리가 매우 멀었다.

       

       불러내려는 것은 신이 아닌 사람이며, 그것도 이름난 영웅이 아닌 한 명의 승려에 불과하니까. 통상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무당의 기이한 지혜는 불가능을 가능케 한다.

       

       

       무당의 극의 : 양의심공兩意心功

       

       

       하나의 정신을 둘로 쪼개 한 번에 전혀 다른 두 가지의 무공을 펼칠 수 있게 하는 무당의 비전심공. 양의심공의 구결에 따라 회귀자의 의식이 정확히 둘로 갈린 순간, 두 번째의 자아에 두 번째 성좌가 깃든다.

       

       [……!!]

       

       부드러움이 능히 강함을 제압할 수 있다 한들, 그것에도 한계가 있다. 정도 이상의 강함은 부드러움을 찢어발기니, 방금의 권격 또한 버티지 못하고 태극이 무너졌어야 한다.

       

       그러나 회귀자의 두 손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천마의 일권을 부드러이, 한편으로는 견고하게 받아넘겼다. 마음을 비워낸 끝에 남은 것은 오직 공空일 따름이니, 따라서 그 육체도 정신도 무너질 것이 없음이라.

       

       

       소림의 극의 : 금강불괴金剛不壞

       

       

       도가와 불가의 가르침이 한 몸에서 조화를 이루니, 천마조차 함부로 상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간 곧바로 허를 찔릴 것 같은, 살얼음판을 연상케 하는 살벌한 분위기가 흘렀다.

       

       무당의 개파조사, 장삼봉.

       소림의 개파조사, 달마대사.

       

       무림의 태산북두를 빚어낸 시조들이 힘을 모음에, 천마는 눈은 정면에 둔 채 기감만을 뒤쪽으로 확장했다. 아무래도 진윤과 젖 큰 귀쟁이도 뭔가 나름의 난항을 겪고 있는 것 같았지만, 애석하게도 당장 도움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미안하다, 진윤.]

       

       

       무신武神 ㆍ 태극쌍성太極雙星

       

       

       [아무래도 발이 좀 묶일 것 같구나…!]

       

       천마는 귀찮은 예감에 혀를 차며, 회귀자의 마지막 발악에 마지못해 어울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천마 정도의 고수에게 시선페이크가 먹힌 이유를 쉽게 비유하면 : 회귀자가 진심으로 진윤이를 노리고 움직이던 도중에 시스템 바깥에서 모션캔슬이 들어갔기 때문
    오히려 어느 의미로는 상대의 의도나 마음을 읽을 수 있기에 더 효과적으로 속아넘어갔다고 봐도 무방하네요! 같은 수법이 두 번은 안 통하겠지만!
    후회의 시점에서 생각하면 대전게임에서 모션캔슬 즉사기로 상대 AI를 간신히 KO시켰더니, 상대 캐릭이 죽기는커녕 화면 바깥을 바라보면서 거기 누구냐고 묻는 게 공포게임이 따로 없습니다…!

    연재주기에 대해서는 그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글을 능숙하게 써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제 능력이 부족해서 자꾸 여러분을 실망시켜드리게 되네요. 그래도 목이 턱 막힐 수 있는 부분부터 최대한 빠르게 넘길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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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lery for Loners After Dem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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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FLAD 종말 후 외톨이 갤러리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community for the last people who survived on Earth. This is ‘The Lonely Gallery After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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