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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5

       “이게 뭐야…! 이거 왜 이렇게 복잡해!!”

       

       청사진을 본 프레이는 뜨악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저번에 도넛처럼 생긴 걸 만들어줬다가 한동안 힘들어서 죽는 줄 알았어!”

        “그런데?”

        “그런데는 무슨 그런데야?! 이건 그것보다 더 만들기 어렵게 생겼잖아! 이런 걸 마력 고갈 없이 연성하려면 한 달은 족히 걸린다구!”

       

        안 그래도 토카막을 만들 때 마력 고갈로 힘들어하던 프레이였다. 마력초를 물어가며 어떻게든 만드는 데 성공하기는 했지만, 그걸 카샤에게 줘 버렸으니…. 이러나저러나 프레이에겐 미안한 일이 되었다.

       

        눈앞의 과업에 매몰되어 하스펠트 교수처럼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번 일은 나는 물론이요, 프레이에게도 이익이 돌아가야 한다.

       

        “괜찮아. 이번에는 천천히 만들어도 되니까.”

        “…진짜로?”

        “진짜로.”

       

        프레이는 명랑하고 톡톡 튀는 친구다. 반대로 말하자면, 어떤 부분에선 산만하다.

       

        물론 틸레트에 입학하였다는 것 자체가 집중력이 뛰어난 수재임을 방증한다. 그러나 반년이 넘는 동안 프레이를 보아온 나로서는 그녀가 자신이 싫어하는 일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분명 그런 친구일 텐데. 지금 불평불만을 내뱉고는 있어도 그만두겠다는 소리는 하지 않고 있다.

       

        “그래도 이것만 완성하면 요호족은 바보뿐이라는 사람들의 편견을 조금이나마 지울 수 있을 거야…. 헤헤.”

       

        로테와 마찬가지로 프레이에게도 핵무기의 제조 계획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폭탄을 조제하여 마수를 섬멸하고 세상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다는 계획 말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없겠지만, 이 꼬맹이는 남은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프레이는 종족의 부흥을 위해 신분을 숨기고 틸레트에 들어왔다. 자신이 속한 요호족의 부흥을 위해서라면 제 한 몸 불사를 수 있는 친구였다. 

       

        그동안 인간과 수인 사이에서 감정이 골이 깊었다. 마왕군이 출현하기 전에는 수인족이 마물이라고 불렸다는 기록도 있다. 그야 그렇겠지. 눈동자 색이 동떨어졌다는 이유만으로도 차별하던 게 인간인데.

       

        아니, 인간만 그런 건 아닌가? 수인이건 엘프건, 다른 종족을 싫어하는 건 그 종족의 본능이었으니.

       

        서로가 서로를 박해하고, 서로가 서로를 미워했다. 마수가 대륙 3분의 1을 먹어치운 지금에 이르러서는 많이 얕아졌지만, 여전히 차별할 사람은 차별한다.

       

        그런 상황에서 프레이는 인간을 적대하지 않았다.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깔보지도 않았다.

       

        종족의 차이를 넘어 평등한 세상을 만든다. 헤를라인 선생님이 장래계획을 적으라고 했을 때 프레이가 써서 낸 답변이었다.

       

        “너와 나, 로테 셋이서 이걸 완성하는 거야! 이게 마수와의 전쟁에서 이기는 키포인트가 된다면 너도 좋고 로테도 좋고, 나도 좋겠지! 나중에 사람들이 두고두고 말해줄지도 몰라! 우리 종족도 사실 착하고 위대했다는 걸 말이야!”

        “그래. 그러니까 이거나 한번 만들어 볼까?”

        “어어우…. 너 그러니까 악덕 교수님 같아.”

        “말이 심하네.”

       

        쓴웃음을 지으며 프레이에게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내밀었다.

       

        “싸구려 믹스 커피이긴 한데, 이것만큼 가성비 좋은 것도 없다니까.”

        “난 오히려 이게 좋아! 블랙은 뭐 하러 먹는 건지 모르겠어.”

       

        향도 즐길 여유는 없다. 오로지 카페인 섭취를 위한 것이었으니 주스처럼 마셔야 한다.

       

        커피로 입가심을 한 뒤 프레이에게 담배를 물려주었다. ‘골든슈타인’은 아니다. 시장 어디에서나 볼 법한, 평범한 품종에서 추출한 마력초다.

       

        쌉싸름한 연초의 맛을 음미하며 우리는 청사진과 마석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동체가 되는 철괴나 티타늄은 박물관에서 가져왔으니 부족하지는 않을 거야.”

        “아니, 밀도 재구축을 생각하면 가져온 것만으로는 부족할지도 몰라.”

        “밀도 재구축이라니?”

        “가능하면 단단하게 만들어야 할 거 아니야? 이것 봐. 높이가 5미터에 가까운데 단단함까지 유지하려면 재료를 잘게 갈아서 압축하는 작업도 필요해. 당연히 마력도 많이 쓰이고, 철괴도 많이 들어가겠지.”

        “그렇게 보니까 조금 모자란 것 같기도 하고….”

       

        나는 프레이와 조금 더 논의한 후에 일단 뼈대만 만들어보기로 하였다.

       

        ‘폭약’을 탑재할 내부구조와는 달리 외피는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다. 그만큼 마력 소모도 덜 드는 것이 사실.

       

        그나마 연성술에 도가 튼 친구가 용광로 역할을 해 줘서 대신이다. 여기가 아케인펑크 세계관이 아니었더라면 모든 과정을 쌍욕하면서 진행해야 했겠지. 아니, 그 전에 핵무기를 혼자서 만들 엄두를 못 냈을 것이다.

       

        “좋았어. 이 정도면 오늘 뼈대 정도는 세울 수 있겠다.”

        “하는 김에 내부구조까지 끝낼래?”

        “아니?”

       

        괜히 우스갯소리를 해 보려고 했는데 프레이의 얼굴이 굳어지는 걸 보고는 그만뒀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부분은 바깥이 아니라 안쪽이다. 여러 마석을 장치해야 하고, 스크롤에서 하는 것처럼 많은 회로를 연결해야 한다. 거기에 폭약도 싣고, 이것저것….

       

        생각해 보면 지구에서 원자폭탄의 제조법은 기밀이다. 그러나 이런 걸 왜 내가 알고 있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에테르는 최소한 마왕이 거병했던 시절부터 살았다. 마왕이 봉인된 것이 천 년 전이었으니까…. 흐음. 말을 말자.

       

        ‘나’는 그동안 밥만 먹고 연구한 몸이었다. 이런 걸 알고 있어도 무리는 아니지. 

       

        “그러면 잘 하고 있어. 한눈 팔지 말고.”

        “안 팔거든?”

       

        연성진도 없이 연성식을 짜내는 프레이를 뒤로한 채 로테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로테는 머리를 싸맨 채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중이었다.

       

        “어, 왔어? 이거 되게 어렵네…….”

       

        로테가 보고 있는 것은 백야의 미완성 스크롤.

       

        백야 자체를 완성하려는 게 목적은 아니다. 이건 에테르의 지식을 빌려도 꽤 시간이 걸린다.

       

        대신 이미 만들어진 부분을 해석하고 로테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가능하다.

       

        “이것 좀 도와줘.” 

        “어디 보자….”

       

        나는 맞은편 의자에 앉아 백야의 개화부를 들여다보았다.

       

        스크롤의 접합부에는 총 2n^2개의 탄젠트 라인이 존재한다. 여기서 n은 1, 2, 3… 등의 자연수다. 백야는 보통의 스크롤과는 달리 접합점이 부정상수의 형태로 기술된다. 이는 n차원 복소정방행렬이 가질 수 있는 독립변인의 수와 일치한다.

       

        “저기…. 에테르?”

         

        잠시 생각에 잠긴 내가 입을 열었다.

       

        “잘 들어봐, 로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좌표로 기술할 수 있어. 이건 중등부 과정이니까 문제없지?”

       

        로테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이 좌표를 우리는 벡터로 표현할 수 있을 거야. 선형대수에서 벡터는 행 또는 열로 이루어진 튜플로 표현하지. 그리고 여기에 우리 멋대로 크기가 맞는 행렬 하나를 왼쪽에서 곱해줄 수 있어. 이 과정을 뭐라고 부르더라?”

        “변환이야.”

        “맞아. 행렬을 곱한 좌표는 다른 좌표로 ‘변환’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지. 그럼 여기서 질문 하나 해 보자. 만약 좌표가 두 개 있어. 이 두 좌표 사이의 거리를 정의할 수 있겠지?”

       

        이번에도 로테는 고개를 주억거린다. 이 또한 이해했다는 뜻이다.

       

        “여기서 질문 하나 해 보자. 두 점 사이의 거리가 좌표 변환에 무관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는 안 되지 않을까?”

        “그렇겠지. 하지만 내가 그런 조건을 강제로 부여한다면?”

        “그 행렬에 어떤 제약이 붙겠네.”

        “오…. 맞아.”

       

        내가 생각하기에도 로테는 천재다. 여기까지 무리 없이 따라오다니.

       

        아카데미 1학년생이면 아직 선형대수도 제대로 안 배웠을 텐데. 하나를 알려주면 두 가지를 알아낸다. 이것은 지난 6개월 동안 진행한 과외의 성과이기도 했지만, 로테 혼자서 그동안 공부한 것에 대한 내공이 쌓여 나타난 결과이기도 했다.

       

        “그러면 그 행렬들을 모아놓은 집합을 생각할 수 있겠다, 그렇지?”

        “응.”

        “잠깐 그걸 유도해보자.”

       

        나는 그러한 특성을 가진 행렬의 조건을 기술한 뒤, 몇 가지 성질을 증명해주고 구체적인 형태를 보여줬다. 로테는 내 설명을 막힘 없이 따라왔다. 

       

        “이제 스크롤을 다시 봐봐.”

        “어…. 잠깐.”

       

        내가 휘갈긴 수식과 스크롤을 번갈아 보던 로테는 무언가를 알아냈다는 듯 감탄을 흘렸다.

       

        “여기 있는 걸 기하학적으로 만든 게 이 스크롤이었어!”

        “맞아.”

        “이래서 수학책이랑 관련 논문만 잔뜩 빌려온 거구나…!”

       

        신기해하는 로테를 보며 나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마치 과거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학부생에서 석박통합 1년 차로 올라가던 사이에 나는 수학을 정말 많이 공부했다. 그 과정에서 이론 물리에 발을 담갔다가 익사할 뻔한 전적도 있었다. 그때 배웠던 것 중에서 의미 있는 경험이 방금 로테에게 가르쳐준 것이다.

       

        당시 나는 대학원 과정의 물리수학 과목을 들었었는데, 그때 날 가르치던 교수님께서는 특수상대성이론을 물리적 직관 하나 없이 오직 수학만으로 유도해내는 방법을 보여주셨다. 그 모습을 처음 봤을 땐 입이 떡 벌어졌었는데.

       

        지금 로테가 딱 그런 모양새다. 머지않아 전자기학도 수학만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겠지.

       

        거기까지 가려면 많은 작업을 거쳐야 한다. U(1) 대칭성까지 가려면 못해도 10시간은 논스톱으로 강의해야….

       

        “이거 신기하다! 그래서, 이쪽 부분도 비슷하게 설명하면 돼? 아니면 다른 변환이 필요한 걸까?”

       

        …해야겠지, 아마.

       

        로테가 날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본다. 어디서 많이 본 눈빛이다. 그래, 술집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눈동자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가끔 호기심이 식욕과 성욕, 심지어 수면욕까지 이겨버리는 사람을 마주치기도 한다. 로테가 딱 그런 부류였다. 전투마도를 위해 운동도 게을리 하지 않았던 로테의 체력은 반 아이들 중에서도 톱클래스였다.

       

        “네가 도와주니까 생각보다 쉬운데? 이 상태면 오늘 안에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못해도 일주일은 나눠서 설명을 해 줘야 개화부를…….”

        “한 10시간이면 되려나? 부탁할게. 질질 끌지 말고 오늘 안에 다 끝내버리자!” 

       

        그렇게 우리는 하루를 통째로 날려 먹었다. 그나마 끝나고 나오는 길에 프레이가 크고 우람한 폭탄의 뼈대를 다 만들어 놓은 덕분에 조금이나마 기분이 좋아졌다.

       

        어쨌든…. 꿀 같은 토요일은 이렇게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눈을 비비며 기숙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무언가를 놓쳤다는 생각이 들어 멈췄다.

       

        잠깐만.

       

        “아, 맞다. 버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조금 늦었지만… 조회수 200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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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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