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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5

       

       

       “……! 너, 이 새끼……!”

       

       강 형사는 인상을 험악하게 구겼지만, 내가 칼자루에 손을 얹자 함부로 덤비지는 못했다. 강 형사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으르렁거렸다.

       

       “너도 서에서 볼 날이 올 거다.”

       “예. 그렇잖아도 종로서의 무라사끼 서장님을 뵈러 가야하는데요.”

       “……뭣?!”

       

       나도 아무 생각 없이 홧김에 따귀를 갈긴 것은 아니었다. 일개 조선인 형사 따위 무서울 것이 없었을 뿐이다. 

       

       사실, 굳이 총독이나 비서관의 권위를 빌려올 것도 없었다. 나는 이미 무라사끼 종로경찰서장의 아들과 절친한 친구인데다가, 고무공장 테러 사건 때의 공로로 서장의 초대까지 받았으니 이미 경찰과의 인맥은 따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혹시나 이런 일개 형사와 마찰이 생긴 것이 문제가 되더라도, 어디까지나 원칙적으로는 강 형사가 먼저 시비를 건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강 형사는 그제서야 나를 알아봤는지 흠칫 놀라는 기색이었다.

       

       “너…… 너! 고무공장 테로 사건 때, 종로서장의 아들과 함께 테로범들을 물리친 것이 네 녀석이었군!”

       “이제 아셨어요? 그래 제가 경찰서장 아들이랑 친군데, 설마하니 빨갱이를 집에 숨겨놓겠습니까? 저도 빨갱이 싫어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입니다.”

       

       이 말은 사실이었다. 조선이 해방 뒤에 분단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또 21세기에서 중국과 북한 때문에 내가 고생했던 것을 생각하면 아직까지도 이가 갈리는 것이다.

       

       “…….”

       

       강 형사는 뭐라고 말을 꺼내지는 못했지만, 자존심 때문에 물러설 수는 없었는지 그저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길로 문 닫힌 방을 노려볼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서서 미적거리는데, 열려있는 대문으로 불쑥 고개를 내미는 것은 순사 한 명이었다.

       

       『아, 형사! 역시 여기에 있었군요! 또, 그 조선인 샤후 놈이 말썽입니까?』 

       

       샤후(車夫)는 인력거꾼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었다. 아무래도 강 형사를 찾던 순사가, 강 형사가 함원삼의 집에 자주 온다는 것을 알고 이리로 온 모양이었다. 강 형사는 순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니, 이번은 다른 일로 왔다. 나를 찾았나?』

       『예! 그게, 이번엔 북한산 쪽입니다. 고양군 방면입니다만.』 

       

       강 형사는 우리가 듣고 있는 것이 신경쓰였는지 우리를 슬쩍 뒤돌아보다가, 순사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또 늑대인가?』

       『예. 이번에도 예의 그 놈의 소행으로 보입니다.』

       

       늑대라. 강 형사는 「칙쇼」같은 욕을 중얼거리더니 순사를 따라 대문을 나서기 전, 나를 돌아보며 외쳤다.

       

       “이봐!” 

       “뭡니까?”

       “일이 있어서 먼저 가지만 내 충고하는데, 어린 녀석이 공을 조금 세웠다고 거드럭거리면 큰 코 다쳐!” 

       “내 알아 할게요.”

       “그깟 테로범들 잡았다고 기고만장하지 말란 말이다……! 나라의 은덕을 입었으면 나라에 몸과 마음을 바쳐 애국하는 것은 당연한 거야! 나는 비록 조선인임에도, 나의 일본에 대한 애국심을 증명받아 특별고등경찰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놈이 말하는 애국은 물론, 일본을 향한 애국일 것이다.

       

       ‘역겨운 놈. 너는 애국의 방향을 잘못 정했어.’

       

       조선인임에도 사상범을 잡는 특별고등경찰이 되었다는 것은, 같은 조선 동포들을 잡아들여 공로를 쌓았다는 뜻이다. 조선 독립을 입에 담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단순히 일본에 불만이 많은 조선인들까지 아무 거리낌 없이 잡아들이는 놈인 것이다.

       

       놈이 아직까지도 함원삼을 주시하며 괴롭히고 있는 것 역시, 뭐라도 꼬투리가 잡히면 또 쳐넣을 속셈인 거겠지. 

       

       이렇게 일본을 위해 불철주야 동포를 잡아넘기는 이 강 형사라는 놈은, 놈의 말마따나 그야말로 일본 입장에서는 ‘애국자’인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겉으로 드러난 ‘애국심’만큼은 나도 결코 그에 지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 그의 귓가에만 들릴 듯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예. 애국심은 중요하죠. 그래서 저도 총독 각하랑 곤도 비서관께서 저에게 직접 충량한 황국 신민이라고 해주셨을 때, 저도 애국심을 인정받은 것 같아서 참 기뻤습니다.”

       “뭣……!”

       

       강 형사는 또 한걸음 뒤로 물러나며 대경실색했다. 

       

       “너…… 대체 뭐냐……!” 

       

       경찰 내부에서 공을 인정받아 특고가 된 자기만한 친일파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눈 앞의 애송이가 무려 총독과 연이 닿아있다는 것을 깨닫자 당황한 것이겠지.

       

       ‘어질어질하지?’

       

       저 놈이 보기에 지금의 나는 그야말로 매국-금수저!

       

       저 강 형사라는 놈의 배경은 잘 모르겠지만, 아무리 조선 동포를 잡아들이는 노력을 해 봤자, 태어날 때부터 친일파 조선귀족의 자식으로 태어난 사람에게는 이길 수 없는 것이다.

       

       결국 놈이 내뱉은 것은 한 마디였다.

       

       “젠장…….”

       “할 말은 그게 답니까?”

       “……그래. 다 했다.”

       

       나는 강 형사가 걸친 검은 가죽재킷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다 했으면 꺼지십쇼. 멀리 안 나갑니다.”

       

       뭘 다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강 형사는 크윽, 하는 침음을 삼키며, 순사를 따라 대문 밖으로 나갔다.

       

       함서주는 대문으로 쪼르르 달려가 고개를 내밀고. 강 형사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뒤, 소심하게 소금을 몇 알 뿌리고는 대문을 닫으며 말했다.

       

       “아휴, 속이 다 시원해! 그 놈의 강 형사가 혼나는 걸 다 보네!”

       

       나는 강 형사가 완전히 떠나간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뒤에, 방 문을 열며 말했다.

       

       “갔어.”

       

       송병오 녀석은 방구석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다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후우, 고맙네! 역시 자네밖에 없으이.”

       “어떻게 된 거야?”

        

       녀석은 안경을 올리며 말했다. 

       

       “왜, 저번에 폭우가 났을 때, 내 묵는 청계천변의 하숙집에 물난리가 났다고 안 했던가?”

       

       폭우가 났을 때라면, 슬라임—모찌넨도 사태 때였었다. 그 때 송병오 녀석은 내 집에 와서 묵은 적이 있었지.

       

       “그랬지.”

       “아무튼 그 때 물난리가 난 탓에…… 가지고 있던 책을 몇 권 잃어버렸는데, 아무리 찾아도 안 나오더니만 경찰이 줏은 모양이야.”

       

       ‘이 답없는 빨갱이 녀석.’

       

       물론 이 시대 공산주의가 나름 배웠다는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그러니까 ‘힙스터’들이 그러듯이 가볍게 소비하던 사상이었다는 것 쯤은 나도 안다.

       

       하지만 일본 경찰이 독립운동가들보다 더 기를 쓰고 잡으려고 애쓰는 것이 공산주의자였다.

       

       당장 저 강 형사라는 놈이 빨간 책 주인을 잡겠다고 청계천변에서 여기까지 송병오를 쫓아온 것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게다가 조선이 해방되고 나면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역적이 되는 것이니,

       

       ‘언제 한번 정신머리를 뜯어고쳐 줘야지.’

        

       이 녀석도 친구는 친구였으니, 언젠가 한 번은 두들겨 패서라도 바로잡아줄 의무가 있는 것이다. 나는 대뜸 목청을 높여 외쳤다.

       

       “공산당 할 거야 안할 거야?”

       “뭐? 이보게! 나는 무슨 당 같은 것은 안 들어갔네!”

       “미리 연습해 본 거야.”

       “……?”

       

       송병오는 “또 영문 모를 소리를……” 하고 중얼거리더니 다시 말했다. 

       

       “아무튼 그 청계변 쪽은 검문이 철저해져서, 당분간 청계변에 있는 하숙집으로는 못 돌아가게 되었네.”

       

       내가 물었다.

       

       “갑자기 방을 비우면 더 수상스럽지 않겠어?”

       “워낙 뜨내기들이 많은 곳이라 갑자기 누구 하나 사라져도 아무도 모르네. 그래서 그건 걱정할 필욘 없고…… 그래서 미안하지마는, 며칠이나마 여기서 지내도 되나?”

       “뭐, 나야 상관 없는데…… 이 집 주인은 내가 아니잖아.”

       

       굳이 함원삼에게 물어볼 것도 없이, 함서주를 돌아보니 영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나는 송병오에게 말했다.

       

       “내가 말해볼게. 서주야, 잠깐 얘기 좀.”

       

       난 방문 밖으로 나가서, 방 건너 부엌에 들어가 함서주에게 물어보았다. 

       

       “뭐, 며칠 지내는 건 상관 없지?” 

       

       그러자 함서주는 아궁이 옆 벽에 등을 기대고 얼굴이 뾰로퉁해져서는 말했다.

       

       “저는 싫여요!”

       “아니, 왜?”

       “저 안경학생분 저번에 왔을 적에두요, 그 때두 며칠동안 밥은 꼬박꼬박 다아 얻어먹고선요, 한 푼두 안 주구 그냥 갔단 말예요.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으음. 그것 때문인가. 그런데 이건 송병오 녀석이 뻔뻔하다기보단, 녀석 역시 돈이 없어서 그랬으리라. 학교에 입학해서 교총을 받기 전까지만 해도, 장난감 화약총을 개조해서 쇠구슬을 발사하던 놈이었으니.

       

       “쟤 처지도 그리 좋지 못해서 그래. 그리고 저 녀석 밥값은 내가 준 돈으로 충분하잖아?”

       “그건 그렇지마는, 머…… 알겠어요.”

       “다들 배고플테니까 저녁이나 좀 내 와줘. 나도 배고프다.” 

       

       그렇잖아도 슬슬 저녁 먹을 때가 되었던데다가, 부엌에서 얘기중이었던지라 음식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음. 저녁 하던 중이었나보네? 맛있는 냄새 난다.”

       “학생 손님이 오늘 돌아온다구 해서, 아지(あじ; 전갱이)구이랑 너비아니를 해놓았지요!” 

       “오……”

       “저녁상 차려올테니깐 방에서 기다리셔요.”

       

       나는, “피! 기껏 사다가 남 입에 들어가라구 해논 고기반찬이 아닌데……” 하고 중얼거리는 함서주를 뒤로 하고 부엌에서 나왔다. 

       

       구두를 벗고 방에 들어서자 송병오가 물어왔다.

       

       “어떻게 되었나?”

       “며칠 지내도 된대.”

       “허어, 고맙네! 실은 내가 전번에도 무전취식으로 신세를 진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형편이 이래 놓아서…… 내 형편이 피면은 신세를 꼬옥 값겠다고 좀 전해 주게.”

       

       역시 천성이 뻔뻔하고 나쁜 녀석은 아니다.

       

       “뭐, 밥값은 내가 대신 내주기로 했으니까 너무 신경쓰진 말고. 아, 맞다.”

       

       나는 송병오에게 물어보았다. 

       

       “그나저나 아까 강 형사가 늑대 어쩌고 하던데. 무슨 경찰들끼리의 은어같은 거야?”

       

       아까 강 형사와 순사가 늑대 얘기를 했던 것이 내심 궁금했던 것이다. 송병오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글쎄, 늑대가 늑대지, 무어 별 뜻이 있겠나?”

       “뭐? 아까 얼핏 들어보니 북한산 쪽에서 나왔다는데, 진짜로 늑대가 있어?”

       “왜, 종종 있잖은가? 신문에도 나오고…… 아니, 자네는 늑대 우는 소리도 못 들어봤나?”

       “어……”

       

       아닌게 아니라, 밤마다 종종 아우- 하는 하울링 소리가 들렸었다. 그냥 막연히 들개들이 우는 소리라고 생각했었는데…… 

       

       ‘늑대였다고?’

       

       하긴, 지금의 경성은 21세기의 서울에 비하면 무척이나 좁다. 미래에는 도심 속의 공원이 되는 곳은 이 때만 해도 으슥한 야산이었던 것이다. 

       

       ‘아니, 그래도 경성에까지 늑대가 나온다고?’

       

       내가 알기로, 일제가 해수구제사업을 하면서 야생동물은 거의 절멸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 해수구제사업이었나? 그것 때문에 다 절멸된 것 아니었어?”

       “허어! 자네, 이런 쪽으론 아주 무지렁이로군!”

       

       녀석은 안경을 올리며 설명했다.

       

       “그래 조선 땅에서 호랑이나 표범은 거의 멸종했지마는, 호랑이 없는 곳에 여우가 왕 노릇한다더니 오히려 늑대의 수는 늘었잖은가. 시골에서는 꽤나 골치가 아프다더군!”

       

       그렇구나. 하지만 궁금한 것은 또 있었다.

       

       “근데 왜 경찰이 관여하지? 엽사가 출동하면 될 일 아니야?”

       “자네도, 차암! 자네가 전문 엽사라면은 이런 일에 나서겠나? 넓은 산에서 야생동물 한 마리 찾는 것은 시간만 오래 걸릴 뿐더러, 잡아봤자 포상금 몇 푼이나 된다고, 그래 엽사가 그걸 잡겠누?”

       

       하긴, 21세기에서도 가끔 멧돼지나 반달곰 같은 것이 민가에 출몰해도 경찰이나 소방대가 잡으면 잡았지 헌터가 그걸 잡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어지간한 헌터들은 몸 망가져가며 게이트에서 몬스터를 사냥해도 장비값이며 아이템 값 맞추기도 빠듯한데, 돈도 안 되는 야생동물을 산을 뒤지면서까지 잡을 시간이 어디에 있겠는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송병오는 말을 이었다.

       

       “게다가 경찰도 엽사한테 도움받았다는 소리는 듣기 싫어하니, 아득바득 경찰이 잡는 것이지.”

       

       그러고보니 전에 봤을 때도, 시마즈구미를 비롯한 엽사조합과 경찰은 서로 사이가 안 좋아보였다. 저번 하수구 모찌넨도 사태 때는 어쩔 수 없이 시마즈구미의 도움을 받았다지만, 어지간하면 서로 공조하지 않는 것이다.

       

       “상 차려왔어요.”

       

       때마침 함서주가 문을 열고 밥상을 내어 왔다. 나는 상을 내려놓을 수 있게 방바닥 한 켠으로 물러앉으며 말했다.

       

       “오. 잘 먹을게.”

       “네에! 많이 드셔요! 더 있으니깐요, 모잘르면 말씀하시구……”

       

       송병오 역시 상을 받아들고는,

       

       “허어! 저번에도 그랬다지만 요번에도 고기반찬인가? 내 동무를 잘 두어서 호강을 다 하고…… 참, 감사히 먹겠네그려.”

       “그러셔요.”

       

       밥상을 내려놓은 함서주는 송병오에게 한 번 눈을 흘기며 일어서고, 그런 눈초리도 모르는 채 송병오는 숟가락을 들며 다시 입을 열었다.

       

       “헌데 이번에는 그 늑대란 놈이 꽤나 영리한 녀석인 모양이야! 경찰이 인력이 모자라서, 사상범죄자를 잡아야할 강 형사까지 동원되다니…… 제기랄! 강 형사 그 놈도 늑대한테 콱 물려서 가버리면 좋겠네그려!”

       “원, 듣던 중에 안경학생 분도 참 옳은 말 하셨네요!”

       

       송병오를 흘겨보고 방을 나서려던 함서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러면 여간 좋겠어요! 툭하면 울 아부지 못살게 구는 고 놈만 아녔어두, 울 아부지랑 제가 이렇게는 안 사는 건데!  귀신이든 늑대든 고 놈 하나 안 잡아갈런지……”

       

       공공의 적이라는 것일까? 송병오는 강 형사가 사상범을 잡아들이는 것 때문에 싫어했고, 함서주는 강 형사가 아버지를 괴롭히는 것 때문에 싫어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이유로 강 형사를 욕하는 둘의 모습을 보던 나는, 조용히 수저로 밥을 퍼먹으며 생각했다.

       

       ‘친일 행적 때문에 싫어하진 않아서 다행이네……’

       

       

       

       ***

       

       

       

       “여 보소, 인력거! 거기 서 보오!”

       

       어스름한 시간, 일요일인 오늘도 어김없이 경성 부내에서 손님을 태워다주고 빈 인력거를 끌던 함원삼이 정릉 주변을 지날 즈음이었다.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함원삼이 돌아보니, 배 나오고 양복을 차려입은 살진 중년 남자였다. 중년 남자의 곁에는 딸 뻘로 보이는, 회색 머리칼의 여학생 한 명도 함께 서 있었다. 

       

       “예, 예! 어디루 가시렵니까요?”

       

       함원삼이 인력거를 끌고 다가가 묻자, 중년 남자는 곁에 선 여학생을 돌아보며 말했다. 

       

       “음…… 그래, 아까 어딜 가쟀더라? 북한산? 네가 말하는대로 가지!”

       

       그렇게 묻는 중년 남자의 번들거리는 눈길이 여학생의 몸매를 끈적하게 훑었다. 그런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학생이 대답했다. 

       

       “북한산이 아니라 저기 성북정에, 북악산 올라가는 길요!”

       “그래, 북악산. 북악산…… 거기가 네 집인 모양이야?”

       “호호! 설마하니 거기가 집이겠어요? 놀러 가자는 뜻이지요!”

       “흐흐…… 하기사, 북한산은 뭔 늑대가 나온다고 경찰이 쫙 깔렸다니깐, 밤놀이 하기는 글렀지!…… 그래 인력거꾼 양반, 북악산까지 안 가겠소?”

       

       함원삼은 머릿속으로 셈을 하여 보았다.

       

       본래 시간도 늦고, 오늘은 이만하면 벌이는 되었다고 생각해 슬슬 집으로 돌아갈 셈이었지만, 북악산이라면 그의 집이 있는 돈암정에서 어차피 한 10여 분이면 가는 길이었으니 그리 멀지 않았다. 함원삼은 흔쾌히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웨 안가겠습니까요? 어서 타십쇼!”

       

       인력거는 손님을 태우고 달리기 시작했다. 함원삼은 힐끗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기실, 보려고 본 것이 아니라, 하도 눈꼴시려워서, 대체 이 오밤중에 뭘 하는 년놈들인가, 하고 눈이 갔을 뿐이었다.

       

       “으흠!”

       “아이, 앙큼해라! 차암, 어딜 만져요?”

       “흐흐, 이 년아! 사내는 다아 한 마리 늑대야! 응? 계집이 날때부텀 여우인 것 모양으로……”

       “호호!…… 늑대요? 진짜 늑대를 보신 적은 있어요?”

       

       함원삼이 보기에, 부녀인 줄 알았던 중년과 여학생은,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그렇고 그런 사이인 것이 분명했다.  

       

       양복 걸친 중년은 딸 뻘이나 되어보이는 여학생의 교복 밑으로 드러난 몸매를 연신 끈적하게 바라보면서, 팔뚝이며 허벅지를 손으로 훑었는데, 중년 사내가 이런 위인이라면 이 여학생이라는 것은 또 어떠한가.

       

       검은 세라를 입은 회색 머리의 여학생은 딸 함서주보다 몇 살 더 많아보이지도 않았는데, 아마 그의 집에서 하숙을 하는 학생양반과 비슷한 나이의 여학생인 것으로 보였다.

       

       아니면, 그저 유행하듯이 여학생 교복을 걸친 작부일지도 모르고 말이다. 어두운 중에도 ‘루주’를 어찌나 발랐는지 입술이 새빨간 것이, 마치 쥐라도 잡아먹은 것 같다고 함원삼은 생각하였다. 

       

       “인력거꾼 양반! 저기, 저 쪽에다가 내려 주세요!”

       

       두 손님은 북악산으로 들어가는 등산로 초입에서 내려 인력거 삯을 치뤘다. 함원삼은 야산으로 올라가는 둘을 뒤로 하고, 빈 인력거를 끌고 집이 있는 방향으로 돌아가며 생각했다. 

       

       ‘제기럴, 기껏 키운 딸자식년을 비싼 돈 주구 학교엘 보내면 무얼 하나? 저런 나부랭이랑 밤에 만나서 붙어먹기나 하지!’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는 함원삼의 뒤로 해가 지는 어스름한 시간,

       

       야산에 짙게 깔려가는 어둠 속에서 오늘도 또 한차례,

       

       아우-우-!

       

       늑대인지 개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우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원래 어제 연참했을 분량이지만 수정이 미흡했던고로 오늘 올립니당!

    오늘의 TMI……!
    늑대 얘기가 잠깐 나왔지요. 사실, 일제의 해수구제사업과 함께 한반도의 야생 늑대도 전부 소탕되었을 것 같지만, 작중 송병오의 말처럼 호랑이가 사라지며 오히려 잠시동안 늑대의 개체수는 늘기도 했었다고 하네요.

    이는 당시 해수구제사업에 참여했던 원정대장 야마모토 타다사부로(山本唯三郎)부터가,
    “늑대는 관심 없다. 조선 호랑이를 잡아없애야 한다. 호랑이를 잡는 것이야말로 남자 중의 남자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초창기의 해수구제사업은 호랑이 사냥에 주력했기 때문이었죠. 아마 트로피 사냥 심리도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지방에는 여전히 늑대가 자주 출몰했고, 심지어 1937년의 서울 북한산에서도 늑대가 내려와 아이를 잡아먹었다는 기사가 있더라고용.

    물론 해수구제사업은 일제강점기 내내 실시된 것이었던데다가 한반도의 맹수 중에선 늑대의 개체수가 가장 많았기에, 결국 사냥된 개체수는 늑대가 가장 많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모두들 맛난 저녁 드세용!

    다음화 보기


           


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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