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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5

       ​

        “자네 그게 무슨 소린가? 아직 반 시진밖에 하지 않았다네!”

        ​

        “그렇게 많이 지났습니까?” 

        ​

        “반 시진 정도는 더 할만하지 않나.”

        ​

        “죄송하지만 내공이 바닥을 치는 중이라서 말입니다.”

        ​

        “아쉽구나. 오랜만에 젊은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거늘.”

        ​

        비무에 너무 집중했던 탓인가. 

        ​

        그렇게 시간이 많이 지났을 줄이야. 나는 이마에 맺힌 땀을 소매로 훔치며 관중석을 둘러보았다. 손뼉을 치며 환호하는 사람들.

        ​

        나를 보며 눈을 빛내는 사람들.

        ​

        그리고…

        ​

        “…어린애가 따로 없네.”

        ​

        혜령이가 나를 향해 정신없이 손을 흔들어대는 것에 손을 흔들어 화답하고는, 다시 맹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여전히 웃는 낯으로 내게 말했다.

        ​

        “자네 이제 정말 바빠지겠군.”

        ​

        “몰래 투서라도 할 걸 그랬습니다.”

        ​

        “그럼 자네가 말한 대로 나한테까지 서찰이 오지 않았을 걸세. 자네의 말이 맞다면 말이야.”

        ​

        “잘 읽어보시고 알아서 판단하시면 됩니다. 그래도 마교지부 몇 개를 털어가면서 구한 물건이니 어지간해서 틀릴 일은 없을 겁니다.”

        ​

        이러고도 맹주가 암살당하면 그건 맹주 잘못이리라.

        ​

        나는 최선을 다했으니까. 

        ​

        …뭐, 애초에 저 뒤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총군사를 보면 그럴 일도 없을 것 같긴 하지만.

        ​

        “빠르게 움직이시는 게 좋을 겁니다.”

        ​

        “알고 있네. 하지만 그런 것보다 자네, 무림맹에서 일하지 않겠나? 자네를 위해 부대 하나 정도는 만들어줄 수 있네.”

        ​

        “말씀은 감사하지만…지금은 안 됩니다. 할 일이 있으니.”

        ​

        “흠, 그런 직함 하나 정도는 줌세.”

        ​

        “…그래도 되는 겁니까?”

        ​

        내가 무림맹에서 딱히 활동을 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막 줘도 되나. 내가 떨떠름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자, 맹주는 킬킬대며 말했다.

        ​

        “신경 쓰지 말게. 자네 하나 붙잡는 걸로 이 정도면 싼값이니. 어차피 자네는…마교를 적대하고 있지 않나? 그것만으로도 무림맹의 지원을 받을 이유는 충분하네.”

        ​

        무림맹 입장에선 마교를 상대할 고수가 하나라도 더 많으면 좋다 이건가. 당장 해남검문이 습격당하고, 무림맹 주변에 숨겨져 있단 마교지부들이 드러났으니 무림맹도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할 터.

        ​

        무림맹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훨씬 수월해지는 거기는 한데.

        ​

        이제 와서 강제로 원작 흐름에 세상이 맞춰지는 게 아니면 마교의 전력은 눈에 띄게 약해진 상태일 터.

        ​

        상황 자체는 충분히 우리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으니, 착실히 전쟁을 준비하면서 약해진 마교의 전력을 더 깎아내면 되리라.

        ​

        가능하면 마교의 주전력이 중원에 들어오기도 전에 섬멸하는 게 가장 좋긴 하겠지만…그건 힘들다고 봐야지.

        ​

        그놈들이 쉽게 만날 수 있는 놈들도 아니고.

        ​

        “감사히 받겠습니다.”

        ​

        “나흘 후에 집무실로 오게나.”

        ​

        “알겠습니다.”

        ​

        “그럼 조금 아쉽지만…일을 하러 가야겠네. 나중에 시간 나면 또 비무하세.”

        ​

        맹주는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로 등을 돌렸다. 나도 똑같이 등을 돌려 비무장을 빠져나왔다.

        ​

        ————————–

        ​

        “아저씨! 대단했어요! 맹주님이랑 비등하게 싸우다니!”

        ​

        “비등은 무슨. 맹주님이 봐주신 거지.”

        ​

        잘 쳐줘도 7할 정도 뽑아낸 것 같은데. 

        ​

        근본적인 오러의 양이 워낙 차이가 나다 보니, 오러아머를 믿고 들이대는 돌격도 잘 통하지 않고, 배워둔 무공이 워낙 많다 보니 변칙적인 공격도 쉽게 대응하고.

        ​

        맹주가 괜히 맹주가 아니라는 걸 몸소 체감했다.

        ​

        그렇기에, 나는 더 강해질 필요성을 느꼈다. 

        ​

        “그래도 정말 대단한 비무였습니다. 제 평생 그런 비무를 다시 볼 일이나 있을지…”

        ​

        “그 정도는 아니야.”

        ​

        비무는 어디까지나 실전을 가장한 연습.

        ​

        실전에 비하면 초라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비무라는 이름으로 온갖 사람들과 검을 섞을 수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제도이긴 하지만.

        ​

        생각해보면 이게 정파의 장점이기도 하지.

        ​

        딱히 중심이 되는 세력이 없는 사파는 말할 것도 없고, 마교는 애초에 기승전 생사결로 꼬라박는 게 일상인 놈들이고.

        ​

        피를 흘리지 않고 무공 수련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는 점이 정파의 강함을 유지하는 이유 중 하나겠지.

        ​

        “아저씨, 이제 뭐 할 거예요?”

       

        “일단 힘드니까 쉰다. 그리고 나흘 후에 맹주님이랑 잠시 이야기 좀 하고…운남으로 가야지.”

        ​

        “운남이요?”

       

        “얘 고향. 슬슬…단서를 찾아야지.”

        ​

        단서라기보단 목경이 숙부가 묻힌 곳에 들르는 거랑, 운남단가의 비동에 데려다주는 것. 

       

       그리고…운남단가를 몰살시킨 표면적인 원흉을 족쳐서 진짜 단서를 찾아내는 것.

        ​

        원작대로라면 마교가 모종의 이유로 운남단가를 몰살했으니, 그 이유가 원작과 같은지 확인해보는 작업이 되겠지.

        ​

        원작과 같다면 이후 흐름도 비슷하게 갈 테고, 

        ​

        “그렇게 서두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군자의 복수는 10년을 가도 늦지 않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

        “아니. 오히려 서둘러야 해. 시간이 더 지체되면…단서고 뭐고 증발해버릴 수 있으니까.”

        ​

        괜히 여유롭다고 밍기적대다가 핏물에 단서가 전부 씻겨나가 버리면…운남단가의 일은 오리무중에 빠질 터. 

        ​

        목경이에게 약속한 입장에서 그런 미래가 뻔히 보이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

        “…은공…”

        ​

        목경이가 드물게 감동받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얼굴도 예쁜 애가 저러니까 쳐다보기 부담스럽네.

        ​

        내 볼을 찌르는 시선에 슬쩍 눈을 돌려 혜령이를 쳐다보니, 혜령이는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나와 목경이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

        신경 쓰이지만 뭔가 하기는 좀 그런 상황이라는 건가.

        ​

        “그러니까 목경아 혜령아, 둘 다 떠날 준비는 미리 해둬라.”

        ​

        그리고 슬슬 괜찮은 말을 찾아볼까. 

        ​

        이제 말 산다고 쪼들릴 재력도 아닌 데다, 결국 장거리 이동은 경공보다는 말이 더 유리하니까. 

        ​

        어디서 좋은 말을 구할 수 있는지도 알아봐야지.

        ​

        “네!”

       

        “알겠습니다.”

        ​

        “그럼 슬슬 해남관으로 돌아갈까.”

        ​

        땀도 흘렸으니 좀 씻어야지. 

        ​

        우리는 곧장 해남관으로 향했다. 해남관으로 가는 동안 무수한 시선을 받았지만, 딱히 내게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

        말을 걸기가 부담스러워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내 양옆에 있는 애들 때문일까. 나는 내 손을 잡고 걷고 있는 혜령이를 내려다보았다. 

        ​

        묘하게 앳된 티가 나는 폭력적인 몸매의 혜령이는 내 시선이 느껴지자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배시시 웃었다. 

        ​

        “헤헤. 아저씨, 제 얼굴이 보고 싶었던 거예요?”

       

        “뭐…그렇지.”

        ​

        내 말이 끝나자마자 혜령이와의 거리가 줄어들었다. 가슴이 내 팔을 지긋이 누를 정도로. 사람이 많은 곳에서 꼭 그런 행동을 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서도 나쁜 일은 아니니라.

        ​

        감성적으로도, 실리적으로도.

        ​

        최소한 이런저런 이유로 나를 노리는 여자들의 마수는 덜 뻗쳐올 테니까.

        ​

        혜령이가 어디 밀리는 신분…이긴 한가?

        ​

        오대세가의 영애 같은 부류들보다는 아무래도 좀 모자란 부분이 있기는 하니.

        ​

        “아저씨 정말 좋아요.”

        ​

        “그래그래.”

        ​

        “아저씨 지금 부끄러워하는 거예요?”

        ​

        “아닌데.”

        ​

        “에이, 맞네요.”

        ​

        그렇게 잡담을 나누며 해남관으로 돌아오니, 백장로가 우릴 마중 나왔다.

        ​

        “어서 오게나. 비무는 잘 봤다네. 자네…정말 대단하군.”

        ​

        “과찬입니다.”

       

        “이게 과찬이면 환골탈태 정도는 해야 과찬이 아니게 되는 건가? 겸손할 필요 없네. 자네 나이에 초절정고수가 된 건 무림 역사를 따져봐도 매우 드문 일이니. 

        ​

        어찌 보면 자네가 후기지수를 넘어 대종사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 볼 수도 있다네. 우리 해남검문의 개파조사처럼 말일세.”

        ​

        개파조사…라.

        ​

        내가 여기서 사람들 모아서 아츠를 가르치면 문파를 만들게 되는 거나 다름없나. 문파의 문주가 된 나를 상상해보니, 굉장히 귀찮고 번거로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

        나는 그냥 편하게 살고 싶은데 굳이 귀찮은 일을 할 필요는 없지. 아츠를 가르치더라도 자식이든, 아니면 쓸만한 제자를 찾아서 키우든 하는 게 나을 테니까.

        ​

        “딱히 문파를 만들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

        “그냥 해본 소리니 괘념치 말게나.”

        ​

        “그나저나, 다른 사람들은 어디 갔습니까?”

       

        오늘따라 해남관이 조용하네. 기합 소리든, 아니면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소리든 나름 사람 사는 소리 들리는 곳이 해남관이었는데.

        ​

        “자네 비무를 보고 자극을 받은 건지, 다들 비무장 사용신청서를 작성하러 본관에 갔다네.”

        ​

        “아.”

        ​

        그렇구만.

        ​

        “같은 나이에 이리 높은 성취를 이룩한 자가 있는데 어찌 편하게 쉴 수 있겠나?”

        ​

        “그렇군요.”

        ​

        “아, 내가 피곤한 사람을 너무 세워뒀군. 들어가서 푹 쉬게나.”

        ​

        “그럼 수고하십시오.”

        ​

        “내일 봅세.”

        ​

        우리는 곧장 방으로 향했다.

        ​

        —————-

        ​

        “위 대협?”

        ​

        “음? 무슨 일입니까?”

        ​

        “그,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

        “손님?”

        ​

        어제오늘 손님이라는 울림에 좋은 의미가 있었던 적이 없었는데.

        ​

        나는 근 이틀 동안 찾아온 손님 중에 귀찮지 않은 손님이 없었는데.

        ​

        괜히 여자들이랑 어색하게 눈치싸움 하기도 그렇고.

        ​

        …가장 큰 건 혜령이 심기만 쓸데없이 불편해지는 거지만.

        ​

        일단 생각 없으니까 가라고 말은 했는데 귀찮게 구는 사람들이 왜 이리 많은지.

        ​

        “이번엔 누구입니까?”

        ​

        “그게…서련 소저입니다.”

        ​

        응?

        ​

        예상치 못한 인물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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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소설 속 중세기사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two years of being reincarnated as a medieval knight, he finally realizes that he's been reincarnated into a martial arts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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