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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4

       “쿤타, 궁금한 거 있다. 답변 좀 해줘라, 아르노.”

       “…흠, 질문하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음식은 다 드시고 말씀하시죠. 그리고 식당에서 크게 떠들면 안 됩니다, 쿤타.”

       “응! 알겠다!”

         

       후루루룩!!

         

       “…스테이크는 마시는 게 아니라, 씹어서 먹어야 하는 겁니다.”

         

       두툼한 안심 스테이크 다섯 덩이를 쿤타는 스프를 먹듯 마셔버렸다.

       아무리 부드럽게 익혀졌어도 저렇게 먹으면 탈이 날 텐데.

         

       ‘아니, 그에겐 별다른 문제가 아니려나?’

         

       역시 신비종족 바바리안.

       호쾌한 스테이크 마시기를 성공하며 그는 환히 웃었다.

         

       “이거 맛있다. 물 많이 나온다.”

       “물이 아니라 육즙입니다.”

       “공용어, 무척 어렵다.”

       “…잘만 하면서.”

         

       아르노는 쿤타가 공용어가 어눌해서 약간 모자라 보이지, 실상은 전혀 모자란 인간이 아님을 안다.

       오히려 그는 누구보다 머리 회전이 빠르고, 배움이 빠르면 빨랐지.

         

       ‘누군가는 바바리안을 보고 야만전사라고 하지만, 내가 봤을 땐 그건 틀린 말이야.’

         

       바바리안을 폄훼하려 지어낸 질 나쁜 정보.

       오히려 자연과 어우러지며 살기 위해 쓸데없는 정보를 다 배제한 느낌이 들면 들었지.

         

       ‘나도 쿤타를 겪지 않았다면 언제까지고 편견 속에 갇혀 있었을지도 모르겠지.’

         

       지금은 안다.

       바바리안은 용맹한 전사이자, 타고난 책략가임을.

       동시에 자상함과 성실함도 갖춘 존경할 만한 이들임을.

       쿤타 말고 다른 바바리안을 만나진 못했으나, 쿤타가 가문에서 하숙한 지난날 동안 하는 말만 들어도 바바리안이 얼마나 대단한 종족인지 알 수 있는 바.

         

       ‘정말 같이 기사가 됐으면 좋겠군.’

         

       이토록 든든한 동료도 드물 테니.

         

       “후, 다 먹었다!”

       “…충분히 드셨습니까.”

       “좀 부족하다. 그래도 참는다. 쿤타 소식해야 한다.”

       “……그렇군요.”

         

       무려 혼자서 거대한 스테이크 열 덩어리를 먹어 치운 쿤타였다.

       총 7kg을 먹어 치운 것인데도 소식이란다.

         

       …든든한 동료긴 한데, 같이 다니다 식량을 다 거덜 낼지도?

         

       “이제 질문해도, 된다?”

       “네에, 질문하십시오.”

       “으응, 신전은, 뭐다?”

       “…신전, 말입니까?”

         

       뜬금없이 나오는 물음에 아르노는 잠시 눈을 끔뻑거렸으나, 이어지는 그의 말에.

         

       “응, 쿤타 부족에서 가장 유명한, 지혜 많은 노인이 그랬다. 유학 가면 ‘신전’을, 주의?”

       “…….”

         

       …아르노는 왜 궁금증을 표했는지 납득했다.

         

       확실히 신비종족 등이 가장 주의해야 할 세력이긴 했으니까.

         

       “근데, 내가 본 신전 사람들 다 착하고 좋았다. 회복실 사제 누나 예쁘고 착하다. 색시로 맞이하고 싶다.”

       “…안타깝게도 신전의 사제들은 50대까지 신앙생활 후에야 혼인이 허락되는 것으로 압니다.”

       “…이게 실연인가? 쿤타, 마음 아프다.”

       “또한 50대가 넘은 순간 10대로 회춘한다고 하더군요. 마치 그동안 고생한 것을 신이 보답해주듯이.”

       “기다려, 본다?”

       “…그냥 포기하십시오.”

         

       후우….

         

       아르노는 친우의 어처구니없는 행각에 잠시 할 말을 잃었으나, 곧.

         

       “…신전은 기본적으로 선한 세력이 맞습니다. 아무렴, 왕국에 모든 병자들을 무료를 치유해 줄 뿐만 아니라 열성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조직이니 말입니다.”

       “그럼 왜 주의, 해야 하는 건가?”

       “그건….”

         

       이 순간 아르노는 주의를 둘러보았다.

       오펜 가의 사람밖에 없는 시설이긴 하지만, 신전의 눈은 어디에나 있는 법.

       주의를 기울여야 했고, 그는 주변에 인기척이 없는 것을 꼼꼼히 확인하며 조심스럽게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신전에서 가장 위험하고도 악질적이기로 유명한 그 세력의 이름을 말이다.

         

       “신전에는 ‘이단심문소(異端審問所)’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아마 쿤타가 말한 지혜 많은 노인이 주의하란 것도 신전 자체가 아닌 그들일 테지요.”

         

       …왕국 사람조차 그들과 척을 지면 간담이 서늘한 곳이기도 했고.

         

       아르노는 자신이 말하면서도 반사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들이 왜 위험한가?”

       “…이단심문소 소속 심문관 중엔 신비종족 등을 ‘혐오’하고 모조리 다 격멸해야 한다 주장하는 자들이 제법 많아서 그렇습니다.”

       “…쿤타, 갑자기 입맛 사라졌다.”

       “…….”

         

       이미 스테이크 말고도 디저트로 나온 치즈 케이크마저 한 판을 먹어 치운 사람이 할 발언은 아니었지만, 아르노는 그의 심경을 이해했다.

       확실히 불쾌한 얘기임은 맞으니까.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쿤타는 정식으로 학술원에 유학을 온 생도이고, 이단심문소 또한 과거처럼 무차별적으로 미친 짓을 저지르진 않습니다. ……다만, 조심은 해야 하는 건 맞습니다. 그러니 필히 왕도를 돌아다닐 땐 혼자 다니지 않는 걸 추천하겠습니다.”

       “…아르노 말 들을수록, 쿤타 조심해란 건지, 안심해도 된다는 건지 헷갈린다….”

       “그냥 가능하면 신전과 엮이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고 이해하면 될 겁니다.”

         

       그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조언이었고, 쿤타는 여전히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실수로라도 엮이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그때는….”

       “그때는?”

       “…불운한 거겠지요.”

       “…….”

       “그래도 정말 엮일 일은 잘 없습니다. 요즘엔 심문관들도 그다지 한가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불운을 타고나지 않은 이상 아마 괜찮을 겁니다.”

       “넘어진 거로 다치는 경우도 있나?”

       “……당신을 보면 바바리안이 왜 소수 종족인지 이해가 안 가는군요. 진작 왕국 하나 세워도 되는 튼튼함인데.”

       “?”

         

       쿤타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아르노는 혀를 내둘렀다.

         

       두 생도의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그리고 반대로, 누군가가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면.

         

       “형제님, 오늘도 안녕하셨는지요?”

       “…당신이 오기 전까진 안녕했지.”

       “허허, 농담도, 원.”

       “농담 아닌데….”

         

       전혀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었다.

         

       이한, 재수가 없다 못해 뒤로 넘어지면 불바다가 있을 것만 같은 사내는 그렇게 침음을 흘리며 한숨을 내뱉었다.

         

       하며.

         

       “…차나 마시고 가.”

       “오늘도 잠시 신세를 지고 가지요.”

       “…….”

         

       …이놈의 도덕심이 원수다.

         

       ‘왜 난 쓰레기처럼 굴 수 없는 걸까?’

         

       이한은 차마 선량한 노인에게 나쁘게 굴 수 없는 자신이 싫었다.

         

       *

       *

       *

         

       …노인, 그러니까 라파엘 신부와의 만남은 정말 생뚱맞은 것이었다.

         

       여느 날처럼 훈련에 열의를 쏟던 중, 지팡이를 든 노신부가 천천히 이한의 집 앞으로 걸어오는 게 아니겠는가?

         

       – 산책 코스치곤 험한 곳인데….

         

       이한으로선 황당할 만도 한 것이, 이한의 집은 험지도 이런 험지일 수가 없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도심 속 자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며, 길도 관리한 적이 전혀 없어 엉망진창이었으며 오는 길에 야생 짐승을 만나 위협을 당할 우려도 있다.

       또한 밤만 오면 그토록 어두울 수가 없어 횃불이 있을지라도 앞이 제대로 안 보인다.

         

       하여 가능하면 안 찾아오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 곳이 이한의 집이었다.

         

       뭐, 덕분에 싸게 구매한 것이지만.

         

       어쨌든 이렇다 보니 이한으로선 걷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는 노인이 처음 그의 집까지 찾아왔을 때 당혹스럽기만 했다.

       차려 입은 것만 봐도 성식자인 건 알겠고, 아무런 무력도 없는 마냥 무해한 노인으로만 보이는 바.

         

       하여 처음만 해도.

         

       – 저기, 길을 잘못 드셨어요?

         

       그는 나름 친절하게 성직자를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길을 잘못 들었으면 되돌아갈 수 있도록 길 안내나 해 줄 셈이었고, 아니면 원하는 곳까지 업어 줄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 허허, 아닙니다, 똑바로 찾아온 게 맞는 것 같군요.

         

       노인은 ‘거물’이었다.

         

       – 라파엘이라고 합니다. 광명의 빛에게 삶을 구원받은 종자 한 명이지요.

         

       …나중에 길드를 통해 알게 된 거지만, 라파엘이란 이름을 가진 저 노신부는 무려 광명의 빛에서도 단 다섯 명밖에 없는 추기경 중 한 명이었으며, 비록 추기경직을 사임했지만, 여전히 그 영향력이 엄청난 노인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게.

         

       [-라파엘 추기경께선 올해 116세시며, 당대 교왕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입니다. 성법으로 회춘도 하지 않으며 오로지 광명의 빛의 말씀만을 따르는 신실함과 자기희생적인 모습 때문에 ‘성인(聖人)’ 후보까지 오르셨지만, 이 또한 자신에겐 과분하다면 사임하셨고, 이런 모범적인 모습 때문인지 신전의 사제들 중 따르는 이들이 엄청나게 많다고 합니다. 한데 또 충격적이게도 현재는 이단심문소를 직접 관리하는 총책임자 역할에 있으신데, 왜 그런 역할을 자처해서 맡았는지는 신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고 합니다. 뭐, 어쨌든 대단한 분인 건 분명하고, 혹시라도 다치게 하면 신전에서 어떻게 나올지 감히 예상이 안 갑니다. 부디 현명한 선택을 하시길….]

         

       …이상이 왕국 길드조합장 사이먼에게 받은 편지의 내용 중 일부였다.

         

       그리고 이한으로선 환장할 사실이기도 했고.

         

       왜 그런 대단한 양반이 이 험한 길을 홀로 걸어왔고, 왜 굳이 자신을 만나러 왔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갔으니까.

       하여 처음엔 경계하며 어떻게 할까 싶었으나 라파엘은.

         

       – 오늘은 얼굴이나 보고 싶었습니다. 다음에 또 오도록 하지요.

       – …….

         

       …첫날에는 진짜 그냥 얼굴만 보고 가더라.

         

       허나 이후에도 라파엘은 계속 그를 찾아왔다.

         

       바람이 강한 날에도,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에도, 비가 내리는 날에도 말이다.

         

       하여 이한은.

         

       – …조교야, 삽 들고 와라.

       – 네에?

       – 땅 정비 좀 하자.

       – …누가요?

       – 우리가.

       – …….

         

       일단 정비되지 않은 엉망진창인 길부터 정비했다.

       삽 한 자루만 가지고 인부 스무 명은 달라붙어야 정비할 수 있을 길을 쓸모없는 조교 하나를 데리고 무려 반나절 만에 뚝딱 정상적인 길로 만든 것이다.

         

       이후에는.

         

       – 허허, 오는 길이 정말 아늑하더군요.

       – …환장하겠네.

         

       이한으로선 이만한 강적이 없다.

         

       차라리 적의를 내비치는 인간이 편하지, 적의 한 점 안 보이며 그저 찾아와 인사를 하고 가는 라파엘에게 뭐라고 할 명분이 없는 거였다.

         

       그렇다고 또 그가 마냥 그를 훔쳐보고 가는 이상한 노인은 아닌 것이….

         

       – 그냥 오는 건 실례인 것 같아 부족하지만 선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혹시 우유를 드시는지…?

         

       직접 짠 염소 우유나 버터 등을 선물로 가지고 오더라.

         

       확실히 개념도 있는 신부임을 증명하는 행위였고, 이렇다 보니 차츰.

         

       – …나 괴롭히려고 계속 찾아오는 게 아니라면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 말이나 좀 해 봐.

       – 허허, 그저 형제님의 얼굴을 직접 마주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왕도를 구한 영웅의 풍모를 말입니다.

       – …….

       – 직접 보니 기대 이상이군요. 젊을 적 만난 영웅들의 기백을 뛰어넘는 것이, 소문 이상입니다. …혹시 광명의 빛을 따르고 싶지 않으십니까?

       – ……염병.

         

       …어느 날부턴 스카우트도 같이 진행되었다.

         

       이한은 인정했다.

         

       – 천적이야, 천적….

         

       진짜 인생 최대의 천적을 만나게 된 것 같다고.

         

       적의가 없는 상냥한 시선만을 던지며, 묘하게 그를 좋게 본다.

       또한 집에 올 때마다 빈손으로 오지 않는 개념까지…!

         

       이한으로선 지금껏 왕국에서 본 그 어떤 노인들보다 ‘정상적인 어른’인지라 대하기가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다.

         

       저런 양반이 어떻게 이단 심문 같은 과격한 일을 하는가부터 시작하여, 왜 자신을 찾아와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까지.

         

       – 검둥이 말로는 내가 신전에게 위험 대상으로 찍혔다고 들었는데….

         

       회귀자의 말대로라면 그는 너무 설친 나머지 신전에서도 요주의 인물로 찍힌 상태라 한다.

         

       이유?

       아직은 잘 모르겠다.

       짐작 가는 게 없다고 할 수는 없으나, 명확한 것이 생각나는 것은 모르니까.

         

       – 후우, 돌겠네….

         

       그런지라 이한은 골이 아팠다.

         

       차라리 속 시원하게 뭔가를 말해주면 좋겠는데, 이토록 자꾸만 간만 보는 느낌이니 말이다.

         

       그렇게 현재에 와선.

         

       후루룩.

         

       “으음, 맛이 좋군요. 이건 뭐라고 하는 차입니까?”

       “…그냥 산에서 나는 허브를 말린 거야.”

       “허허, 자연의 은혜를 마신다는 뜻이군요. 귀한 대접을 받고 갑니다.”

       “……그냥 어디에나 있는 건데.”

       “형제님께서 이 허브를 따서 말리고 차로 우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길이 있었겠습니까.”

       “…….”

       “겸손과 성실함, 그야말로 신실한 교인의 자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 다 그쪽으로 연결되는 걸까?”

         

       ……이러한 열성적인 스카우트도 새삼스럽게 받아들이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중이었다.

         

       ‘거, 백 살은 거뜬히 넘은 양반이 아직 정정하네.’

         

       아직 30년은 더 사시겠어.

         

       호로록.

         

       이한은 차를 마셨다.

         

       * * *

         

       “오늘도 좋은 만남이었습니다, 형제님.”

       “내일은 오지 마, 제발.”

       “허허, 모처럼 형제님과 가까워지고 있는데, 어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다음에 또 뵙도록 하지요.”

       “…음.”

         

       돌아가는 노신부의 발걸음이 불안하다.

       지팡이도 허약해 보이고, 다리는 지팡이보다 더 허약하기 그지없다.

         

       “조교야.”

       “네에?”

       “업어드리고 와. 그리고 적당한 마차 하나 빌려서 집까지 모셔.”

       “제, 제가요?”

       “그럼 내가 하리?”

       “…아니요, 제가 해야죠. 빌어먹을….”

       “한마디가 많다, 조교야.”

         

       데미안은 투덜거리며 라파엘에게 다가갔고, 라파엘은 거절을 표시하려 했으나.

         

       “난 이 한여름 더위에 초상 치르고 싶지 않고, 괜한 죄책감 가지고 싶지 않거든? 그러니까 순순히 호의를 받아들여. 당신에게 선택지는 없어.”

       “강제적 호의라는 겁니까?”

       “아니지, 필요한 호의인 거지.”

       “허어….”

       “…왜 그렇게 봐?”

       “생긴 것과 달리 형제님께선 상냥하신 분이군요.”

       “……내가 생긴 게 어때서.”

       “더욱 형제님을 신전으로 데리고 오고 싶을 따름입니다.”

       “어이, 대답.”

       “호의는 받아들이지요. 감사합니다, 부디 광명의 축복이 있기를.”

       “…뭐지? 나 지금 나무랑 대화하냐?”

         

       그렇게 자기 할 말만 하고 라파엘은 데미안에게 업혔고, 데미안은 조심스럽게 그를 업은 채 걸었다.

         

       멀어지는 노신부의 등이었고, 이한은 이를 보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친절이라.”

         

       으음….

         

       ‘우리 영감님이 생각나서 그런가?’

         

       전생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은 그를 키워주었던 할아버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시긴 했지만, 그분이 있었기에 그는 10대 시절에 삐뚤어지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라파엘과 그의 할아버지가 닮았다는 것은 아니다.

         

       성격도 말투도, 생김새조차 모두 다르니까.

         

       다만.

         

       ‘좋은 사람이야….’

         

       인품(人品). 고집스럽지 않고 세상을 유연하게 대하며 올곧게 살아가는 저 인품만큼은 참 닮았다 싶었다.

         

       얼마 만나지 않았지만, 라파엘이란 양반이 그를 우롱하려고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만큼은 그의 감각이 알려주니까.

         

       ‘농락하는 거였으면 진작 하늘나라로 보내줬지.’

         

       쩝….

         

       어렵다, 어려워.

         

       근본이 나쁘지 않은 인간에게 모나게 굴 정도로 그는 못돼먹을 수가 없었다.

         

       약간 어둑해지는 하늘.

       그는 내려앉은 그림자들과 멀어지는 두 개의 인영을 바라보다 어느 순간 그림자조차 완전히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음을 확인하곤….

         

         

       “-그래서, 오늘은 웬일로 이렇게 가까이 왔냐? 이 음흉한 새끼야.”

         

         

       ……이한은 뒤도 돌아보지 않으며 입을 떼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데 말이다.

         

       그러나.

         

       “안 나와도 상관은 없는데, 다음에 올 때는 목숨 걸어라. 불쾌해지기 직전 단계니까.”

         

       화락.

         

       일순 마치 커튼콜을 하듯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공간의 장막, 신비롭기까지 한 광경이었고 눈을 의심할 법한 상황 속에서 ‘그’는 걸어 나왔다.

         

       “…실례했소. 감히 기사를 시험한 것 같은 행위가 됐구려. 그저 추기경을 호위하고 있을 뿐이었는데.”

       “그러니까 봐준 거야. 아니었으면 진작 죽였어.”

       “그렇군. 진작 알고 있었던 건가.”

         

       사내는 감정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무표정으로 일관한 채 묵묵히 고개를 주억거렸고, 이한은 뒤돌아서며 그를 마주보았다.

         

       생긴 것부터가….

         

       ‘진짜 이단 심문 잘 할 것처럼 생겼군.’

         

       한 손에는 성경을, 또 한 손에는 종을 든 신부가 거기 있었다.

         

       눈가의 음영이 짙고, 머리칼에는 새치가 가득한 것이 인상적인 칙칙한 낡은 신부복을 입은 남성.

       원래 나이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는 동태같이 죽은 눈과 낡은 신부복보다 더욱 어두컴컴한 분위기까지.

         

       보고 있노라면 사람을 위축시키는 무언가가 있었다.

         

       허나 이한에게 있어선.

         

       “그래서, 안 꺼지냐?”

         

       “…….”

         

       대가리를 깰까 말까 고민하게 만드는 놈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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