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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4

       “너, 지금, 뭐라고…….”

        

       머리가 벗겨진 남자 하나가, 내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앉아있었다.

        

       돈 많은 학교에서 일하는, 돈 많이 받는 교사.

        

       하지만 받는 돈의 양과는 완벽히 반대되는 인성을 가지고 있는 교사.

        

       아니, 교사‘들’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 표현이겠지. 이 학교에서 뇌물을 받는 교사 보다 받지 않는 교사 쪽을 세는 게 훨씬 빠를 테니까.

        

       아니, 뇌물을 받지 않는 교사가 있을까?

        

       만약 이 학교에서 뇌물을 받지 않는 교사가 있다면 그 교사는 진정으로 ‘선생님’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모든 교사가 뇌물을 받는 것을 좌시하지도 않았을 거고, 한 학생이 대놓고 따돌림당하는 걸 무시하지도 않았겠지.

        

       그렇기에 나는 이렇게 아무 교사나 잡아다가 이런 말을 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여기 서명하시라고요.”

        

       내가 내민 것은 각서였다.

        

       처음에는 내가 직접 쓰려고 했는데, 양혜인이 보기에는 그 내용이 영 부족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시간을 조금 더 들여,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작성한 그 각서는, 내 처음 생각보다 내용이 훨씬 많아졌다.

        

       하늘이는 각서 내용이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나가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사실 그건 오히려 바라는 바였다. 세상에서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어머님뿐만이 아니라 나도 있다고 말하고자 하는 거였으니까. 게다가 이렇게 서명을 받고 다니면 결국 그 내용이 흘러나갈 수밖에 없기도 했고.

        

       그리고 그 많은 내용도, 사실은 대부분 법적인 보호를 받지는 못한다는 모양이다.

        

       대한민국에서 각서 같은 것을 작성하려면 그 내용이 ‘사회의 미풍양속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라고 하던가. 아마 신체 포기각서가 법적으로는 무효인 것과 같은 이유겠지.

        

       물론 이 각서에 그런 야만적인 내용을 담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내용만 따지자면 건전하다고도 할 수 있을 거다.

        

       그 긴 내용을 최대한 간단하게 줄이자면,

        

       ‘지금부터 뇌물을 받지 마라. 우리도 뇌물 주는 것을 그만두겠다. 법적인 책임을 묻도록 만들지는 않겠다.’

        

       물론 그것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나야 선생들이 돈을 얼마나 가졌는지 아닌지 신경도 쓰지 않는다. 내가 신경을 써야 할 인간들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저 그렇게 끝내면 그 사람이 엄청나게 답답해할 게 분명했다.

        

       당장 처벌할 수단이 없으니 그대로 두었을 뿐이지, 사실 그 사람은 이 교사들이 처벌받기를 너무나도 원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이 각서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우리가 뇌물을 줘서 받은 혜택은 제외하고, 남은 부분에 대한 환급을 요청한다.’

        

       그렇다.

        

       지금까지 나, 혹은 어머님이 냈을 막대한 뇌물은 사실 도가 지나쳤다. 나야 그게 얼마나 많은 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십수억이라는 돈은 어떤 사람이 일평생 일해도 벌지 못할 수도 있는 돈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시점에서 그 돈은 충분히 큰돈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런데 그런 돈을, 여기 이 교사들은 나와 소희를 같은 반에 넣어주는 것만으로 꿀꺽했다.

        

       뭐, 혼자 그 돈을 꿀꺽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 액수가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그렇기에 나는 각서에 영수증을 첨부해달라는 말을 넣은 것이다.

        

       이 각서가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어, 그러니까, 사라야.”

        

       교사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마치 나를 진정이라도 시키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래, 이 사람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 각서는 절대로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것 정도는.

        

       그리고, 당연히 내 앞에 있는 자신도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것도.

        

       ……그 사람은 선하다.

        

       물론 나처럼 무조건 당하고 살았던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성격도 있었고, 남들이 자신을 욕하면 자기도 마주 보고 욕할 정도의 성질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선을 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설령 협박하더라도 진짜로 그 협박의 내용을 실행할 생각은 하지 않는 사람.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애초에 이 인간들에게 흥미가 없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되건 내 알 바 아니지.

        

       이 사람들도 내가 어떻게 되든 알 바 아니었던 것처럼.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말도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지?”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결국 한다는 말이 그런 말이었다.

        

       “그럼요.”

        

       나는 싱긋 웃어 보이고 말했다.

        

       “교사가 수백, 수천, 수억 단위의 뇌물을 받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해요.”

        

       “……그건 말이다—”

        

       “그리고, 그 단위의 돈을 받고 한다는 일이 고작해야 1학년 한 명을 학생들과 힘을 합쳐 따돌리는 거였고요. 누가 들어도 믿을만한 이야기는 아니네요.”

        

       나는 잠시 입을 다물고, 땀을 뻘뻘 흘리는 교사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눈을 차마 내 얼굴에 고정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굴리는 것이 참 안쓰러워 보였다.

        

       뭐, 안쓰럽건 말건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지만.

        

       “그런데, 저는 그 믿기 어려운 일을 믿을 수 있는 일로 바꿀 수 있는 돈이 있어서요.”

        

       유진 그룹 휘하에 방송국이나 신문사가 있는 건 아니라는 모양이다. 하지만, 유진 그룹이 광고를 대는 회사는 있었다.

        

       ……뭐, 내가 유진 그룹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니긴 하다만.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을 활용할 수는 있겠지. 무식하게 많기만 하고 쓸 데도 없으니까.

        

       만약 수틀리면 나는 이 각서를 그대로 가지고 가서 방송국과 언론들에게 돈을 잔뜩 퍼주고 이걸 1면에 실어달라고 할 것이다. 기사로 실을 수 없다면 광고로 실을 생각이고.

        

       나는 그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내가 살아갈 돈은 차고 넘쳤으니까.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선생은 어떨까.

        

       그리고 교무실 저 멀리서 우리를 흔들리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선생들은?

        

       여기 있는 이 교사야 평생 받은 뇌물을 전부 뜯겨가지 않는 이상 노후 정도는 안락하게 보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학교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교사들은 어떨까.

        

       분위기에 휩쓸려서,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서…… 이유는 많겠지. 나름대로 변명할 거리가 있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봐주면 한도 끝도 없잖아?

        

       “사라야, 내가 이 서류에 서명하지 않아도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란다.”

        

       이제 정신이 좀 돌아왔는지, 교사는 나를 달래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네가 줬다고 주장하는 그 돈은, 문자 그대로 줘서는 안 될 돈이잖니. 애초에 증거가 남지 않도록 주고받는 게 당연한 돈이고. 그러니까, 내가 여기에 서명하지 않는 쪽이 당연하지 않겠니?”

        

       그렇겠지. 제정신이 박혔다면 이렇게 일방적으로 자신에게만 불리한 각서에 서명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처음 내용을 보고 조금 어질어질하긴 했어도,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냥 서명하지 않으면 그만인 각서였다. 철저하게 잡아떼면 그만.

        

       ……그렇게 생각하겠지.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소리를 하세요?”

        

       당연히 나도 그런 생각을 해보고 써온 각서다.

        

       “무슨 자신감이라니?”

        

       “…….”

        

       나는 아무 대답 없이, 그저 교사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렇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 각서를 들고 와서 서명하라고 하고 있는 이 작은 여자애.

        

       ‘예사라’는, ‘세상에서 가장 돈이 많은 십 대’였다.

        

       메이드 연봉으로 5억 원씩 퍼다 주고, 과거에 백화점으로 쓰였던 건물을 통째로 사들여서 자택으로 쓰고 있고, 고작 친구 비로 수천만 원을 쥐여줄 수 있는 십 대.

        

       ‘돈’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을, 내 안의 그 사람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뭐, ‘나처럼’ 쓸 생각을, 그 사람은 하지 않았겠지만.

        

       “선생님.”

        

       나는 교사를 빤히 바라보다가, 그렇게 한 번 불러보았다. 분명 나보다 키도 크고, 옆으로도, 앞으로도 훨씬 더 큰 사람이었는데도 나를 보며 이마에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행간을 읽어라, 라는 말이 있잖아요.”

        

       물론, 직접적으로 내가 그 돈을 어떻게 사용할 거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만약 뇌물을 주고받은 것이 약점이라고 한다면, 그런 일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도 약점이 될 수 있으니까.

        

       “다시 한번 말씀해 드릴게요.”

        

       그러니까, 상대가 될 수 있으면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나는 다시 한번 말했다.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여기 서명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

        

       그렇다.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은, ‘무슨 일이건’ 할 수 있는 돈이었다.

        

       그 앞에 ‘누구에게건’ 같은 말을 붙이더라도 별로 어색하지 않겠지.

        

       “…….”

        

       이 교사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리고, 우리를 멀리서 바라보고 있던 교사들의 입도 떡하니 벌어졌다.

        

       그야 당연히, 내가 이 각서를 이거 하나만 들고 오지 않았으니까.

        

       그래, 나는 이제야 깨달은 거지만,

        

       사람이 돈을 받았으면, 받은 만큼 일을 해야지.

        

       만약 ‘그만큼’ 못하겠으면 당연히 그만큼 환급해줘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나의 말을 드디어 제대로 파악한 교사의 얼굴이 서서히 새파랗게 질려가기 시작한다.

        

       그래, 나는 이렇게 보여도 어머님의 딸이다.

        

       그 어머님께서, 돈으로 무슨 일을 하고 다녔는지 건너건너 들은 사람들은, 당연히 나도 그 정도의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정 궁금하면, 굳이 서명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이 공휴일이라는 것을 깜빡하고 있었습니다;; 한시 지나기 전에 깨달아서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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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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