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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4

       135. 인생은 학연, 지연, 혈연(4)

       

       

       그러니까… 이건 대체 무슨 개지랄일까.

       

       자연스레 인상이 찌푸려진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참으로 불쾌하기 그지없었으니까. 

       

       1황자를 처리했다는 걸 렌야에게 보고하자마자 그야말로 시원스럽게 결정된 소드마스터 직함과 호위기사 자격.

       

       하지만 그렇더라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절차는 있었다. 

       

       애초에 제국군에 정식으로 들어가지도 않은 놈을 소드마스터로 인정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으니까.

       

       그렇게 절차상의 이유로 오늘 하루만 이곳 소속으로 지내게 된 것인데…. 어째 상황이 조금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으슥한 곳으로 불려간 상황.

       덩치 큰 기사 여러 명이 한마디 말도 없이 나를 둘러싼다.

       

       이 광경.

       아무리 생각해도 떠올릴 수 있는 가능성은 하나밖에 없었다.

       

       “엎드려.”

       

       아니나 다를까, 나를 바라보며 강압적인 태도로 그리 이야기하는 금발의 기사.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

       

       내가 평민 출신이라는 걸 들어서 그런 것인지, 이 새끼들이 악질이라 그런지, 혹은 둘 다인지.

       

       그건 잘 모르겠으나 지금 여기서 한창 신고식이 치뤄지고 있다는 것만큼은 명백했다.

       

       ‘루시가 왜 그랬는지 이제서야 이해가 가네.’

       

       1황자를 처리하러 가는 김에 간부진들과 회의를 진행했을 때. 이상하게도 따라가겠다고 고집을 부리길래 왜 안 하던 짓을 하나 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예견할 게 분명했다.

       

       “귀 먹었어? 대가리 박으라고 이 새끼야!”

       

       인상을 찌푸리고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며 내게 그리 소리치는 금발의 기사.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문제를 일으키면 안 된다.

       어차피 하루만 지나면 끝날 일. 괜히 남의 시선을 끌어서 좋을 일 없다. 그러니 여기선 조금 숙여 주는 게 나으리라.

       

       그리 생각하고 놈이 시키는 대로 바닥에 머리를 박고 복종의 자세를 취한 건… 아니다.

       

       “내가? 너한테? 대체 왜?”

       

       더 큰 이득을 위해서라면 자존심은 언제든지 버릴 준비가 되어있지만. 그렇다고 이런 상황에서 숙여줄 만큼 자존심이 없는 건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태연한 표정으로 그리 물으며 금발의 기사를 바라보았다.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치던 눈앞의 남자. 그놈이 돌연 웃음을 멈추곤 살벌한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를 깔고는 이야기했다.

       

       “네가 아주 정신이 나갔구나?”

       

       그 말과 동시에 마나가 흐르는 것이 느껴진다.

       

       1황자의 재능을 흡수한 덕분일까. 대기 중의 마나뿐만 아니라 타인의 신체 내부에 흐르는 마나까지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곳으로 집결되는 마력.

       놈이 내게 주먹을 휘두르리라는 것은 명백했다.

       

       하지만… 나는 피하지 않고 그것에 맞아 주었다.

       

       애초에 피할 필요조차 없었으니까.

       

       나와 놈의 눈이 마주친다.

       놈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드는 것이 보였다. 이런 일을 자주 벌여온 건지 아주 정확하게 내 복부를 가격한 주먹. 

       

       심지어 마력까지 동원했는데도 전혀 타격을 주지 못했으니 저리 당황할 법도 했다.

       

       허나 이런 괴롭힘에는 도가 텄다는 건지.

       놈은 이내 동요를 표정에서 지우곤 이를 박박 갈았다.

       

       “이 새끼가… 지금 해 보자는 거냐?”

       

       아무래도 내가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해서 공격을 막아냈다고 생각하는 모양. 

       

       힘 좀 믿고 나댄다든지. 조용히 신고식만 치뤘으면 끝났을 일을 제 손으로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든지. 

       

       네가 먼저 시작한 짓이니 후회하지 말라든지 하는 이야기들. 

       

       그와 동시에 금발의 사내뿐만 아니라 뒤에서 지켜보던 놈들도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집단 린치.

       놈들이 떼거지로 나를 공격하려는 듯한 모습.

       

       아까 그 공격을 버틴 걸 보고 내가 간단히는 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건지. 칼을 꺼내는 놈도 있었다. 

       

       아니, 거의 대다수가 검을 뽑아들었다.

       

       저 검을 받았을 때 약자를 지키기 위해 검을 들겠다는 맹세를 했을 거라는 것을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한 일.

       

       어찌나 한결같은지.

        분명 10년이 지났을 터인데 제국 기사단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이건 안 되겠네.’

       

       사실 조금 망설이긴 했다. 

       

       제국 기사단과는 적이 될 게 거의 명백한 상황이니까. 이런 종양이나 다름없는 새끼들은 사실 내버려 두는 게 이득 아닐까 하고.

       

       무능한 적군은 곧 최고의 아군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저놈들의 모습과 전작에서의 지식들을 생각해 보면….

       

       이놈들이 특별히 무능하고 부패한 게 아니라 제국군 자체가 전체적으로 다 이런 꼴일 가능성이 높았다.

       

       다시 말해, 내버려둘 이유는 없다.

       

       조치를 취할 수 있음에도 구태여 처리하지 않는 것은 어째서인지 우리를 누구보다 열심히 돕고 있는 렌야 정도로도 충분하다는 이야기.

       

       놈들이 나에게로 일제히 달려든다.

       나에게로 휘둘러지는 검. 나는 그것을 일일히 막는 대신 그저 가만히 서서 구경한다.

       

       울려퍼지는 금속음.

       검과 피부가 닿았을 터인데 철과 철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그 금속음은 점점 커져만 갔고 그에 따라 검에는 하나같이 금이 가더니… 박살났다. 그것도 일곱 자루 전부.

       

       “……어?”

       

       놈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얼빠진 목소리.

       금발의 사내는 식은땀을 흘리며 박살난 검의 파편과 나를 번갈아가면서 바라본다.

       

       이제서야 무언가가 단단히 잘못됐다는 것을 눈치챈 듯 하지만…이미 늦었다.

       

       나는 기사들에게 태연히 미소지으며 선언했다.

       

       “살고 싶으면, 빨리 대가리부터 박는 게 어때?”

       

       *****

       

       숨이 가빠져 온다.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하필이면 골프장을 이리 멀리 지어놔가지고.

       마력탈진 탓에 당장이라도 쓰러질 노릇이였다.

       

       허나 그럼에도 사단장은 멈추지 않고 달려나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 2황자님이다.

       

       그냥 황족에게 밉보이기만 해도 인생의 난이도가 훌쩍 뛰는데. 심지어 상대가 차기 황제로 가장 유력하다고 평가받는 인간이란 말이다!

       

       인생 난이도가 훌쩍 뛰는 걸 넘어서 가족의 안전이라든지, 사후 영혼까지 고문에 처하게 될 걱정을 해야 될 수준.

       

       끔찍한 상상들이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나름 높은 위치에 있다 보니 아는 게 많다는 것이 오히려 탈이 된 것이다.

       

       그렇게 두려움에 떨며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내 달려다가다 보니 어느새 보이기 시작한 익숙한 풍경. 

       

       여기까지 도착했으면 이야기는 빠르다.

       애초에 이런 부조리는 그의 묵인하에 진행되는 것이였으니까.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목적지. 그곳에 도달하자마자 보인 것은….

       

       엉망진창이 된 채, 더러운 땅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엎드려 있는 남자의 모습이였다.

       

       앞으로의 인생.

       여태까지 쌓았던 커리어.

       그 모든 것이 무너져내릴 것을 예고하는 광경.

       

       자연스레 억장이 와르르 무너져내리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바닥에 주저앉을 것 같았으나.

       

       “……?”

       

       뭔가가 아주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분명 이번에 새로 들어온 놈은 한 명이였으며, 시온이라는 아이가 분신술을 썼을 리도 없다.

       

       그런데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얻어맞은 채로 지면에 대가리를 박고 있는 남자는 9명이였다.

       

       기괴하기 그지없는 상황.

       지금 여기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얼마 안 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소년의 모습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하얀 머리칼.

       그리고 파란색 눈동자.

       

       시온이다.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소년이 사단장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순식간에 안도감이 밀려온다.

       부하들이 신입한테 얻어맞긴 했지만. 당장 본인이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 그런 걸 신경쓸 리가 없었다.

       

       ‘다, 다행이다….’

       

       만약에 몸에 상처라도 났다면 절대 돌이킬 수 없을 일이 벌어졌으리라. 

       

       저 병신들이 생각보다 약하고, 2황자께서 아끼신다는 아이가 생각보다 강한 덕에 최악의 상황만큼은 면할 수 있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그의 눈앞에 있는 건 아직 성년이 되려면 2,3년은 더 기다려야 할 듯한 미숙한 소년.

       

       2황자님 본인이 아니다.

       

       그러니 아직 모든 걸 만회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오랜 사회생활로 다져진 ‘정말 반성하고 있고 죄송하다’는 얼굴을 장착하고는 그 시온이라는 소년에게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이 멍청한 놈들이 주제도 모르고 멋대로 이런 짓을…….”

       

       그러면서 머리를 박고 엎드려 있는 놈을 신명나게 걷어찬다. 안 그래도 다쳐 있던 상태이니만큼 끔찍한 비명이 흘러나오지만. 

       

       그런 것 따윈 신경쓰지 않고 마구잡이로 걷어찬다.

       

       언제나 잘 먹히는 수법.

       상대가 먼저 이렇게 과하게 나가며 처벌을 내리면, 여기서 더 화를 내기에는 애매해진다.

       

       “그래도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걱정되어서 곧바로 달려왔는데. 역시 황자님이 주목하시는 분이라 그런지…….”

       

       그리고 이어지는 은근한 아부로 저 소년의 심기를 가라앉히면 그걸로 마무리. 이렇게 상황은 정리가 완료된다.

       

       정리가 완료되어야 했다.

       분명 이걸로 정리가 완료되어야 했는데….

       

       “아뇨, 저 안 무사한데요?”

       

       그의 말을 끊고 시온이 그리 이야기했다.

       불길한 예감이 밀려들어온다. 무척이나 불길한 예감이.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검은 송곳니와 결탁하고 있던 30사단이, 2황자님의 충복인 저를 암살하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거든요.”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 법이였다.

       

       너를 담궈버리겠다.

       그런 협박을 입에 담으며 태연히 미소짓는 소년을 바라보면서, 그는 자신이 제대로 좆 되었음을 다시금 체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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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How did you create a dark organization? 어쩌다 흑막 조직 만들어버림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game spoilers turned out to be fake. The characters I gathered thinking they were heroes are actually all villains. In other words,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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