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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5

       *

         

         

         상 마틸렌느에서 출발한 기차는 동부 평야를 거쳐 사흘 뒤 정차했다.

         

         

         “죄송합니다!! 열차 운행이 중단되었습니다!”

         

         

         역무원들이 돌아다니며 외치는 소리가 차량칸 전체에 울려 퍼졌다. 안타깝게도 마적들의 습격 같은 유쾌한 이슈는 아니었다.

         

         이반은 내심 인상을 찌푸렸다. 기껏 손질해둔 도끼가 무색하게도, 선로가 막힌 이유는 합리적인 것이었다.

         

         

         “용이 아직 살아있어서 선로를 막았다고요?”

         “음.”

         

         

         이자벨은 툴툴거리며 짐을 챙겨 내렸다. 열차 플랫폼에서, 일행은 각자 오랜 시간 열차에 앉아 있던 몸을 풀고 있었다.

         

         역무원들이 설명한 선로 차단의 사유는 단순했다. 용이 근방 영지에 날뛰고 있으므로, 열차 운행을 정지해 백성들의 안전을 도모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름 타당한 이유다. 마적 따위에도 멈추는 열차로서는 용의 습격에 전혀 대항할 수 없으므로.

         

         용이란 본디 가학적이고 호기심 많은 족속들이었으므로, 초원을 내달리는 열차를 발견한다면 습격해올 가능성이 높았다.

         

         

         “이 근처래요? 용이 나타났다는 곳이요.”

         “아니. 베르니나 산맥까지 가려거든 여기서 열차로 하루는 더 가야 했다.”

         “어… ‘열차’로요?”

         “도보로는 나흘 정도 걸리겠군.”

         “돌겠네.”

         

         

         이자벨은 머리를 감싸쥐고 끙끙거렸다.

         

         이 아저씨 성격에 친절하게 마을을 경유하는 경로로 길을 잡진 않을 테니까, 최단거리 직선 주파를 한다 치면 무조건 노숙은 확정이다.

         

         야지 노숙에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달랐다. 여자로서는 결코 용인할 수 없는 틈이 무조건 노출되고 말 테니까. 적어도 씻고 깨끗한 상태로 풀메이크업하고 보일 얼굴은 아닐 것이다.

         

         이자벨이 인상을 찌푸릴 때, 에시디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보로 나흘이면, 조금 노력해서 간다 치면 말로 이틀 정도면 가지 않나요?”

         “노력을 많이 하면 하루 걸려서도 가능은 하지.”

         “그럼 말을 타는 건 어때요?”

         “…흠.”

         

         

         이반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에시디스를 바라보았다. 말을 탈 줄 안다고?

         

         보통 많은 컨텐츠에서 무시되곤 하는 것이지만, 기마술은 대단히 고급 기술에 속한다. 괜히 승마가 올림픽 종목이 아닌 셈이다.

         

         말을 타고 원하는 방향으로 모는 것과, 말의 속력을 조율하는 것, 말 위에서 균형을 잡고 자세를 단단히 유지하는 것까지 모두 포함해서 그렇다.

         

         말은 대단히 예민하고 까다로운 데다 머리가 좋은 가축이다. 처음 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기도 하고, 말마다 조금씩 다른 성격과 버릇 탓에 처음 올라탄 말은 장거리 주행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일종의 길들이는 과정이 선결되어야 한다. 그런 과정을 건너뛰고 곧장 말을 다스릴 수 있는 기술은 전문 기술의 영역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는 말 타본 적 없는데요!”

         “저, 저도 기초만 살짝….”

         

         

         이자벨과 엘피헤라가 작게 투덜거렸다. 이제 막 20대가 된 학생들, 그것도 도시 출신 학생들이라면 승마가 낯설 수밖에 없다.

         

         오스칼은 질 베르의 교육을 받았고, 동방기사단 출신이기도 하니 기마에 별생각이 없어 보이고.

        ‘

         에시디스는 드로안 출신이었으므로 익숙한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드로안은 기본적으로 말 없이 다니기엔 너무 거칠고 넓은 땅이니까.

         

         이반은 턱을 쓰다듬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내가 준비하지. 이 기회에 익히면 좋은 기술이다.”

         

         

         훗날을 생각하자면 그렇다.

         

         용사 파티가 가야 하는 곳은 대부분 적지 깊숙한 곳이며, 열차나 마차는커녕 길조차 멀쩡하지 않은 산과 들에서 원정대를 꾸려야 하는 일이다.

         

         이 시대의 침투조는 비행선에서 고공 강습을 하지 않으므로.

         

         따라서 기마술은 일단 익혀두면 도움이 된다. 말이 있을 때의 이동거리는 도보와 비교도 할 수 없으니.

         

         ‘교육’이란 이름 아래에 일행이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

         

         

         말로 떠나는 여정은 생각 이상으로 평탄했다. 기본적으로 틸레스는 고저차가 거의 없는 평야가 많았고, 이 근방은 길이 잘 닦인 편이었으므로.

         

         더군다나 용이 날뛰고 호국경이 군대를 일으킨 땅에 산적 따위가 있을 수가 없으므로, 그들의 길을 막아서는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말을 탄 다는 것 자체의 고통.

         

         그러나 그건 결국 훌륭한 경험으로 체화될 것이었으므로 오히려 좋았다. 이반은 고통을 호소하는 일행에게 관심을 끊었다.

         

         대신 보다 중요한 것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용의 습격을 우려해 선로를 끊었다라….’

         

         

         이반은 말 위에서 상념에 잠겨 있었다. 그 시점 일행은 반쯤 죽어가는 얼굴로 간신히 말 등에 매달려 있었다.

         

         

         ‘호국경이 수도군단의 일부를 대동하고, 동방기사단까지 이끌고 출정했는데도 선로를 끊었다….’

         

         

         이상한 일이다. 이 열차 선로는 단지 백성들의 통행을 위한 것만은 아니었으므로.

         

         틸레스는 교통의 요지다. 동북부의 동부전선을 틀어 막은 요충지이기도 했으나, 동시에 서부 칼리온 군도로 이어지는 긴 해운로와 서부 연합국들로 이어지는 무역로까지. 온갖 물류가 교차하는 무역 국가였다.

         

         하나의 선로에 불과하더라도 이 선로가 하루에 이송하는 물자의 양은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반은 머릿속 수첩을 가만히 뒤적이며 상념에 잠겼다.

         

         

         ‘보급을 끊었다.’

         

         

         무역로의 단절을 감안하고, 퇴각로와 보급로를 끊었다. 지금 동부전선에 주둔중인 병력들과, 질 베르가 이끌고 있는 동방기사단의 보급로까지 동시에.

         

         그렇다고 가정한다면 얼추 말이 되긴 했다. 당장 군수품 고갈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더라도, 장기전으로 이어지게 될 경우 이는 반드시 심대한 타격이 될 테니까.

         

         예상해보자면, 지금 동부로 이어지는 선로 대부분이 끊겨 있을 가능성이 높다. 우연히도 이반이 탄 열차만 정지시켰을 리는 없으니까.

         

         

         “엉덩이가… 너무 아파요…!!”

         “멀미, 멀미가 나. 나, 나 토할 것 같아….”

         “해요 그럼.”

         “이런데서 할 순 없어!! 그건 끝장이라고!”

         “노래를 좀 불러 드릴까요?”

         “…네?”

         “노래요! 저 음대생인데?”

         

         

         귓가에 윙윙 울리는 소리들을 무시하며, 이반은 깊은 시름에 잠겼다.

         

         생각하면 할수록 정교하게 맞물리는 계획이다. 용의 출현 자체가 질 베르의 외유를 위한 수단이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았다.

         

         호국경과 그 가신들을 수도에서 내보내는 것이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만일 그가 역모를 준비하는 ‘대백작’이었다면 더 무엇을 안배했을까.

         

         지금 이반의 머릿속엔 틸레스 전역의 군사 지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를 천천히 펼친다.

         

         틸레스의 국경을 따라 산하가 펼쳐진다. 산맥이 밀집된 동부에서부터 중앙의 평야지대, 다시 북부로 넘어가는 넓은 숲까지.

         

         그 사이로 붉은 선들이 잇따라 죽죽 그어졌다. 사람과 군수물자가 이송되는 경로들이다.

         

         수많은 선로, 진군경로, 보급 경로, 각 군단과 산하 병대의 주둔지, 요새화된 성과 각 영지 귀족들의 거점이 복잡하게 얽힌다.

         

         

         점과 점, 선과 선이 면을 채색하는 사이, 바쁘게 움직이며 복잡하게 얽히던 모든 도형들이 멈췄다.

         

         

         동북부 평원 전체가 단단하게 굳는다. 물자가 멈춘다. 용이 날뛴다.

         

         질 베르가 이를 막기 위해 떠난다. 그러나 부족하다. 질 베르의 능력이라면 용 한 마리 정도로는 모자라니.

         

         그러므로 동부전선에 출몰하고 있을 ‘마족’들은 쉽게 국경선을 넘볼 수 없다. 그들의 위치와 질 베르의 진군로가 너무 근접해 있다….

         

         

         ‘상정할 수 있는 모든 계획은… 질 베르를 죽일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이루어져 있다.’

         

         

         그의 존재 하나만으로도 국가의 모든 위협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그의 행선지가 바뀔 때마다 각 세력들의 군단이 후퇴하게 된다.

         

         그가 선두에서 이끄는 동방기사단은 틸레스 최강의 군벌이니까.

         

         그런 그를, 대체 무슨 수로?

         

         

        *

         

         

         “군기!!”

         

         

         침을 흘리며 말의 등 위에 엎어져 있던 엘피헤라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산자락 아래 평야에, 너른 들을 따라 군기가 펄럭이는 것이 보였다.

         

         엘피헤라는 순식간에 마력을 직조해 수인을 짚었다. 푸른 불똥이 타닥, 튀는 손을 동그랗게 말아서 한쪽 눈에 가져다 붙였다.

         

         

         “군기! 맞아요! 저기!!”

         “안다.”

         “다 왔다! 세상에… 세상에… 다신, 다신 말 같은 걸 타지 않을 거야…. 가, 가축에 타는 건 야만적인 일이에요. 알아요? 현대 사회의 문명인은 마법 공학 장치를 이용해야 해요.”

         “그렇군.”

         “공중 전함이나! 창공수송기 같은 것들이요!”

         

         

         군수물자를 개인적으로 유용하겠다는 엘프 추밀의원 딸의 언행을 대충 흘리며, 이반은 말머리를 돌려 군영을 향해 다가갔다.

         

         30분쯤 더 이동한 끝에 구릉지를 지나 점차 군영이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우와….”

         

         

         유진은 멍하니 감탄했다. 빙의 직후 도시에서만 살다보니 이런 본격적인 군영은 처음 보는 탓이다.

         

         동방기사단의 성 프란체스코 군기. 들판 위로 떠오르는 태양이 악마를 불태우는 형태의 군기가 군영 전체에서 나부끼고 있었다.

         

         수많은 말과 시종들이 군영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번쩍이는 갑주를 차려 입은 기사들이 보이고, 그 사이사이에 병사들이 이동하고 있었다.

         

         그들의 접근을 눈치챈 경비가 손을 흔들었다. 정지 신호였다.

         

         

         “정지!! 이곳은 군사 작전 구역이요! 신분을 밝히시오! 어디에서 오신 분들이오?”

         “상 마틸렌느.”

         

         

         이반의 대답에 경비병이 와락 인상을 구겼다.

         

         

         “제기랄. 우리 나으리들이 지원 병력이랍시고 보낸 건가? 감시라도 하겠다고?”

         

         

         먼 거리에서 작게 투덜거리는 정도였지만 이반은 또렷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왕가와 귀족원의 인망이 바닥에 처박혀 있다는 것쯤은 알겠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임무를 할당해 출정을 보내 놓고 보급선을 끊어버린 셈이니까. 당연히 진내의 분위기는 흉흉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왕가가 파견한 관리라는 오해를 굳이 풀어줄 필요 따윈 없다. 시간은 그보다 유용하게 쓰여야 하니까.

         

         병사가 무어라 외치려 할 때, 이반은 손을 들어 저지하고는 짧게 말했다.

         

         

         “질 베르 드 에타크리히에게 전해라. 이반 페트로비치가 왔다고.”

         “감히…!! 공작 전하께서 네 친구라도 된다는 듯이 말하느냐? 감히 동방기사단의 주둔지에서?!”

         “친구라.”

         

         

         틀린 말은 아닌데 썩 기분 좋은 단어는 아니었다.

         

         이반은 입술을 비뚜름하게 꺾으며 말했다.

         

         

         “네가 판단할 일은 아니지. 상 마틸렌느에서 이 자리까지 온 사람이라면, 내 정체가 무엇이든 네가 감당할 일은 아니다. 가서 네 주인에게 똑바로 전해라. 이반 페트로비치가 왔다. 라고.”

         “…마틴! 저놈들 도망 못 가게 막아! 궁수대! 움직이면 그냥 쏴도 된다!”

         

         

         경비는 분노로 붉게 물든 얼굴을 한 채 군영 너머로 사라졌다.

         

         그의 곁에 다가온 오스칼이 작게 속삭였다.

         

         

         “그냥 제가 아버지를 찾아왔다고 말하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까?”

         “…음.”

         “…네?”

         “그렇지.”

         

         

         이반은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 다른 의도가 있는 건가 싶어서, 오스칼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뒤로 물러섰다.

         

         그런 그의 곁에 유진이 가까이 붙었다.

         

         

         “헤헤, 오스칼 씨. 형님은 지금 부끄러워 하고 계신 겁니다. 그리고 기대감도 좀 있고요!”

         “…네?”

         “친밀도가 올라서 [현재 심정]이 조금 보이거든요. 아, 잠깐. 아…. 어….”

         

         

         방금 3점이나 떨어졌네.

         

         이젠 안 보입니다. 하고 유진은 다시 간신처럼 웃었다.

         

         오스칼은 유진의 말을 이해하는 데에 실패했지만 굳이 다시 되묻지 않았다. 본디 그가 만난 크라실로프 사람들 대부분은 정상이 아니었으므로.

         

         심지어 이반이 어디서 모아온 ‘동아리 삼인방’은 그 정점이었다. 교내에 소문이 자자한 광인들이었다. 내심, 이반이 광인들을 수집하는 것에 취미가 있나 싶을 정도였다.

         

         

         ‘잠깐, 그럼 나는…?’

         

         

         그도 어떻게 따지고 보면 이반이 수집한 학생 중 하나일 것 같은데….

         

         오스칼은 끔찍한 상상 끝에 고개를 흔들어 털어냈다. 정상인은 광인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는 법이다.

         

         그리고 곧, 그는 상념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누가!! 감히—!!!!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군영 전체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칼에 에이는 듯한 살기가 군영을 뒤덮고 하늘로 치솟았다. 방향을 바꾼 바람이 군기를 거칠게 흔들었다.

         

         병사들은 질겁한 얼굴로 주춤거렸다.

         

         

         “고, 공작님께서 이렇게 진노하신 것은 처음인데….”

         “피해야 하나…?”

         “저놈들이 도망치기라도 하면 우리가 대신 공작님을 상대해야 할 거야. 기다려.”

         

         

         병사들이 겁에 질린 채로 쑥덕거리고 있었다. 이반은 꼿꼿하게 서서 터져 나오는 살기를 가늠했다.

         

         

         ‘성장… 했나.’

         

         

         재수 없는 녀석.

         

         

        -감히!! 고인을 욕보이다니!! 누구냐!! 누가 감히 내게 그 이름을 전하라 했다더냐!!

       

        -비켜라!! 내 직접 가서 놈들에게 물어야겠다. 어디서 들은 이름이고, 누가 내게 전하라 했다는지!!

         

         

         저건 숫제 에이나르보다 더 심한걸.

         

         그새 성격을 많이 버렸군. 하긴, 원래도 좋은 성격은 아니긴 했다.

         

         이반은 픽 웃으며 잠시 기다렸다. 곧 살기가 그를 향해 쏟아졌다.

         

         어느새 우글우글 몰려든 병사들이 말없이 쩍 갈라져 비켜섰다. 군기가 바싹 들어 꼿꼿하게 시립한 병사들 사이로, 이글거리는 살기가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사슴뿔과 방패, 그리고 창이 교차된 거대한 군기가 그의 등 뒤에서 펄럭였다. 에타크리히, 호국경의 인장이다.

         

         단단한 인상의 기사 한 무리가 그를 따라 척, 척, 발걸음을 옮겼다. 동방기사단의 입회 기사들이다. 그리고 그 앞에.

         

         동방기사단의 기사단장, 상 마틸렌느의 수호자, 틸레스 왕국의 호국경(Lord Protécteur of the Monarchie des Tilléçaise). 철산(鐵山)의 기사. 용사 파티의 방패.

         

         잿빛 갑주를 걸치고, 자주색 망토를 휘장처럼 두른 중년 사내가 걸어오고 있었다.

         

         무거운 발걸음, 타오르는 녹색 눈동자, 깨끗하게 뒤로 넘겨 묶은 금발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정말 정말, 정말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콧수염을 기른 사내가.

         

         이반은 내심 놀랐다. 프링글스가 떠오르는, 그 특유의 쉼표 모양 수염이 매끄럽게 다듬어져 올라가 있었다.

         

         

         “…이반 페트로비치…?”

         

         

         이반이 잠시 충격에 말을 잃었을 때, 질 베르는 멍하니 서서 이반을 바라보았다.

         

         그는 천천히 손을 쭉 뻗더니, 이반의 턱 언저리를 가리고 눈을 가늘게 떴다.

         

         

         “살아… 살아 있었나…? 살아 있었다고…? 그럼 그때 그 장례식은…? 나, 날 속였어…? 또?!”

         “질 베르 드 에타크리히.”

         “이반… 이반 네노오옴….!!”

         “예레모프다.”

         “뭐? 뭐라고?”

         “이반 페트로비치 예레모프. 난 이제 귀족이다.”

         “흐… 하!!!”

         

         

         질 베르는 기침을 토하는 것처럼 꺽꺽거리며 웃었다. 한참 이마를 짚으며 끙끙거린 끝에, 그는 한결 풀어진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마침내 이반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 수염은 대체 뭐냐.”

         “그 수염은 대체 뭐냐!!”

         

         

         두 사람은 동시에 서로를 향해 비난을 시작했다. 정확히 같은 템포로, 같은 말로.

         

         

         “실력이 더 늘었군.”

         “실력이 더 늘었나!”

         

         

         초인은 무릇 기세와 호흡, 자세와 걸음만으로도 상대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법이다. 그들 정도의 수준에서, 그것도 수 년간 같은 전역에 복무했던 입장에선 더욱 수월하게.

         

         두 초인은 동시에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타고난 것이 있으면 노력이라도 좀 적당히 했어야지.””

         

         

         그리고 한 목소리로.

         

         

         ““재수 없는 놈.””

         

         

         웃으면서. 서로에게 다가가서는 팔을 뻗는다.

         

         악수가 아니다. 보다 더 깊은 방식의 경례였다. 팔을 더 깊게 뻗어 서로의 팔뚝을 움켜쥐는 방식의.

         

         

         “반갑다.”

         “네 놈도!!”

         

         

         이반에게 질 베르는 용사 파티에서 가장 재수 없는 녀석이었다.

         

         언제나 젠체하고, 귀족의 자세를 강조하며 시끄럽게 투덜거리고, 실력도 모자란 주제에 용사와 매번 자웅을 겨루고 싶어하는.

         

         자존심과 자긍심, 열등감과 자격지심이 뒤섞인. 너무나 인간적인. 재수 없는 귀족 기사.

         

         

         질 베르에게 이반은 용사 파티에서 가장 재수 없는 녀석이었다.

         

         언제나 젠체하고, 훈련 받은 요원이라며 이것저것 잔소리를 하고, 뭘 보여주기만 하면 ‘한 번 본 건 할 수 있다.’ 같은 소릴 지껄이며 곧장 따라해버리는.

         

         자존심과 자긍심, 열등감과 자격지심이 뒤섞인. 너무나 인간적이라, 더욱 재수 없는 군인.

         

         

         그래서, 두 사람은 마침내 서로의 얼굴을 보고 미소를 짓고 말았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세상에, 정말 아비를 쏙 빼닮았군. 이 녀석.
    이반은 감탄했다. 외모 뿐만 아니라, 저 제 잘난 맛에 사는 표정마저 닮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주위의 인파 정도일까.
    질 베르의 여성 편력은 굉장히 깔끔했으니까.

    Ep 6. 입학 첫날에 상태창이 열렸다. (1)

    *

    “네 아버지를 좋아했던 적은 없지만, 자식 교육은 성공했나 보구나. 질 베르의 아들, 오스칼. 네 행동은 훌륭했다.”
    “아버지를 아십니까?”
    “그 작자가 날 아직 잊지 않았다면, 친구다.”

    EP 9. 아카데미 현장학습에선 반드시 습격이 일어난다.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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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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