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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4

        저번 주와 똑같은 꿈을 꾸었다.

       

        어둠으로 뒤덮인 세상을 홀몸으로 일주한다. 바다와 대륙 할 것 없이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올랐고, 화마가 지표의 대기를 불살라버린다. 걸어가는 모든 지점마다 그라운드 제로가 되었다.

       

       몇 걸음 걷다가 스스로 웃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와 움직이지 않는 입을 달싹인다.

       

       -이렇게 또 하나의 우주가 떠나가는구나.

       

       기분 나쁜 환청이 귓가를 맴돈다. 이런 소리가 들리면 눈꺼풀이 위로 올라가며 잠에서 깨곤 하였다.

       

        “……허어.”

       

       심리상담이라도 한 번 받아봐야 하나 할 정도의 악몽이다. 심연처럼 깊은 한숨을 뱉어내며 정신을 차렸다.

       

        축축한 베갯잇을 저 멀리 구석으로 던져버리고는 상반신을 일으켰다. 둥글둥글한 뒤통수가 보인다.

       

        “어라, 일어났어?”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끄적이고 있던 로테가 내 기척을 알아차리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왜 그래? 어디 몸이라도 안 좋아?”

        “별 탈은 없어.”

        “아프면 바로 얘기해. 저번 주처럼 글리스턴 선생님에게서 약이라도 타올 테니까.”

        “괜찮아.”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면서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 텐데, 오지랖이 참 넓은 아이다. 나는 그런 룸메이트가 좋았다.

       

       보증 좀 서달라고 징징거리던 고등학교 동창은 여럿 봐 왔지만 이렇게 아무런 대가 없이 헌신적으로 대해주는 아이는 처음 본다. 아, 눈물이 다 나오려고 하네.

       

        “그나저나 아침 댓바람부터 거기 앉아서 뭐 하고 있어?”

       

        나는 의도적으로 대화 주제를 전환했다. 고마운 감정을 숨기기 위함이었다.

       

        “아, 이거? 편지를 쓰고 있었어.”

        “편지? 아버님께 쓰는 거야?”

        “아니. 황제 폐하께 올리려고.”

        “아….”

       

        로테의 입에서 의외의 인물이 튀어나왔다.

       

        이 나라 수장에게 보내는 편지라. 무슨 내용인지는 대강 알 듯하다.

       

        “나는 아직도 이해가 안 돼. 어떻게 플레어를 나라가 관리하게 만들 수 있어? 완성한 건 에테르 너고, 특허를 포기해서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것도 너잖아!”

        “그랬지.”

        “그런데 그걸 황실에서 몰수한다는 건 말이 안 돼. 이러면 누가 새로운 스크롤을 발명하려고 하겠어?”

       

       맞는 말에 내가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을 때였다.

       

        -쾅!

       

        “그것 말고도 하나 더 있지.”

       

       현관문을 열며 꼬맹이 하나가 들어온다. 오늘 만나서 같이 연구하기로 한 요호족 소녀, 프레이였다.

       

        오늘 프레이는 그녀답지 않게 분위기가 내려가 있었다. 그녀가 어두운 낯빛으로 하던 말을 이었다.

       

        “마수들의 영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제국에게 있어 개인의 스크롤 개발 및 소지의 자유는 건국 이념이나 마찬가지야. 개인이 스크롤을 유동적으로 만들어 쓸 수 없었더라면 오래전 이 나라는 커지지도 못하고 멸망했겠지.”

       

        황제의 결정을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건 로테만이 아니었다.

       

        프레이를 비롯하여 제국에서 공부하고 연구하는 마도사 절대다수가 이번 황궁의 결정에 반기를 들었다. 이들에게 귀족이니 평민이니 하는 신분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지금만큼은 모두가 마도사라는 직업의 깃발 아래에서 단체로 상소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플레어만 금지했지만, 바늘 도둑이 소 도둑이 된다는 이야기가 괜히 있는 게 아니야. 어떻게든 황실의 이번 결정을 철회시켜야 해!”

       

        플레어를 못 만들도록 한 흑막이 누구인지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블루베리 그 녀석이겠지.

       

        사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내가 제공했다. 내가 로즈마리를 플레어로 위협하려고 하니까 제 몸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이런 강수를 둔 것이다.

       

        “잠깐 둘 다 진정해 봐.”

       

        이 상황에서 두 친구가 그라데이션 분노를 보여주면 나만 무안해진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무는 법. 플레어 몰수를 철회하라는 마도사들의 요구가 극심해져 로즈마리에게 사고할 틈을 주지 않는다면 녀석이 이상한 결정을 내릴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황제를 통해 본보기로 누구 한 명을 죽여버린다거나.

       

       플레어는 여기서 넘겨주도록 하자. 이 정도의 눈속임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아침부터 너무 민감한 주제로 얘기하는 것 같네. 어제 얘기했던 대로 도서관에서 책부터 빌려올까?”

       

       화제를 전환하자 두 사람이 분노를 가라앉힌다. 로테와 프레이는 서로를 마주 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

       

       

        도서관에서는 한 사람 당 책을 네 권씩 대출할 수 있다. 또한 하드커버 논문은 20부씩 빌리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는 학생증을 전부 써서 책 12권과 관련 논문 60부를 빌려 동아리 부실로 옮겨왔다.

       

        12권, 60부 분량에 달하는 문헌이다. 리어카를 사용해도 무거운 건 무겁다.

       

        “어휴, 이 많은 걸 언제 다 읽어?”

        “다 읽는 게 아니야. 필요한 부분만 찾아서 참고하는 거지.”

        “…그래서 뭘 참고할 건데?”

       

        우리가 고른 건 전부 수학 도서였다. 마도학 자체에 관한 책은 아예 없거나, 있어도 책의 한 챕터에만 할애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를 제외한 두 사람은 플레어 개발에 왜 이런 책이 필요한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게, 플레어의 이론적 제반 역할을 하는 수식들은 로테와 프레이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플레어라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데 왜 이런 책을 빌려 오냐는 뜻이다.

       

        “뭐 정령왕이나 대종사처럼 새로운 마법을 만들려고 하는 거야?” 

        “글쎄.”

       

        나는 쓰게 웃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버멜과 공모를 벌였던 그 동아리 밀실 맞다. 이번에는 외간 엘프놈 말고 친한 친구 두 명을 이곳으로 데려왔다.

       

        -쿵

       

        마지막으로 들어온 내가 문을 닫자 방 안이 어둠으로 적셔진다.

       

        “왜 여기로 들어오라고 한 거야?”

        “와, 어둡네. 여기서 연구를 제대로 할 수나 있을까?”

        “기다려 봐.”

       

        라이트로 적당한 광도를 유지한 뒤 혼연일체가 된 가방에서 스크롤을 꺼냈다.

       

        “그게 뭐야?”

        “백야.”

        “백야?”

       

        프레이와 로테에게는 처음 보여주는 스크롤이다. 이건 내가 살리에르 영지에 있던 시절 토카막을 아카샤에게 넘겨주는 조건으로 뜯어낸 희귀품이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건 이득이다. 백야는 이거 하나뿐, 심지어 미완성 상태지만 토카막은 재료만 있으면 언제든지 다시 구축할 수 있으니까.

       

        “백야가 뭐야? 어디에 쓰이는 건데?”

        “일단 한 가지만 알려줄게. 이걸 이해하면 플레어는 필요 없어.”

       

        낚싯줄에 걸린 붕어처럼 눈을 크게 뜨는 두 사람.

       

        “플레어보다 더 강한 게 있어?”

        “어디서 났는데?”

       

        나는 입에 검지를 올려 거기까진 말해주기 어렵다는 의사를 전했다. 알려 달라고 보채는 이는 없었다. 로테와 프레이 둘 다 백야에 새겨진 영롱한 구축식을 감상하느라 여념이 없었으니까.

       

        “와, 복잡해…. 하나도 해석 못 하겠어….”

        “세상은 넓고 배울 건 여전히 많구나. 너는 이거 이해하고 있어? 있으면 가르쳐줄 수 있어?”

       

        사귄 친구가 학구열 뛰어난 애들이라 다행이다. 같이 연구해달라고 따로 부탁하지 않아도 알아서 새로운 걸 배우려고 하니까.

       

        이런 연구동료가 지구 쪽에서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솔직히 조별과제만큼 터지기 쉬운 것도 없죠. 안 그래요?]

       

        백야를 집중해서 보던 프레이는 입술을 오므리며 감탄을 조금씩 흘렸다. 그러다가 먼 곳에 있는 부분이 안 보여 버둥대는 탓에 내가 목마를 해줘야 했다.

       

        “…으으, 어려워! 하지만 하면 분명히 재미있는 게 나올 거야!”

        “이걸로 플레어를 대신할 수도 있고, 마수를 모두 해치울 강력한 마법을 개발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 이거지?”

       

        두 사람의 눈빛을 보니 이걸 누구에게 맡겨야 할지 알겠다. 아니, 굳이 내가 점찍어 줄 필요도 없겠네.

       

        “에테르, 이건 나에게 맡겨. 개화부라도 해석하고 있어 볼게.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봐도 되지?”

       

        민코프스키 시공간 상에서 정의된 스크롤이 살리에르 아가씨의 탐구욕을 자극한 모양이다. 물론 이건 흔쾌히 허락할 생각이다.

       

        “물론이지. 일단 내가 알고 있는 힌트를 주자면……. 그래….”

       

        양장본에서는 백야 마법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준중성 상태의 플라스마를 자유자재로 조작하는 전설급 고유마도. 이 마도를 사용하면 대기권에서 여기된 전자가 에너지를 방출하며 광자를 내뿜기에 밤에도 항상 밝은 상태를 유지한다.]

       

        백야 자체가 전자기학과 관련된 마법.

       

        이 세상 사람들은 전자기학이 뭔지 자세히 모른다. 아예 모르는 것까지는 아닌데, 지구에 비하면 발전 속도가 더디고 학교에서도 제대로 안 가르친다.

       

        양장본에 나타난 설명을 보니 이걸 제대로 해석하려면 전자기학 지식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프레이와 로테에게 전자기 상호작용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가르쳐 주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

       

        [그러면 뭐 어떡하시게요? 이걸 혼자 연구할 수도 없고, 같이 하려면 일단 주인님이 기초적인 지식을 모두 친구분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해요.]

       

        안다. 그러니까 가르쳐 주더라도 다른 방법을 사용하겠다는 뜻이다.

       

        “로테, 프레이. 둘 다 수학 잘 하지?”

        “응. 어느 정도는.”

        “우씨, 우리를 물로 보나! 틸레트에 들어오려면 다른 아카데미에서 4년 내내 교육받는 수준 정도는 손쉽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구!”

        “그러면 다행이네.”

       

        [뭘 어떻게 하시게요?]

       

        다 방법이 있다.

       

        맥스웰 전자기 방정식을 알지 못한 상태만으로도 전자기 상호작용을 꿰뚫어볼 수 있는 수학적인 방법이 존재한다. 쉽게 말해, 몇 가지 수학적 도구들만 가지고 자연의 기본 법칙 중 하나를 유도할 수 있다.

       

        [그게 가능이나 해요?]

       

        왜,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한국에서 쓰는 언어가 한국어고, 지구에서 쓰는 언어가 영어라면.

       

        우주에서 쓰이는 언어는 수학이라고.

       

        “저번에 내가 생각하고 있던 곳부터 알려줄게. 거기 선형대수 책이랑 군론에 대해 적힌 책 있지? 거기서 유니터리 행렬이랑 대칭군 위주로 찾아봐. 메트릭 부분도 꼼꼼이 읽다보면 개화부는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내 말에 로테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책을 뒤적이기 시작한다.

       

        “나는? 나는 뭐 하면 돼?”

        “너는 잠깐 밖으로 나와 봐.”

       

        프레이는 호기심이 동한 새끼 여우처럼 고개를 슬쩍 비틀었다. 나는 프레이를 데리고 비품실에서 몇 가지 철제 도구와 마석을 챙겨 작업 탁자에 앉았다.

       

        “뭐 할 건데?”

        “조금 있으면 문화제 있는 거 알지?”

        “응.”

        “거기 출품할 작품 낼 거야.” 

        “엑, 갑자기?”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프레이였지만 이내 청사진을 그리는 나를 보며 관심을 집중했다.

       

        청사진을 그리면서도 내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로즈마리를 기만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 결과, 낮 동안의 연구는 로테에게 맡기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냈다.

       

        그러면 나와 프레이는 무엇을 하느냐.

       

        간단하다. 눈속임을 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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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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