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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4

   EP.134

     

   하늘이 갈라졌다.

     

   그 어떤 충격에도 흔들림이 없었던 무의 정원이 격렬하게 반응하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13층의 주인이 비장한 얼굴을 한 채, 검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마력으로 날려 보낸 반월 모양의 검기가 주변의 모든 공기를 연소시키듯 공간을 빨아들인다.

   서서히 이루어지는 진공.

   그리고 그 공간의 일그러짐에 따라 탈람바르는 나의 공격을 노려보며 검을 정면으로 내질렀다.

     

   나의 공격과 그의 검이 충돌했다.

   하지만 굉음이 터져 나올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주변은 거짓말처럼 고요했다.

     

   “멋지군.”

     

   침묵 속에서 들려온 누군가의 목소리.

   나는 속에서부터 역류하는 핏덩이를 삼키느라 말을 하지 못했으니 ‘멋지다’는 표현은 탈람바르의 말이 아닌가 싶었다.

     

   통각이 마비가 되어 가는 것인지 머리가 지끈거리는 통증이 잠시 있었지만 이내 사라졌다.

     

   “쿨럭!”

     

   참다못한 각혈이 입에서부터 터져 나왔다.

   머리가 핑 돈다. 갑작스러운 마력 방출로 인한 반동인 것 같기도 했고 체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무리를 하는 바람에 내상을 입은 것 같기도 했다.

     

   피이잉……!

     

   이어진 연쇄폭발.

   나는 그 끝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채, 정신을 잃었다.

     

   ***

     

   한방 병원이 떠오르는 매캐하고 씁쓸한 냄새.

   나는 내 코를 자극하는 익숙한 향을 맡으며 눈을 떴다.

     

   “오. 빨리 일어났군.”

     

   내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살며시 운을 띄우는 그.

   나는 나를 등진 채, 앉아 있던 그를 보며 물음을 던졌다.

     

   “성좌쯤 되면 뒤통수에도 눈이 달리는 겁니까?”

   “그냥 감이지. 시각이 사라지더라도 그걸 대체할 수 있는 감각은 다양하게 있으니까 말이야. 간혹 눈꺼풀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거나.”

   “……진짭니까?”

   “구라지. 그걸 믿나?”

     

   농담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니 뭔가 안 어울린다.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자.

   근육 덩어리를 도화지 삼아 문신을 덕지덕지 그려놓은 괴물은 가만히 바닥에 앉아 무언가를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저희 싸움은 어떻게 됐습니까?”

   “보면 모르나? 내가 이겼지. 자네는 쓰러져서 골골대고 있고 나는 앉아서 치료를 하고 있으니 말이야.”

     

   그의 말에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탈람바르와의 싸움은 치열했다.

   나는 그를 어떻게든 죽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는 나를 쓰러뜨리기 위해 검을 들었으니 우리는 적이라 불러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가 나를 지도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나는 무의 정원을 오르며 말도 안 되는 성장을 이루었으니 손해 볼 게 하나도 없는 장사였다.

     

   “그럼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하지만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의 정원의 정복에 실패한 도전자가 가게 될 길이 어느 방향인지 아는 것이었다.

     

   무의 정원을 오르기 전에 봤던 무덤 같은 그 장소.

   그곳에 있는 평가들을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전에 실패한 자가 어떤 처우를 받게 되었는지에 관한 설명 따위는 없었다.

     

   ‘과연…’

     

   죽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탈람바르의 산하에 들어가 91층에서 99층의 성좌들처럼 무의 정원을 지키게 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격이나 능력치를 빼앗기나?

     

   나는 뻐근한 몸을 슬쩍 일으키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돌아온 그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가 어떻게 돼? 이제 탑을 올라야지.”

   “……네?”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

     

   “저는 패배한 게 아닙니까?”

   “패배했지. 왜 자꾸 같은 질문을 하는 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인가?”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말을 더듬자 그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네. 보통 성좌들끼리 목숨을 건 싸움을 했다는 건 그 층을 걸고 영역 싸움을 하는 경우나 화신을 걸고 격을 올리기 위한 내기를 하는 경우가 다반사지.”

   “……”

   “하지만 나는 그냥 싸워 보고 싶었네. 다른 이유는 없어. 나는 김시인 그대의 힘을 상대해 보고 싶었고 그렇게 했네. 그게 다야. 설명이 더 필요한가?”

     

   그렇게 말한 탈람바르가 앉은 채로 몸을 슬쩍 돌린다.

     

   “아, 물론 그대가 나에게 패배했기 때문에 포탈은 내가 직접 열어줄 거네. 보통은 탑이 클리어를 인정해야 다음으로 가는 포탈이 열리거든.”

     

   그가 움직이며 쓴 냄새가 풍겨 나오니 탑의 2층 의약당이 떠올랐다.

   사천당문의 당휘소가 나를 치료할 때 자주 맡았던 향. 그가 나름대로 치료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구나 싶었지만 나의 이목을 끈 것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혹시 그 팔은?”

   “아아, 이거?”

     

   나의 눈에 잘려 나간 그의 왼쪽 팔이 보였다.

   정확히는 손목 위로 아래팔이 날아간 상태라 잘만 가리면 티가 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마지막에 봤던 공격은 환상적이었네. 팔 하나를 내어 주지 않으면 반 토막이 날 것 같더군. 그래서 내줬어.”

     

   그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나를 보며 씨익 웃는다.

   조금 전부터 약재 냄새가 코를 찌른다 싶었는데 이제 보니 출혈을 막기 위해 절단 부위에 다진 약초를 사용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어우 따가워.”

     

   그는 팔 하나가 날아간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십 개의 물음표가 나의 머리를 어지럽게 만든다.

     

   신체의 일부를 잃었다는 것은 나의 상식으로는 절대 별거 아닌 일이 아니었으니까.

     

   “괜찮습니까?”

   “응? 뭐가 말인가? 그대가 보여 준 마지막 검기가 어땠는지 묻는 건가?”

   “아니요. 지금 그 팔 말입니다.”

     

   나의 물음에 그가 자신의 잘린 왼팔을 바라본다.

     

   살짝 찡그려진 인상.

   하지만 정말 따가워서 신경 쓰인다 정도의 표정이지 분노나 허망함 따위는 그의 눈빛을 통해 읽을 수가 없었다.

     

   “팔? 아아, 괜찮네. 팔이 있을 때는 몰랐는데 하나 없어 보니까 또 새로운 느낌이 들어서 말이지. 썩 나쁘지만은 않아.”

     

   이쯤 되니 긍정적인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

   팔 하나를 잃은 성좌와 그 팔을 잘라 낸 당사자의 대화로는 느껴지지 않는 대화가 오간다.

     

   “갑자기 팔 하나가 없으니까 내가 안쓰럽나?”

   “그건 아닙니다.”

   “그럼? 팔 하나가 없으니까 이번에는 이길 수 있을 것 같나?”

   “무슨 그런 말씀을…”

   “그럼 신경 쓰지 말게. 내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야. 아니면 그대가 보기에 내가 팔 하나가 없다고 아무것도 못 할 인간으로 보이는가?”

     

   그가 나를 바라본다.

   지금까지 그의 말이 가벼웠다고 생각한 적은 단연코 한 번도 없었지만 지금 만큼 무거운 느낌을 받았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자신이 잃는 것을 일일이 세지 말게. 부정적인 생각 따위는 가지지도 말고. 그대가 탑을 오르며 앞으로 잃을 것이 얼마나 더 많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그가 말한다.

     

   “신체 일부? 동료? 기억?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무언가?”

     

   수백 년… 어쩌면 수천 년을 이미 살아온 그가 나를 향해 말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거야. 가진 것에 감사하며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시간도 빠듯한데 슬픔에 빠져서 허우적거릴 시간이 있는가?”

     

   나는 침묵했다.

     

   “물론 아프지. 힘도 들겠지. 잃은 것이 나의 마음속에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면 그 공허함도 배가 되겠지. 하지만 그거 아는가? 잃은 것만 생각하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언젠가는 잃게 되기 마련이라는 것을.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참 억울한 일이 아니겠나?”

     

   “……”

     

   “그대가 가지고 있는 걸 지켜. 내가 탑을 오르며 배운 이치를 그대에게 알려 준 것이니.”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나의 눈을 응시했다.

   팔이 하나 없지만 위압감은 배가 된 듯한 느낌.

     

   띠링.

     

   그런데 그 순간, 탑의 클리어를 알리는 청량한 알림 소리가 나의 귀에 들려왔다.

     

   [13층을 클리어했습니다.]

     

   “……왜?”

     

   무의 정원을 클리어했다는 메시지가 나의 눈앞에 떠오르자 나는 탈람바르를 향해 물었다.

   나는 끝내 100층을 이겨 내지 못했다. 탈람바르의 말마따나 싸움에서 치명상을 입혔다고 해도 결국 쓰러진 것은 나였으니까.

     

   그렇게 내가 의문을 품은 채 그를 올려다보았고,

   그는 언제부턴가 시원하게 자신의 이를 드러내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내가 이긴 줄 알았는데 졌군!”

   “…네?”

   “탑이 그대의 승리를 인정했다는 말이네.”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패배한 것이 아니었는가?

     

   그렇게 나는 한동안 멍청한 표정을 지은 채, 메시지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내가 고작 성좌가 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애송이의 검을 보고 경외심을 느꼈다면 믿겠나?”

     

   그의 목소리가 알 수 없는 감정에 북받친 듯 떨려왔다.

     

   “잠깐이었지만 13층의 주인인 내가 자신의 세력도 없는 그대를 진심으로 상대했네. 그리고 나는 팔이 날아갔지. 그것만으로도 그대가 이곳을 통과할 이유는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네.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한가?”

     

   감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리던 존재와 탑이 나를 인정했다.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존재에게 치명상을 입힌 도전자. 그것만으로 조금 전의 싸움에서 탑이 나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올라가게. 물론 내가 그대를 갑작스럽게 13층으로 끌고 왔으니 6층부터 차곡차곡 다시 오르게 되겠지만 그대라면 결국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해 탑의 끝을 보게 될지도 모르지.”

     

   우웅.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허공에 익숙하게 생긴 푸른 포탈이 생기기 시작했고 나는 몸을 일으켜 포탈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나는 곧장 포탈로 들어가지 않고 잠시 뒤를 돌아 그를 바라보며 줄곧 궁금했던 한 가지를 물었다.

     

   “질문이 있습니다.”

   “얼마든지!”

     

   그가 나를 보며 하나밖에 남지 않은 팔로 팔짱을 끼는 시늉을 한다.

     

   “저는 무엇이었습니까?”

     

   무의 정원에 오르기 전에 봤던 그의 기록들.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봤던 도전자들에 대한 평가는 두 가지였다.

     

   “저는 연이었습니까?”

     

   자신의 틀에 갇혀 날아오르지 못 하는 자.

   그것을 벗어나려 줄을 끊는 순간 끝없는 바닥으로 추락하게 될 자.

     

   하지만 탈람바르…

   성좌, 전쟁과 싸움밖에 모르는 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대에게는 날개가 있었네.”

   “감사합니다.”

     

   그의 말을 들은 나는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고 포탈을 통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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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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