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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5

       *

        나는 숨을 죽였다.

        ​

        아니,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

        소름이 너무나도 뾰족하게 돋아나 피부가 따끔거렸다.

        ​

        팔다리는 얼어붙은 것처럼 굳어버렸고, 얼굴은 순식간에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

        두려움에 잠식된 나머지 몸 이곳저곳이 조금씩 고장 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

        ​

        ​

        “…젠장, 어떻게 하지?”

        ​

        ​

        ​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머리를 굴려보려는 내 애달픈 노력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

        애초에 머리 자체가 조금 멍했다.

        ​

        두려웠다.

        ​

        싸움이 두려운 것도 아니고, 내게 찾아올 죽음이 두려운 것 역시 아니었다.

        ​

        문 한 장 너머에 있는 이들이 얼마나 강한 무력을 지녔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만약 일반인에 불과하다면 분명 그들은 내 손에 의해 갈가리 찢겨 죽을 것이라는 것,

        ​

        그게 가장 두려웠다.

        ​

        미쳐버렸던 내가 직접 이 두손으로 죽였던, 그 사람들의 얼굴들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

        이 저택엔 몇 명의 사람이 있는 걸까.

        ​

        내 방의 문고리를 덜컥거리는 저 둘 뿐인 걸까.

        ​

        아니면 그 외에 다른 사람들이 1층에 더 남아있는 걸까.

        ​

        마치 병원균처럼 퍼진 이 저주가 이미 멸망을 목전에 둔 이 세상에 마지막 종언을 전하는 도화선이 될지도 모른다.

        ​

        그게 너무나 두려웠다.

        ​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

        일단 달아나 보기 위해 창가로 다가갔지만, 도저히 몸이 통과할 만한 크기의 창문은 아니었기에 별다른 의미는 없었다.

        ​

        ​

        ​

        “야, 여기 왜 잠겨 있어?”

        ​

        “몰라? 누가 들어갔다가 실수로 나올 때 문 잠갔나?”

        ​

        “하 시발, 어떤 병신이 마지막에 들어갔었냐.”

        ​

        “너 아니냐?”

        ​

        “좆까. 새끼야. 열쇠 있어?”

        ​

        “우리가 열쇠가 어딨어. 그냥 가자.”

        ​

        ​

        ​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목소리는 꽤 크고 거칠었다.

        ​

        딱 봐도 그렇게 친절한 사람들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

        아무래도 우리 저택을 차지한 건 꽤 거친 도적떼들임을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

        나는 숨을 죽이며 간절히 기도했다.

        ​

        제발, 그냥 가라.

        ​

        제발,

        ​

        ​

        ​

        “아니, 근데 이 안에서 분명히 소리가 들렸다니까.”

        ​

        “쥐나 뭐 그런 야생동물이겠지.”

        ​

        “누가 숨어들어온 거면 어떻게 해? 여긴 우리 거처야. 애초에 누울 곳도 부족해서 여기다 가구 다 밀어 넣었던 거잖아. 다른 놈 들여보낼 여유 없어.”

        ​

        “그럼 뭐 어쩌자고.”

        ​

        “1층에서 도끼 가져와.”

        ​

        “내가 네 부하냐? 네가 갔다 와 새끼야. 나 어디 있는 지 몰라.”

        ​

        “… 헥스에게 도끼 있잖아. 빌려 와.”

        ​

        “싫어, 이 문 열고 싶은 건 너니까 네가 가라. 나 헥스 걔랑 지금 좀 서먹해.”

        ​

        “너 또, 뭐 했냐?”

        ​

        “그저께 포커칠 때 사기 치다 걸렸어.”

        ​

        “… 어휴, 시발. 그래 내가 갔다 온다, 넌 계속 이 문고리 잡아당기고 있어 봐.”

        ​

        “알았다.”

        ​

        ​

        ​

        나는 품속에서 단검을 꺼냈다.

        ​

        아무래도 저들은 이 문을 열지 않고 넘어가 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

        대화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이 저택엔 꽤 많은 사람이 지내고도 있는 모양이었다.

        ​

        결국 일을 크게 만들지 않기 위해선 남은 방법이 이것밖에 없었다.

        ​

        나는 단검의 칼집을 벗기고 그 날카로운 날 끝을 내 목 끝에 가져다 대었다.

        ​

        ​

        ​

        “애쉬! 그만해, 안돼!”

        ​

        ​

        ​

        피아는 깜짝 놀라 물기 어린 목소리로 빽 고함을 질렀다.

        ​

        ​

        ​

        “…읏,”

        ​

        “나 때문이야, 미안해. 미안해애.”

        ​

        “아니 괜찮아. 피아. 네 잘못 아니야.”

        ​

        “아니야. 안돼, 안돼!”

        ​

        “… 이 세상은 실비아랑 앨리스 누나가 어떻게든 해줄 거야. 그러니까 피아, 너는 내가 없어도 그 두사람을 잘 도와줘. 부탁할게.”

        ​

        ​

        ​

        피아는 고개를 마구 저으며 단검을 치켜든 내 손을 붙잡아 내리려 했다.

        ​

        ​

        ​

        “애쉬… 싫어, 싫어!”

        ​

        “어쩔 수 없어…”

        ​

        ​

        ​

        피아는 마구 고개를 젓다가 불현듯 무엇인가 떠올랐는지 눈을 땡그랗게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

        그리곤 이내 곧, 더욱더 거세게 내 손목을 붙잡아 내리며 말하기 시작했다.

        ​

        ​

        ​

        “그, 그렇지, 애쉬 죽으면…”

        ​

        “…”

        ​

        “애쉬 죽으며는, 시, 실비아가 숲 밖으로 나갈 거야!”

        ​

        “…”

        ​

        ​

        ​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

        눈앞의 끔찍한 상황을 막아보려는 어린아이의 멋모르는 헛소리라고 치부하기엔, 그것은 꽤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다.

        ​

        나는 이제 실비아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

        내가 사라진 걸 알면 그녀가 어떤 일을 일으키게 될까.

        ​

        내가 숲 밖에 있다는 걸 알면 그녀가 어떤 일을 일으킬까.

        ​

        ​

        ​

        ‘마왕 따위는 알 바 아니라고… 용사 따위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더라.’

        ​

        ​

        ​

        순간 앨리스 누나가 내게 해줬던 그 말이 떠올랐다.

        ​

        마왕의 생존을 듣고도 신경 쓰지 않았다는 실비아의 모습.

        ​

        ​

        ​

        “…”

        ​

        ​

        ​

        과연, 실비아는 내가 없어도 이 세상을 지키기 위해 움직여줄까?

        ​

        그런 내 의문에 대한 답이라도 하는 듯이, 피아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두 눈을 꼭 감으며 고개를 좌우로 마구 저었다.

        ​

        ​

        ​

        “하, 하지만… 이대로는,”

        ​

        “바, 방법이 있어. 할 수 있어!”

        ​

        ​

        ​

        내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피아의 말이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

        어쩌면, 정령 술 중에는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

        조금씩 살아나는 희망과 기대를 품고, 나는 피아에게 물었다.

        ​

        ​

        ​

        “… 어떻게?”

        ​

        “애쉬의… 물건, 애쉬의 손길이 많이 닿은 물건이 있으면 돼,”

        ​

        “…?”

        ​

        ​

        ​

        쾅!

        ​

        문고리를 잡고 돌리던 사내는 슬슬 짜증이 치미는지 문짝을 발로 거세게 걷어차기 시작했다.

        ​

        피아는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두 귀를 쫑긋 세우더니, 이내 곧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나는 주문을 읊어 문 근처에 있던 커다란 책장을 옆으로 쓰러트렸다.

        ​

        커다란 굉음과 함께 옆으로 넘어진 책장은 문을 틀어막았다.

        ​

        문밖의 사내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더니 두려움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

        ​

        “뭐, 뭐야, 안에 누구야!”

        ​

        “피아,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

        ​

        “애쉬, 애쉬의 추억이 가득 서린 물건…”

        ​

        “… 물건?”

        ​

        ​

        ​

        나는 두리번거렸다.

        ​

        이곳은 내 방이다.

        ​

        물론 실비아와 함께 오두막에서 사는 데 익숙해진 나였기에, 특정 물건에 애착을 갖지 않게 된 지는 꽤 되었으나, 적어도 이 방 안에는 아직 내가 애착을 가졌던 물건이 남아있을 게 분명했다.

        ​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내 시선은 이내 곧 작은 서랍이 달린 내 책상에서 멈추었다.

        ​

        그러나, 책상은 온갖 가구들에 밀리고 가려져 가장 안쪽에 박혀 있었다.

        ​

        저 서랍 안에는 아직 무언가 남아있을지도 모르지만, 문제는 저 서랍을 열기 위해선 방 안을 가득 채운 이 가구들을 하나씩 빼야 한다는 점이었다.

        ​

        ​

        ​

        “야! 빨리 와봐! 이 안에 진짜 누가 있긴 한가 봐!”

        ​

        ​

        ​

        그리고, 내겐 그럴 시간이 없었다.

        ​

        ​

        ​

        “우의 을,”

        ​

        ​

        ​

        피아는 잠시 두 눈을 꼭 감고 그 자그마한 몸집을 부르르 떨었다.

        ​

        피아의 몸집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보였다.

        ​

        ​

        ​

        “피아?”

        ​

        ​

        이내 곧, 원래의 반절 정도의 크기로 몸집이 줄어든 피아는 그대로 양손을 땅바닥에 짚더니 처음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었던 그 여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

        여우의 형상이 된 피아는 가득 쌓여있는 가구를 요리조리 피해 가며 가장 안쪽에 박혀있는 내 책상을 향해 달려갔다.

        ​

        그리고는 짐승의 앞발을 들어 서툰 동작으로 서랍을 열어 그 안의 물건들을 입으로 한 움큼 물었다.

        ​

        ​

        아버지께서 사주셨던 작은 만년필, 

        ​

        망가졌지만 누나와 함께 누워 들었던 추억 때문에 차마 버리지 못했던 오래된 오르골,

        ​

        어머니께서 털실로 만들어주셨던 자그마한 털장갑 등.

        ​

        한번 눈에 스친 것만으로도 그에 얽힌 추억을 줄줄 읊어댈 수 있는, 그런 추억이 서린 물건들이 피아의 입안에 한 아름 물려있었다.

        ​

        피아는 입에 가득 찬 물건들을 그대로 문 채 고개를 치켜들었다.

        ​

        ​

        ​

        “… 피아?”

        ​

        ​

        ​

        피아는 그 물건들을 조금씩 삼키기 시작했다.

        ​

        그때였다.

        ​

        ​

        ​

        “도끼 가져왔네, 이것 좀 열어봐, 단단히 막혀있는데.”

        ​

        “발로 차는 걸로는 안 열리나 봐?”

        ​

        “방금 큰 소리 나면서 뭐가 문 앞을 막았어. 네 말대로 진짜 누가 있나 봐.”

        ​

        ​

        ​

        나는 이를 악물고, 가구들 틈 사이로 팔을 집어넣어 내 침대 위에 놓인 이불을 간신히 붙잡았다

        ​

        내게 실비아의 저주가 옳았던 그날을 떠올려보면, 이 저주가 발동되는 조건이 얼굴, 혹은 눈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

        저들이 들어오거나, 혹은 도끼로 쪼갠 문틈 사이로 나를 목격하더라도 일단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면 몇초라도 벌 수 있을 테니,

        ​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손끝에 닿은 이불을 확 잡아당겼다.

        ​

        방 안의 사방으로 뽀얀 먼지가 퍼져나갔다.

        ​

        나는 기침을 하면서도 바닥에 납작 엎드려 먼지투성이의 이불을 뒤집어썼다.

        ​

        그 순간, 어느새 물건을 모두 삼킨 피아가 다가와 내가 뒤집어쓴 이불 아래로 몸을 비집고 들어왔다.

        ​

        ​

        ​

        “야! 안에 있다! 누가 있어!”

        ​

        “뭐야, 다, 당신 누구야!”

        ​

        “내가 다른 사람들 불러올게!”

        ​

        ​

        ​

        사내들은 도끼에 의해 쪼개진 나뭇결 사이로 이불을 뒤집어쓴 나를 보고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

        그 큰 소음처럼, 그들은 더욱더 세게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

        도끼로 문고리를 부수고 어깨로 문을 힘껏 밀어내자, 문 앞을 막아둔 책장도 천천히 밀려나기 시작했다.

        ​

        ​

        ​

        “피아! 아직 멀었어?!”

        ​

        “크릉,”

        ​

        ​

        ​

        피아는 내게 몸을 꼭 붙이더니 그 작은 몸집을 부르르 떨었다.

        ​

        나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나와 피아를 덮어 가려준 그 얇은 천 하나를 단단히 틀어쥐었다.

        ​

        ​

        ​

        “으읏차!”

        ​

        ​

        ​

        사내의 기합 소리와 함께, 문 앞을 막고 있던 책장이 쓰러졌다.

        ​

        그리고 방 안으로 들어오는 사내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

        ​

        ​

        “어떤 쥐새끼인지 어디 얼굴 좀 볼까!”

        ​

        “피아!”

        ​

        ​

        ​

        억센 손길에 의해 나를 덮은 이불이 확 걷어졌다.

        ​

        나는 바닥에 엎드린 채 얼굴을 두 팔로 얼굴을 감싸 가렸다.

        ​

        사내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

        이미 늦은 건가.

        ​

        저주가 발동되어 버린 것인가.

        ​

        절망이 온몸을 뒤덮었다.

        ​

        그때였다.

        ​

        ​

        ​

        “애쉬… 지금 뭐 하는 거야?”

        ​

        ​

        ​

        실비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 실비아?”

        ​

        ​

        ​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

        실비아는 나를 덮은 이불을 든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

        ​

        “애쉬가 갑자기 사라져서 찾으러 가려던 참이었는데… 이걸 뒤집어쓰고 있었구나… 음? 아까는 왜 못 봤지? 아니 그보다, 이 이불은 또 어디서 난 거야?”

        ​

        “…”

        ​

        ​

        ​

        나는 이마에 줄줄 흐르는 식은땀을 손으로 쓸어내며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

        내 아래엔 어느새 여자아이의 형상으로 돌아온 피아가 거친 숨을 내쉬며 누워있었다.

        ​

        ​

        ​

        “세상에, 애쉬 땀 좀 봐. 뭐 하고 있었어?”

        ​

        “허… 하아…”

        ​

        ​

        ​

        오두막.

        ​

        내가 만든 그 엉터리 오두막이었다.

        ​

        아무래도 피아가 성공한 모양이었다.

        ​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대로 뒤로 넘어지듯 주저 앉았다.

        ​

        ​

        ​

        “애쉬?”

        ​

        “실비아 …이불 구해왔어.”

        ​

        ​

        ​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불을 들쳐보니 땀을 뻘뻘 흘리며 엎드려 있는 남자친구와 그 밑에 여섯살짜리 여자아이가 거친 숨을 내쉬며…

    실비아가 정령을 못봐서 망정이지 봤으면 큰일 날뻔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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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an’t Run Away from the Woman Who Saved Me.

I Can’t Run Away from the Woman Who Saved Me.

나를 살려준 그녀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
Score 4.2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Having lost all my family, I fled. As I was running away, she saved me when I was on the brink of death due to an accident. The moment our eyes met, I knew I couldn’t leave 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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