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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숨을 죽였다.
아니,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소름이 너무나도 뾰족하게 돋아나 피부가 따끔거렸다.
팔다리는 얼어붙은 것처럼 굳어버렸고, 얼굴은 순식간에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두려움에 잠식된 나머지 몸 이곳저곳이 조금씩 고장 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젠장, 어떻게 하지?”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머리를 굴려보려는 내 애달픈 노력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애초에 머리 자체가 조금 멍했다.
두려웠다.
싸움이 두려운 것도 아니고, 내게 찾아올 죽음이 두려운 것 역시 아니었다.
문 한 장 너머에 있는 이들이 얼마나 강한 무력을 지녔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만약 일반인에 불과하다면 분명 그들은 내 손에 의해 갈가리 찢겨 죽을 것이라는 것,
그게 가장 두려웠다.
미쳐버렸던 내가 직접 이 두손으로 죽였던, 그 사람들의 얼굴들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 저택엔 몇 명의 사람이 있는 걸까.
내 방의 문고리를 덜컥거리는 저 둘 뿐인 걸까.
아니면 그 외에 다른 사람들이 1층에 더 남아있는 걸까.
마치 병원균처럼 퍼진 이 저주가 이미 멸망을 목전에 둔 이 세상에 마지막 종언을 전하는 도화선이 될지도 모른다.
그게 너무나 두려웠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일단 달아나 보기 위해 창가로 다가갔지만, 도저히 몸이 통과할 만한 크기의 창문은 아니었기에 별다른 의미는 없었다.
“야, 여기 왜 잠겨 있어?”
“몰라? 누가 들어갔다가 실수로 나올 때 문 잠갔나?”
“하 시발, 어떤 병신이 마지막에 들어갔었냐.”
“너 아니냐?”
“좆까. 새끼야. 열쇠 있어?”
“우리가 열쇠가 어딨어. 그냥 가자.”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목소리는 꽤 크고 거칠었다.
딱 봐도 그렇게 친절한 사람들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무래도 우리 저택을 차지한 건 꽤 거친 도적떼들임을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나는 숨을 죽이며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그냥 가라.
제발,
“아니, 근데 이 안에서 분명히 소리가 들렸다니까.”
“쥐나 뭐 그런 야생동물이겠지.”
“누가 숨어들어온 거면 어떻게 해? 여긴 우리 거처야. 애초에 누울 곳도 부족해서 여기다 가구 다 밀어 넣었던 거잖아. 다른 놈 들여보낼 여유 없어.”
“그럼 뭐 어쩌자고.”
“1층에서 도끼 가져와.”
“내가 네 부하냐? 네가 갔다 와 새끼야. 나 어디 있는 지 몰라.”
“… 헥스에게 도끼 있잖아. 빌려 와.”
“싫어, 이 문 열고 싶은 건 너니까 네가 가라. 나 헥스 걔랑 지금 좀 서먹해.”
“너 또, 뭐 했냐?”
“그저께 포커칠 때 사기 치다 걸렸어.”
“… 어휴, 시발. 그래 내가 갔다 온다, 넌 계속 이 문고리 잡아당기고 있어 봐.”
“알았다.”
나는 품속에서 단검을 꺼냈다.
아무래도 저들은 이 문을 열지 않고 넘어가 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대화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이 저택엔 꽤 많은 사람이 지내고도 있는 모양이었다.
결국 일을 크게 만들지 않기 위해선 남은 방법이 이것밖에 없었다.
나는 단검의 칼집을 벗기고 그 날카로운 날 끝을 내 목 끝에 가져다 대었다.
“애쉬! 그만해, 안돼!”
피아는 깜짝 놀라 물기 어린 목소리로 빽 고함을 질렀다.
“…읏,”
“나 때문이야, 미안해. 미안해애.”
“아니 괜찮아. 피아. 네 잘못 아니야.”
“아니야. 안돼, 안돼!”
“… 이 세상은 실비아랑 앨리스 누나가 어떻게든 해줄 거야. 그러니까 피아, 너는 내가 없어도 그 두사람을 잘 도와줘. 부탁할게.”
피아는 고개를 마구 저으며 단검을 치켜든 내 손을 붙잡아 내리려 했다.
“애쉬… 싫어, 싫어!”
“어쩔 수 없어…”
피아는 마구 고개를 젓다가 불현듯 무엇인가 떠올랐는지 눈을 땡그랗게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이내 곧, 더욱더 거세게 내 손목을 붙잡아 내리며 말하기 시작했다.
“그, 그렇지, 애쉬 죽으면…”
“…”
“애쉬 죽으며는, 시, 실비아가 숲 밖으로 나갈 거야!”
“…”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눈앞의 끔찍한 상황을 막아보려는 어린아이의 멋모르는 헛소리라고 치부하기엔, 그것은 꽤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다.
나는 이제 실비아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내가 사라진 걸 알면 그녀가 어떤 일을 일으키게 될까.
내가 숲 밖에 있다는 걸 알면 그녀가 어떤 일을 일으킬까.
‘마왕 따위는 알 바 아니라고… 용사 따위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더라.’
순간 앨리스 누나가 내게 해줬던 그 말이 떠올랐다.
마왕의 생존을 듣고도 신경 쓰지 않았다는 실비아의 모습.
“…”
과연, 실비아는 내가 없어도 이 세상을 지키기 위해 움직여줄까?
그런 내 의문에 대한 답이라도 하는 듯이, 피아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두 눈을 꼭 감으며 고개를 좌우로 마구 저었다.
“하, 하지만… 이대로는,”
“바, 방법이 있어. 할 수 있어!”
내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피아의 말이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쩌면, 정령 술 중에는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조금씩 살아나는 희망과 기대를 품고, 나는 피아에게 물었다.
“… 어떻게?”
“애쉬의… 물건, 애쉬의 손길이 많이 닿은 물건이 있으면 돼,”
“…?”
쾅!
문고리를 잡고 돌리던 사내는 슬슬 짜증이 치미는지 문짝을 발로 거세게 걷어차기 시작했다.
피아는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두 귀를 쫑긋 세우더니, 이내 곧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주문을 읊어 문 근처에 있던 커다란 책장을 옆으로 쓰러트렸다.
커다란 굉음과 함께 옆으로 넘어진 책장은 문을 틀어막았다.
문밖의 사내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더니 두려움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뭐, 뭐야, 안에 누구야!”
“피아,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
“애쉬, 애쉬의 추억이 가득 서린 물건…”
“… 물건?”
나는 두리번거렸다.
이곳은 내 방이다.
물론 실비아와 함께 오두막에서 사는 데 익숙해진 나였기에, 특정 물건에 애착을 갖지 않게 된 지는 꽤 되었으나, 적어도 이 방 안에는 아직 내가 애착을 가졌던 물건이 남아있을 게 분명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내 시선은 이내 곧 작은 서랍이 달린 내 책상에서 멈추었다.
그러나, 책상은 온갖 가구들에 밀리고 가려져 가장 안쪽에 박혀 있었다.
저 서랍 안에는 아직 무언가 남아있을지도 모르지만, 문제는 저 서랍을 열기 위해선 방 안을 가득 채운 이 가구들을 하나씩 빼야 한다는 점이었다.
“야! 빨리 와봐! 이 안에 진짜 누가 있긴 한가 봐!”
그리고, 내겐 그럴 시간이 없었다.
“우의 을,”
피아는 잠시 두 눈을 꼭 감고 그 자그마한 몸집을 부르르 떨었다.
피아의 몸집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보였다.
“피아?”
이내 곧, 원래의 반절 정도의 크기로 몸집이 줄어든 피아는 그대로 양손을 땅바닥에 짚더니 처음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었던 그 여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여우의 형상이 된 피아는 가득 쌓여있는 가구를 요리조리 피해 가며 가장 안쪽에 박혀있는 내 책상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는 짐승의 앞발을 들어 서툰 동작으로 서랍을 열어 그 안의 물건들을 입으로 한 움큼 물었다.
아버지께서 사주셨던 작은 만년필,
망가졌지만 누나와 함께 누워 들었던 추억 때문에 차마 버리지 못했던 오래된 오르골,
어머니께서 털실로 만들어주셨던 자그마한 털장갑 등.
한번 눈에 스친 것만으로도 그에 얽힌 추억을 줄줄 읊어댈 수 있는, 그런 추억이 서린 물건들이 피아의 입안에 한 아름 물려있었다.
피아는 입에 가득 찬 물건들을 그대로 문 채 고개를 치켜들었다.
“… 피아?”
피아는 그 물건들을 조금씩 삼키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도끼 가져왔네, 이것 좀 열어봐, 단단히 막혀있는데.”
“발로 차는 걸로는 안 열리나 봐?”
“방금 큰 소리 나면서 뭐가 문 앞을 막았어. 네 말대로 진짜 누가 있나 봐.”
나는 이를 악물고, 가구들 틈 사이로 팔을 집어넣어 내 침대 위에 놓인 이불을 간신히 붙잡았다
내게 실비아의 저주가 옳았던 그날을 떠올려보면, 이 저주가 발동되는 조건이 얼굴, 혹은 눈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저들이 들어오거나, 혹은 도끼로 쪼갠 문틈 사이로 나를 목격하더라도 일단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면 몇초라도 벌 수 있을 테니,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손끝에 닿은 이불을 확 잡아당겼다.
방 안의 사방으로 뽀얀 먼지가 퍼져나갔다.
나는 기침을 하면서도 바닥에 납작 엎드려 먼지투성이의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 순간, 어느새 물건을 모두 삼킨 피아가 다가와 내가 뒤집어쓴 이불 아래로 몸을 비집고 들어왔다.
“야! 안에 있다! 누가 있어!”
“뭐야, 다, 당신 누구야!”
“내가 다른 사람들 불러올게!”
사내들은 도끼에 의해 쪼개진 나뭇결 사이로 이불을 뒤집어쓴 나를 보고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 큰 소음처럼, 그들은 더욱더 세게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도끼로 문고리를 부수고 어깨로 문을 힘껏 밀어내자, 문 앞을 막아둔 책장도 천천히 밀려나기 시작했다.
“피아! 아직 멀었어?!”
“크릉,”
피아는 내게 몸을 꼭 붙이더니 그 작은 몸집을 부르르 떨었다.
나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나와 피아를 덮어 가려준 그 얇은 천 하나를 단단히 틀어쥐었다.
“으읏차!”
사내의 기합 소리와 함께, 문 앞을 막고 있던 책장이 쓰러졌다.
그리고 방 안으로 들어오는 사내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어떤 쥐새끼인지 어디 얼굴 좀 볼까!”
“피아!”
억센 손길에 의해 나를 덮은 이불이 확 걷어졌다.
나는 바닥에 엎드린 채 얼굴을 두 팔로 얼굴을 감싸 가렸다.
사내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미 늦은 건가.
저주가 발동되어 버린 것인가.
절망이 온몸을 뒤덮었다.
그때였다.
“애쉬… 지금 뭐 하는 거야?”
실비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실비아?”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실비아는 나를 덮은 이불을 든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애쉬가 갑자기 사라져서 찾으러 가려던 참이었는데… 이걸 뒤집어쓰고 있었구나… 음? 아까는 왜 못 봤지? 아니 그보다, 이 이불은 또 어디서 난 거야?”
“…”
나는 이마에 줄줄 흐르는 식은땀을 손으로 쓸어내며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내 아래엔 어느새 여자아이의 형상으로 돌아온 피아가 거친 숨을 내쉬며 누워있었다.
“세상에, 애쉬 땀 좀 봐. 뭐 하고 있었어?”
“허… 하아…”
오두막.
내가 만든 그 엉터리 오두막이었다.
아무래도 피아가 성공한 모양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대로 뒤로 넘어지듯 주저 앉았다.
“애쉬?”
“실비아 …이불 구해왔어.”
.
이불을 들쳐보니 땀을 뻘뻘 흘리며 엎드려 있는 남자친구와 그 밑에 여섯살짜리 여자아이가 거친 숨을 내쉬며…
실비아가 정령을 못봐서 망정이지 봤으면 큰일 날뻔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