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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4

       *

         

         

         언젠가 회고했듯이, 이반이 기억하는 막시밀리앙은 전형적인 JRPG 용사물의 주인공 같은 남자였다. 밝고, 선하며, 올곧은. 90년대 용사물에나 나올 것 같은, 그림으로 그린 것만 같은 용사였다.

         

         반면 질 베르 드 에타크리히. 그 남자는 조금 더 구시대적인 용사물의 주인공 같은 남자였다.

         

         한미한 가문 출신의 시골 기사, 상경한 뒤 제 힘과 능력만으로 작위를 쟁취하고, 마왕의 발호 이후 용사 파티에 참가하며 공주와의 혼인까지.

         

         동화책이었다면 완벽한 기승전결이었을 것이다. 이반은 이따금 씁쓸하게 생각하곤 했다.

         

         이 남자의 일생을 동화책으로 묘사한다면 다소 잔혹한 이야기가 될 테니까.

         

         

        -나는… 후욱… 틸레스의 질 베르다…! 동방기사단의… 훅! 입회 기사(Initiate knight)이며…! 상트 클로비스의 서임 기사…! 후욱!

         

         

         이반이 질 베르를 처음 만났던 장소는, 타우르스들의 침공 아래에 산산조각 난 요새 입구에서였다.

         

         그의 기억 속 첫 장면은, 피에 젖은 갑주를 입은 채로, 반쯤 부러진 방패와 창을 곧게 들고 서 있던 기사의 외침에서 시작했다.

         

         

        -내 이름, 내 가문, 나의 국가와 주군의 이름을 걸겠다. 후욱…! 오늘 이 자리, 내 한 목숨 다하나… 후욱! 내 남은 명예를 걸고 맹세하겠노라…!

         

         

         질 베르는 투구를 거칠게 벗어 바닥에 던지며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땀과 피가 젖은 머리칼을 뒤로 질끈 묶고, 그는 고개를 두어 번 흔들고는 꼿꼿하게 섰다.

         

         그의 주위로 타우르스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요새의 입구 앞에 홀로 선 채로, 그는 창을 들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타우르스들이 흥분한 콧김을 내뿜고 있었다. 바닥을 쿵쿵 내려 찍으며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다는 듯이.

         

         어떤 사내라도 오금이 저릴 법한 압도적인 폭력성 앞에서, 질 베르는 타오르는 눈으로 외쳤더란다.

         

         

        -이 앞으로 일백은 반드시 죽는다!!

         

         

         창이 날카롭게 바닥을 그었다. 요새의 박살난 외성을 타고 침입한 타우르스들과, 내성의 입구 앞 도개교에 홀로 선 기사의 대치가 이어졌다.

         

         먼저 다가오는 자들부터, 순서대로, 정확히 백 명.

         

         그 이상은 자신이 없으니까. 그러나 반드시 그 숫자는 채우고 죽겠다며.

         

         그 젊고 미숙한 기사는 결연히 단언하고는 창을 들었다.

       

         

         동부 전선의 가장 끔찍한 패배로 기록되어야 했을 그 전투에서, 질 베르가 지켜낸 요새는 사흘 간의 격전 끝에 수성에 성공했다.

         

         이반과 베올그린이 도착했을 때, 질 베르는 산처럼 쌓인 시체 앞에 우뚝 서서, 선 채로 눈을 감고 잠들어 있었다.

         

         그 탓에 이반은 그 사내가 용사라고만 생각했다. 아마도 그 또한 그랬을 것이다. 막시밀리앙이 나타나기 전까지, 누구도 그의 고결함과 강인함을 부정하지 않았으니까.

         

         태양 앞에서 그 어떤 빛이 빛난다 말하겠는가. 질 베르의 비극은 거기에서 시작되었다고 하겠다.

       

         

         한미한 가문 출신으로, 감히 왕가의 여인을 아내로 삼았으니 자신의 가치를 끊임없이 인정받아야만 했던 사내였다.

         

         자신의 족쇄가 되어버린 아내를, 평생을 다해 아끼고 사랑하며 충실했던 남편이었고.

         

         막시밀리앙에 비견되어 이용가치가 떨어져버린 자신을 조금씩 천대하던 왕실에도 여전히 충성하던 기사였다.

         

         고결함과 열등감, 인정욕구와 성실함, 담대함과 소심함이 뒤섞인. 너무나 인간적인 기사였다.

       

         

         그래서, 이반이 생각하기엔.

         

         단순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 없는 이 복잡한 사내는, 차라리 동화 속 기사였다면 더욱 찬란한 기사도의 모범으로 남았으리라.

         

         안타깝게도 이 세상은 동화 속 인물들에겐 너무 잔혹한 땅이었으므로.

         

         마왕이 죽고, 이 세상에 가장 강한 자들 중 하나가 되어 돌아왔을 때에도.

         

         그 위명과 업적, 그리고 저 자신의 힘이 이미 왕가의 권위를 넘어섰던 그 순간에도.

         

         왕혈을 이은 아내와 장성한 아들을 둔 상황. 마음만 먹는다면 틸레스의 왕가에 계승권을 요구할 수도 있을 그런 상황 속에서도.

         

         호국경에 책봉되어 에타크리히(étatcri)라는 작위를 받을 때에도, 왕가를 향한 모든 화살 앞에 방패가 되어 버티라는 명령을 받고서도.

         

         

        -서원(誓願)하나이다.

         

         

         왕가의 검이 그의 양 어깨를 스치고 떨어질 때에도, 그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맹세했다.

         

         그는 틸레스의 기사다.

         

         그는 용사 파티의 기사다.

         

         그는 기사다.

         

         그것이 이반이 생각하는, 그 사내를 정의할 가장 단순한 문장이었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그 사내를 제외하면 누구도 기사라 자칭할 수 없으니. 충성, 신의, 성실, 정절을 맹세하고, 동시에 인간으로서의 고통과 고뇌, 열등감과 자격지심에 괴로워하는. 언제나 그 양가감정에 시달리던.

         

         그러나 그럼에도 꺾이지 않고, 다만 바른 일을 하겠노라 맹세하며 자신을 낮추는. 언제나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살아왔던, 질 베르는 그런 기사였다.

         

         

       

       

       

       

       

       

       EP 21. 의무와 계승.

       

       

       

       

       

       

       

       

         

         

         기차역에는 피곤한 얼굴의 파벨과, 그보다 더 피곤한 안색의 사내들이 있었다. 이반은 그들을 발견하고는 일행을 잠시 떠나 다가갔다.

         

         

         “아, 우리 바쁘신 사령관님 아니신가.”

         “파벨, 준비는?”

         “내가 누구냐.”

         

         

         파벨은 손을 휘적거렸다. 그의 곁에 딱딱하게 굳은 채로 시립했던 사내들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보, 보고드립니다! 명하신바, 이투알레 부인의 저택 근방에 붙은 모든 박쥐들에 감시를 붙여 두었습니다!”

         “조용히.”

         “예, 옙!!”

         “요즘 요원들은 조용하란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군.”

         

         

         이반은 짧게 고개를 저었다. 파벨이 그 모습을 보며 실실 웃었다.

         

         

         “사령관이 직접 출두해서 현장지휘를 하는데 어떻게 얘들이 편하게 대답을 하겠어? 네 이름만 들어도 덜덜 떨더만.”

         “음.”

         “내가 왜 근위대장이 되었는지 말했던가?”

         “아니.”

         

         

         이반의 무관심한 대답에 파벨이 씩 웃었다.

         

         

         “부지런한 상사를 위에 두고 있으려니 너무 피곤해서, 기왕이면 내가 제일 높은 자리에 앉은 다음에 제일 느긋하게 지내려고 했거든.”

         “그래서?”

         “조만간 방첩사령부 사령관도 내가 되어야지 싶네. 우리 사령관님은 너무 부지런해서.”

         

         

         임금의 국서는 공식적인 직위를, 특히 군부와 관련된 직위를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엘리자베타와의 혼인 이후엔 방첩사령부 사령관직은 자연스럽게 그의 몫이 될 터였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였다. 파벨은 슬슬 웃으며 말했다.

         

         

         “뱀 세 마리에도 자석으로 두더지를 심었고, 이투알레 부인의 신변도 우리가 직접 관리할 예정이야. 조만간 그랑마르텔 백작에겐 아들의 실종과 관련된 슬픈 소식이 전달되겠지.”

         “그자에겐 어떻게 접촉할 생각이지?”

         “지원을 보장하며 구슬려야지. 지금은.”

         “동부 전선은.”

         “그쪽도 애들을 좀 풀어 놓긴 했다. 뭐, 우리 대외첩보부가 늘 그렇듯이 썩 믿음이 가진 않지만, 열심히 해보겠다니 믿어 주는 수밖에.”

         

         

         유진이 확인한바, 최소한 그랑마르텔 백작은 마족과의 어떤, 모종의 커넥션이 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조사의 첫 단추는 그랑마르텔 백작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맞겠지.

         

         파벨은 이반의 눈을 바라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걱정 말고 다녀와라. 우리 전하껜 내가 직접 보고서를 올릴 테니. 용을 사냥한다라, 하 참. 그건 딱 내가 가야 하는 일인데.”

         “네가?”

         “어? 뭐야. 내 창 이름이 용격창인 이유 몰랐어? 이거 한 번이면 용이든 누구든 다 그냥 콱.”

         

         

         파벨은 낄낄 웃으며 이반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의 손을 자연스럽게 피하고는, 이반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떠났다.

         

         인파 사이로 사라지는 이반과 일행을 바라보다가, 파벨은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사람 붙여. 발 빠른 놈으로.”

         “예, 부사령관님.”

         “씁, 저 녀석이 저렇게 급할 때는 뭐가 분명 있긴 있는 건데. 쓸데없이 입이 무겁단 말이지.”

         

         

         파벨은 머리를 벅벅 긁고는 투덜거렸다. 말년에 부지런한 상사를 둬서 참 피곤하다 싶어서.

         

         꼼꼼하고 철저한 것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운이 나쁜 놈이라서, 신경을 쓰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형님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니, 어쨌거나. 긴급 상황에서 지원이라도 해줄 선 하나는 깔아 두어야지 싶어서.

         

         저 녀석이 어디서 또 걸레짝이 되어 돌아오면, 왕녀님은 어디 안 보이는 데 틀어박혀서 훌쩍거리겠구나, 하고는.

         

         

         “빨리 결혼이나 하고 은퇴나 할 것이지.”

         

         

         괜히 진창에 발 담그는 것이 취미인 놈이라, 보는 것으로도 참 조마조마하기만 하다. 편히 쉬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놈인데도 굳이.

         

         파벨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남 말할 처지는 아니군, 하고는.

         

         

        *

         

         

         “형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해라.”

         

         

         이반은 보고서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덜컹거리는 차량 안에서, 유진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번에 뜬 퀘스트 있잖습니까. 거기 부가 목표 중에 [파괴된 영지가 총 15개 이하로 유지될 것.] 기억하십니까?”

         “음.”

         “지금 둘 깎였습니다. [2/15]로.”

         “….”

         

         

         최소한 두 개의 영지가 파괴되었다는 뜻이다.

         

         이반은 보고서를 내려놓고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질 베르가 있는데도 그런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고작 용 한 마리에 불과한데도?

         

         용은 물론 굉장히 강력한 생물이다. 단일 개체로는 천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용의 가장 큰 결점이라 한다면 영역 동물이란 점이겠다. 한 영역에 한 마리 이상의 용이 터를 잡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즉, 한 마리가 나타났다면 그 인근엔 그것이 유일한 개체라는 뜻이다.

         

         고작 하나의 용은 결코 질 베르를 위협할 수 없다.

         

         

         “그, 용사 파티 기사 있잖습니까. 질 베르 씨. 퀘스트 목표 중 하나가 그 사람의 생존이었는데 말입죠.”

         “설마, 죽었나?”

         “아뇨. 아직 생존으로 나오긴 하는데요. 그, 생존을 유지해야 한단 말은 곧….”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지. 알고 있다.”

         “그럼 용 한 마리가 문제가 아니란 뜻 아니겠습니까?”

         “맞다.”

         

         

         이반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일이 아닌가.

         

         

         “동부 전선에서부터 이어져온 기나긴 전화의 씨앗이 지금 막 발화하고 있다. 라고 쓰여 있었겠지.”

         “예.”

         “타우르스다.”

         

         

         동부 전선의 전화는 오크와 타우르스의 것이었다. 태산의 투모르가 지배하던 족속들. 막시밀리앙에 의해 투모르가 죽기 전까진, 틸레스보다 동쪽에 있던 모든 나라들을 말 그대로 분쇄해왔던 것들이다.

         

         투모르의 죽음 이후 세력을 잃고 분열되고 말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다루기 쉬웠을 터였다.

         

         처음부터 예상한 범위 내의 일이었다.

         

         

         ‘고작 왕자들의 뒤에서 꼭두각시 놀음을 한다고 해서 틸레스 왕가가 근본적으로 무너지는 것은 아니니.’

         

         

         이번 임무의 핵심 목표는 틸레스 왕가의 존속이다. 즉, 적성 세력은 틸레스 왕가를 무너트리려 시도하고 있다고 보아야 했다.

         

         왕가의 몰락을 위해서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호국경의 제거다. 적어도 질 베르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한다는 뜻이다.

         

         용의 등장이 너무나 시의적절했던 것부터 의심스럽다. 이것까지 ‘세 대백작’의 의도라고 가정한다면 대충 그들의 목적과 행동은 이런 식이겠다.

         

         

        1.     용의 준동으로 질 베르와 동방기사단을 한 자리에 묶어둔다.

        2.     타우르스 부족들과 손을 잡은 뒤 동부 전선에 긴장감을 심는다.

        3.     동부 전선의 군단이 마족들에게 발이 묶인 틈을 타, 텅 빈 수도를 탈취한다.

        4.     왕가를 몰아내고 틸레스를 손에 넣는다.

         

         

         즉, 세 대백작이 정말 이 왕실을 끝장낼 의도로 행동하고 있다면, 유진의 퀘스트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놈들의 대전략은 저런 양상을 보일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변하지 않는다.”

         “용 사냥이요? 이 상황에 그것보다 차라리 대백작들을 직접 공략하시는 게 낫지 않나요?”

         “위험부담이 크다. 우린 외국인이니.”

         

         

         내정간섭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크다. 아직 놈들의 역모가 수면 위로 도드라지지 않은 이상, 놈들은 지금 왕자들의 후원자다.

         

         그런 자들을 직접 암살한다면 심각한 내정간섭 문제가 되고 만다. 애초에 이 퀘스트의 보상이 [연합 왕국의 존치]였을 텐데, 그럴 경우 오히려 크라실로프와 틸레스의 연합이 박살나는 결과를 낳고 말 테니.

         

         따라서 사태를 부드럽게 해결하고 완만히 연착륙 시키는 방법은 결국 하나뿐이다.

         

         

         “질 베르의 용사냥을 조기에 끝내고 수도로 귀환하면 결국 놈들의 계획은 미수로 끝난다.”

         

         

         대백작들의 계획은 결국 질 베르의 발을 묶어놓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므로. 그것이 실패한 순간 놈들의 역모는 사전에 저지되는 셈이다.

         

         그때부턴 호국경의 권위를 등에 업은 채로 귀족을 사냥할 수 있다. 왕위 계승권의 분쟁은 질 베르의 귀환과 동시에 끝날 테니까, 내정간섭이란 짐을 질 필요도 없다.

         

         마리아가 부탁한 것이 그런 뜻이었다. 외국인 신분인 이반이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가 될 것이다.

         

         유일한 변수라면 ‘질 베르가 사망할 수도 있는 요인’일 텐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지금 고민해보아야 의미가 없었다. 정보가 너무 부족했고, 지금 시대에 질 베르를 죽일 수 있는 수단이 무엇인지 떠오르는 것조차 없었으므로.

         

         

         ‘칠용장이 직접 나서지 않고서야.’

         

         

         이반은 조잘거리며 떠들거나, 꾸벅꾸벅 졸거나,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일행을 훑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불가능하다. 칠용장이 미치지 않고서야 막시밀리앙이 멀쩡히 살아있는 틸레스에 발을 들일 리가 없으니까.

         

         다만 불안한 것은 ‘상식’ 쪽인데.

         

         

        ‘아직 이 녀석들은 1학년이니.’

         

         

         해리포터도 1학년 시절엔 영국천마와 생사결을 벌이지 않았었으므로, 최종보스전이 벌써 안배되어 있을 리가 없다.

         

         

         ‘그나저나.’

         

         

         유진, 저 녀석. 쓸모가 많으리라고는 생각했지만 예상 이상으로 유능하군. 하며, 이반은 가만히 생각했다. 조금만 더 가르치면 요원으로 제법 괜찮겠지 싶었다.

         

         인물의 실명과 종족은 물론, 특정 인물에 대한 생사 여부를 기본으로 친밀도에 따라 인물의 상태에 보다 폭넓은 정보를 제공한다.

         

         거기에 퀘스트라는 특정 조건 하에선 실시간으로 변하는 전장 상황까지 브리핑이 가능한 수준이다.

         

         

         ‘작전 현장에 투입되었을 때에 생존할 수만 있다면, 이 녀석은 훈련 정도에 상관 없이 최고의 조기경보기가 될 수 있다.’

         

         

         짧은 소회를 마치고, 이반은 다시 보고서를 펼쳐 틸레스 군사 시설들이 요약된 자료들을 훑기 시작했다.

         

         

        *

         

         

         [이반 페트로비치 예레모프]

         [인물 : 예브게니 노비코프 카람진에 대한 호감도]

         [29(중립)]

         

         

         “…뭐?!”

         

         

         고요해진 차량 안에서, 유진은 펄쩍 뛰어오르며 경악했다.

         

          점수가 왜 이렇게 많이 올랐어! 하고는.

         

         호감이 올랐다고? 대체 왜?

         

         유진의 눈에 경악이 차올랐다. 그는 덜덜 떨리는 시선으로 이반을 바라보았다.

         

         침착하자, 괜찮아. 오해일 수도 있고, 아니 오해가 아니면 뭐 어때. 형님이 설령, 설령 그런 취향이라고 해도. 그래, 나는 지구인이니까. 이해해 줄 수 있으니까. 어쨌건 내가 거절하기만 하면 그만인 거잖아.

         

         유진은 본능적으로 시트에 몸을 파묻었다.

         

         

         “뭐지?”

         

         

         이반의 차가운 눈이 유진을 응시했다. 유진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말을 골랐다.

         

         

         “혹시, 정말 혹시 말입니다.”

         “말해라.”

         

         

         전황이 바뀌고 있나? 이반은 눈을 가늘게 뜨며 기다렸다.

         

         

         “저희 모두 지구 출신 아닙니까. 그, 21세기요.”

         “…?”

         “한국인!이고요! 당연히 성적 기호에 따라 누군가를 차별하거나 그러진 않는데요. 아, 물론 저는 완전히 이성애자지만, 그렇다고 제가 그런 걸로 누굴 차별하진 않거든요.”

         “…?”

         

         

         유진은 눈을 꾹 감고 말을 뱉었다.

         

         

         “혹시 형님은 동성애자이신지…?”

         

         

         그야, 김치를 만들어주기까지 한. 이반에게 눈물을 터트리기까지 한 이자벨의 호감도가 고작 27점이고.

         

         그가 좋다고 매일 따라붙는 여자들의 호감도가 죄다 20점대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 가장 큰 호감도를 가진 사람은 이미 죽은 옛 임금이다. (동상의 묘사에 따르면 거구의 근육질 사내였다.)

         

         왜 이걸 지금까지 의심조차 하지 않았을까, 유진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

         

         

         5초.

         

         시선이 교차한 단 5초 만에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 아, 저 눈은 절대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남자의 눈이 아니다. 라고 확신하며.

         

         살기가 느껴질 정도로 소름끼치는 시선이었다.

         

         

         “아니면 말…고요!”

         “….”

         

         

         이반은 말없이 시선을 돌려 보고서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식은땀을 훔친 유진은 조심스럽게 상태창을 두드렸다.

         

         

         [이반 페트로비치 예레모프]

         [인물 : 예브게니 노비코프 카람진에 대한 호감도]

         [27(중립)]

         

         

         ‘이거 판단 기준이 호감이 아니라….’

         

         

         유용성이었나!

         

        2점 감점은 그럼, 멍청한 소리를 해서 쓸모가 조금 사라진 정도의 감각일까.

         

         씁, 그럼 이자벨 양은 김치요리를 만드는 정도의 쓸모가 있다는 뜻이겠는걸.

         

         

         유진은 한숨을 내쉬며 미간을 눌렀다.

         

         

         ‘아니 잠깐.’

         

         

         50점이 넘는 ‘살아있는’ 사람 중, 여자가 딱 둘인데. 그럼 이 사람들은….

         

         유진의 고뇌 속에서 열차는 틸레스 상 마틸렌느 평야를 가로질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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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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