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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5

       적어도 검성은 진짜 칼날로 나를 베려고 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 나은 점은 나에게 크게 와닿는 ‘나은 점’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다.

        

       어차피 나는 진짜 칼에 베이더라도 시간을 돌리는 것으로 베이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내가 칼에 베이는 것은 그냥 ‘아프고 마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런데 루카스가 쓰는 검은 황자가 쓰는 검답게도 매우 날카로운 명검이었으므로 베인 직후에 바로 통증이 몰려오지는 않았다. 검에 베인 내 뇌가 엔도르핀을 급하게 내뿜는 것도 있었고.

        

       그러므로, 어쨌거나 ‘맞아서 아픈 것’은 크게 차이가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엔도르핀이 분비되지 않을 정도의 이 ‘몽둥이’가 나에게는 더 아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게다가 한 대 맞으면 되돌려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보통 한 번 휘두르고, 내가 피하고 나면 끝나는 루카스의 칼부림과는 다르게 검성의 검격은 몇 번이고 연속으로 날아왔으므로 그것대로 번거롭기도 했고.

        

       “흠.”

        

       눈 깜짝할 사이에 오연격을 날리는 통에 내가 십수 번은 시간을 돌리도록 만들어버린 검성은, 자기 검을 어깨 위에 척 올려두며 한쪽 눈썹을 올렸다.

        

       “참 이상하군.”

        

       그리고 역시 몇 번 정도 들은 적 있었던 말을 중얼거렸다.

        

       “아무런 재능이 없어.”

        

       “재능이……?”

        

       옆에서 듣고 있던 레오가 놀랐다는 듯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딱!

        

       “컥!?”

        

       검성이 쥐고 있는 검에 이마를 얻어맞은 뒤 그런 소리를 냈다.

        

       “너는 내 제자씩이나 되는 놈이, 사람한테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아보지 못하느냐? 이 아이는 어느 모로 보나 재능이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내 눈으로 보기에 네가 피하는 방식은 그저 운에 따르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주 정확한 판단이었다. 나는 되는대로 피하고 있었으니까.

        

       최대한 우아하고 깔끔하게, 라고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그 동작에 아무런 체계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유파 같은 것을 따질 수도 없는 그저 되는대로 움직이는 몸놀림.

        

       그런 의미에서, 검성은 가르치는 능력 하나만큼은 루카스보다 훨씬 위에 있었다. 단순히 싸우는 자로서 능력과 재능은 루카스가 위에 있을지 몰라도, 루카스라면 나의 움직임을 보고 ‘나의 신체 능력’이 순수하게 대단하다고 판단했을 테니까.

        

       ……그리고 나를 베어버리겠다고 선언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거고.

        

       “네놈, 정체가—”

        

       “스, 스승님.”

        

       검성이 나에게 대놓고 ‘네놈’이라는 표현을 쓰자, 옆에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던 레오가 기겁했다.

        

       “응? 뭐냐?”

        

       “그, 그게……”

        

       레오는 검성에게 다가가 한 손을 세워 입 옆을 가린 채, 속닥속닥 검성에게 어떤 말을 건넸다. 아마 나의 정체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제국의 황녀’라는 정체에 관한 이야기겠지.

        

       딱!

        

       “크억!?”

        

       하지만 검성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레오의 이마를 쳐버렸다.

        

       “제국의 황녀니, 뭐니 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더냐? 내가 이 절벽에 이런 오두막을 세워두고 지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은 해 봤느냐? 신분이니 정치니 하는 것들에 신물이 나서다. 적어도 이 안에서는 검술 실력만이 사람의 위치를 정한다. 그러니,”

        

       검성 프레데릭은 검을 들어서 내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놈은 이 안에서 신분이 가장 낮은 놈이나 다름없다.”

        

       일단 내 외모는 여성성을 결코 숨길 수가 없는 외모지만, 그런 나에게 ‘놈’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왜일까.

        

       ……하긴, 생각해보면 ‘네년’은 너무 말이 거친 것 같기도 해. 안 그래도 다소 꼰대 같은 면이 있는 캐릭터인데 비호감으로 찍혀버리면 곤란하니까.

        

       물론 나를 보고 ‘신분이 낮다’ 같은 표현을 쓰는 자기 스승을 보고, 레오의 얼굴은 ‘하얗다’를 넘어서 슬슬 ‘파랗다’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뭐, 나도 제자이긴 하니까. 내 스승은 나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나는 레오와 동문이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니, 뭐, 동문을 위해서 이런 말을 해줄 수는 있겠지.

        

       “호오.”

        

       검성은 재미있다는 듯 한쪽 입술을 끌어올렸다.

        

       “뭐, 좋다. 나를 찾아 여기까지 왔으면서도 그 총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보니 적은 아닌 모양이구나. 이야기라면 들어주겠다.”

        

       그리고 자리에 앉으라는 듯 빈 의자를 가리켰다.

        

       *

        

       자리에 앉은 나는 내가 찾아간 이유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물론 내 능력이나 혈통에 관련된 이야기는 빼고. 당장 밝힐만한 이야기는 아니었으므로. 언젠가 이야기하게 되기는 하겠지만, 일단은 코앞에 닥친 상황부터 해결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네 의붓형제가 너의 목을 베고 싶어 하고, 너는 그 의붓형제를 찾고 싶다는 말이냐?”

        

       “예.”

        

       “그리고, 그 의붓형제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예.”

        

       “그 의붓형제는 나보다 강할 것으로 추정되고.”

        

       “그렇습니다.”

        

       “……너, 죽고 싶기라도 한 것이냐?”

        

       검성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물었다.

        

       글쎄, 본인이 할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자기보다 강한 검사라는 말을 듣고 한순간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고, 이전에 만났을 때도 내가 루카스를 소개해주겠다는 말에 곧장 나를 제자로 들였던 인간이었다. ‘죽고 싶은 것’으로 따지자면 나보다 훨씬 가볍게 생각하는 양반이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조금 웃기게 느껴졌다.

        

       진짜로 웃지는 않았지만.

        

       나도 분위기 정도는 읽을 줄 아는 사람이다.

        

       “…….”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이 앉아서 대화하는 동안 옆에 서서 찻잔에 차를 타 주는 레오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잠깐 오두막 안에 침묵이 감돌았다.

        

       나는 말없이 찻잔을 들어서 한 모금 마셨다가— 정말 오랜만에 순전히 맛 때문에 미간을 찡그리며 레오를 올려다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레오는 엄청나게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레오가 타준 것은…… 내가 마시던 차와는 다른 것인 모양이다. 다시 보니 색깔도 새까만 게, 찻잎보다는 한약재에 가까워 보인다. 어쩌면 아까 검성이 던진 바구니 안에 들어있던 풀떼기들을 달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설탕은 없습니까?”

        

       “허.”

        

       내가 당당하게 요구하자, 검성은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지금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약재 달인 물에 설탕을 타 먹겠다고?”

        

       “…….”

        

       다시 생각해보니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말없이 찻잔을 내려두었다.

        

       그리고 검성을 향해 말했다.

        

       “죽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정말로 절박하게 물어봐야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루카스가 나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들어야 했다. 게다가 루카스가 만약 처음부터 그 시설을 보고 있었다면, 내가 어떤 식으로 그 안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었는지, 아니면 최소한 갑자기 뿅 튀어나왔는지 정도는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클레어가 온 곳이라던가.

        

       많은 것을 알 수는 없을지 몰라도, 지금 당장 내가 정보를 캐낼 수 있는 상대는 루카스뿐이니까.

        

       수틀리면 시간을 돌려서 아예 없던 일로 만들어버리면 된다. 그럼 루카스한테 죽을 일도 없을 거고, 기왕 돌리는 김에 제이든한테 ‘오라버니’라고 불렀던 흑역사도 취소시켜버릴 수 있을 거다.

        

       전장으로 향하면서 지휘관에게 반짝반짝 빛나는 얼굴로 나를 ‘자기 여동생’이라고 당당하게 소개하던 그 모습은…… 기왕이면 잊고 싶은 모습이었다.

        

       “흠.”

        

       나의 이야기를 들은 검성은 시선을 돌려서 레오 쪽을 보았다.

        

       레오는 뻣뻣하게 긴장한 얼굴이었다.

        

       “그런데, 그 루카스라는 인물을 찾으면서 ‘굳이’ 나한테 온 이유가 궁금하군.”

        

       다시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테이블 위쪽으로 몸을 조금 숙인 검성은 나에게 물었다.

        

       그 얼굴에선 명백하게 흥미가 묻어나오고 있었다. 나에 대한 정보를 들었을 때보다 더.

        

       “……루카스는,”

        

       나는 천천히, 검성이 내 말에 설득되기를 바라면서 말했다.

        

       “최종목표를 베기 전에, 분명 당신을 중간 단계 목표로 생각하고 찾아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원작에서 검성이 죽는 것은 한참 뒤였다.

        

       그리고 지금 루카스가 나의 뒤를 쫓고 있을지, 아닐지도 모르고.

        

       그러니 요 며칠 사이에 루카스가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하지만, 적어도, 루카스가 ‘언제든’ 나타나도록 할 수는 있겠지.

        

       만약 루카스가 검성 앞에 나타났다는 말을 들으면, 언제든 시간을 그 얼마 전으로 돌려서 검성을 찾아오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검성 프레데릭이 은둔을 풀고 산에서 내려오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대놓고 있으면 그만큼 눈에 들어오기 쉬울 거고, 마음먹기도 좋아질 테니까.

        

       기왕이면 제도 근처로 모시는 쪽이 낫겠지.

        

       “호오.”

        

       나의 말에 검성은 아까 오두막으로 들어오던 나를 봤을 때보다 훨씬 더 흉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보다 네놈을 더 ‘위험한 것’으로 본다는 말이로군.”

        

       “그렇습니다.”

        

       “건방지게도.”

        

       “…….”

        

       나는 검성이 다시 검 손잡이를 쥐는 것을 보고 긴장으로 몸을 뻣뻣하게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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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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