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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4

        상황은 최악이다.

        나는 사로잡혔고, 적들은 하나하나가 나보다 강했으며, 환경 역시 나에게 적대적이다.

        나에게는 단 하나의 승산조차 없었으나…… 그것이 중요할까?

       

        ‘나의 모든 것들을 불태우리라.’

       

        너희들이 신이라고?

        위대한 존재라고?

        지배자라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지금 중요한 것은 저들을 죽이겠다는 의지.

        그리고 각오.

       

        부글부글…….

       

        내 귓가에 무언가가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실제로 끓는 것이 아닌, 내 몸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형상화한 소리다.

        내 몸 안에 존재하는 모든 DNA가 분해되고 변질되며 일제히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있었다.

       

        내가 환생한 이 ‘드래곤족’은 자기 유전 인자를 변질시킬 수 있는 종족이다.

        말하자면 도마뱀의 형상에서 날개를 달거나, 아가미를 만들거나, 몸속에 심장 두 개를 만드는 등의 일들을 태연하게 벌일 수 있다는 소리다.

       

        하지만 이 능력은 그렇게 만능의 능력이 아니었다.

        일단 돌연변이 자체는 일으킬 수 있지만, 어떤 돌연변이가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큰 범위에서 돌연변이의 위치를 조절할 수는 있긴 하다.

        이를테면 3번째 팔을 만든다거나, 날개를 만든다거나 같은 방식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지는 3번째 팔이 내가 원하는 형태로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깨에서 3번째 팔이 돋아나는가 하면, 손목에서 팔이 돋아날 수도 있다. 아니면 옆구리에서 제대로 걸어 다니기도 힘들 정도로 거대한 팔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

       

        다행히 이 드래곤족에게는 변이된 형질을 지울 수 있는 능력도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지우기’ 능력이다. ‘원상 복구’가 아니라.

        3번째 팔이 마음에 안 들어서 지워 버리면, 나의 멀쩡한 두 팔도 함께 날아간다.

        즉, 한 번 돌연변이에 사용된 형질은 다시 원상복구 시킬 수 없다는 소리다.

       

        그렇기에 드래곤족의 돌연변이는 신중해야 한다.

        까닥 잘못했다가는 방해만 되는 흉물을 몸에 붙이고 다니게 될 수도 있기에, 충분한 시도와 각오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지금 내가 하는 짓은 사실 미친 짓이었다.

        내 모든 DNA를 돌연변이 시키는 것.

        목적은 저들을 죽이기 위한 것.

        오로지 그것만을 위한 돌연변이.

       

        ‘크아아아아!!’

       

        크롸라라라라!!

       

        나의 부속지, 기관, 내장, 세포 하나하나가 빠르게 변이 되며 형태를 바꾸기 시작한다.

        음식을 소화시키기 위한 위가 변이 되며, 소화를 위한 기관이 강력한 산성 액을 내뱉는 독샘 기관으로 변질한다.

        피가 흐르는 혈관은 독을 운반하기 위한 기관으로 변질하고, 콩팥은 혈액 속 노폐물을 거르는 기관에서, 독을 제조하는 기관으로 변한다.

       

        그야말로 생물의 근본을 깡그리 부숴 버리는 진화.

        아니…… 이것은 진화조차 아니다.

        그저 생물의 조건조차 버린 채, 살아 있는 존재조차 되지 못하는 한낱 유기물로의 퇴화.

       

        ‘하지만 상관없어.’

       

        어차피 죽을 거라면, 그 죽음은 내가 정한다.

        몸이 기형으로 변형되고, 지렁이조차 못한 버러지가 될지라도…….

       

        ‘내 모든 실패한 변이 중 단 하나라도 네놈들에게 치명적인 비수가 될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나의 승리다.

       

        = 뭐지?

       

        = 어어어?!

       

        = 뭐야 저거?

       

        뒤늦게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신들이 얼굴을 찌푸린다.

        그저 이상한 것을 본다는 반응이 전부고, 그 누구도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방심의 사이에서 나는 나의 모든 것들을 불태웠다.

       

        너무나 갑작스럽고 다발적인 변이에 내 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이어서 내 몸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신경계조차 적을 죽이기 위한 감전 기관으로 변질되어서, 감각 따위는 느끼지 못했으니까.

       

        이미 멀어 버린 청각 대신, 아직 멀쩡한 시각으로 주위를 살핀다.

        나를 잡아왔던 파괴의 신이라던 놈이 얼굴을 찌푸리며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놈으로부터 감히 헤아릴 수 없는 힘이 나에게 쏟아졌다.

       

        ‘컥!’

       

        나의 몸이 수백 번 파괴되고, 이어서 다시 재조립된다.

        나의 영혼 그 자체가 분해되었다가 다시 원상 복구되는 감각.

       

        =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하찮은 벌레 따위가.

       

        ‘끄으윽!’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이 내 영혼을 덮쳤다.

        수백 번의 죽음과 수백 번의 고통.

        영혼이 뒤죽박죽되는 것 같은 느낌.

       

        = 헛되게 죽이진 않을 거다. 하지만 길은 들여야겠군.

       

        진작 죽어야 하나, 죽지 못하는 나.

        그리고 그런 나를 수백 번 죽이며 가지고 노는 파괴의 신.

        그 과정에서 나의 몸은 파괴와 재생을 반복한다.

       

        모든 것들이 표백되고, 다시 재구축되는 과정.

        그리고 그 속에서 뒤죽박죽 진행되는 돌연변이화.

       

        = 하찮은 버러지 따위가.

       

        ‘난…….’

       

        = 귀찮게 하지 말고.

       

        “나는…….’

       

        = 장난감은 장난감답게 있어라.

       

        화르르륵!

       

        나의 몸에서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의 뇌에서부터 시작된 불꽃.

        아주 작은 자색의 불꽃이, 서서히 내 몸 전체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두우우웅!

       

        = ……어?

       

        울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깨지고 부서진 자아의 틈에서부터 일어난 울림.

       

        두우우웅!!

       

        그리고 그 울림이 일어날 때마다, 부서지고 뒤죽박죽 섞였던 나의 모든 것들이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니, 원상 복구가 아니었다.

       

        두우우웅!!!

       

        나의 모든 것들이 더 넓고, 더 크게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 뭐야?

       

        = 어, 어떻게?!

       

        = 어어어어어?!!!

       

        지금껏 편안하게 앉아 유흥을 즐기던 신이라는 놈들이 화들짝 놀라기 시작한다.

        그들의 얼굴에 서린 감정은 ‘경악’.

       

        우우우우우우우웅!!

       

        그리고 나의 내면에서는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화르르르르르륵!!

       

        나의 뇌에서 시작되었던 자색의 불꽃이 나의 전신을 뒤덮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온몸이 자색의 불꽃에 의해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분명히 고통스러워야 했으나, 이상하게 나는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그 대신 느껴지는 것은 편안함.

       

        ‘가벼워.’

       

        나를 옥죄고 있던 무언가가 벗겨지는 느낌.

        가려져 있던 시야가 트이고, 먹먹하던 귀가 청명해지는 것 같은 감각.

        흐릿했던 생각의 흐름이 폭풍처럼 몰아치기 시작한다.

       

        감았던 눈을 떴다.

        어느새 나는 광활한 ‘우주’를 앞에 두고 있었다.

        분명히 이전의 나였다면 보는 것만으로도 미쳐 버렸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광경이었으나, 넓어진 나는 저것들을 모두 수용할 수 있었다.

       

        [너는 누구인가.]

       

        ‘우주’가 말을 걸어왔다.

        ……아니, 우주가 아니었다.

        그것은 차마 내가 표현할 수 없는 영역에 걸쳐 있는 존재.

       

        나는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존재는 나와 남편을 조롱했던 신들조차 어찌할 수 없는, 진정한 의미의 절대적 존재.

        무언가의 한계를 넘어선 지금의 나조차, 제대로 직시한 순간 미쳐 버릴 수 있는 그런 존재라는 것을.

       

        [너는 누구인가.]

       

        그가 다시 묻는다.

        그 물음에 나는 스스로 답했다.

       

        = 라그나.

       

        인간이었던 전생의 내가 아닌, 드래곤으로서의 나.

       

        = 하늘임을 표방하는 존재를 모두 멸하는 존재.

       

        화르르르륵!!

       

        나의 몸에서 자색의 불꽃이 피어오른다.

        연약한 나의 몸을 사정없이 불태우고 불태우는 불꽃.

        그 불꽃의 안에서, 나는 소리쳤다.

       

        = 모든 하늘을 멸하는 존재다!

       

        파아앗!

       

        나의 선언과 함께 하늘이, 별이, 우주가…… 공간이 불타오르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런 나의 선언에, ‘절대적 존재’가 나를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의 침묵이 지나가고, 마침내 ‘절대적 존재’가 나에 대해 판결을 내렸다.

       

        [그래. 멸천(滅天)의 용, ‘그랑’ 라그나여.]

       

        파아아앗!

       

        ‘…….’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와 있었다.

        주변에는 신들이 있었고, 나는 그들의 한가운데 있었다.

        주위의 환경은 여전히 무거웠고, 신들은 나를 신기하다는 듯, 혹은 우습다는 듯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

       

        = 하! 초월을 이루었다고?!

       

        나의 가장 가까이에 있던 파괴의 신이 헛웃음을 흘렸다.

        동시에 그의 손에 광대한 파괴의 힘이 어리기 시작했다.

       

        = 그래 봤자 미천한 벌레일 뿐!

       

        그의 손이 파괴의 힘을 담아, 나에게 뻗어졌다.

        그리고…….

       

        화르르륵!

       

        = ……어?

       

        내 몸을 태우던 자색의 불꽃이 파괴의 신이 피워 올린 파괴의 힘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 뭐야 이거.

       

        자기 힘이 불에 타오르는 것이 황당했을까? 파괴의 신이 불꽃을 끄기 위해 팔을 휘둘렀다.

        하지만 불꽃을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힘을 연료로 하듯, 게걸스럽게 그의 힘을 불태우며 그의 손으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 이익!

       

        파괴의 신이 재빨리 더 강한 힘을 쏟아부어 불을 끄려 했으나, 자색의 불꽃은 오히려 불꽃을 끄기 위해 투입한 힘마저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마침내 그의 손으로 불꽃이 번지고…….

       

        = 으, 으아악?! 으아아아아악!!

       

        어느새 그의 온몸이 자색의 불꽃에 뒤덮였다.

       

        = 뜨, 뜨거워! 꺼, 꺼줘! 으아아악!

       

        온몸이 불타오르게 된 파괴의 신이 몸부림치기 시작한다.

        불을 끄기 위해 바닥에 몸을 비비고, 신성한 물을 끼얹기까지 한다.

       

        하지만 불은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색의 불꽃은 바닥은 물론이고, 신성한 물까지 번지며 모든 것들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 어어어?!

       

        = 뭐, 뭐야?!

       

        그제야 심각성을 깨달은 것일까?

        처음에는 ‘놀람’, 중간에는 ‘경악’, 지금의 신들은 ‘공포’의 감정을 얼굴 위로 띄웠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 느낌이 좋아…….

       

        그래……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전히 나의 남편은 고통받고 있고, 주변에는 죽이고 죽여도 시원찮을 원수들이 널려 있다.

        그렇기에 나는 이곳을 바꿀 것이다.

        저들의 온몸을 난자하고, 목을 물어뜯고, 영혼조차 갈아버릴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이곳을 나의 남편을 위한 ‘제단’으로 만들 것이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하늘의 신’이라는 놈과, 그가 들고 있는 내 남편의 머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 나의 이름은 라그나. 멸천룡 그랑 라그나.

       

        = …….

       

        = 하늘에 속한 존재를 멸하는 존재.

       

        = …….

       

        = 곱게 죽을 생각은 하지 마라.

       

        화르르륵!!

       

        나를 중심으로 바닥, 벽, 공기…… 주변의 모든 것들을 불태우며 자색의 불꽃…… 아니, ‘멸천의 독염(毒炎)’이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이 ‘신계’의 모든 것들을 불태우기 위해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마 다음화쯤 끝날 것 같습니다.

    다음 스토리는 뭘 써야하나….

    다음화 보기


           


Dragon’s Internet Broadc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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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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