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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4

       외팔이 남성을 중심 삼아 수십을 넘어 수백으로 늘어난 검은 로브들.

         

       케일과 라데아는 칼자루를 굳게 잡았다.

         

       “카자르! 상대를 알 수 없으니 나오지 말고 마차를 보호해라!”

         

       우웅…! 케일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마력의 흐름이 크게 파동치더니 마차를 중심으로 둥근 역장이 생겨났다.

         

       “이제 말이랑 마차는 안전하군.”

         

       덤으로 마부도. 라는 말은 삼켜야 했다. 타앗! 수백의 검은 로브가 동시에 달려 들었으니 말이다.

         

       “라데아, 마차의 주변에 남아라. 내가 처리한다.”

         

       케일은 그리 말하고 온몸의 오러를 끌어올렸다. 콰오! 검붉은 전류가 솟구친다.

         

       “흐읍!”

         

       진각을 밟자 케일이 전방으로 쏘아져 나가가더니, 콰앙─! 뒤늦게 굉음이 들려왔다. 차마 사람의 눈으로 쫓아갈 수 없는 움직임.

         

       콰과과광─!

         

       케일이 지나가며 검을 휘두르자 모인 전류의 오러가 연이어 폭발했다. 수백이 넘는 숫자를 자랑하는 검은 로브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만 가면 케일이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순식간에 다 정리할 것이다. 그러나 라데아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뭔가 이상해.’

         

       아무리 감정이 없고 강인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인간이란 본디 죽음 앞에선 솔직해지는 법이다.

         

       하지만 저 검은 로브들은 죽음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 마치 인형처럼.

         

       ‘인형?’

         

       그러고 보니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오러에 의해 몸이 찢기고, 토막 나면 이곳저곳으로 피가 튀어 진득하면서 비릿한 맛이 후각을 찔러야 하는데…….

         

       ‘인형이네.’

         

       확실해졌다. 저들은 인형이다. 숫자가 단번에 늘어난 것도 모종의 마법이겠지. 이를 케일에게 알려야 한다.

         

       “케일 아저…!”

         

       말을 이어가려던 순간.

         

       채앵─!

         

       “윽!”

         

       별안간 외팔이 사내가 지척에서 등장했다. 라데아가 가진 특유의 뛰어난 감각이 방어를 도왔지만, 자세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터라 손목이 시큰거렸다.

         

       “저 남자만 어떻게 빼내면 될 줄 알았는데 꽤 하는군, 계집.”

         

       북부에 갔을 때 느꼈던 추위처럼 차갑고 어두운 목소리. 그에게는 살의만이 남아있다.

         

       “당신 뭐예요?”

       “알 거 없다.”

         

       사선으로 검날을 쭉 뻗은 외팔이 사내가 오러를 활성화했다. 새파란 오러. 주변 공기가 얼어붙는 듯한 서리. 빙결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상성이 그다지 좋지 않다. 빙결의 성질은 근접전에서 강력할 수밖에 없으니.

         

       ‘붙기만 해도 내가 손해잖아!’

         

       강렬한 추위가 쌓여 상대방의 몸은 느려지는데 본인은 더 강해진다. 실로 불공평한 오러.

         

       “왜 그러지? 검에 망설임이 가득한데.”

         

       외팔이 남성이 말했다.

         

       “한쪽 팔도 없는 사람 두들겨 패도 되나 걱정돼서요. 제가 나쁜 년 되는 거 같잖아요?”

         

       그리 말하곤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피식 웃는 라데아. 외팔이 남성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웃기는군. 어린 나이에 소드 마스터가 되면 눈에 뵈는 게 없긴 하지. 이해하마.”

         

       능청스럽게 넘어갔지만, 라데아의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작전을 짜내고 있었다.

         

       라데아의 오러 성질은 바람. 재빠른 검격과 특유의 검술로 환각을 만들어낼 수 있다.

         

       ‘최대한 접촉은 피하면서.’

         

       검이 맞붙더라도 짧게, 치고 빠지기를 반복해야 한다.

         

       치익. 라데아가 땅에 붙은 오른발을 끌며 자세를 바꿨다. 저벅. 저벅. 외팔이 남성이 여유롭게 다가온다.

         

       ‘빈틈이 없네.’

         

       실력깨나 있는 소드 마스터다. 오러의 성질이 확실한 걸 보아 그냥 풋내기도 아니고.

         

       “빨리 정리하지.”

         

       파밧! 소리가 없는 발걸음. 마치 빙판 위를 걷듯이, 미끄러지며 달려든다. 불규칙한 움직임과 빠른 속도. 라데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흡!”

         

       챙─! 검과 검이 맞부딪쳤다. 라데아는 예정대로 검신을 흘려낸 다음 뒤로 빠지려 했지만…….

         

       “?!”

         

       파밧! 마치 라데아의 작전을 읽기라도 한 듯 끊임없이 달라붙는 외팔이 사내.

         

       “계속 달라붙으면 신고할 거예요!”

         

       후웅! 라데아의 분홍색 오러. 꽃향기가 난무하는 검격이 곡선을 그리며 문양을 만들어 낸다.

         

       “잔재주도 부릴 줄 아는군.”

         

       세 개로 나뉘어져 동시에 다가오는 검격. 외팔이 남성은 어쩔 수 없이 라데아의 사정거리에서 빠져나왔다.

         

       “그런 검격은 본 적이 없는데.”

       “자주 듣는 말이에요.”

       “쯧, 귀찮게 됐군.”

         

       외팔이 남성은 시선을 돌려 주변을 둘러봤다. 케일이 인형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고 있는 상태. 계속해서 숫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처리하는 속도를 보아하니 10분도 걸리지 않을 듯하다.

         

       “빠르게 가지.”

         

       파밧! 이번에도 요란할 정도로 미끄러져 다가오는 외팔이 남성. 라데아는 재빠르게 검격을 날렸다.

         

       검날이 네 개로 나뉘어 쇄도한다. 외팔이 남성은 방어보다 회피를 택했다.

         

       “흡!”

         

       외팔이 남성이 검을 휘두른다. 오러의 서리가 흩뿌려져 공기가 얼어붙었다.

         

       챙─!

         

       “크윽!”

         

       오러에 비해서 검이 무겁진 않지만 빙결이 문제다.

         

       ‘피부가 찢어질 거 같아.’

         

       갑옷이라면 모를까, 라데아가 입고 있는 옷은 섬유로 이루어져 있다. 추위에 매우 취약한 조건.

         

       타다닷! 라데아는 서둘러 거리를 벌렸다. 오러를 검에 흘려보냄과 동시에 휘둘렀다.

         

       파아앙! 파공음이 울리며 날아가는 검격. 외팔이 남성은 손쉽게 피했다. 다만 라데아가 노린 건 따로 있었다.

         

       “…!”

         

       몸에 바람을 두르고, 기류에 몸을 맡겨 저항 없이 순간적으로 이동한다. 외팔이 남성은 순간적으로 당황해 무작정 검을 휘두르고 말았다.

         

       “생각보다 쉽게 당황하시네요?”

         

       차앙! 검날이 부딪치며 경쾌한 울음이 일었다. 라데아는 오러를 더욱 활성화했다. 그렇게 모이는 바람이 몸과 검을 감싸고.

         

       후우웅! 검날이 세 개로 나뉘어 단번에 외팔이 남성을 덮친다. 완전히 근접한 상태에서 몸의 중심도 무너진 상태. 피할 수 없다.

         

       “이런…!”

         

       외팔이 남성이 서둘러 검을 휘두른다.

         

       차앙-! 차앙-! 푸슥!

         

       “커흑!”

         

       검격 두 개를 쳐냈지만, 마지막 검격을 쳐내지 못한 외팔이 사내. 결국, 허리 부근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

         

       뚝. 뚝. 뜨거운 피가 흘러나와 옷을 적시고 찢어진 천 끝으로 방울이 떨어졌다.

         

       “…….”

         

       치명상. 라데아의 검격이 살점을 두부 갈라내듯 근육 자체를 말끔하게 베어냈다. 아마 장기까지 훼손됐을 거다.

         

       “제가 이긴 거 같은데요?”

       

       라데아는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이며 싱긋 웃었다.

         

       “…빌어먹을.”

         

       외팔이 사내의 검술은 뭔가 어색하고,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주된 팔이 잘려나간 오른쪽이었겠지. 이는 라데아의 승리를 이끌어주었다. 다만…….

         

       “끄윽!”

         

       외팔이 사내가 옅은 신음을 내며 상처 부위를 얼렸다. 단순 무식한 지혈 방식.

         

       “미쳤어요…?”

         

       저러면 다시는 치료할 수 없다. 아무리 빙결의 주인이라도 저 동상은 몸 곳곳으로 퍼져 나가 목숨을 앗아갈 터.

         

       “여기에 모든 걸 걸었으니 상관없다.”

         

       휙. 다시 사선으로 검을 뻗으며 자세를 잡는 외팔이 사내.

         

       “진짜 끈질기시네.”

         

       라데아는 눈동자를 굴려 케일의 상황을 살폈다. 인형이 거의 다 정리됐다.

         

       “근데 우리가 이긴 거 같은데요?”

         

       스윽. 라데아는 자연스럽게 팔을 쭉 뻗고 검날을 앞으로 내세웠다. 상대방을 초조하게 만드는 도발.

         

       “확실히. 시간이 없군.”

         

       외팔이 사내는 자세를 바꾸더니.

         

       파바밧! 방향을 틀어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저 방향을 마차가 있는 쪽.

         

       “설마…!”

         

       라데아는 서둘러 진각을 밟았다. 몸에 바람을 두르고 기류를 타며 외팔이 사내의 뒤에 따라붙었다.

         

       “흐읍!”

         

       카앙! 외팔이 사내가 힘껏 검을 휘둘러 보지만 검날은 파고들지 못하고 튕겨 나올 뿐이었다.

         

       “죄송한데, 우리 언니 마법이 좀 대단하거든요.”

         

       초월 마법사의 역장이다. 웬만한 오러가 아니면 흠집도…….

         

       캉! 카앙! 카앙! 캉!

         

       “응?”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한 곳만 두드리는 외팔이 남성. 자세히 보니 일렁이는 역장에 금이 가고 있다.

         

       “이런…!”

         

       라데아가 서둘러 달려가 외팔이 남성의 등에 검을 휘둘렀다. 촤악! 사선으로 베어내자 끈적한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나 외팔이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카앙! 캉! 캉!

         

       눈에 핏대까지 세우며 역장만 두드렸다.

         

       “미친 거 아니야…?”

         

       광란의 저주에 걸렸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치명상을 입고 등 전체가 베여 과다 출혈까지 일어났는데 저러고 있다니.

         

       “프란체 데카르트!!”

         

       외팔이 남성이 악바리로 소리 지르며 역장을 두드렸다. 쩌적, 쩍, 쩌저적. 빙결의 오러가 역장을 얼리며 깨트린다.

         

       “미친!”

         

       라데아는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촤악! 촤악! 촤악! 세 개의 검날이 동시에 외팔이 사내의 등을 난도질했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데…….

         

       카앙! 카앙! 카앙!

         

       얼굴을 잔뜩 구긴 채 역장만 두드린다. 이건 광란의 저주가 틀림없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광전사 같은 모습을 보일 리 없으니 말이다.

         

       “아 진짜! 목은 베기 싫은데!”

         

       지금까진 마수만 베어온지라 아직 사람을 죽이는 감각은 익숙하지 않다. 심지어 목을 베어내면 경추를 깎는 느낌이 꺼림칙하지 않나. 이는 라데아가 극도로 싫어해 최대한 피한 방식이었다.

         

       ‘어쩔 수 없지.’

         

       라데아가 목을 베어내기 위해 검을 옆으로 뻗은 그 순간.

         

       달칵. 마차의 문이 열리며 프란체와 카자르가 나왔다.

         

       “…….”

         

       말없이 외팔이 사내를 바라보는 프란체.

         

       “라데아. 멈추렴.”

       “네…?”

       “대화를 조금 나눌 예정이니 멈추렴.”

       “네…….”

         

       얼떨떨하게 검을 내려놓은 라데아. 프란체는 고개를 까딱이며 픽 웃었다.

         

       “건강하셨네요?”

       “프란체, 프란체 데카르트!”

       “판옵티콘에선 어떻게 탈출하신 건지.”

         

       고개를 내젓더니 씨익 웃으며 말을 이어가는 프란체.

         

       “아! 혹시 같은 죄수들을 성폭행했다던데, 그거 때문인가? 그러게 조심하시지 그러셨어요.”

         

       외팔이 사내의 왼손이 떨려온다.

         

       “뭐, 이해할게요. 당신은 동성애자니까. 주변에 남자들이 넘쳐서 성욕을 주체할 수 없던 거겠죠.”

         

       프란체는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눈가에 호선을 그렸다. 그러자 외팔이 사내는 더욱더 흥분해 역장을 내려쳤다.

         

       캉! 캉! 캉!

         

       “이 개 같은 년이!!”

         

       이윽고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렸다. 원래도 미쳐있었지만, 지금은 아예 정줄을 놓은 상태다.

         

       “그래도 모처럼의 인연이니 제가 직접 보내드릴게요. 저희가 인연이 깊잖아요?”

         

       딱! 프란체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림자가 일렁인다. 이내 형태가 가시처럼 바뀌더니.

         

       푸숙! 푸숙! 푸숙! 푸숙!

         

       외팔이 사내의 몸에 수십 개의 구멍을 내버렸다.

         

       “커헉…!”

         

       입에서 주르륵, 피를 흘리는 외팔이 사내. 이어서 높게 들었던 팔이 내려가고 팅. 검을 놓쳤다.

         

       “프, 란… 체… 데카… 르트…….”

         

       당장 의식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끝까지 프란체를 노려보는 외팔이 사내.

         

       “진짜 끈질기시네요.”

         

       딱. 프란체는 한 번 더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새까만 구체가 만들어지더니.

         

       “아아악!”

         

       외팔이 사내의 몸을 집어삼켰다. 재앙의 파도에서 보여줬던 그 마법. 저 사내는 이제 프란체의 소유가 되어 평생 병사로서 움직일 것이다.

         

       “카서스 페르시아, 당신은 죽어서도 편하게 가지 못할 거예요.”

         

       쯧,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젓는 프란체.

         

       “쓸데없이 시간이 지체됐구나. 안 그래도 급한데.”

         

       라데아가 얼떨떨하게 물었다.

         

       “아는 사이셨나요…?”

       “원수 관계야.”

         

       프란체가 픽 웃자 고개를 갸웃거리는 라데아. 그러던 그때.

         

       “이미 다 정리됐군.”

         

       케일이 검을 털며 돌아왔다.

         

       “이상한 마법을 부리는 놈이 있더군. 그놈도 죽였다.”

       “정보는 캐내지 않은 거니?”

       “배후가 누군지 확실하니 캐낼 게 없다고 판단했다.”

         

       프란체는 “그렇긴 하네.”하고 고개를 주억였다.

         

       “자, 다시 출발하자. 길이 급하단다.”

         

       마치 이런 습격은 사소한 일이라는 듯 아무렇지도 않은 프란체. 그리고 그녀를 따라 말없이 마차에 올라타는 케일과 카자르.

         

       “뭐야…?”

         

       라데아는 조금 당혹스러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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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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