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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5

    다음날 아침, 루크가 눈을 떴을 때는 목과 코에서 느껴지던 화끈하고 따가운 느낌은 확연히 가라앉아 있었다.

     

    목 언저리의 역린을 쓰다듬어보아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기에, 시험삼아 몇 번 더 한숨을 내쉬어 보니 불은 더이상 뿜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어쩌면 목 언저리에 저장되어 있던 불을 모조리 뽑아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그다지 용량이 많지 않았던 모양이라, 어젯밤에 체력포션과 진통제를 삼키고나서도 한 3시간쯤 끙끙대며 불을 뱉고 있으니 그 후엔 검은 연기만 터져 나오기도 했고.

     

    그러고보니 뭇 새끼용들도 첫 브레스는 제어하질 못해 검은 연기가 나올 때까지 숨을 뱉는 다는 이야기가 있기는 했다.

     

    자신의 생전에 살아있는 새끼용을 본 적이 없으니 그게 사실인지는 확실치 않았다만, 직접 몸으로 겪어보니 그건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 새끼용들과 자신 사이의 가장 큰 다른 점이라면 그 녀석들은 입 안이 내열성 소재로 이뤄져 있어서 아무리 불을 뱉어도 피해가 없다는 것이고, 자신은 순전히 초고속재생이 가능할 뿐, 너무도 고통스러운 과정이라는 차이점이 있었다.

     

    그렇기에 딱히 그 방법밖에 없을 거라 인정하고 싶지가 않았다고 할까?

     

    게다가, 하루 종일 틀어박혀 스스로와 맞서 싸운 흔적이 남아있는 화장실을 둘러보니 상당했다.

     

    여기저기 타일이 까맣게 그을린 흔적과 함께, 불탄 샤워커튼, 녹아서 세면대와 붙어버린 비누…….

     

    지칠대로 지친 루크는 한숨을 팩, 내쉬었다.

     

    이 꼴을 청소할 생각을 하니 눈앞이 벌써 깜깜해지는 것 같았으니까.

     

    일단 간단하게 세수만 하고 화장실의 문을 열자,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젯밤, 탄내음을 너무 오래 맡아서 후각이 적응된 상태였던 건지. 아무런 냄새가 섞이지 않은 공기는 너무나 깨끗하게만 느껴졌다.

     

    그러자 제대로 잠을 잤는지 모를 예르나가 피곤한 기색을 애써 지워내며 루크에게 인사를 건넸다.

     

    “잘 잤어? 몸은 어때? 오늘은 괜찮아? 병원에 안 가봐도 돼?”

     

    “덕분에, 지금은 확실히 좋아졌구나. 고맙다, 예르나.”

     

    루크는 그런 예르나가 걱정하지 않도록 오히려 더욱 쾌활한 표정을 지어내며 말했다.

     

    “헌데, 욕실이 저래서야……. 당장 쓰기는 힘들 것 같군.”

     

    루크는 아쉽다는 듯 고개를 돌려 화장실의 상태를 바라보았다.

     

    욕실이 저런 꼴 이어서야, 자신은 몰라도 예르나는 쓰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욕실 밖의 냄새를 맡아보니 더이상 안쪽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으니까.

    한동안 환기를 해야겠지. 마법을 써도 거의 하루는 냄새를 빼는데 사용해야 할 것 같았다.

     

    칫솔마저 태워버렸으니, 오늘은 이도 닦을 수 없다.

     

    게다가 연구물품들까지 전부 태워버렸다. 주사기의 액체는 이제 기초분석단계도 접어들지 못했는데.

     

    주사기가 샤워커튼 봉과 함께 그대로 녹아버리는 바람에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있나.

     

    예르나는 그런 루크를 위로하며 물었다.

     

    “괜찮아, 목욕은 숲의 숙소에서도 할 수 있으니까. 일단은 환기를 시켜 두자.”

     

    “그러지.”

     

    화장실과 거실의 창문을 열며 루크는 이럴 때 파이가 있었다면 큰 도움이 되었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자연현상을 그 자체로 다룰 수 있는 정령이 사용하는 마법은, 사실 마법이라기보다는 현상 그 자체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루크가 사용하는 마법과는 달리 마나의 소모가 거의 일어나지 않아서 마나요금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오늘, 숲에 반딧불이가 있다면 한번 연락을 넣어보는 편이 좋을까.

     

    ———

     

    비가 온 뒤의 숲의 바닥은 물먹은 흙이 상당히 질척거리기에 평소처럼 구두를 신을 수는 없을 테니 예르나는 한 켤레의 어린이용 장화를 루크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자, 이걸 신으면 숲에서 신발을 버릴 걱정없이 마구 돌아다닐 수 있을 거야.”

     

    실드를 응용해 사용하면 굳이 다른 신발을 신을 필요는 없을 테지만, 예르나가 자신을 생각해서 선물해준 것을 일부러 거절하고 싶지 않아서 고맙게 받기로 했다.

     

    “특별히 신경 써줘서 고맙구나, 예르나.”

     

    루크도 좋아하는 것 같으니, 예르나는 빙긋이 웃었다.

    노란색 장화, 솔직히 루크가 신으면 참 귀여울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런데, 그건 또 무엇이냐?”

     

    루크는 예르나가 들고 있는 노란색 파우치에 눈길을 보냈다.

     

    “이건 우비인데, 비올 때 입는 젖지 않는 옷이야. 장화랑 같이 세트지.”

     

    “오호, 그런 건가. 방수 로브와 비슷한 거군.”

     

    “맞아.”

     

    ‘그런데, 방수 로브라는 말은 또 어디서 배운 거래.’

     

    ‘방수 로브’라는 말을 쓰는 어린이가 있다니, 루크는 참 묘한데서 어른인 척하는 것 같다니까.

     

    예르나는 루크가 장화를 신은 모습을 보며 이 우비랑 같이 신으면 참 잘 어울릴 텐데, 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비가 그치는 바람에 그것까진 볼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따름.

     

    그래도 또 비가 내릴 수도 있으니 챙겨 두기는 했다만, 화창하게 반짝거리는 하늘에 선명하게 떠오른 무지개를 보면 그다지 우비를 입은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래도 나중에,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볼 수 있겠지.

     

    다음에 비가 올 때는.

     

    ——

     

    숲의 도로는 역시 예상대로 질척거리고 푹푹 빠졌다.

    꽤 많은 물을 머금어서 아예 진흙으로 변해버린 땅도 많았다.

     

    일반 차량이었다면 도로에서 꽤 시간이 지체되었을 법한데, 숲지기용 특수차량의 기본적으로 높은 차체와 강한 힘 덕분에 큰 무리 없이 주행을 하고 있다.

     

    물론 빠른 속도는 내지 않고 있지만.

     

    루크는 그 광경을 보며 나지막이 감탄했다.

     

    ‘마차였다면 절대 지나갈 수 없을 만한 도로인데, 주행에 막힘이 없구나.’

     

    자동차라는 물건은, 확실히 마차를 대체할 수밖에 없는 물건이었다.

     

    그렇게 마침내 도착한 숲지기의 숙소.

     

    차문을 열자 젖은 흙내음과 물기에 젖은 식물이 내는 특유의 푸른 향취가 물씬 느껴지는 공기에 루크는 가슴이 탁 트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화장실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숲으로 이어진 공기의 변화는 점진적으로 확실하게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마법사의 서클이 하나씩 늘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루크는 크게 심호흡 하며 새벽녘의 마력과 함께 숲의 공기를 빨아들였다.

     

    “후우우…….”

     

    만족스러운 미소가 입가에 걸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 루크에게 예르나가 묻는다.

     

    “오랜만에 숲에 오니까 좋은 거야?”

     

    “좋다 마다, 공기부터 다르잖은가. 마력도 풍부하고, 요금을 걱정할 필요도 없지.”

     

    아무래도 예르나의 집에 있다 보면 사소한 마력사용행위를 하더라도 마나요금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집 밖에서 마음대로 마나 도둑질을 하고 싶지도 않고.

     

    그런데 숲은 그럴 걱정 없이 마음껏 마나를 모을 수 있으니, 루크로서는 최고의 환경이었다.

     

    그리 심호흡을 하고 있자, 소르비가 숙소에서 튀어나와 루크를 안아 들며 말했다.

     

    “루크! 어제 아팠다면서? 오늘은 괜찮아? 언니 안 보고싶었어?”

     

    “괜찮다. 내 걱정해줘서 고맙구나. 그러니 이제 그만 내려주겠나.”

     

    점잖게 타이르듯 하는 루크의 말에 소르비는 ‘루크도 참, 이런 부분에선 귀엽지 않다니까.’하고 볼멘소리를 내며 내려주었다.

     

    그런 소르비를 살짝 흘겨보며 예르나가 말한다.

     

    “소르비. 루크만 반겨주는 거야?”

     

    “엑, 언니는 저한 테 언니일을 떠넘기셨잖아요. 루크가 아프다고 한 게 아니었으면 안 받아줬을 거라고요!”

     

    “그렇게 말하면 또 할 말은 없네.”

     

    예르나는 난처하다는 듯 볼을 긁었다.

     

    “그런데, 어디가 아팠던거에요?”

     

    “그게…….”

     

    예르나는 어제 있었던 난장판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갑자기 아침부터 입에서 불을 뿜더니 입안에 온통화상을 입어서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재채기를 참으려 하다가 코 안쪽까지 홀라당 타버려서 울어버렸다고.

     

    하지만 울었다는 이야기를 할 때는 루크가 ‘그런 얘기까지 할 필요는 없잖은가!’라며 빨개진 얼굴로 마구 화를 냈기 때문에 더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었다.

     

    “아무튼, 그렇다 보니 화장실을 못 써서 목욕도 못 한 상태거든. 그래서 일단 숙소에서 목욕부터 할 거야.”

     

    “그렇군요. 목욕이라…….”

     

    소르비가 루크를 미묘한 눈빛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럼 저, 지금 목욕하러 가면 루크 랑 같이 목욕할 수 있는거에요?”

     

    소르비에겐 귀여운 여동생이 있다면 같이 목욕을 하면서 머리도 감겨준다 거나하는 그런 상황에 약간은 환상 같은 게 있었다.

    하지만 루크는 그런 환상에 어울려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 이유는 딱히 루크 이루시로서의 기억이 여성이 아니었기 때문이 아니다.

    대마법사였던 그는 애초에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탓에, 여성의 육체를 본다고 해봤자 그 시각정보를 단순한 인체의 형태로 받아들여버렸으니까.

    따라서 여체에 특별히 다른 생각이 든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쩐지 소르비는 꺼려진다.

     

    일전에도 장난으로 당한 게 있다 보니, 조금은 경계를 하게 된다고 할까?

     

    결코 휴대폰을 선물로 받을 때 자신이 어쩔 수 없이 ‘언니’라고 한 말을 녹음해서 모든 숲지기들에게 돌려서라거나, 사진을 찍을 때 브이를 하는게 필수라고 가르쳐줘서 라는 이유는 아니었다.

     

    그냥, 루크는 장난기가 많은 타입에 약했다.

    정확히는, ‘자기보다’ 장난기가 많은 타입에.

     

    아무튼 그런 느낌의 시선을 예르나에게 보냈더니, 예르나는 참 눈치가 빠르게도 소르비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건 루크가 싫어하니까 안돼. 집에서도 요즘은 혼자서 씻으려고 하는 걸.”

     

    루크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준 예르나에게 고맙다는 표시로 웃어 보였다.

     

    ——-

     

    목욕을 마치고 루크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당연히 화단이었다.

     

    예상보다 강한 빗줄기에 혹시 비가 오는 동안 잘못되지는 않았을까, 항상 노심초사하고 있었기에 루크는 화단의 상태를 당장 확인하고 싶었다.

     

    물기를 마법으로 즉시 떼어내며 옷을 챙겨 입고 자그마한 모종삽을 하나 들고 콧노래를 부르며 화단으로 향했다.

     

    그리고 도착한 화단,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루크는 턱을 쓰다듬으며 화단을 살폈다.

     

    여러 번 보아도 역시 이상했다.

     

    루크는 마침 순찰을 돌고 돌아온 건지 조금 땀을 흘리며 수통의 물을 마시던 키르케를 불렀다.

     

    “키르케, 이것 좀 보게나.”

     

    “ㅇ, 왜? 화단에 뭐가 있어?”

     

    “뭔가 이상하지 않나? 이 꽃이 왜 여기 심어져 있지? 분명 뒷쪽열 3번째칸에 심어 뒀던 것 같은데…….”

     

    그러자 키르케는 미묘하게 목소리를 떨면서 대답했다.

     

    “그,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그런가……? 음…….”

     

    루크는 다시 화단에 시선을 보내며 턱을 쓰다듬었다.

     

     

    “이건 더 이상하군. 라펜테스를 심어 둔 기억은 없는데…….”

     

    “…….”

     

    “어디서 떠밀려왔나……? 흠, 그게 말이 되는 일인가…….”

     

    키르케는 그런 루크의 모습에서 눈을 떼고 수통을 다시 입에 댔다.

     

    괜히 목이 다 탄다.

     

    라펜테스는 그녀의 아이디어였기 때문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장화신은 고양용 루크 이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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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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