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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4

       “와 바 랏!”

       

       몸에 딱 붙게 밀착된 성역에서 흘러나오는 분홍색 신성력과, 아직 신념으로 덧칠하지 못해 투명한 오러가 맞물려 불꽃처럼 이글거린다.

       

       겉으로 보기에는 갑자기 날뛰는 미노타우로스를 향해 스스로를 불태우는 것처럼 보이겠지. 실제로 잠력 폭발을 사용하긴 했으니 비슷하긴 하고.

       

       겨우 뒤치기 한방 세게 날렸다고 죄다 무너지고 아비규환이 된 전장에 짧은 침묵이 흐른다.

       

       주변의 집중되는 시선. 미노타우로스 또한 이쪽을 바라보다 천천히 자세를 잡는다.

       

       -부흐!

       

       쿵!

       

       가볍게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후려치며 존재감을 과시하는 미노타우로스.

       

       머리는 검게 그을리고, 코와 입에서는 쉴 새 없이 검은 연기가 새어 나오며, 한쪽 눈은 탁한 유리구슬처럼 하얗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꺾이지 않은 강대한 기세. 아니, 이는 기개라 불러야 마땅하리라.

       

       꺾이지 않는 전의. 그에 걸맞은 강인함. 그리고 목숨을 건 적을 향한 인정.

       

       이성을 잃고, 피아를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음에도 미노타우로스에겐 아직 명예가…긍지가 남아있었다.

       

       리디아에게 듣고, 조사하며 글로만 알고 있던 것이었으나 이렇게 직접 보니 감회가 남다르네.

       

       하여, 미노타우로스의 그 강렬한 시선을 똑바로 바라보며 단검을 쥔 주먹을 가볍게 심장께에 가져다 대는 시늉을 했다.

       

       이 세계의 복잡한 예법은 잘 모른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검례와 조금 전에 미노타우로스가 보여준 모습을 고려하여 일단 따라 해 본 것.

       

       다만, 이게 무슨 의미가 있긴 한지 주변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헙!”

       “심장의 맹세….”

       “여기서 그걸?”

       

       심장의 맹세가 뭔데 이 씹덕들아….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한창 분위기가 좋았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대신 큰 목소리로 외쳤을 뿐.

       

       “멀어지세요! 그리고 전열을 가다듬으세요! 쉽게 죽어줄 생각은 없지만, 제가 당한 뒤에도 지금처럼 멍하니 있으면 안 되잖아요?”

       

       “…….”

       “…….”

       “…….”

       

       서로 시선을 마주하더니, 그대로 물러나는 모험가들.

       

       부상당한 이를 부축하고, 도망치려던 이 또한 이를 악물며 무기를 움켜쥐는 비장한 분위기.

       

       “아니, 이렇게 된 게 누구 때문인데….”

       “닥쳐 이년아! 겨우 주의가 다른 곳에 쏠렸다고 무너질 거면 언제든 엿될 수 있었던 거야!”

       

       물론 한 놈이 물을 흐리긴 했으나, 동료의 등짝 스매쉬와 함께 순식간에 진압당했다.

       

       뭐어. 솔직히 같은 생각이다. 아무리 그래도 겨우 어그로 한번 튀었다고 이 난리가 나는 건 너무 하지 않는가.

       

       공략법만 보고 따라 하던 뉴비가 예상외의 사건에서 멘붕하고 무너지는 거랑 뭐가 다른…….

       

       “아.”

       

       생각해 보면 여기 모인 모험가들은 안전장치로서 동행한 몇몇 중견 모험가를 제외하면 첫 레이드 전투긴 하구나.

       

       초보 딱지는 뗐지만 딱 그 정도 수준. 진짜 강적을 만나본 적 없는 이들.

       

       이 정도일 줄 알았으면 처음에 좀 적당히 팰 걸 하는 생각에 한숨을 내쉬며 심장에 붙였던 검을 내렸다.

       

       어느새 다른 모험가들은 나와 미노타우로스를 중심으로 둥글게 물러나 있는 상황이었다.

       

       기본적인 전략 자체가 멀리서 둘러싸고 다굴이니 당연한 일이지만, 이렇게 보니 나랑 미노타우로스를 중심으로 결투 장소라도 만들어 준 것 같아 몬가몬가란 말이지.

       

       주변 사람들이 전부 물러나고, 나 또한 검례를 마치고 자세를 잡은 것을 확인한 미노타우로스의 하나 남은 눈이 살벌하게 번득인다.

       

       그리고는 머리를 반쯤 숙여 그 날카로운 뿔이 지면과 평행 되도록 하고, 한발을 크게 앞으로 내딛으며 전신의 근육을 잔뜩 긴장시키는 자세를 취하는 녀석.

       

       마치 언제든 달려들 수 있을 것 같은 자세. 그러고보니 직선 돌파 능력은 위험하니 조심하라고 했던가.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나 또한 자세를 낮추었다. 정면에서 미노타우로스를 상대하려는 것처럼.

       

       손목 석궁이 달린 왼손을 앞으로, 단검을 든 오른손을 뒤로 살짝 뺀 모양새.

       

       이에 미노타우로스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콧김을 내뿜는다. 그리고.

       

       -부오오오오오오오!!

       

       잔뜩 흥분한 황소처럼 그대로 돌진해 오는 녀석.

       

       쿵! 쿵! 쿵!

       

       땅을 박차는 것을 넘어, 거의 갈아버릴 듯한 기세. 단단한 지면이 미노타우로스의 궤적을 따라 그 속살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충격적인 비주얼이 납득이 가는 정신 나간 속도.

       

       눈 깜짝할 사이에 가까워지는 것이 1층의 혼 래빗보다 빠른 게 아닐까 싶다. 저 덩치로 저만한 속도는 그 자체로 하나의 병기나 다름없을 터.

       

       …다만, 속도는 나의 영역이다.

       

       “후우.”

       

       깊은숨을 몰아쉬며 부드럽게 땅을 밀어낸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전신의 탄력을 받은 몸뚱이가 빠르게 가속한다.

       

       안 그래도 민첩 하나는 자신 있던 몸뚱이가, 성역의 효과로 한층 강화되고, 잠력폭발의 영향으로 한계치까지 끌어 올린 상태다.

       

       장담컨데 이 안에서 내 움직임을 눈으로 좇을 수 있는 이는 몇 없으리라. 아마, 미노타우로스 또한 마찬가지일 테고.

       

       타닷!

       

       가벼운 소리와 함께 단걸음에 코앞까지 다가온 미노타우로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지 녀석의 눈이 크게 뜨인다.

       

       이를 향해 겨누고 있던 손목 석궁의 트리거를 당겼다.

       

       퉁! 퉁! 퉁!

       

       어딘지 먹먹한 소리와 연달아 들려온다.

       

       두 번의 강화를 통해 위력뿐만 아니라 연발까지 가능해진 손목 석궁이다. 이걸로 다시 장전할 때까지 다음 화살은 없지만, 3발이면 충분하지.

       

       달려가던 속도에 더불어 화살이 쏘아지는 속도. 거기에 미노타우로스 쪽에서 달려오던 속도까지 더해지니 그 위력은 평범한 석궁이라고 볼 수는 없을 터.

       

       덕분에 마법도 아닌 평범한 화살이 미노타우로스의 두꺼운 가죽을 꿰뚫을 수 있었다.

       

       -부어어어어!

       

       눈을 노렸지만, 직전에 머리를 흔든 탓에 명중한 것은 승모근에 2발. 볼에 1발.

       

       전부 가죽을 뚫고 살을 찢는 일격이었으나, 미노타우로스는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피를 철철 흘리며 내게 뿔을 들이밀었다.

       

       돌진하던 속도 그대로 저만한 뿔에 받힌다면 이 연약한 몸뚱이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요나 도넛이 될 터.

       

       하지만, 이 또한 예상했던 플랜 중 하나다. 미노타우로스는 터프하기로 유명한 보스 아닌가.

       

       “하앗!”

       

       전신을 미친 듯이 순환하는 오러. 그 일부를 발바닥 부근에서 폭발시키며 크게 도약했다.

       

       퍼엉!

       

       바닥이 움푹 팰 정도의 충격. 동시에 한쪽 발의 감각이 사라지고 희미한 얼얼함 만이 남았다.

       

       슬쩍 내려다보자 철철 흐르는 피. 다만 발이 완전히 뜯어진 것도 아니니 이 정도는 괜찮다.

       

       성역의 회복력을 믿으며 허공에서 몸을 뒤집는다. 동시에 아공간 반지에서 꺼내는 기다란 밧줄.

       

       발에서 시작된 출혈이 원을 그리며 화려하게 흩뿌려지고, 미노타우로스는 붉은 깃발에 흥분한 투우처럼 그 위를 허무하게 통과한다.

       

       -부흐…!

       

       뒤늦게 내가 자신의 거구를 뛰어넘는 도약으로 자신의 돌진을 피했다는 것을 깨달은 미노타우로스가 뒤를 돌아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내 밧줄이 쏘아진 지 오래였으니까.

       

       1층에서 주로 사용하던 올가미 형태로 묶어둔 밧줄. 아이언 울프의 크기에 맞춰진 것이라 두꺼운 미노타우로스의 목을 낚아채지는 못하겠지만…….

       

       저 굵직한 뿔에 걸기는 충분하다.

       

       스륵.

       

       표적이 큰 만큼 쉽게 걸리는 밧줄. 이를 강하게 잡아당겨, 허공에서 방향을 틀었다.

       

       미노타우로스를 향해 날아가는 몸. 정작 녀석은 자신이 달려가던 그 관성 때문에 고개만 돌렸을 뿐, 아직 멈추지 못한 상태다.

       

       억지로 몸을 뒤틀어도 균형이 무너지며 넘어질 뿐이겠지.

       

       즉, 앞으로 몇 초는 무방비한 상태로 등을 내보여야 한다는 소리다.

       

       날아가는 와중에도 몸을 둥글게 말고, 허리를 비틀었다. 마치 한계치까지 누른 용수철처럼.

       

       그리하여 밧줄을 걸어둔 뿔에 도착하는 순간. 비틀린 근육을 단번에 풀어 헤치며 몸을 회전시킨다.

       

       팡!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휘둘러진 유니콘 단검. 다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체급 차이라는 게 있으니까.

       

       하여 다시금 내부에서 휘몰아치는 오러를 끌어와 단검에 집중시킨다.

       

       오러 소드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저 무작정 오러를 들이부을 뿐인 무식한 행위.

       

       10의 힘을 들여 3의 위력을 상승시키는 비효율적인 짓이었으나, 지금의 내겐 그 약간의 힘이 절실한 것이었다.

       

       “하아아아앗!”

       

       신성력이 오러의 흐름에 뒤섞이며 피어난 분홍색 불길이 단검을 휘감는다. 거기에 더해지는 회전력.

       

       파아앗!

       

       주변 일대를 환하게 비추는 강렬한 불꽃이 유니콘 단검에서 뿜어진다. 정확히는 그렇게 보인다.

       

       내 전력을 담은 일격이 그대로 내리꽂힌다.

       

       카앙!

       

       순간 원형의 충격파가 일며 주변 일대에 광풍을 일으킨다.

       

       유니콘의 뿔과 미노타우로스 뿔의 격돌. 그 승자는 사실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영웅호색…비동정!”

       

       미노타우로스는…아니, 아스테리오스는 오랜 시간 영웅으로 추앙받던 위대한 전사였다.

       

       그리고 당시 그들이 파던 땅굴은 전쟁에 지친 여러 종족을 위한 피난처 같은 것이었고.

       

       나가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갇혀서 땅만 파는 세상에서 유일한 오락거리가 무엇이겠는가.

       

       당연히 야스지.

       

       아스테리오스는 부인을 일곱 넘게 두었으며, 그들의 종족이 전부 다를 정도로 호색한 가능충이었다.

       

       즉, 유니콘 기준의 아웃 라인을 넘어도 한참은 넘었다는 소리.

       

       신성력과 오러. 그 사이에서 순수한 백색의 빛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유니콘 단검이 내재된 힘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끌어내기 시작한 것.

       

       그리하여 순수한 백광이 시야를 가득 채울 무렵.

       

       빠각!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미노타우로스의 한쪽 뿔이 부러졌다.

       

       -부어어어어어!!!

       

       고통에 찬 신음소리와 함께 억지로 팔을 꺾어 뒤로 손을 뻗는 녀석.

       

       밧줄을 손에서 놓고, 떨어지는 뿔과 어깨를 차례로 박차며 피한다. 그러자 마침 눈앞에 보이는 큼직한 상처.

       

       내가 처음에 날린 일격이다. 뒷목의 살을 한 움큼이나 날려버린 덕에 훤히 보이는 질긴 근육과 그 사이의 하얀 뼈.

       

       아직 백광이 꺼지지 않은 유니콘 단검을 재차 들어 올렸다.

       

       슬슬 잠력 폭발의 제한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아마도 이번이 마지막 일격이 될 터.

       

       이를 악물며 내게 남은 힘 전부를 집중시켰다.

       

       신성력과 오러는 한층 강렬하게 피어올랐고, 백광은 여전히 눈부셨으며, 여기에 마법이 더해진다.

       

       “내 피를 먹고 타올라라. 격렬한 불꽃.”

       

       어차피 곧 탈진할 거. 남은 마나를 전부 연료 삼아 내게 허락된 최대한의 마법을 선보인다.

       

       조용히 이글거리던 신성력과 오러의 불길 위로 시뻘건 마법의 화염이 더해진다. 딱 좋게 달궈진 순백의 단검을 바로잡고.

       

       그대로 내리찍었다.

       

       카득!

       

       목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소리. 그리고.

       

       퍼어엉!

       

       유니콘 단검에 집중되어 있던 모든 힘이 해방되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킨다.

       

       마력, 오러, 신성력.

       

       3대 이능이 불꽃의 형태를 입고 물리적인 충격으로 화한다.

       

       -부어어어어!

       

       격통에 몸부림치며 자신의 어깨가 탈구될 정도로 팔을 꺾은 미노타우로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유니콘의 힘은 그 적에겐 독처럼 작용하는 법.

       

       내게 한번 크게 베이고 시작한 데다가, 한쪽 뿔이 잘리고, 이제는 뼈를 부수고 들어가는 상황이다.

       

       아무리 튼튼한 녀석이라도 독이 퍼질 수밖에.

       

       -……!

       

       돌연 뻣뻣하게 굳은 팔은 차마 내 머리를 터뜨리지 못하고 늘어진다.

       

       그리고.

       

       퍼억!

       

       미노타우로스의 두꺼운 뼈가 결국 버티지 못하고 부러졌다.

       

       녀석의 체내에 갇혀있던 힘의 격류가 날뛰며 하늘로 큼직한 불기둥을 쏘아낸다. 그리고.

       

       쿵!

       

       미노타우로스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반디 풀돌.

    픽뚫 2번. 천장 2번.

    아니근데반디가저를먼저유혹했다니까요???

    ……글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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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4

EP.134





       “와 바 랏!”


       


       몸에 딱 붙게 밀착된 성역에서 흘러나오는 분홍색 신성력과, 아직 신념으로 덧칠하지 못해 투명한 오러가 맞물려 불꽃처럼 이글거린다.


       


       겉으로 보기에는 갑자기 날뛰는 미노타우로스를 향해 스스로를 불태우는 것처럼 보이겠지. 실제로 잠력 폭발을 사용하긴 했으니 비슷하긴 하고.


       


       겨우 뒤치기 한방 세게 날렸다고 죄다 무너지고 아비규환이 된 전장에 짧은 침묵이 흐른다.


       


       주변의 집중되는 시선. 미노타우로스 또한 이쪽을 바라보다 천천히 자세를 잡는다.


       


       -부흐!


       


       쿵!


       


       가볍게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후려치며 존재감을 과시하는 미노타우로스.


       


       머리는 검게 그을리고, 코와 입에서는 쉴 새 없이 검은 연기가 새어 나오며, 한쪽 눈은 탁한 유리구슬처럼 하얗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꺾이지 않은 강대한 기세. 아니, 이는 기개라 불러야 마땅하리라.


       


       꺾이지 않는 전의. 그에 걸맞은 강인함. 그리고 목숨을 건 적을 향한 인정.


       


       이성을 잃고, 피아를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음에도 미노타우로스에겐 아직 명예가…긍지가 남아있었다.


       


       리디아에게 듣고, 조사하며 글로만 알고 있던 것이었으나 이렇게 직접 보니 감회가 남다르네.


       


       하여, 미노타우로스의 그 강렬한 시선을 똑바로 바라보며 단검을 쥔 주먹을 가볍게 심장께에 가져다 대는 시늉을 했다.


       


       이 세계의 복잡한 예법은 잘 모른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검례와 조금 전에 미노타우로스가 보여준 모습을 고려하여 일단 따라 해 본 것.


       


       다만, 이게 무슨 의미가 있긴 한지 주변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헙!”


       “심장의 맹세….”


       “여기서 그걸?”


       


       심장의 맹세가 뭔데 이 씹덕들아….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한창 분위기가 좋았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대신 큰 목소리로 외쳤을 뿐.


       


       “멀어지세요! 그리고 전열을 가다듬으세요! 쉽게 죽어줄 생각은 없지만, 제가 당한 뒤에도 지금처럼 멍하니 있으면 안 되잖아요?”


       


       “…….”


       “…….”


       “…….”


       


       서로 시선을 마주하더니, 그대로 물러나는 모험가들.


       


       부상당한 이를 부축하고, 도망치려던 이 또한 이를 악물며 무기를 움켜쥐는 비장한 분위기.


       


       “아니, 이렇게 된 게 누구 때문인데….”


       “닥쳐 이년아! 겨우 주의가 다른 곳에 쏠렸다고 무너질 거면 언제든 엿될 수 있었던 거야!”


       


       물론 한 놈이 물을 흐리긴 했으나, 동료의 등짝 스매쉬와 함께 순식간에 진압당했다.


       


       뭐어. 솔직히 같은 생각이다. 아무리 그래도 겨우 어그로 한번 튀었다고 이 난리가 나는 건 너무 하지 않는가.


       


       공략법만 보고 따라 하던 뉴비가 예상외의 사건에서 멘붕하고 무너지는 거랑 뭐가 다른…….


       


       “아.”


       


       생각해 보면 여기 모인 모험가들은 안전장치로서 동행한 몇몇 중견 모험가를 제외하면 첫 레이드 전투긴 하구나.


       


       초보 딱지는 뗐지만 딱 그 정도 수준. 진짜 강적을 만나본 적 없는 이들.


       


       이 정도일 줄 알았으면 처음에 좀 적당히 팰 걸 하는 생각에 한숨을 내쉬며 심장에 붙였던 검을 내렸다.


       


       어느새 다른 모험가들은 나와 미노타우로스를 중심으로 둥글게 물러나 있는 상황이었다.


       


       기본적인 전략 자체가 멀리서 둘러싸고 다굴이니 당연한 일이지만, 이렇게 보니 나랑 미노타우로스를 중심으로 결투 장소라도 만들어 준 것 같아 몬가몬가란 말이지.


       


       주변 사람들이 전부 물러나고, 나 또한 검례를 마치고 자세를 잡은 것을 확인한 미노타우로스의 하나 남은 눈이 살벌하게 번득인다.


       


       그리고는 머리를 반쯤 숙여 그 날카로운 뿔이 지면과 평행 되도록 하고, 한발을 크게 앞으로 내딛으며 전신의 근육을 잔뜩 긴장시키는 자세를 취하는 녀석.


       


       마치 언제든 달려들 수 있을 것 같은 자세. 그러고보니 직선 돌파 능력은 위험하니 조심하라고 했던가.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나 또한 자세를 낮추었다. 정면에서 미노타우로스를 상대하려는 것처럼.


       


       손목 석궁이 달린 왼손을 앞으로, 단검을 든 오른손을 뒤로 살짝 뺀 모양새.


       


       이에 미노타우로스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콧김을 내뿜는다. 그리고.


       


       -부오오오오오오오!!


       


       잔뜩 흥분한 황소처럼 그대로 돌진해 오는 녀석.


       


       쿵! 쿵! 쿵!


       


       땅을 박차는 것을 넘어, 거의 갈아버릴 듯한 기세. 단단한 지면이 미노타우로스의 궤적을 따라 그 속살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충격적인 비주얼이 납득이 가는 정신 나간 속도.


       


       눈 깜짝할 사이에 가까워지는 것이 1층의 혼 래빗보다 빠른 게 아닐까 싶다. 저 덩치로 저만한 속도는 그 자체로 하나의 병기나 다름없을 터.


       


       …다만, 속도는 나의 영역이다.


       


       “후우.”


       


       깊은숨을 몰아쉬며 부드럽게 땅을 밀어낸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전신의 탄력을 받은 몸뚱이가 빠르게 가속한다.


       


       안 그래도 민첩 하나는 자신 있던 몸뚱이가, 성역의 효과로 한층 강화되고, 잠력폭발의 영향으로 한계치까지 끌어 올린 상태다.


       


       장담컨데 이 안에서 내 움직임을 눈으로 좇을 수 있는 이는 몇 없으리라. 아마, 미노타우로스 또한 마찬가지일 테고.


       


       타닷!


       


       가벼운 소리와 함께 단걸음에 코앞까지 다가온 미노타우로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지 녀석의 눈이 크게 뜨인다.


       


       이를 향해 겨누고 있던 손목 석궁의 트리거를 당겼다.


       


       퉁! 퉁! 퉁!


       


       어딘지 먹먹한 소리와 연달아 들려온다.


       


       두 번의 강화를 통해 위력뿐만 아니라 연발까지 가능해진 손목 석궁이다. 이걸로 다시 장전할 때까지 다음 화살은 없지만, 3발이면 충분하지.


       


       달려가던 속도에 더불어 화살이 쏘아지는 속도. 거기에 미노타우로스 쪽에서 달려오던 속도까지 더해지니 그 위력은 평범한 석궁이라고 볼 수는 없을 터.


       


       덕분에 마법도 아닌 평범한 화살이 미노타우로스의 두꺼운 가죽을 꿰뚫을 수 있었다.


       


       -부어어어어!


       


       눈을 노렸지만, 직전에 머리를 흔든 탓에 명중한 것은 승모근에 2발. 볼에 1발.


       


       전부 가죽을 뚫고 살을 찢는 일격이었으나, 미노타우로스는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피를 철철 흘리며 내게 뿔을 들이밀었다.


       


       돌진하던 속도 그대로 저만한 뿔에 받힌다면 이 연약한 몸뚱이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요나 도넛이 될 터.


       


       하지만, 이 또한 예상했던 플랜 중 하나다. 미노타우로스는 터프하기로 유명한 보스 아닌가.


       


       “하앗!”


       


       전신을 미친 듯이 순환하는 오러. 그 일부를 발바닥 부근에서 폭발시키며 크게 도약했다.


       


       퍼엉!


       


       바닥이 움푹 팰 정도의 충격. 동시에 한쪽 발의 감각이 사라지고 희미한 얼얼함 만이 남았다.


       


       슬쩍 내려다보자 철철 흐르는 피. 다만 발이 완전히 뜯어진 것도 아니니 이 정도는 괜찮다.


       


       성역의 회복력을 믿으며 허공에서 몸을 뒤집는다. 동시에 아공간 반지에서 꺼내는 기다란 밧줄.


       


       발에서 시작된 출혈이 원을 그리며 화려하게 흩뿌려지고, 미노타우로스는 붉은 깃발에 흥분한 투우처럼 그 위를 허무하게 통과한다.


       


       -부흐…!


       


       뒤늦게 내가 자신의 거구를 뛰어넘는 도약으로 자신의 돌진을 피했다는 것을 깨달은 미노타우로스가 뒤를 돌아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내 밧줄이 쏘아진 지 오래였으니까.


       


       1층에서 주로 사용하던 올가미 형태로 묶어둔 밧줄. 아이언 울프의 크기에 맞춰진 것이라 두꺼운 미노타우로스의 목을 낚아채지는 못하겠지만…….


       


       저 굵직한 뿔에 걸기는 충분하다.


       


       스륵.


       


       표적이 큰 만큼 쉽게 걸리는 밧줄. 이를 강하게 잡아당겨, 허공에서 방향을 틀었다.


       


       미노타우로스를 향해 날아가는 몸. 정작 녀석은 자신이 달려가던 그 관성 때문에 고개만 돌렸을 뿐, 아직 멈추지 못한 상태다.


       


       억지로 몸을 뒤틀어도 균형이 무너지며 넘어질 뿐이겠지.


       


       즉, 앞으로 몇 초는 무방비한 상태로 등을 내보여야 한다는 소리다.


       


       날아가는 와중에도 몸을 둥글게 말고, 허리를 비틀었다. 마치 한계치까지 누른 용수철처럼.


       


       그리하여 밧줄을 걸어둔 뿔에 도착하는 순간. 비틀린 근육을 단번에 풀어 헤치며 몸을 회전시킨다.


       


       팡!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휘둘러진 유니콘 단검. 다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체급 차이라는 게 있으니까.


       


       하여 다시금 내부에서 휘몰아치는 오러를 끌어와 단검에 집중시킨다.


       


       오러 소드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저 무작정 오러를 들이부을 뿐인 무식한 행위.


       


       10의 힘을 들여 3의 위력을 상승시키는 비효율적인 짓이었으나, 지금의 내겐 그 약간의 힘이 절실한 것이었다.


       


       “하아아아앗!”


       


       신성력이 오러의 흐름에 뒤섞이며 피어난 분홍색 불길이 단검을 휘감는다. 거기에 더해지는 회전력.


       


       파아앗!


       


       주변 일대를 환하게 비추는 강렬한 불꽃이 유니콘 단검에서 뿜어진다. 정확히는 그렇게 보인다.


       


       내 전력을 담은 일격이 그대로 내리꽂힌다.


       


       카앙!


       


       순간 원형의 충격파가 일며 주변 일대에 광풍을 일으킨다.


       


       유니콘의 뿔과 미노타우로스 뿔의 격돌. 그 승자는 사실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영웅호색…비동정!”


       


       미노타우로스는…아니, 아스테리오스는 오랜 시간 영웅으로 추앙받던 위대한 전사였다.


       


       그리고 당시 그들이 파던 땅굴은 전쟁에 지친 여러 종족을 위한 피난처 같은 것이었고.


       


       나가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갇혀서 땅만 파는 세상에서 유일한 오락거리가 무엇이겠는가.


       


       당연히 야스지.


       


       아스테리오스는 부인을 일곱 넘게 두었으며, 그들의 종족이 전부 다를 정도로 호색한 가능충이었다.


       


       즉, 유니콘 기준의 아웃 라인을 넘어도 한참은 넘었다는 소리.


       


       신성력과 오러. 그 사이에서 순수한 백색의 빛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유니콘 단검이 내재된 힘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끌어내기 시작한 것.


       


       그리하여 순수한 백광이 시야를 가득 채울 무렵.


       


       빠각!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미노타우로스의 한쪽 뿔이 부러졌다.


       


       -부어어어어어!!!


       


       고통에 찬 신음소리와 함께 억지로 팔을 꺾어 뒤로 손을 뻗는 녀석.


       


       밧줄을 손에서 놓고, 떨어지는 뿔과 어깨를 차례로 박차며 피한다. 그러자 마침 눈앞에 보이는 큼직한 상처.


       


       내가 처음에 날린 일격이다. 뒷목의 살을 한 움큼이나 날려버린 덕에 훤히 보이는 질긴 근육과 그 사이의 하얀 뼈.


       


       아직 백광이 꺼지지 않은 유니콘 단검을 재차 들어 올렸다.


       


       슬슬 잠력 폭발의 제한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아마도 이번이 마지막 일격이 될 터.


       


       이를 악물며 내게 남은 힘 전부를 집중시켰다.


       


       신성력과 오러는 한층 강렬하게 피어올랐고, 백광은 여전히 눈부셨으며, 여기에 마법이 더해진다.


       


       “내 피를 먹고 타올라라. 격렬한 불꽃.”


       


       어차피 곧 탈진할 거. 남은 마나를 전부 연료 삼아 내게 허락된 최대한의 마법을 선보인다.


       


       조용히 이글거리던 신성력과 오러의 불길 위로 시뻘건 마법의 화염이 더해진다. 딱 좋게 달궈진 순백의 단검을 바로잡고.


       


       그대로 내리찍었다.


       


       카득!


       


       목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소리. 그리고.


       


       퍼어엉!


       


       유니콘 단검에 집중되어 있던 모든 힘이 해방되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킨다.


       


       마력, 오러, 신성력.


       


       3대 이능이 불꽃의 형태를 입고 물리적인 충격으로 화한다.


       


       -부어어어어!


       


       격통에 몸부림치며 자신의 어깨가 탈구될 정도로 팔을 꺾은 미노타우로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유니콘의 힘은 그 적에겐 독처럼 작용하는 법.


       


       내게 한번 크게 베이고 시작한 데다가, 한쪽 뿔이 잘리고, 이제는 뼈를 부수고 들어가는 상황이다.


       


       아무리 튼튼한 녀석이라도 독이 퍼질 수밖에.


       


       -……!


       


       돌연 뻣뻣하게 굳은 팔은 차마 내 머리를 터뜨리지 못하고 늘어진다.


       


       그리고.


       


       퍼억!


       


       미노타우로스의 두꺼운 뼈가 결국 버티지 못하고 부러졌다.


       


       녀석의 체내에 갇혀있던 힘의 격류가 날뛰며 하늘로 큼직한 불기둥을 쏘아낸다. 그리고.


       


       쿵!


       


       미노타우로스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반디 풀돌.

    픽뚫 2번. 천장 2번.

    아니근데반디가저를먼저유혹했다니까요???





    ......글 열심히 쓰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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